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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눅 14:15~24
제 목: 큰 잔치.(찬520장)
이번 한국 방문은 선교사로서 사역을 하던 기간 중에서 가장 긴 시간을 한국에서 보낸 날이었습니다.
제가 고매교회를 방문한 것이 지난 부활절 때였지요? 기억하실 분이 있으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난 3월 중순 경에 한국에 왔으니 3개월 이상을 한국에서 지낸 것이지요. 그리고 이제 이틀 후면 저는 다시 크로아티아로 돌아가게 됩니다.
사실 이번 한국 방문은 치료와 건강회복을 위해 왔기에, 교회의 설교나 초청을 대부분 마다했습니다.
하지만 권대일 목사님께서 요청을 해 주셨을 때 고매교회에서 만큼은 꼭 와서 말씀을 전하고 교제를 하고 싶은 마음에 있어 이렇게 오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고매 교회는 저희 기도의 응답이 이뤄진 곳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귀한 교회에 불러주신 하나님께 감사 드립니다. 그리고 또한 저희를 초청해주신 목사님과 교회의 모든 성도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저는 대구가 고향이고, 제 아내는 바로 여기 효령 장군리가 고향입니다.
저의 모교회는 대구 중리동에 있는 만민교회인데 교회에서 부설유치원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군을 제대하고 저는 교회를 출석하며 부설 유치원 일을 도와주려 종종 방문했는데 그곳에서 아내를 만나게 되고 교제하게 되고 결혼에 이르기까지 된 것입니다. 그 당시에 처가 가족 중에 예수 믿는 분은 아무도 없고 아내 혼자 신앙을 가져 믿음 생활을 했었습니다.
아내가 저와 교제하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자신은 혼자 믿음을 가지고 있지만, 언젠가 가족 모두가 예수를 알고 믿길 간절히 바라고 기도하고 있다고 말이지요. 그게 아내의 기도제목이었습니다.
그때가 25년 전이니 벌써 많은 세월이 지났지요.
저는 지금 여러분의 교회에서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교회에 저의 장모님께서 집사로 출석하고 계십니다. 할렐루야!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유교사상에 살았던 큰 처남이 권대일 목사님께 세례를 받고 하나님의 자녀요 천국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의 아내가 지난 부활절에 여기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할렐루야.
고매 교회는 기도가 응답된 간증의 장소입니다. 그래서 제가 설교요청을 마다치 않고 이렇게 왔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 드린 기도는 반드시 응답됩니다. 이 사실을 여러분이 믿는 은혜가 있길 축원합니다.
제 삶은 기도와 응답의 반복이었습니다. 저처럼 많은 응답을 받고 은혜를 받은 자도 없을 것입니다.
이곳에 있는 성도들 모두도 그러할 줄 믿습니다.
농부가 씨를 뿌리고 그 열매를 기다리는 것 같이, 우리가 하나님께 바라는 모든 기도의 제목에 하나님 응답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에게 가장 크고 좋은 선물을 주십니다. 그것은 돈이 아닙니다. 차도 아니지요. 명예와 권세도 아닙니다. 땅도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그것들을 구하지만 사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길 원하는 가장 큰 선물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며,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다음 주에 크로아티아로 돌아가려 하니깐 짐이 많습니다.
이것도 가지고 가야 하고, 저것도 가지고 가야 하고, 교회 물품, 학교 물품, 선물, 등 항공기에 제가 싣고 가지고 갈 수 있는 짐의 양보다 더 많은 양이 짐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 땅에서는 어디로 떠나려 하면 가지고 갈 짐이 얼마나 많고 챙겨야 할 것도 많지만, 영원한 나라로 떠날 때에는 아무것도 챙길 필요가 없고 또 가지고 갈 수도 없고, 빈손으로 가는 것이라는 것을 말이지요.
왜 천국은 빈손으로 가야 합니까? 그곳에는 모든 것이 다 완전하기 때문이지요.
이곳보다 그 곳이 더 좋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크로아티아로 갈 때는 가방에 가득 차지만, 크로아티아에서 한국으로 올 때에는 가방이 비어있습니다. 왜냐면 한국이 더 많고 누릴 게 많고, 크로아티아에서 가지고 올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지요.
천국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영원한 나라에 갈 때 빈손으로 가는 것입니다. 가방에 담을 필요가 없습니다. 주머니에 집어 넣을 필요도 없습니다. 가장 좋은 모든 것이 이미 천국에 예비되어 있습니다.
몇 해 전에 한국의 어느 교회에서 저와 크로아티아 현지 목회자를 초청해주셨습니다.
그러면서 그냥 무조건 오기만 하면 된다고 합니다. 항공료도 호텔도 다 해 준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고 그냥 갔습니다. 정말 모든 것을 full로 섬겨주셨습니다.
식사뿐 아니라 여행도 시켜주고, 너무나 큰 위로를 받게 된 것이지요.
저와 함께 온 현지 목회자는 큰 감동을 받았고, 크로아티아에서 가지고 온 자기 용돈은 쓸 필요가 없을 정도로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는 다시 크로아티아로 돌아가서 기독교 라디오 방송에서 한국에서의 경험한 일을 침이 마르게 간증하고 또 책에까지 써서 낸 기억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껏 이 땅에서의 초청받는 것도 그러한데, 영원한 천국으로 초청을 받고, 그곳에 들어간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요. 그곳에 갈 때 짐 쌀 필요가 없습니다. 그곳에 다 있습니다. 가기만 하면 됩니다.
거절하지 않고 가기만 하면 됩니다.
선교사는 누구인지요? 선교사는 이 복된 소식을 전하는 자입니다. 초청하는 자입니다.
그 초청은 그저 보험회사 직원이 고객들에게 얄팍한 상술로 작은 도움을 주려는 그런 초청이 아닙니다.
이 초청은 완전한 은혜이며, 누리지 않으면 전혀 이해할 수도 없고, 또 놓치면 영원한 후회하며, 슬퍼하며, 애통하며 살아야 하는 그런 초청입니다.
성경을 보니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청했다고 합니다.
생일 잔치, 환갑 잔치, 또 교회에서도 절기나 행사 때에 잔치를 합니다.
근데 초청도 다 받는 것은 아니지요.
어느 초등학교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한 아이의 학부모가 다른 아이의 학부모를 고소한 사건이었습니다. 이유는 자기 아이가 생일파티에 초대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분으로 말이지요. 알고 보니 고소당한 부모의 아이가 얼마 전 생일파티를 했는데 그때 자기 아이를 초대하지 않았기에 앙심을 품고 복수를 한 것입니다. 그래서 반 전체 학생들을 다 초청하고 그 아이만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초청 받지 못한 섭섭함과 분노에 앙심을 품고 법정에 고소까지 한 것입니다.
초청받지 못하면 서운한 것입니다. 마음이 상합니다. 방금 말한 경우와 같이 다 초청 받았는데, 나만 홀로 못 받았다고.. 하면 아마 여러분도 그 사람과 관계를 끊을 수 있을 것입니다.
초청은 다 받는 것이 아닙니다. 특별한 혜택인 것이지요.
초청 받는다는 것은 그만큼 그는 가치가 있는 자라는 것이지요.
저희 자녀들은 크로아티아에서 모두 학교를 마쳤습니다. 아이들이 크로아티아 아이들과 잘 지내고 또 어울리길 간절히 바랬습니다. 크로아티아 간지 얼마 안되었을 때 일입니다. 우리 아들이 반 친구 생일파티에 초청을 받아온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내심 기뻤습니다. 아들에게 친구가 있고 불러주는 아이가 있다는 생각에 안도가 되었습니다.
생일날이 되어서 파티 장소로 갔습니다. 그곳은 자그마한 놀이터 같은 실내공간이었는데, 부모가 장소를 대여하고, 식사도 다 예약해 둔 상태였습니다. 반 친구들을 상당히 많이 초청을 한 것 같았습니다. 근데 그 애의 생일파티에 우리 아들 외에는 아무도 오지 않은 것입니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나, 우리 아들이 파티를 갔다 와서 자기와 그 생일친구 둘만 놀았다는 것이지요.
부모의 마음과 그 생일을 맞은 아이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아들을 위해 초청을 했는데, 아무도 오지 않았을 때 그 마음이 얼마나 난처하고 아팠을까요. 그것도 생일에…
저는 이 본문을 읽으면 그때의 일이 자꾸 회상이 됩니다. 아무도 오지 않은 파티, 잔치..
주인의 마음이 얼마나 난처할지, 또 그곳에 온 손님이라도 얼마나 무안할지.. 제가 느낀 것처럼 말이지요.
성경을 보니 초청 받은 자들이 모두 일치하게 초청에 거절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밭을 샀으니 아무래도 나가봐야겠다고 하고 정중하게 거절합니다.
어떤 사람은 소를 다섯 마리를 샀기에 시험해야 한다고 하고 정중하게 거절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결혼을 해서 아내를 위해서 시간을 보내야 하니 가지 못하겠다고 거절 합니다.
모두가 거절했습니다. 그들이 거절한 이유는 잔치보다 더 바쁜 일 때문에 그렇습니다.
마치 제 경험처럼 아들의 반 친구들도 그날 파티에 오지 못할 바쁜 일이 있었겠지요.
하지만 여기서 꼭 짚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 잔치는 ‘큰 잔치’라는 것입니다.
큰 잔치라는 말은 어떤 바쁜 일이 있더라도 그것보다 더 중대하고 우선적인 잔치를 말합니다.
큰 잔치는 마을 회관에서 하려고 했는데, 읍이나 군에 있는 회관에서 잔치를 하거나 호텔로 장소를 바꾼다 하여 큰 잔치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국수를 먹는 잔치였는데 한우 등심을 먹게 되어 큰 잔치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끼리 모일 줄 알았는데 미스트롯 가수나 코미디언 연예인이 오기 때문에 큰 잔치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이 큰 잔치는 가지 않으면 애통하고 후회할 정도의 ‘큰’ 잔치라는 것이지요.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의 잔치이기에 가지 않으면, 옷을 뜯고 머리를 뜯으면서 후회하는 잔치라는 것이지요.
작년 마스크 대란 때 마스크 한 두장 주는 것도 연락을 자신은 못 받아 빠진 것도 원한에 묻히도록 섭섭했는데, 지금 성경에서 말하는 잔치는 안 가면 속이 다 타 없어져도 해소할 없는 ‘큰 잔치’라는 것입니다.
왜냐면 그 잔치는 생명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영생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자기 목숨과 바꾸겠느냐’(막8:36~37)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초청하신 ‘큰 잔치’가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분의 사랑으로 우리에게 초청하셨습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초청장을 보셨습니다. 전달자가 있겠지요.
하지만 그 분은 초청장을 찌라시 돌리듯 남발하는 분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만약 초청을 받았다면, 하나님께서 이미 사랑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알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근데 초청받았음에도 그 잔치를 이해하지 못해서, “잔치가 다 거기서 거기지!” 라고 생각하고 거절해 버린다면, 미뤄 버린다면 잔치가 시작되고 초청장이 무용지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돌이킬 수 없는 후회와 안타까움, 애통으로 살아야 하는 위기를 맞을 수도 있습니다.
초청받은 내 자리에 나의 거절로 다른 누군가가 간다면 나는 갈 수 없는 것입니다.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고하니 이에 집 주인이 노하여 그 종에게 이르되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하니라(21)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들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24)
큰 잔치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 큰 잔치입니다.
KF 94 마스크 100장을 얻는 것 보다 크고. 10돈짜리 금두꺼비 보다 크고, 아파트 청약당첨보다 큽니다.
그 큰 잔치에 초청을 받고도 몰라서, 바빠서, 귀찮아서, 안 간다면 나중에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충격은 감당할 수 없습니다. 심판대 앞에서 사람들이 애통하고 슬피 우는 것입니다. 초청받았는데 안 가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큰 잔치에 초청을 받고 오신 분들이 여러분 아닙니까? 할렐루야. 이 초청을 잘 간직하십시오.
또 주변에 사랑하는 이들이 이 잔치에 참여하도록 권면하셔서 그들이 이 초청을 놓치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선교사가 하는 일이 다른 것이 아닙니다. 초청하는 것입니다. 저는 크로아티아 현지에서 잘 초청을 할 테니 이곳은 여러분이 잘 초청받고 다른 이들을 초청하는 이들이 다 되시길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