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오늘 하루를 내게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어진 오늘에 최선을 다하고 싶습니다. 엉뚱하게 비집고 나오는 감정의 노예가 되지않게 도와주시고 오늘하루가 행복하게 해 주십시요. 헛되이 낭비되지 않길 진심으로 원합니다. 아멘. 새로운 하루, 어제와는 전혀다른 또 하루를 주심에 감사하는게 당연하다. 그 당연함을 잊은지 오래지만,,, 하루는 내게 늘 버겁다. 덥거나 춥거나 또 하루가 주어졌음에 대하여 얼마나 무거운지,,, 페지를 줍거나 쓰레기를 줍는 노동에 허덕이는 노인들에 비할수는 없겠지만, ' 오늘은 또 뭘 먹이지?' 는 끝나지 않는 숙제처럼 마음이 무겁게 한다. '내가 왜 이 고민을 해야하지?' 라고 하면 불평이 된다. 그렇다면 감사하며 순응하면 즐겁지 않을련지? 사실 감사한 일임엔 틀림이 없다. 그런데, 감사가 되지않아서 문제다. 사실 주부로 살아온 세월이 얼마인가. 눈감고도 할수있는 일인데,,, 길길이 짜증을 내고 있으니 딱하긴 하다. 나이를 먹었으면 곱게 나이값을 해야할텐대, 그도 아니다. 설거지 그릇이 많은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왜 내가 이걸 하고있는지 용서가 안되는 것이다. ' 안하면 되지, 하지마!' 라는 소리가 들린다. 그래 하지마! 이런 나와의 다툼은 몇년째다. 월요일엔 빨래를 두번 돌린다. '주말엔 빨래도 좀 하고 그래라. 주부고 엄마면서 어떻게 이러니?' 왜 이말을 못하는 것일까. ' 어머니도 하지마세요. 그럼 되지않아요'. 왜 이런말이 들려오는 것인지,,. 작은 아이가 토요일날 수영장엘 다녀왔는데, 젖은 수영복이 가방속에 그대로 있었다. 이것도 며느리 탓으로 돌려지는 순간 화가 솟구쳤다. 마침 작은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왔는데, 인사 따위는 집어치우고 잔소리를 퍼 부었다. 당연히 작은 아이 등뒤에 있는 며늘에게였다. 젖은 수영복이 뭐라고, 까짓 썩은 냄새가 좀 난들 어떠랴. 가방까지 곰팡이가 나고 썩어지더라도 버리면 될걸 그게 어떻다고 화를 낼것까지는 없잖아? 화낼일도 아니잖아? 그럼에도 내내 불쾌했고 그 감정은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전해졌다. 아이들 입에서 쌍스런 욕지거리가 자연스럽게 나오는게 아이들 탓만은 아닐게다. 이세끼 저세끼 이자식 저자식은 일상용어다. 나 역시 속으로 욕을 퍼붙곤 했다. 그게 들리지 않았다고 어찌 확신하겠는가. 온갖 쌍욕을 퍼붙고는 더 심한 욕은 없나 하고 생각했던 때도 분명 있었다. 그러면서 애들이 서로 욕을 해대는것에 발끈하는 이유는 뭘까. 애들 훈계할 자격이라도 있다는 생각을 한 것인가. 그러지말자. 그분께서 나를,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라고 보내신거라는 믿음으로 이 하루를 살아보자. 어느 광야, 허허벌판에 선교사로 부름받은 사람도 있지않는가. 어쩌면 우리 아이들이 사는 그집이 허허벌판이고 광야 일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진짜 최선을 다해서 그분뜻을 실현해가야 할것아닌가. 그래, 그냥 막연히 끝날을 기다리지 말고, 그 끝날까지 내가 최선을 다해야할 사명이라고 알자! 며늘을 이해불가라고 통분히 여길 필요가 있겠는가. 나처럼 미미하고 무능한 노친네가 누굴 알면 얼마나 알겠고, 누군들 이해가 가능하겠는가. 어쩌면 이해하려는 것 부터가 교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알면 아는대로 모르면 모르는대로 그냥 살자. 아는척도 말고 이해하는 척은 더욱말고 그냥 살다보면 갈날이 오겠고, 그러면 끝이나는데, 거기까지면 되지않겠는가. 그후의 일은 내가 알일도 아니다. 그냥 살자. 어쩌면 이게 최선의 답일지도 모르겠다. 인생에 정답은 어짜피 없는것이기도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