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콜중독이나 약물중독만 심각한것은 아닌것 같다. 컴프터 마우스가 먹통이 되었을때, 나는 금단 현상까지 경험했다. 내가 컴프터로 생업을 유지하는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슨 대단한 작업을 하고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안절부절 했고 서성이었다. 금단현상이 이런것 아닐까 싶었다. 사실 컴프터 앞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고 있기는 했다. 그렇다고 내가 이정도로 집착하고 있었던가 싶을정도로, 이해가 안갔다. 이게 뭐라고. 그런대 어느 사이엔가 나는 컴프터 중독자가 되어있었다? 아이들더러 유트브 본다고 야단첬는데, 나는 누가 야단을 칠까. 이런 상황은 사실 많고도 많다. 오직해야 내가하면 로맨스고 남이하면 불륜이란 말이 있겠는가. 참 딱하다. 엇그젠가, 사촌들과 통화를 했다. 큰고모님 생신이어서 주말에 미리 모였다가 헤어지고나서 내 생각이 났다나,,, 어릴때는 각별한 사이였다. 할머니를 중심으로 다 같은 손자 손녀였으니까 어른들은 어땠거나 우리들은 다들 사이가 좋았다. 아니, 사이가 좋다거나 아니다거나 할 여지도 없었다. 내 나이가 훨씬 많았으니까. 나는 예뻐해주었고, 그 아이들은 잘 따라주었다. 그런 사이였다. 내가 힘겹게 사는 동안에 다들 어른이 되었고, 뿔뿔이 흩어저 살고있다. 아주 가끔씩 소식을 듣고는 있지만 큰누나로서 더는 영향력이 없다. 어쩌면 나는 여전히 그때의 큰누나이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현실은 내가 큰누나 자리를 지킬수있게 해주지 못했다. 내 앞가림도 다 못해 겨우 어머니의 도움으로 살아가는 챙피한 누나였으니 뭘 말할수 있겠는가. 나는 친 형제는 없었지만 사촌들이 제법 많다. 작은 아버지가 4남매, 큰고모가 6남매, 작은고모가 5남매니까 도합 15명인가. 그중에 쉬지않고 연락을 하고 지내는 사촌은 아무도 없다. 그게 내 현실이다. 내탓이다. 초라한 내 삶이 부끄러워서, 그 부끄러움을 내려놓지 못해서 스스로 연락을 삼가하고 살았다. 꼭 물질적인 여유만 여유는 아니라고 말하지만 입 하나로만 친교를 나눌수도 없는게 현실이라고 생각하는 내가 편견이 심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릴때 무척이나 가깝게 지냈던 일가 친척이 있었다. 한사람은 삼촌으로 또 한사람은 오빠로 불렸다. 내가 어려움에 처하면 자신의 한팔이라도 내어줄거라 생각했던 그런 사이였다고 생각했는데( 내 생각이고 내 착각이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런 사이였음에도 결혼과 동시에 더이상 연락 두절으로 지금까지 지내고 있다. 아주 가끔 간접적으로 소식을 듣기도 했는데, 아마 그쪽에서도 내 소식을 그렇게 접하고 있지 않았을까 싶다. 현실은 냉혹하다. 뭐라도 될것 같았던 앞날에 대한 기대가 날아갔을때 과거는 그냥 묻히고 마는 모래언덕에 지나지 않았나보다. 이제 앞서거니 뒷서거니 갈일만 남았고, 거기가서 다시 만나면 무슨 말을 할까? 혹 내가 달라붙어 팔하나 달라고 할까봐 짐직 모른체 했느냐고 따저물어볼까? 누가 누구를 돕는게 쉬운일은 아니다. 그걸 모르지는 않지만 그토록 모른채하고 사는것은 쉬웠을까, 그런 생각도 든다. 그정도로 그때 우리는 친했으니까. 물론 내 생각이지만. 어쩌면 그때는 그들도 내가 외롭고 불쌍해서 시간을 나누어 주었을 뿐인지도 모른다. 가까운 친인척이었으니까. 가령 책을 빌려주거나 시간을 함께 해준것은 그들이 가능한 친절이었을 뿐 더 이상은 내 착각이었을게다. 지금은 그런 생각이 든다. 하늘은 파랗고 생각보다 포근한 날씨다. 춥지않아서 좋다. 조금씩 김장 준비를 하고있다. 오늘은 사다놓은 마늘을 카터기에 빻아서 냉동실에 보관했다. 생새우도 미리 사다가 냉동실에 넣어두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