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9일부터 감찰공 박여해 선조의 생애를 연구하고
있으니 어느 덧 1개월이 되어 가는 순간이다.
오늘부터 새로운 각도로 조사하기로 하였는데, 구체적으로
감찰공 후손들의 묘소를 분석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1375년 판서공 박상진 선조께서 유배를 떠나시기 전까지
개경에서 거주하였을 것으로 생각한다.
필자는 다른 칼럼을 통해 감찰공이 당시 가문의 전통에
비추어 볼 때 은거를 택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았다.
이와 관련해 감찰이란 관직을 수행하시다가 은거를 한
것인지 아니면 감찰의 직을 제수받자마자 감찰공의 외숙같이
바로 그만두시고 은거의 길을 택한 것인지 아직은 그 진실을
모르나 필자는 후자에 비중이 크다고 본다.
감찰공이 어느 지역에 은거하였으며, 묘소의 위치는 어떻게
되는 것인지 베일에 싸인 상황에서 후손들의 묘소 분포를
통해 역추적하기로 하였다.
사실 족보를 보면 감찰공의 후손들은 번창하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감찰공의 아들과 손자가 독자로 내려 온다는 것인데 성명만
나와 있고 기록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비로소 증손자가 양온령동정이란 관직을 제수받은 것으로
나온다.
덧붙이면 증손자의 묘소가 평산 월고리(月古里)에 위치하고
있다고 되어 있는데 평산이라면 황해도 평산군을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후대에 내려와서 묘소의 위치가 서흥 금송곡자(金松谷子)에
위치한다고 되어 있으며, 어떤 후손은 평산 신읍면(新邑面)에
묘소가 있다고 되어 있다.
여기서 서흥은 황해도 서흥군을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흐름으로 진행되다가 8대조부와 7대조부의 묘소가
황해도 봉산군에 위치한다고 되어 있으며, 마침내 6대조부 부터
강원도 철원군에 묘소가 위치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상과 같이 간략하게나마 감찰공 후손들의 묘소를 분석하는
시간을 가졌다.
결론적으로 감찰공의 후손들은 수백년동안 황해도 지역에서
거주하였다는 것을 엿볼 수 있으며, 이런 사실로 미루어 볼
때 감찰공도 아직 특정하기는 어렵지만 황해도 어느 지역에서
은거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2024년 6월 4일(화) 문 암 올 림.
첫댓글 600년전의 선조님의 묘소를 역추적하는 것은 쉽지않은 작업인데요 추리 작가의 촉수가 예민한 선천적인 특출한 신체적 정신적인 기능이 있지않고서야 해낼 수 있는 작업이 아니란 생각이 듭니다. 드룰게 전해오는 역사나 족보에 근거하여 역추적할 수 밖에 없는 생황에서 당시의 지명이 요즘의 지명과 다른 상황이라 더욱 더 그런 생각이 듭니다~하여튼 대단한 가계의 역사를 추적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운영자님께서 올려 주신 장문의 댓글을 읽으면서 현재 진행하고 있는
감찰공 선조의 연구에 대한 중요성을 다시한번 다짐할 수 있었습니다.
문암으로 하여금 그런 동기부여를 느낄 수 있는 글을 올려주신 운영자님께
감사의 마음 올립니다.
오래전, 족보에서 감찰공의 존재를 처음 발견하고 벼슬명만 있고 그이외의
기록이 전혀 없는 것이 의아스럽게 생각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다시 흘러 2024년이 도래하였는데, 5월 9일에 감찰공의
부인께서 강릉김씨라는 새로운 정보를 확인한 것이 강력한 동기부여가
되어 본격적으로 그 생애를 추적하기 시작한 것인데 이렇게 운영자님께서
깊은 관심을 보여 주셔서 문암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2024년 6월 5일(수) 문 암 올 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