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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샤깔라(김 웅)님의 교우단상 : 짠돌이의 죄충우돌 네팔 여행기 3- 네팔 인연 & 해프닝편 ◈
놀란 가슴에도 어디선가 한국말소리가 들리니 위안이 되었다. 젊은 부부가 내 뒷자리에 앉았다. 한국인이 틀림없다. 그들은 작년 히말라야 여행 이야기를 꺼내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후에 이 분들과 우연히 다시 만남^^)
사소한 걱정이 있었다. 네팔은 현지공항에서 비자를 신청하는 것도 가능한 나라인데, 30달러의 비자 수수료를 지불하는 과정에서 거스름돈을 남겨주지 않은 해프닝을 인터넷에서 봤다.
수중엔 50달러짜리 밖에 없어 10달러짜리 3장이 필요했으므로 뒷좌석의 젊은 부부에게 환전 도움을 청했다. 헌데 그들도 딱 맞게 돈을 챙겨왔고 설마 안 거슬러 주겠냐며 괜찮을 것이라고 나를 다독였다. 반가웠던 한국인과의 짧은 대화를 마치니 마음이 평온해지면서 머릿속에서는 무의식의 의식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여권 문제를 떠올리며 그 상황에서 내가 겪은 감정과 사실을 주지화를 통해 분류했다.
중국 직원이 여권을 물고 늘어지는 형상에서 억압(Repression)된 ‘무력감’의 빙하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들의 빠른 말은 내게 잘 들리지도 않아 기가 꺾기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즉, 나의 영어실력은 아직 한참이나 멀었다. 외국어를 유창하게 한다는 것은 발화(發話)에서부터 시작한다. 책상머리에 앉아서 단어나 외우고 있는 것은 도움 되기 힘들다. 예를 들어 만점에 가까운 토익 실력은 영어로 입을 떼는 연습에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볼 수 있다. 사실 토익 점수는 국어 실력과 작업 기억능력(Working memory), 집중력, 반복된 문제 패턴에 대한 공부에 가깝다. 언어를 말하는 것은 아무 ‘단어’를 내뱉는 것을 시작으로 ‘문장’을 거쳐 ‘생각’을 표현하는 순이 된다. 자신의 ‘생각’을 ‘생각 없이(머리에서 번역 없이)’ 말하는 모순적인 것이 유창(Fluency)이다. 잘 듣는 것 또한 들리는 외국말을 ‘생각 없이(해석 없이)’ 소리로 듣는 것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여권을 펼쳐보니 그 당시 당황해서 보이지 않았던 ‘This passport contains 12 numbered pages, 이 여권은 12면임’과 ‘이 여권은 단수여권으로서 1회에 한하여 외국을 여행할 수 있습니다.’ 라는 작게 적혀진 문장이 보였고, 귀국 길에는 반드시 이 증거로 소명을 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무의식의 빙하 위에서 낚시를 즐기고 있는데 옆자리의 외국인이 말을 걸어왔다.
네팔 출신으로 강릉의 모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며 한국어를 할 줄 안 탓에 창문 너머로 보이는 히말라야를 그의 자세한 설명을 듣고 나니 어느새 카트만두에 도착했다.
공항 밖 숙박업체의 호객행위는 한 번 더 나의 기를 빼려고 했다. 그들은 붙임성이 아주 좋아서 어디서 왔는지, 혼자인지 사소한 질문을 시작으로 구매의 결론까지 이끌어 내었다. 처음엔 낯설었지만 질문을 무시하고 사무적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이 상황을 즐기기로 했다.
다음 일정은 택시를 타고 여행자의 거리라고 불리는 ‘타멜’로 가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이 흥정인데, ‘흥정’이라는 행위는 부담으로 내게 인식되는 반면 도전을 의미하기도 했다. 미리 알아본 적정선의 택시비와 현지어를 생각하며 돌격하듯 정류장으로 가서 기사님에게 말을 붙였다.
“드라이버! 타멜 꺼티 루피아? (기사님! 타멜까지 얼마요?)”
“1,000 루피!(한화 만 원)” 500루피가 적정 비용임을 난 알고 있었다.
“500루피!”라고 내가 반격을 하니 모여든 택시 기사님들은 호탕하게 웃었다. 나의 우세를 예감했다^^. 주위에 다른 기사님들은 서로 나를 선점하기 위해 경쟁을 했다.
“OK, 500루피!, 대신 합승할 다른 승객을 기다려야 해. 1,000루피면 혼자 바로 갈 수 있어.”
갑작스러운 역공에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500루피에 기다림 없이 바로 갑시다!”
두 분의 기사님이 지금 합승자를 구했다며 바로 갈 수 있다는 말이 흥정의 성공을 의미했다.
“이 분이 먼저 제안을 하셨으니 이 차에 탈게요.”
타멜로 향하는 동안 기사님의 관광지 설명을 들으며 이국 풍경에 신기함을 느꼈다. 교차로의 사방에는 횡단보도가 있지만 신호등이 없고, 한가운데에서 경찰관이 호루라기를 불며 교통정리를 하고 택시의 양옆엔 벌떼처럼 수많은 오토바이가 지나가고 있었다.
성공적인 해외여행에 있어서 기본적인 핵심가치는 ‘안전’, ‘언어’, ‘여행경비’ 라고 생각한다.
특히 난 혼자이기에 안전과 언어에 대한 보험 장치가 필요했다. 하여 내가 향한 곳은 한국말을 잘 하는 네팔 사람이 운영하는 식당이었다.
이곳은 한국인들이 자주 찾는 휴식처 겸 트레킹 정보의 근원지이기도 했다. 여기서 나는 저녁식사와 더불어 일정 체크를 하고 내가 가고 싶어 하는 중급 코스에 대해 화제를 던지며 사장님과 이야기를 주고받는 도중 식사를 하러 온 한국 분이 내게 조언을 주셨다.
이 분은 며칠 전 혼자서 그 코스에 다녀온 분으로 여러 이유를 들어 내 일정이 모험이라는 현실적인 답변을 해주면서 나를 걱정하셨다. 그리고 최근 산에 눈이 내렸다며 내게 아이젠과 포장된 치킨 조각을 선물해주시고 성공적인 산행을 응원해주셨다. (정말 감사드려요 ^^)
자신감을 얻음도 잠시, 안전을 위한 몇 가지 계획 중 하나에 차질이 생겼다. 사장님에게서 구매한 현지 유심칩이 작동이 안 되어 다시 환불받았는데, 여정 중에 급한 정보를 얻기 위해 인터넷과 전화사용은 내게 안전장치였으나 그럼에도 국내에서 내 휴대폰 유심칩 작동에 변수가 생긴 이력이 있어 최종적으로 나는 산행에 유심을 쓰지 않기로 결정했다.
식당 사장님에게서 내가 하루 묵을 숙소를 알선 받고 그곳으로 옮겨 다시 구체적인 산행 계획을 하였다. 와이파이를 켜고 ‘플랜 B’인 ABC 트레킹코스에 대해 누락된 정보를 찾아 5박 6일의 산행이라는 최종안을 만들었다.
코스가 확정됐기에 다음 날의 목적지는 네팔 제2의 도시이자 안나푸르나 산의 관문인 ‘포카라’였고, 비용을 들여 숙소에서 버스를 예약하였다. 티켓 구매는 물론 주인이 아침 일찍 나를 정류장까지 데려다줄 것이었다. 여행 2일차, 카트만두의 밤은 긴장의 연속이었다.
사실 새벽 내내 계획을 변경하느라 세 시간만 잔 것이 또 다른 사건을 불러왔다. 늦잠이라는 주요 요인이 정신분산의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7시 출발 버스인데 6시 50분에 방안 공용 전화 벨 소리에 막 깨어 분주하게 움직이느라 내 겉옷과 배터리 충전기를 숙소에 두고 나왔고 설상가상으로 소리가 아닌 진동으로 알람이 설정됐던 것도 한몫 했다.
주인은 오토바이의 속도를 더 높여 정류장에서 내가 탈 버스까지 데려다주셨다. 급히 버스에 오른 후에야 겉옷과 충전기를 놓고 온 것이 생각났다. 어쩐지... 어젯밤에 오늘은 무슨 사고를 치며 아침을 맞이할지 생각했던 것이, 바로 이 상황을 알리는 복선이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무력감에 빠지지 않은 것은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던가!
추위를 막기 위한 겉옷은 렌탈을 하면 되고, 충전기가 없어도 휴대폰은 덜 사용하면 배터리 소모를 줄일 수 있으며 보조배터리까지 가지고 있으니 걱정할 것이 없었다. 게다가 나의 중요한 무기는 스마트폰의 GPS와 지도 어플의 오프라인 기능이다. 미리 다운로드해 놓은 지도 영역은 인터넷을 사용하지 않고도 지도상의 나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다. 또한 다운로드한 영역의 모든 건물들의 기본 정보도 저장이 되니, 내가 있었던 숙소의 전화번호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시선은 옆 좌석에서 통화하고 있는 젊은 네팔 여성에게로 갔다. 전화를 끊은 그녀에게 양해를 구해 휴대폰을 빌려 숙소에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놓고 나온 물건의 보관을 요청하는 것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오늘도 생동감 있는 아침을 맞이한 것이 기쁜 건지 혹은 슬픈 건지 분간이 안 되는 와중에도, 창밖의 풍경이 보이기 시작한 것에 학부 때 심리학 수업에서 배운 게슈탈트의 전경과 배경을 떠올리기도 했다.
우리는 차창 밖의 풍경을 보지만, 사실 유리창이라는 프레임을 보는 것으로, 이 프레임이 시야를 가리는데도 유리의 투명한 특성으로 뇌는 풍경을 인식을 하는 것이다. 내가 자각하는 것이 유리창이면 그것이 전경(前景)이 되고, 풍경은 배경(背景)으로 밀려난다. 반대의 경우에도, 내가 보고 싶은 풍경은 전경으로 오기 때문에 유리창은 배경으로 밀려나는 것이다. 이러한 전경과 배경의 교차 원리가 여행 내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었다. 달리 말하면 나를 힘들게 하면서도 성숙하게 하는 유의미한 문제 덩어리에서, 하나를 자각하고 해결하니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 것을 인지한 것이다.
포카라 정류장에 도착 후 택시의 호객행위를 가볍게 제치고 숙소를 향해 걸었다. 향하는 이곳도 한국말을 잘하는 현지인이 운영했다. 환하게 반겨주는 주인 뒤에서 낯익은 사람들이 보였다. 카트만두행 비행기에서 뵀던 젊은 한국인 부부였다. 전주에 산다는 내말에 전주에 거래처가 있어 왕래한다는 남편분의 말이 이어지고, 이 상황이 신기한 듯한 부부의 표정은 이들의 눈동자 속에서 비치는 나의 표정이 되었다.
주인과 이 부부가 다음날에 있을 산행 계획을 점검하는 동안 자연스레 나도 합류하게 되었다. 이들의 산행 코스는 내가 가고자 하는 코스와는 다르지만 시작 지점은 같았다. 그렇기에 다음날 그곳까지 이동할 택시와 버스를 합승하자는 제안을 나는 감사하게 받아들였다. 주인에게서 산행에 필요한 장비를 저렴하게 빌리고 내일의 산행을 기약했다.
높이 고정된 샤워기가 고장 나서 물이 나오지 않은 것은 나의 끼에 대한 잠재력을 확인시켜주자 씻고 싶은 갈급함에 내 눈이 향한 것은 배꼽 높이에 위치한 수도꼭지인데, 온수의 수도꼭지로 손이 가는 찰나의 순간에 전두엽과 기저핵과 소뇌의 콜라보레이션으로 춤 동작 계획을 완성해 나갔다. 가즈아~!
무대의 조명 빛이 퍼지는 것처럼 물줄기가 나오자 오늘 밤 주인공은 바로 나! 먼저 무릎을 요염하게 꿇고 머리에 물을 묻힌 후 가슴부터 배까지 흘려보냈더니, 내가 가장 자신 있어 하는 가슴 근육의 부위가 도드라져 보였는지 상상 속 관객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좌측으로 몸을 돌리고 고양이 자세를 취해 앞뒤로 기어가며 등과 엉덩이에 골고루 물을 묻혔다.
무릎을 다시 꿇고 만세를 하며 얼굴에 물세례를 맞는 마지막 동작에 관객들은 나에게 완전히 매료되었다! 비누를 온몸에 묻혀 팬 서비스를 하니 팬들은 앵콜을 외치기도 했다. 박수!
그렇게 리얼 스트립쇼 원맨쇼로 내일을 향한 흥분을 이어갔다. 사실 이러한 경험엔 ‘웃프다(웃기고 슬프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어젯밤에 샤워기가 고장 나 민망한 자세로 씻었다는 나의 말에 부부의 공감으로 활기찬 산행 1일차의 아침을 알렸다. 젊은 부부와 이들이 고용한 가이드와 함께 버스를 탔다. 버스에서 이들과 함께 사진을 찍으니 여행 분위기도 났다. 내 단독 사진을 찍어주시고 산행 중에 마시라고 차 티백과 믹스커피 몇 개도 주셨다. 버스 타기 전, 같이 타고 온 택시의 비용을 정산할 때도 소정 금액만 받는 등 난 배려를 많이 받았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산행 시작의 두 갈림길에서 아쉽게도 이분들과 나는 손을 흔들며 헤어진 후 드디어 첫 발자국을 히말라야에 찍었다. 한적한 숲속에 오솔길을 따라 걷다가 잠깐 쉬려고 배낭을 내려놓았는데 저 위에서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아이 두 명이 나를 향해 내려왔다.
귀여운 요조숙녀들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그런데 갑분싸(갑자기 분위기 싸늘해짐)를 느끼기 시작한 것은 이 아이들이 내 가방 옆 주머니에 있는 선글라스를 가져갔을 때였다.
아이들은 이 선글라스가 자기 것이라면서 나한테 확답을 받으려 했다. 그리고 초콜릿이라는 단어를 반복하기도 했다. 셋 밖에 없는 조용한 숲속에 이 상황은 나를 소름 돋게 하기 충분했다. 얼른 선글라스와 배낭을 챙겨 자리를 떴는데 이 아이들은 계속 나를 쫓아왔다.
그제서야 어린아이들이 여행객의 배낭을 들어주고 돈을 요구하거나, 초콜릿을 구걸하고, 물건에 손을 댄다는 정보가 생각났다. 영어로 가라고 말을 해도 못 들은 척하길래 ‘필요 없어’ 라는 현지어인 ‘빠르다이나!’ 라는 말을 하니 더 이상 나를 따라오지 않았다.
아이들에게서 무서움과 동시에 미안함을 느낀 이 아이러니함에서 네팔 사회의 지독한 가난함을 잠시 볼 수 있었다.
부지런히 걷고 또 걷다가 전방에 외국인에게 인사를 했다. “나마스떼!” ‘안녕하세요’의 의미로 인도와 네팔의 언어이다. 대개 산행을 할 때 마주치는 사람에게 먼저 이 표현을 건넨다. 인도 사람인 이분은 오늘 ‘CHHOMRONG’이라는 롯지(산장)에서 묵기로 했는데 바로 내 목적지이기도 했다. 그곳에서 보자며 나는 앞서 출발했다.
스마트폰의 지도 기능 덕에 등산로 위에서 실시간으로 움직이고 있는 나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걷는 도중 내 실시간 위치가 멈췄고 대신 내 방향은 여전히 길을 가리키고 있기에 개의치 않고 그 길로 계속 걸었다. (이때 두 갈래 길에서 막다른 길로 잘못 들어감)
한 시간쯤 지나 저 앞에 현지인으로 보이는 할머니와 청년이 나에게 먼저 인사를 하더니 호탕하게 웃으며 네팔어로 말을 하는데 난 자기들끼리 농담하는 줄 알고 그냥 지나쳤다.
스치며 지날 때 웃으며 내게 말하는 청년의 “No way, 길 없어”라는 의미를 장난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지도에 멈췄던 내 위치가 다시 움직이고 가리키는 방향이 올바른 길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지도의 이 길이 막다른 길이라는 인식을 전혀 못함)
이들과 거리가 멀어졌을 때 나를 부르는 듯한 그 청년의 목소리를 나는 인사로만 인식했다. 한참을 걷다가 지도를 봤는데 내 위치가 길의 끝에서 멈춰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더 이상 지도상에 등산로가 표시되어 있지 않았다. 그제야 길을 잃었다는 것을 알았다.
구름이 해를 가리고 이정표 없는 황량한 흙길을 난 걷고 있었다. 주변의 산새가 고요함을 더했다. 그런데 어디선가 들리는 아이 울음소리가 그 고요함을 무너뜨렸다. 그곳엔 허름한 움막집이 있었지만 아이 외엔 아무도 없었고 날카로운 바람이 날 더 깊숙한 곳으로 몰아넣었다. 울창한 숲에 둘러싸여 아까의 꼬마 여자 아이들이 오버랩 되고, 이것은 공포감을 조성했다.
해가 지기까지 불과 한 시간 밖에 남지 않았다. 서둘러 가야 했지만 길은 없었다... (다음주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