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샤깔라(김 웅)님의 교우단상 : 짠돌이의 좌충우돌 네팔 여행기 6- 히말라야 여신과의 만남 ◈
트레킹의 종점인 베이스캠프에 오른 후 의자에 앉아 설산을 감상하려는데, 원정대의 움직임은 다른 곳을 향했다. 이들의 발자국을 따라간 곳은 히말라야 등정을 도전하다가 안타까운 사고를 당한 산악인들의 추모비가 있는 곳이었고, 원정대의 의식에 나도 묵념으로 동참하였다.
열 명의 원정대는 천상의 이들과 가슴 속 무전기로 잠깐의 교신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서로 산을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삼촌들 정말 감사드려요 ^^)
이들과 헤어진 후 롯지에서 치즈 샌드위치와 마살라 티 한 컵을 시켰는데, 고원 지대에만 사는 야크의 젖으로 만든 치즈가 내 입맛을 사로잡았다. 홍차의 퓨전 음식인 마살라 티가 썩 내키진 않았지만 샌드위치와 같이 먹으니 이 조합은 퍽 괜찮았다.
한층 더 여유를 즐기고자 다음에 할 일은 설산의 파노라마 감상! 종점에 도착하자마자 마주하는 안나푸르나 남봉(7,445m)의 얼굴 마담에 이어, 우람한 어깨를 소유한 안나푸르나 주봉(8,091m)을 더해 ‘싱구출리’(6,499m)와 ‘타르푸출리’(5,663m)는 톡톡이의 쫑긋한 양쪽 귀 처럼 보이기도 했다. 고개를 더 돌리니 ‘간다르바출리’(6,248m)와 날카로운 ‘마차푸차레’(6,993m)가 장관을 이루었다.
(왼쪽 상단 사진부터 시계방향으로)
실제로 ‘마차푸차레’는 세계 3대 미봉 중의 하나로 이곳의 등반을 법으로 금지 시켜 인간이 정복하지 못한 산이기도 하다. 여인의 머릿결이 찰랑이듯 각자의 봉우리마다 바람에 흩날리는 눈꽃들이 자태를 뽐내면서도 시시각각 시야를 덮는 구름으로 마치 숨바꼭질을 하는 기분이었다.안나푸르나 매력에 쏙 빠진 나는 몇 시간이고 사방에 눈 맞춤을 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녀(산) 이름의 의미는 ‘수확의 여신’, 다른 곳과 다르게 안나푸르나 지역은 강수량이 많아 논농사가 성행한다고 한다. 여신의 모습에 반해 헤벌쭉 하던 입을 이제 닫고 롯지에 들어가려는데, 산행 첫날에 봤던 인도 사람과 마주쳤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나보다 일정이 하루 더 빠른 그는 올라오는 동안 고산 증세로 인해 연신 구역질을 해대며 하산 했다. 그런데 그의 몸 상태는 인과응보이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증세는 트레킹 일정을 단축하기 위해 빠르게 산을 오르면서 무리를 한 결과 때문인데, 고산 지대를 여행한다고 하면 산의 높이에 따른 몸과 산소의 상태를 반드시 이해하고 있어야만 한다. 그렇다면 고산의 여정자들은 왜 이것을 알아야만 할까?
해발 4,000m와 5,000m 높이의 산에 존재하는 산소량은 우리가 살고 있는 30~100m의 저지대에 비해 각각 60%, 50% 뿐이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인간의 ‘적응 능력’으로 반 토막 난 산소 결핍 상태에도 이를 극복할 수 있는데, 그 과정 중에 한계가 오면 몸에 이상이 생겨 결국 고산병이 오고, 심하면 폐나 뇌에 물이차서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일반적으로 2,000m의 높이에서는 고산병이 생기지 않고, 3,000m부터 40%, 4,000m 이상에서는 60~70% 비율로 이 병이 걸리므로 인간의 적응 능력만 믿고 있기엔 한계가 있다.
그러지 않기 위해선 전날 잤던 곳의 높이와 당일 잘 곳의 높이를 잘 체크해야하는데, 대개 그 범위는 300~500m 이내여야 하며 이것은 인간이 매 하루마다 적응 할 수 있는 최적의 높이로 사료된다. 하지만 난 산행 2일차에 2,500m에서 잤고 다음날에 3,700m에서 잤으니 고도가 무려 1,200m나 차이가 난다. 따라서 4,130m인 이곳쯤에서 난 고산 증세를 겪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원정대를 만나 변경된 계획으로 인해 고도를 높혔지만, 소중한 인연은 고도보다 소중한 것이었기에 괜찮다)
숙박 할 곳의 높이만 잘 설정 한다고 해결될까? 우리 몸의 증상 또한 잘 살펴야한다. 피곤, 식욕 부진, 손발 붓기, 갈증, 가쁜 숨, 소변을 자주 봄, 머리 아픔, 악몽을 꾸거나 잠을 자주 깸, 구토, 입술이 파랗게 변함, 숨쉬기 어려움 등 이러한 몸의 반응을 유심히 관찰 하는 것은 고산병을 진단하는 시작이라 할 수 있다. 이럴 때 일수록 심호흡을 하고 물을 자주 마시며, 몸의 보온을 위해 머리를 감지 않고 세수조차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한 대비책이 될 수 있는데, 사실 구토, 입술의 변색, 호흡 곤란 등 몸의 컨디션이 더 악화되면 전날의 머물렀던 높이보다 아래로 이보후퇴를 하며 몸의 반응을 지켜보는 것이 효과적인 방법이다. 극단적으로 구조 헬기를 이용할 수 있는데, 비용은 적어도 250만 원 쯤 든다하니...^^
좀 더 근본적인 방법은 히말라야에 오기 전에 각 출신의 나라에 있는 고산에 몸소 오름으로써 적응하는 것뿐이다. 허나 우리나라의 최고봉은 한라산(1,950m)이고, 백두산(2,700m)을 오르는 건 쉽지 않으니 전문 훈련(감압 챔버)을 하지 않는 한 3,000~5,000m의 고지대의 적응 훈련을 할 수 있는 곳은 사실 상 없다. 보통 한 번 오른 고산의 높이에 대한 몸의 적응이 6개월 안팎으로만 유효한 반면 적응 능력은 개인차가 크니, 험한 산과 기상 악화에 더불어 고산병으로 인해 히말라야는 도전의 타이틀이자 이곳만의 매력이 된다.
이 장황한 설명은 다음날의 산행 목적지를 한계 범위 안에서 얼마나 높이 정할 것인가의 결정과 고산병에 대한 증상 및 해결법의 숙지가 결국엔 히말라야 산행에 필수임을 설명하기 위함이다.
일몰을 보고 외국인에게 산소포화도 측정기를 빌려 확인한 나의 산소 운반 능력 상태는 75%에 불과하여 고산에 덜 적응함을 반증 했다. 숫자만 보기엔 정상 같지만 내가 있는 높이에서는 80~85%가 나와야 고산에 적응하고 있는 꼴이 된다. 그렇다고 하산 하자니 날은 저물었고, 저녁 식사로 따뜻한 우유와 토마토 치즈 피자를 시키고 산행 2일차 때 봤던 한국인 일행을 내심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 일행이 도착 했고 여성분이 먼저 내게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혹시 이름이 김웅이죠? 그렇게 유명하신 분이라고 말씀 많이 들었어요.”
“잉? 내 이름을 어떻게 알지? 내가 유명해?” 순간 원정대 삼촌들이 생각났다.
“네 맞아요. 무리 지어 내려오는 분들이 위에 대단한 사람이 있다고 도움 많이 받으라고 하시던데요?” 그렇다. 삼촌들처럼 나도 산에서 누군가에게 베풀 책임이 생긴 것인지도 모른다.
짠돌이답게 예산에 딱 맞는 돈을 가져온 나는 물질의 여유가 없었지만, 이들이 원하는 것을 함께 하면 그것 또한 이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 나머지 나의 식사 속도를 늦춰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이들이 저녁 메뉴를 고를 때 내가 야크 치즈를 추천한 전략이 먹힌 것이 순조로운 시작임을 알렸고, 치즈 음식의 식사를 다 마친 이들은 내 카메라에 관심을 보이더니 뜸을 들이며 식당에 머물러 있었는데, 크리스마스이브를 방에서 보낼 수 없다는 말과 준비해 온 카드 게임 놀이를 꺼내 놓는 건 이들에게 내가 작은 도움이 될 만한 증거임이 틀림없었다. 때 마침 예상치 못했던 다른 한국인 일행이 식당에 들어오면서 함께 할 인원이 늘어났다. 고산 증세로 몸 상태가 좋지 않은 일행은 방에 들어가 쉬고 이십대 남성 둘, 여성 한 명과 나는 카드놀이를 하며 밤을 즐기고 있었는데, 동행한 친구의 상태가 걱정된다며 콩글리시로 주인장에게 따듯한 물을 달라는 이 여성분! 말투가 너무 귀엽기도 했다 ㅎㅎ.
하지만 수확의 여신이 질투를 했는지 날 가만둘 리가 없다. 아니면 낮에 내가 산의 풍광에 넋 놓고 있었던 것은 안나푸르나 여신의 미인계 작전이었는지도 모르지! 이때를 틈타 콧물이 나고 머리가 아파오는 등 나에게도 고산 증세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식당 문을 닫을 것이라는 주인의 말과 방에서 같이 더 놀자는 일행의 반응에 난 망설였지만 내 몸을 봐서는 여신의 공격에 대한 방어를 해야 했다. (여신님아! 날 너무 사랑하신 건가요? 아니면 제가 망상을 할 정도로 지금 정신이 쇠약해졌나요?ㅜㅜ)
밤하늘에 별들이 가득했다. 카메라에 담고 싶었지만 날씨 탓인지 배터리가 죽어 열일을 할 수 없었다. 동시에 나도 방전이 되어가고 있었는데, 그래도 이정도면 오늘 이분들과 함께하며 내 책임을 다한 것이 아닐까?
자다 깨다를 반복을 하며 숨소리가 조금 거칠어지는 것을 자각했다. 게다가 두 개의 핫팩 조차 따뜻하게 느껴지지 않았으니 이곳의 온도가 전날보다 훨씬 낮음을 짐작했다. 알람 소리에 눈이 떠진 것을 보니 난 살아 있었다. 다시는 새벽까지 바람을 안 피우겠다며 여신에게 손을 싹싹 비는 것도 모자라 헬기까지 부를 악몽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ㅋㅋㅋ 머리가 아팠지만, 진통제로 견딜 수 있었다. 크리스마스의 일출을 보러 아침 일찍 일어난 사람들에게 건네는 “메리크리스마스!”
나의 롯지 비용을 확인하는 주인장, 역시나 내가 계산한 것보다 20루피가 더 많았다. 영수증 사진을 보여주니 다시 계산기를 두들기는 주인을 보고 피식 웃음을 짓기도 했다.
오늘은 최대한 덜 쉬면서 힘닿는 곳 까지 내려가 보기로 계획 했다. 하산 길도 아이젠 덕분에 눈이 전혀 미끄럽지 않았다. 점심도 거르고 막간의 쉼을 제외한 9시간의 산행에도 외국인들과의 크리스마스 인사와 다른 한국인 일행과 같이 사진을 찍고 초콜릿을 받는 등 소소한 일들로 행복해졌다.
그렇게 산행 5일차, 날 다람쥐가 되어 쏜살 같이 2,500m를 내려와 ‘지누단다’에서 밤을 보내고, 마지막 날에는 ‘마큐’라는 곳에서 ‘포카라’로 가는 지역버스를 타고 히말라야 산행을 마무리 지었다.
지금까지는 히말라야 트레킹을 하면서 겪은 일들을 드라마 일화처럼 풀어서 썼다면, 남은 이야기는 네팔의 일상과 귀국 후 깨달은 것에 관한 것으로 한 편의 다큐멘터리가 될 것이기도 한데...나의 마지막 네팔 여행기는 다음 주에도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