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를 드리는 하느님의 사람
성경을 읽는 세 번째 목적은 참된 예배자가 되기 위해서입니다. 하느님을 예배하는 것은 우리가 존재하는 목적이요, 이유입니다. 우리가 존재하는 가장 중요한 목적은 하느님을 예배하고, 찬양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분은 이사야 43장 21절에서 “이들은 내가 나를 위하여 빚어 만든 백성, 이들이 나에 대한 찬양을 전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더 나은 예배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성경의 역사는 예배의 역사입니다. 하느님은 예배를 잘 드리는 자를 소중하게 여기셨습니다. 예배를 잘 드리는 사람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잘못된 예배를 드린 사람은 벌을 주셨습니다.
하느님은 아벨의 제물은 기꺼이 굽어보셨으나 카인의 제물은 굽어보지 않으셨습니다. 그 이유는 카인이 참된 예배자가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느님은 자기 이름을 드러내고, 자신들을 위해 바벨탑을 쌓던 사람들을 흩으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을 선택하셨습니다. 하느님은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택하셨습니다. 하느님이 아브라함을 택하신 이유는 아브라함이 참된 예배를 드릴 줄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제단을 쌓을 때, 자신이 아니라 주님을 위해 제단을 쌓았고, 자신의 이름이 아니라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불렀습니다. 참된 예배란 하느님을 위해 제단을 쌓고,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창세 12,7-8).
하느님이 사울을 왕에서 폐하신 이유는 그가 자신 자신을 위해 성급하게 제사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울의 뒤를 이은 다윗은 하느님을 위해 제단을 쌓았고 친교 제물을 바쳤습니다. 그는 하느님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춤추는 예배자로 살았습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예배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느님은 헌신하는 일꾼을 소중하게 여기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헌신하는 일꾼이 되기 전에 먼저 참된 예배자가 되어야 합니다. 참된 예배 없이는 진실로 헌신하는 일꾼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 앞에서 예배를 잘 드렸던 마리아는 나중에 주님을 위해 비싼 향유를 부어드리는 헌신을 했습니다. 헌신의 능력은 예배에서 나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느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 하느님을 영화롭게 해야 합니다.
하느님은 참된 예배자를 찾으십니다. 예수님은 “진실한 예배자들이 영과 진리 안에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사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를 드리는 이들을 찾으신다. 하느님은 영이시다. 그러므로 그분께 예배를 드리는 이는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요한 4,23-24)고 하십니다. 참된 예배자란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를 드리는 사람입니다. 성령 안에서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따라 예배를 드리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아론의 두 아들은 하느님이 말씀하신 방식을 따라 예배하지 않았기 때문에 죽임을 당했습니다(레위 10,1-2). 하느님께 예배를 드리는 자는 하느님이 명하신 말씀을 따라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그때 참된 예배자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일에 있어 기록된 것에서 벗어나면 안 됩니다(1코린 4,6).
우리는 진리 안에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성경을 바로 알 때 우리는 하느님께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성령과 말씀을 떠난 예배는 죽은 예배입니다. 우리가 성령과 말씀에 사로잡히기 위해서는 성경을 읽어야만 합니다.
첫댓글 아멘. 아멘. 아멘.~~
" 성경을 바로 알 때 우리는 하느님께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진실한 예배자들이 영과 진리 안에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사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를 드리는 이들을 찾으신다.
하느님은 영이시다.
그러므로 그분께 예배를 드리는 이는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요한 4,23-24)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