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작강의 - (381) 시 쓰기 상상 테마 2 - ⑤ ‘○○의 방식’으로 상상하며 시 쓰기/ 중앙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교수 하린
시 쓰기 상상 테마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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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의 방식’으로 상상하며 시 쓰기
㉮ 소재나 모티브가 갖는 특징과 상상 적용 방법
방식은 일정한 방법이나 형식을 의미한다.
이 방식 안엔 과정과 결과가 있고 원인이 내재되어 있다.
당연히 삶의 모든 순간순간도 방식에 의해 이루어진다.
완전한 무(無)가 되기 전까지 사람을 포함한 우주의 모든 대상이나 현상은
방식에 의해 생로병사를 겪다가 소멸한다.
그렇기에 방식을 섬세하게 관찰하고 사유하면 거기에서 비롯된 존재론적인 의미나
심리적 맥락을 캐치할 수 있다.
그러니 생의 순간순간을 담당하고 있는 방식을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방식을 활용해 상상을 펼칠 때에는 우리가 이미 알고 실천하고 있는 방식을 떠올려서는 안 된다.
예상치 못한 것들의 특별한 방식을 떠올려야 한다.
예컨대 놀이의 방식이나 화분을 키우는 방식,
꽃을 피우는 방식은 익숙한 방식이지만 기억으로 달아나는 방식이나 태양을 저주하는 방식,
종이와 이별하는 방식, 파랑을 사랑하는 방식, 유리에게 고백하는 방식,
봄의 심장을 만나는 방식, 검은 새가 흰 새를 추모하는 방식,
낙타를 사랑한 선인장의 방식 등은 흔하지 않은 방식이다.
그렇게 흔하지 않은 것들의 방식을 상상력을 동원해 떠올려 보고,
그것들이 가진 근원성이나 본질성을 나만의 시선을 통해 잡아낸다면 의미 있는 시 한 편을 쓸 수 있다.
필자의 시를 통해 그 소재가 어떻게 상상과 만나 펼쳐지는지 그 과정을 살펴보자.
꽃의 사적인 연애 방식
―‘올드보이’
앞집 누나가 교복을 찢고 도시로 날아간다 날아간 자리에 나팔꽃은 피지 않고 온종일 촉촉한 웃음이 비릿한 생각을 타고 올라간다 꽃의 심장이 태양 아래서 팔딱거리듯 목구멍에서 욕이 팔딱거린다 꽃의 맨살을 찢고 싶은 밤은 결코 시들지 않는다 아침마다 눈깔이 뒤집히도록 태양에게 용서를 구한다 죄를 말리는 데는 도덕적인 태양이 최고
더듬이가 길어진 그림자가 자꾸 누나의 여백을 훔친다 심장이 만삭으로 부풀어 오르고 어제의 비굴이 오늘의 비굴을 복제한다 꽃이 내뱉는 기침 소리가 자꾸 들린다 누나의 몸 안으로 스며들어 간 곪아 터진 상상들을 쭉쭉 빨아 삼키고 싶다 누나와 내가 나눠 가진 울음과 웃음이 죽지 않고 나비로 환생한다면 꽃을 껴안는 불순한 밤은 고독한 전설로 기록이나 될까 구질구질한 혀가 누설한 꽃의 말들은 이번 생이 다하기 전에 삭제될 것이다 시적인 물음만 던지다 하릴없이 썩어 들어갈 벌겋게 독이 오는 맨살*들의 사적인 연애 방식
*오규원의 「사내와 사과」에서 인용
―『야구공을 던지는 몇 가지 방식』, 문학세계사, 2010.
<1단계> 스스로 점검하기 – 메시지 분명히 하기+내 시만의 장점 찾기
필자가 택한 방식은 꽃의 방식이다.
‘꽃도 연애를 할 수 있다’라는 나만의 상상력을 동원해서 꽃으로 대변되는 앞집
누나와 ‘나’의 사적인 연애 방식을 다루고 싶어서 이 시를 썼다.
이 시를 창작하게 된 계기는 순전히 영화 ‘올드보이’를 감상하고 난 후부터인데,
극 중 누나를 사랑한 유지태가 맡은 역할이 시 속 화자인 ‘나’에게 자연스럽게 반영됐다.
‘나’와 웃음과 울음을 나누었던 누나는 지극히 ‘사적인’ 것이 허용되지 않는 현실을 부정하면서 떠나고,
그런 관계성의 부정으로 인한 ‘나’는 마음의 상처를 받는다.
그렇게 지극히 사적인 것들이 갖게 되는 상처적 국면을 꽃의 사적인 연애 방식이라는
상상을 동원해 표현하고자 했다.
따라서 이 시에서 쓰인 나만의 장점은 꽃의 속성과 사람의 속성이 교묘하게 맞물리게 상상을 펼친 것이다.
<2단계> 객관적 상관물(현상)을 찾기+관찰과 조사 정밀하게 하기
이 시에서 객관적 상관물은 꽃이다.
그런데 꽃은 누나의 이미지를 뒤집어쓴 기표에 불과하다.
꽃이 하는 행위는 식물적인 행위가 아니라 오히려 동물적인 행위에 가깝다.
“온종일 축축한 웃음이 비릿한 생각을 타고 올라”라는 모습이나 기침을 하는 모습도 그렇고,
꽃을 껴안는 것을 불순하다거나 비도덕적인 행위로 보는 것 자체가 그렇다.
거기에 꽃이 한 말이 삭제된 정황과 맨살이 썩어 들어가는 이미지 또한 동물성을 띤 꽃의 속성을 포현한 것이다. 그렇게 이 시를 쓰기 위해 메모된 것은 꽃의 속성보다는
연애적 상황에서 드러날 수 있는 심리적인 성향이나 동물적 요소들이다.
<3단계> 확장하기 – 상상적 체험을 섬세하게 극적으로 하기
이 시에서 극대화시킨 상상적 체험은 앞집 누나와 ‘나’가 속물적인 듯,
속물적이지 않은 듯한 연애의 감정을 거리낌 없이 나누게 만든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암시적으로만 표현했다.
적극적인 연애의 감정을 갖는 것이 아니라 암시성을 띤 채 둘만의 사적인 행위와 마음을 만나게 했다.
“누나의 몸 안으로 스며들어 간 곪아 터진 상상들을 쭉쭉 빨아 삼키고 싶다”라는
구절이 바로 그러한 심리를 반영한 표현이다.
거기에 “하릴없이 썩어 들어갈 벌겋게 독이 오른 맨살”과 “꽃을 껴안는 불순한 밤”을
‘나’가 안고 살아가게 만들었다.
‘나’만의 사적인 상처를 극명하게 부각하기 위해 그런 표현들을 쓴 것이다.
상상을 할 때 뻔한 지점과 뻔하지 않은 지점의 구분을 나름대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자연스러운 상상’의 범주 안에 들어갈 수 있도록 사실성과 비사실성이 교묘하게 교차하게
만드는 연습을 꾸준히 해야 한다.
※ 또 다른 예문 (예문 내용 기재는 생략함)
· 이별철의 「노을을 방식」 (《시와 표현》 2018년 1월호)
· 김밝은의 「섬을 마주하는 어떤 방식」 (《시인광장》 2016년 3월호)
<직접 써 보세요>
* 여기서 제시하는 단어나 구절을 바탕으로 시 쓰기 3단계를 채워 넣은 다음 쓰시오.
- 제시 단어: 구름의 방식, 기억의 방식, 아웃사이더의 방식, 탈퇴의 방식, 인형의 방식, 안개의 방식, 악몽의 방식, 선인장의 방식, 여름의 방식, 기억으로부터 달아나는 방식이나 태양을 저주하는 방식, 종이와 이별하는 방식, 파랑을 사랑하는 방식, 유리에게 고백하는 방식, 봄의 심장을 만나는 방식, 검은 새가 흰 새를 추모하는 방식 등(이 밖에 나만의 시적 메시지를 담을 수 있는 것이면 다른 제시어를 바탕으로 써도 된다. 꼭 이 단어를 제목으로 하지 않아도 된다. 시 속에 주로 활용되는 사물이나 현상을 가지고 창작을 하면 된다.)
| 시 쓰기 3단계 적용 |
1단계 스스로 점검하기 (메시지 분명히 하기 + 내 시만의 장점 찾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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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단계 객관적 상관물(현상) 찾기 + 관찰과 조사 정밀하게 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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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단계 확장하기 (상상적 체험을 섬세하게 극적으로 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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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9가지 시 쓰기 상상 테마(하린, 더푸른출판사, 2021)’에서 옮겨 적음. (2022.10.22. 화룡이) >
[출처] 시창작강의 - (381) 시 쓰기 상상 테마 2 - ⑤ ‘○○의 방식’으로 상상하며 시 쓰기/ 중앙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교수 하린|작성자 화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