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끝 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작로에는 피난민이 살림살이를 머리에 이고 지게에 지고, 무리를 지어 고향을 찾아가는 행렬을 간혹 볼 수가 있다. 이들은 걸인이 아니지만 피난 생활에서 식량과 노잣돈이 떨어져 밥을 얻어먹으면서 고향을 찾아가는 사람들이다.
걷다가 날이 저물면 남의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기도 한다. 간혹 피난민 가족이 한 끼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 집을 찾아오면 어머니는 갱시기를 끓여 주든가 아니면 국수를 삶아주었다.
그들이 식사를 하는 동안 옆에 앉아서 피난살이의 애환을 미주알고주알 캐물으면서 혀도 끌끌 차주고 맞장구를 쳐준다.
한 끼를 해결한 피난민은 고맙다는 인사말과 함께 아무 때나 자기 고향을 지나갈 때 들리면 은혜에 보답하겠다는 진심 어린 말과 주소가 적힌 쪽지를 남기고 떠난다.
어머니는 빠듯한 살림에 손님 오는 것이 가장 무섭다고 하신다. 국수를 삶거나 죽을 쑬 때 손님이 오면 물 한 사발을 더 부으면 간단히 해결되지만 밥할 때 손님이 오면 어머니 밥이 손님 밥이 되기 때문이다.
남의 집을 방문하는 손님 중에는 염치가 있는 손님과 염치가 없는 손님이 있다.
염치가 있는 손님은 그 집의 가세를 알기 때문에 밥을 퍼주는 대로 다 먹지를 않고 반 그릇을 남긴다. 남긴 반 그릇이 그 집 안주인의 몫이기 때문이다. 만일 밥을 떠주는 대로 다 먹으면 안사람이 굶으므로 염치가 없는 손님이 되고 만다.
전쟁이 끝난 후 상이용사나 전쟁고아가 걸인이 되어 떠돌아다녔다.
그들은 촌촌걸식을 하고 끼니때마다 남의 집 대문을 두드린다. 그들이 밥을 얻어먹을 때 각설이 타령을 해주고 얻어먹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냥 대문을 두드린 후 '한술 주쇼' 하면서 얻어먹는 사람도 있다. 당연히 각설이 타령을 부르면서 얻어먹는 사람이 배부르게 얻어먹는다.
먹고살기가 힘든 시절이므로 내남없이 집안 형편이 거기서 거기다. 끼니때는 남의 집을 방문하지 않는 게 예의지만 촌촌걸식을 하는 사람은 그런 형편을 따질 겨를이 없다.
그들이 밥 동냥을 오면 문전박대를 하지 않고 십시일반으로 한술씩 보태준다. 그러다 보면 걸인이 더 배불리 먹는 경우가 많았다.
배고픔의 고통과 설움을 아는지라 먹는 음식은 내가 한술 덜 먹더라도 남하고 같이 나눠 먹었다.
전쟁 통에 부모를 잃은 고아들이 밥을 얻으려 다니면 헌 옷을 깨끗이 빨아놓았다가 주기도 한다.
이처럼 너나없이 인정이 훈훈하고 나보다 못한 형편에 있는 사람을 살필 줄 아는 넉넉했던 시절이다.
탈것이 부족한 시절 노잣돈이 떨어지거나 버스를 놓친 사람은 본의 아니게 걸인이 되는 경우도 있다. 점심때가 조금 지난 시간에 행색이 허름한 나그네가 쭈뼛쭈뼛하면서 대문을 들어선다. 밥을 얻어먹으려 다니는 걸인은 아닌 것 같다.
나그네는 며칠 전에 볼일을 보려고 집을 나섰는데, 시간이 예정보다 길어 노잣돈이 떨어져 걸어서 집에 가는 중이란다.
이 사람만 이런 게 아니라 우리 동네 사람도 대처에 나가서 볼일을 보다가 노잣돈이 떨어지거나 버스를 놓쳐 객지에서 낭패를 겪는 사람이 더러 있었다.
여관에 가서 잠을 자거나 식당에서 밥을 사 먹을 형편이 안 되므로 끼니때가 되면 체면불고하고 잘사는 집이나 인심이 후한 집에 가서 끼니를 해결하고 잠은 동네 사랑방에서 잔다.
우리 정서에 지나가는 과객이 하루 저녁을 유留하는 청을 하면 그 과객을 서운하지 않도록 대접해서 보내는 게 미풍양속이다.
간혹 동네 사람 물건을 훔쳐 달아나다가 지서(파출소)의 신세를 지는 은혜를 원수로 갚는 나그네도 간혹 있다. 동네 사람들은 오죽하면 도적질을 했겠느냐면서 서운함보다는 동정하는 쪽으로 이해를 한다.
끼니를 간신히 이어가는 우리 집은 도로변에 있으므로 이런 나그네나 걸인이 유달리 많이 찾았다. 어머니는 전생에 지은 빚을 갚는 일이고 복 짓는 일이라고 남아 있는 밥을 정성껏 차려주었다.
밥을 다 먹고 난 나그네는 혹시 일할 것이 있으면 달라고 한다. 밥값 대신 간단히 일 좀 해주고 가려고 한단다.
한 끼를 얻어먹어도 고마움을 아는 훈훈한 인정이 넘치는 시절이었다.
어렵고 암울했던 시절이었지만 서로가 보듬어 주는 인정이 있었다. 그리고 모두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힘든 시절을 슬기롭게 견뎌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