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에서 사역한지 벌써 9년차로 접어들었다.
처음 예수전도단에서 시작.. 제프리스 에서의 고아학교...죠슈아 프로젝트...그리고 P.E에서의 학교 컴퓨터 사역..
처음부터 지금까지 돌아보니 첨 맘먹고 지금까지 .. 교육사역에 참 열심을 내었던 것 같다...
제프리스 예수전도단에서 태권도 교실도 열어보고 죠슈아 프로젝트에서 홀란드 진짜 선교사 '얍'( 남아공에 모든 선교사중 내가 오직 인정하는 유일한 바보같은 선교사 ) 이랑 미술 학교..도 열어보고 기타 학교도 해보고.. 영화 사역도 해보고.. 무엇보다 거리 아이들과 죠슈아 뒷뜰에 앉아서 배식 받은 스프를 함께 먹으며
아이들 사는 얘기도 듣고.. 도전도 주고..농담도 하고.. 장난도 치고 예수님 얘기도 하고.. 그 냄새나는 녀석들 첨엔 앉아주지도 못하면서 아이들에게 볼을 비벼대는 얍에 모습에 내가 참 한심한 선교사란 눈물났던...시간들... 그 때 ..다 아이들에게 좋은 걸 가르쳐 주고 싶은 욕심뿐이었다.
그때 술 먹은 아빠에게 두드려 맞고 쫓겨와 죠슈아에 몸져 누운 ..지금은 이름을 잊었지만 ..그 아이에 머리에 함께 기도하며 ...
또 비가 오면 그 아이들 다 어디서 자나!!! 밤에 창밖을 보며 한숨 쉬던 긴 밤들..
고아 아이들에게 본격적으로 시간을 할 애하고 싶어.. 그렇게 반대하던 예수전도단을 등지고 지역 고아학교에 들어갔다.
갈 곳 없는 아이들 12명.. 내가 직접 운영하던 고아원은 아니었지만.. 아이들을 위해 뭔가 할수 있겠다는 내 뜻에 좋은 터를 제공한 '세븐 해븐 고아학교'에서의 시간은 죠슈아에서의 사역과 또 달랐다.
엉망인 학교 체제를 바로 잡고 그곳에서의 교육 당담 책임자가 되어 성경..수학.. 사회 과학.. 음악...태권도...컴퓨터등을 가르쳤다. 영어는 넬리란 현지인 흑인 교사가 당담했는데.. 12명 학생이지만 교사가 터무니 없이 부족했다.
월요일 아침8시부터 1시까지 ..매일 아이들 더하기 빼기 곱하기부터.. 지역 학교에서 얻어 온 사회 교재등으로 수업을 했고..
아내 이기쁨 선교사는 따로 떨어진 뒷 뜰 창고에 작은 유치원을 만들어 3명의 아이들에게 알파벳을 가르쳤다.
금요일에는 앞 정원에서 모두들 웃통을 벗고 태권도를 배웠고.. 교실에서 겨루기 한다고 아이들이랑 대련을 하다가 카펫트에 미끄러져 자빠지면 아이들이 자지러지게 웃곤했다...
매달 2-3번 극장 영화에 뒤지지 않는 최신 영화를 대형 스크린으로 상영을 했고... 한국에 잠시 목사 안수문제로 갈 즈음.. BB라 불리는 녀석이 제 생일 케익 앞에서 최고의 소원이 내가 한국에 무사히 갔다가 오는 것이라 해서 눈시울이 뜨거웠다.
10살이 넘었는데 밤마다 이불에 오줌을 싸 원장에게 혼나던 녀석이 말이다. BB는 늘 오줌을 쌀까봐 현관 앞 작은 Rug 카펫에
스스로 이불을 가지고 가서 늘 잤다. 말려도 소용이 없다....
역시 10살인데 어리숙하게 착하던 Simon... 원장에게 맞으면 다시 거리로 도망나가 모두가 찾아 다니던 꽤꽤라고 불리던 '죠셉' , 흑인원장은 그렇게 뭐라해도 아이들을 두드려 팬다... 난 이해 할 수 없다 흑인들의 그 정서를...
그 외 동네 거리 아이들 깡패 출신인 '김바' 이 녀석 들어 오고 고아학교에 찬바람이 불었다.. 아이들이 이상한걸 배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 녀석 군기 잡는다고 내가 좀 심하게 했다... 한 번은 식사를 만들고 식사 집합을 했는데 이 녀석이 주체로 마치 식사를 거부하는 냥 들은 척 만 척 해 .. 녀석 얼굴에다 음식 담은 그릇을 집어 던졌다..
아이들을 집합시켜 놓고 군대에서 상관에게 혼 줄 났던 옛 생각을 다 총 동원해 그대로 했다... 아이들은 고개를 팍 숙이고 거들먹 거리던 그 녀석도 잔뜩 겁 먹고 ... 저녁식사 후 영화를 빌려 와 아이들에 틀어 준 후 '김바'를 불러 타일렀다..
형이기에 맡아야 할 책임... 영향력... 등 그리고 기도로 마무리를 했다... 좀 방법이 무식했긴 했지만 먹혔다..
김바가 울었고... 다음 날 얘가 바꼈다.... 서로 미루던 웤 듀티를 잘 해 냈고 김바가 잘 통솔 했다.
아이들이랑 바닷가에 가서 걷고 사진도 찍어주고.. KFC 아이스크림도 사주고 오는 길에 제프리스 도서관에도 들려 아이들에게 정기적으로 도서관에 올 것을 약속했다.
난 남아공이 싫다... 흑백 갈등과 유색인종을 너무 차별하기 때문이다. 도서관에 가면 백인들이 안경 너머로 내가 데리고 온 아이들을 불꽤하게 쳐다본다... 도서관 앞에 경비원은 자기도 흑인이면서 내 아이들을 발로 찰 기세다..
내 언성이 높아진다... 아이들도 열받았다... 아이들이 말하길 " we are not street boy!!" 라고 항거를 시작했다.
남아공은 이스턴 케이프쪽으론 맨발로 다니는 백인 흑인들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아이들에게 맨발로 다니지 말게 했다. 그리고 없지만 제일 좋은 옷으로 갈아입고 타운에 나가라고 가르쳤다.. 아이들의 행장은 허름하기 짝이 없다..
거의 찟어진 옷과 신발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이들에게 그리 시켰다. 안그러면 늘 이 아이들을 거리 아이들로 보는 남아공인들이 많기 때문이다.
제프리스는 유독 거리 아이들이 많다... 늘 몰려 다니고 부시부시 덤불 속에는 본드나 술을 먹고 잠을 청하는 아이들이 이곳 저곳에 많다. 아이들이 본드를 마시고 술을 먹는 이유를 전에는 몰랐다... 예전 고아학교 죠셉이 도망갔을때.. 죠셉도 그랬다. 죠셉이 말하길 밤에 추워서 그랬다고 한다.
아직 그 곳을 가면 날 기억하고 피터팬!! (이곳 영어 이름)하며 몰리는 아이들이 있다... 얼마전 제프리스를 가서 가족이랑 KFC를 먹으러 잠시 앉았는데 창문밖에 거리 아이들이 3-4명 지나가다 날 어떻게 봤는지 이름을 부르며 창문을두들기며 내 주시를 기다린다.. 이곳을 떠나기 3년전에도 그랬는데 저 아이들이 아직 거리에서 방황하고 있다.
지금은 존마시쟈 학교에서 본격적인 컴퓨터 사역을 시작한지 3년이 되고 있다.
이 학교 처음엔 지역 한국인 회사에서 얻어 온 고물 컴퓨터로 시작을 했지만 지금은 20대 가량 직접 최신 컴으로 조립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그 때 한국인 회사에서 가지고 온 고물은 그때 수리하는라 꽤나 애 먹었다. 부품보단 맞는 시스템 드라이버가 없어서 더 힘이 들었다. 그놈들은 지금 금년6-7월경 쟈무 또 하나의 컴퓨터 학교가 열리고 있는 쟈무라는 학교로 운반 될 예정이다. 이 학교는 더 가난한 학교다.. 얼마전 5대의 컴퓨터를 남아공 유령회사로부터 속아 샀다. 6-70만원 정도 대당 준것 같은데.. 속은 다 고물이다... 이런 업자들이 아무것도 모르는 흑인학교 대상으로 판을 치고 있다.
덕분에 이곳에서도 컴스쿨이 시작되었지만 하나씩 문제 생기는 이 컴퓨터들을 수리하느라 머리가 아프다.
우리가 주려하는 10대의 컴도 마찬가지로 고물은 매 한 가지.. 그러나 훨 낫다고 생각한다.
이 학교는 매주 한 번정도밖엔 컴 수업을 못한다 너무 멀기 때문이다.
매일 수업이 있는 죤 마시쟈 학교에 비하면 열악하지만 .. 최선을 다 한다.
죤마시쟈 학교는 전교생 1400 명 중 6-7학년 300 여명이 수업을 받고 있다. 아이들은 무척 느리다 이해력도 생각도.. 7-80년대 우리 시골학교 아이들 같다.. 마우스도 클릭을 못해.. 가지가지다.. 어떤 아이는 클릭 중 손에 경련을 일으켜..긴장도 해 봤다. 제대로 마우스왼쪽 오른쪽 클릭만 한달은 연습해야 하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신발 앞이 구멍 나고.. 교복이 다 헤졌는데.. 아이들은 신경쓰지 않는다.. 창피해 하지도 않는다.
거리 아이들도 아니고 부모가 있는 아이들이지만 ...처음엔 불쌍하다고만 생각했는데 이젠 아이들이 부럽다.
아이들에는 욕심이 없기 때문이다. 정말 과자 하나를 주면 주위 친구들과 쪼개 다 나눠 먹는다. 신기하게도 수 에 상관없이
그 작은 과자를 8조각으로도 나눈다. 그래선지 이젠 수업시간에 아예 과자 4-5개를 통으로 들고 들어간다. 거의 매일....
이곳에서 곧 유치원도 운영할 예정이다. 학교 유치원이지만 운영을 우리에게 맡길 예정이다.
난 남아공에 있는 동안 이와같은 교육 사역을 계속 할 것이다.
그것이 그리스도께서 나에게 주신 남아공에서의 비젼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이젠 이곳에 선교 센타를 세우고 싶다 아이들에게 그리고 젊은 청년들에게 좋은 교육의 환경을 제시할 수 있는 터를 세우고 싶다.
좋은 집도 필요 없고... 집이 좋으면 사 욕이 생긴다.. 큰 건물도 욕심 내지 않는다... 컨테이너 2개 정도를 붙여 안을 이쁘게 꾸며 비 안새는 선교센타의 역활을 할수 있는 곳이면 만족한다.
지금 사역하고 있는 죤 마시쟈 학교의 터에 이미 자리를 확보한 상태다. 이 터 위에 세워질 컨테이너 양철 학교가 죤마시쟈 학교 컴퓨터 반외에 더 훌륭한 교육의 장을 추가 시킬 것이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 비젼에 동참 할 재정 후원자나 함께 일 할 분들을 위해 기도한다.
거리 아이들을 불러 잠을 재울 수 있는 공간을 원하는게 아니라 이 아이들에게 배움의 터를 제공할 공간을 꿈꾼다.
9년 남아공에서의 선교사라는 이름으로 지냈지만 교육의 터가 이 나라를 변화시킬 지름길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첫댓글 선교사님.. 하나님의 도우심이 함께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에 실패는 없으니까요. 감사합니다 선교사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하실 일을 기대할 수 있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