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님전 상서(上書)
" 할머니 ~~~ 지금 어드메에 계십니까, 맏 손자 정남입니다, 손자 나이가 이제 곧 팔십이지요. 이 손자의 아들 딸도 즉 할머니의 증손자(曾孫子)들도 결혼을 했습니다. 할머니 증손자가 장가를 가서 딸 아들 이란성 쌍둥이를 낳았어요. 증손녀도 딸과 아들을 낳았지요. 할머니의 손자의 아들 딸들이 또 아들 딸들을 낳은 것입니다. 그러니까네 할머니에게는 고손자(高孫子)들이 아닙니까. 할머니 ~~~ 할머니도 손자 증손자 고손자들을 얼마나 보고싶고 그립습니까, 요즘 손자인 저도 며느리와 손자녀석들을 일년여 동안이나 보지를 못했어요. 할머니 손자의 아들과 며느리는 서울 세브란스병원 의사들입니다. 모두가 교수로 재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들녀석은 교수직을 마다 하고 서울 마포구에 연세한강병원을 개원했어요. 개원한지도 벌써 만4년이 흘렀지요. 정형외과 중점 병원이예요. 애비인 저도 아들 병원에 약사로 약제실에 매일 출근하고 있는 근무 약사랍니다. 아들이 그래도 애비인 나에게 두득하게 월급봉투를 내밀고 있습니다. 혹여 할머니께서 발목이나 관절등 어디 아프시면 증손자 병원으로 진료 받으러 오시면 좋겠습니다. 물론 아프지 않으셔야 얼마나 좋습니까. 며느리는 교수 안식년제로 지금은 미국 미네소타주 로체스터에 있는 SAINT MARY HOSPITAL에 연수중입니다. 물론 쌍둥이 아들 딸도 동행을 했습니다. 손주들이 한국에 안오고 그곳 미국에서 살겠다 할까봐도 한편 걱정입니다. 이처럼 할머니 증손자 부부들도 훌륭한 직업에 충실하고 있습니다. 고손자들은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으로 착실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후손들이 이처럼 잘 살고 있는 것도 어쩌면 모두 할머니의 간절한 소원의 덕분이 아니겠습니까. "
해마다 돌아오는 설과 추석이면 이북(以北) 고향 산천 생각으로 가슴을 저미고 있다. 더 큰누님과 할머니를 함께 못함에 대한 죄책감이 70년이 훌쩍 넘은 세월이 원망스럽기도 하다. 설명절 추석이면 차례상을 북쪽 하늘로 가득 차려 놓으신다. " 오~마~니 ~~~ 보고 싶 습 네 다 아~ 흐~ 흐~ 흐으윽 ~ 오마~ 니~~~ " 이북에 두고 오신 오마니를 부르시는 모습을 할머니가 보셨으면 어떻했을까. 대성통곡(大聲痛哭)하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시던 내 아버지가 심장을 옥조이고 있다. 누구를 원망하리이까. " 오마니 ~ 사흘이면 다시 돌아올 거야요, 그러니까 집에 잠시 계시라요 " 할머니에게 마지막으로 하신 내 아버지의 부탁이다. 사흘이면 아니 일주일 후에는 한달이 지나면 고향으로 돌아가리라던 믿음으로 버텨온 피난시절이 아니던가. 설명절 추석이 수 많이 바뀌고 바뀌어도 돌아오는 것은 절망뿐이다. 어느덧 내 아버지 오마니가 저 멀고 먼 곳으로 한마디 말씀도 없이 떠나신 것이다. 아버지는 55년 내 오마니는 43년이 흘렀다. 내 할머니는 연세가 몇이더냐. 회갑이 지나신 할머니를 뒤로 하고 떠날 때가 1951년 1월4일 손자인 내 나이가 일곱살이다. 2022년 내일이 설명절 정월 초하루가 아닌가. 어림잡아도 130여세가 훌쩍 넘은 할머니이다. 살아 생전에 못 다 이룬 서러움의 고향땅을 하늘에서나마 내려다 보고 계시려는가. 오늘이 섣달그믐날이다. 내일 설명절에는 그토록 그리워하고 보고파 우시던 아버지가 내 할머니를 끌어안고 무슨 말을 하시려는가. 짐작키도 어렵다. 광(창고)에 가득한 곡식들을 지킨다고 고향에 남으신 할머니이다.
" 할머니 ~ 갑자기 손자가 할머니와 할아버지 존함(尊銜)을 불러보고 싶습니다. 혹시 틀리더라도 너그럽게 이해해 주세요. 할머니의 갸름한 얼굴 모습은 지금도 가슴에 흑백사진으로 남아 있어요. 그런데 할아버지는 언제 돌아가셨는지도 기억도 기록도 없습니다." " 누님 ! 누님은 할아버지를 생전에 보았나요? " 할머니의 두째 손녀인 내 누님에게 물어 보았어요. 이미 할아버지는 저 세상으로 떠나신 후에 태여났다는 대답입니다. " 할머니 ~ ~~ 할아버지 존함은 崔 字 攝 字 天 字이며 할머니는 金 字 鳳 字 姬 字가 맞습니까 " " 그래 정남아 ~ 손자인 네가 할아버지 할머니 이름도 정확하게 알고 있구나, 귀여운 녀석 고맙구나 " 할머니의 음성이 귓전을 흔들고 있다.
" 할 머 니 ~~~ 창고에 가득 쌓아 두었던 곡식들을 몽땅 들어 내세요." " 할머니 !!! 손자인 내가 태여난 곳은 평안남도 개천군 조양면 용현리이며 내가 살고 있던 고향 황해도 봉산군 문정면 어수리에 살고 있는 주민들을 모두 부르세요 " " 밤새껏 주민들과 하얀 쌀밥 인절미 떡국 만두 송편 녹두빈대떡등등을 한마당 가득 만드세요 " " 소도 닭도 모두 잡으세요 할 머 니 ~~~헐벗고 굶주리고 죽어가고 있는 이북 동포들에게 싫컷 배불리 대접 하세요 " 그리고 "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이 목숨 다 바쳐 통일 통일을 이루자 이 나라 살리는 통일 이 목숨 받쳐도 통일 통일이여 어서 오라 통일이여 오라 " 라는 노래도 손에 손잡고 목청껏 부르세요. 손자도 이남 땅에서나마 태극기를 흔들며 목이 터져라 함께 부를 것입니다. 내 할머니 아버지 오마니 세분이 더 큰누님 손을 잡고 하늘을 훨훨 날으시면 어떠신가. 이제라도 이북 고향산천을 마음껏 즐기시기만을 기원드리고 있다. 통일이 오는 그날이면 고향산천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여 있는 아늑한 곳에 손자가 함께 모셔 드릴겁니다. " 할머니 ~~~ 평생 보고프고 그립고 사랑합니다. 언제 그날이 올 때까지 평안히 계십시요 "
2022년 1월31일 섣달 그믐날 손자 최 정 남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