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 31일
안동 국학진흥원에서 <흥해배씨 임연재종택․괴담종택> 도록이 나왔습니다.
국학진흥원에서는 유물 2,000점 이상을 맡긴 종가의 유물은 도록으로 제작해주고 있습니다. 임연재 종택에서 2,700점 정도, 괴담 종택에서 700여점의 유물을 국학진흥원에 맡겼습니다. 흥해배문이라는 같은 집안의 큰집과 작은집 유물을 담은 도록이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나오니, 보기가 더 좋습니다.
도록 앞 표지입니다. 임연재 종택의 모습을 담았습니다. 임연재 종택은 1558년 증 참판공(휘 천석)이 건립한 유서깊은 조선 중기의 건축물입니다. 홍수 피해와 거주의 편의성 등을 감안하여 개축은 있었습니다만, 전통 건축의 전문가들은 보존 가치가 매우 높은 보기 드문 고건축이라고 말을 합니다.
뒷 표지는 괴담 선조(휘 상열)가 천체를 측정하기 위해 제작한 천문기구입니다. 18세기 후반에 제작된 것이라 전해집니다. 괴담은 대산 이상정의 제자입니다. 하지만 괴담이 남긴 글은 모두 본인의 혼자 연구한 독창적인 결과물입니다. 괴담이 돌아가셨을 때의 제문을 보면, 많은 이들이 이구동성으로 말 합니다.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을 글'이라고요. 31세로 돌아가시면서 학문을 제대로 꽃피우지 못했습니다.
동문인 대산 선생의 제자들을 중심으로 괴담의 뛰어난 학문을 인정하는 논의가 있었고, 후에 녹동리사를 세워 향사를 지냅니다. 그리고 유림의 공론을 바탕으로 불천위가 되었습니다.
흥해배씨의 안동 입향과 후손에 대한 이야기가 개괄적으로 짧게 서술되어 있어 올립니다. 백죽당이 돌아가실 당시에는 학문과 덕망, 지조를 갖춘 유림의 종장일지라도 '불천위'로 받들지는 않았습니다. 사실 불천위로 모시는 것은 조선 중기에 와서 생겨난 것이지요. 안동을 중심으로한 영남의 반가는 모두 백죽당의 혈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묘전비입니다. 1414년에 세워졌습니다. 따라서 역사적 가치가 크지요. 너무 오래되어 글자를 알아보기도 힘들 정도입니다.
'임연재', '도목촌'은 퇴계 선생의 친필을 새긴 편액입니다. '금역당'은 어느 분이 쓰셨는지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천체 관측을 위해 만든 천문기구입니다.
괴담집 초본 표지와 안의 내용입니다. 보통 선비들의 문집은 글만으로 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하지만 괴담집은 천문을 설명하기 위한 아주 난해한 각종 그림이 많습니다. 따라서 괴담집은 한문 실력만 있어서는 번역이 불가능하지요. 천문에 대한 깊이있는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