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국학진흥원에서 문중장서목록의 첫 번째로 우리 종가의 <외암비장> 도록을 간행했습니다. 뒷 부분에는 <책치부>도 같이 있습니다. 책치부(冊置簿)는 임연재 선조가 1586년(선조 19년)에 정리한 도서 목록이고, 외암비장(畏巖秘藏)은 임연재의 6대손인 월봉(月峯) 선조가 1727년(영조 3년)정리한 도서목록입니다. 같은 집안에서 작성된 두 시기의 도서목록을 비교할 수 있어서 우리나라 서지학 연구에서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특히 <책치부(冊置簿)>는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도서 목록이라 합니다. 지금까지는 1588년에 전주사고에 보관된 목록을 정리한 <실록포쇄형지안(實錄曝曬形止案)>이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책치부(冊置簿)>는 이것보다 2년 앞인 1586년에 작성된 도서 목록입니다.
책 표지는 종택의 전경을 실었습니다.
외암비장 앞 표지 사진입니다.
<외암비장 > 에 수록된 서적을 서목(책의 종류)입니다. 임연재 종가는 정말 다양한 분야의 책들이 소장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책의 소유권을 분명히 표시하기 위해 종가 소장 고서적에 찍었던 종 모양의 장서인 "금역당"이 찍혀 있습니다.
조선 후기에는 궁궐에서도 임연재 종가의 책을 빌려 보았다고 합니다. 임금이 보았다는 의미로 '어람(御覽)'이라 표시된 책도 많이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종류도 많았고, 궁궐에서도 없었던 희귀본을 소유 있었기에 임연재종가를 '만권장서지가(萬卷藏書之家)라 불렀습니다.
<책치부> 앞 표지입니다. 책치부의 작성자가 누구이냐를 두고 학자들간에 의견이 나뉘어집다. 배현숙 교수는 직접 작성했다고 봅니다.
당시 집안에서 그 정도의 식견을 갖춘 임연재 밖에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1586년이라면 장자인 금역당은 만 22세 밖에 안 되었기에 무리라고 주장합니다.
외암비장 해제를 쓴 국학진흥원의 우진웅 전임연구원은 임연재의 장자인 금역당이라 주장합니다. 당시 임연재는 성균관 대사성 등의 직책을 수행하느라 바빴을 터인데, 책치부를 작성하고 있을 여유가 없었을 것이고, 또 <책치부>의 필체가 금역당의 친필과 거의 흡사하다는 것입니다.
첫댓글 엄청 귀한 글인데, 연도에 오자가 2회 나왔습니다.
상단 제2단락에 1886년, 하단 제2단락에는 1986년이라고 적힌 것을 모두 1586년으로 바로잡아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만권장서지가"의 장자에 오류가 생겼습니다.
감사합니다. 방금 수정했습니다.
들어오셔서 읽어 주시고 가르쳐 주시니 힘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