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과 마음 그 차이는 어디쯤일까?
생각은 의식이 뿌리이고, 마음은 무의식이 뿌리이다. 무의식에 의지와 직관이 내재해 있어서 무의식에 연결되어야 실천과 창조가 이루어진다. 당연히 우리는 마음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그런데 인간은 의식에서 삶을 영위하고, 무의식은 접근이 불가능하니 그 방법을 찾은 것이 교육이다. 교육을 통하여 실천과 창조를 이루고자 한 것이다.
지식 정보화 사회에서 교육은 어디에 포커스를 마추고 있는가? 모두가 알듯이 의식에 다 마춘다. 지식이란 의식이 알아듣도록 만들어진 문자이다. 따라서 교육을 받으면 받을 수록 의식에 집중하는 구조가 된다. 그런데 인간은 발달단계에 따라서 무의식이 발달하는 시기가 있다. 이 시기에 지식교육은 오히려 무의식에 연결을 막아서 무기력한 인간을 만든다. (현재 아이들의 무기력은 교육의 결과이다) 루돌프 슈타이너는 일평생 한 번 뿐인 의지-학습을 통한 의지가 발달하는 시기에 지식교육을 하면 평생 되돌릴수 없는 사태가 된다고 한다. 이 시기가 초등학교 시기이다.(7-14세)
마음과 생각 어디에 방점이 찍혔는지 아이들을 자세히 관찰해보면 재미있는 사실들이 많다.
필자의 경험을 말하면, 마니또 수업을 하였는데, 먼저 자신의 이름을 적은 쪽지를 상자안에 넣고 다시 한장의 쪽지를 뽑아서 일주일동안 마니또를 하게 된다. 그리고 마니또를 하고 느낀 점과 더 생각할 점 등 각자 보고서를 쓰고 마지막 시간에 토론 학습을 하는것이다.
토론학습에서 (초등 6학년)
아이: "선생님, 몰래 봉사를 하니 재미있었어요."
아이가 한 이 말은 생각에서 나왔을까. 마음에서 나왔을까. '봉사를 이렇게 했어요'라고 예를 들었다면 의식에서 나왔다. 재미는 없었을 것이다. 반면 재미는 마음에서 나오는데, 그 이유가 '몰래'인 것은 자신에게 집중해야만 알 수 있다. 정말 자신에게 집중하지 않으면 '몰래'를 절대 끄집어 내지 못한다. 이 아이는 정말 자신에게 집중한 것이다. 책에서 몰래하는 것이 재미있다고 나와있기 때문에 보고 말할 수는 있지만, 자신이 직접 체험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필자의 평소 생각은 교육은 이와 같은 경험을 하게 해주는 것이다-
필자: 이러한 집중력이 학습, 음악, 체육에 투입되면 노벨상과 같은 경우로 나아간다. 재미있어야 집중력이 나오고 ,몰래하는 그 마음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경우라는 말과 같다. 내가 몰래할 정도로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한다면, 이러한 집중력이 나오는것이다.
그러자 다른 아이-이 아이는 학습을 잘하는 아이이다: "마니또를 하니까 평소보다 더 많은 봉사를 하게 되었어요. "이 말은 나만의 생각이므로 무의식에 연결되어서 나온 것은 맞지만, 깊이 몰입된 경우는 아니다. 몰입이 되어야 어떤 일을 오래동안 할 수 있는 동력과 창조가 나온다. (물론 학습을 하다보면 더 깊은 몰입으로 나아갈 경우도 있다) 이 사실만 두고 보면 이 아이는 깊이 몰입되는 경험 전에 지식을 익혔을 것이다. 이렇게 얕은 몰입보다는 깊이있게 몰입을 하면 훨씬더 행복한 삶을 산다. 행복의 관점에서도 그렇지만 몰입의 정도에따라 큰 창조를 이룰 수 있다. 필자의 생각은 큰 그릇을 작게 만든다는 것이다.
나아가 더 큰 문제는 우리가 이러한 과정을 거꾸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비약해서 말하면 사랑을 주면 아이들은 무의식에 연결된다. 그렇게 해서 무의식에 연결되도록 해야 하는데, 지식을 빨리 가르쳐서 영재로 만드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해서, 예컨대 아이돌을 연습시켜서 한류문화를 확산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기본을 확실하게 해두는 시간-미래가 불확실한 시대, 4차 산업혁명시기-이 되었다라는 생각이 든다.
방점은 무의식 발달단계에 무의식에 연결되도록 아이를 간섭하거나 다그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발달단계에 따른 발달이 이루어질려면 아이가 스스로 경험하도록 해야한다.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하면 아이는 무의식에 깊이 연결되는 몰입의 경험을 빼앗긴다. 특히 지식교육은 몰입을 완전히 방해한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변수가 많고 또 어떤 아이가 미래의 그릇이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미리 판단하지 말고 지켜보면 아이는 스스로 몰입의 경험을 익혀 나아갈 것이다. 그때까지 지켜보는 인내가 필요하다. 이것이 진정 아이의 행복을 위한 일이다. 필자 역시 어떤 아이도 선입견을 갖거나. 무시하는 등의 말을 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교육은 국가를 위한 인재를 기르는 목적도 있지만, 아이의 행복을 우선으로 하여 그 아이가 이 세상에서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을 목적으로 해야 한다. 지식을 배워야 살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먼저 아이가 올바르게 발달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유명한 음악가를 보면 이 분들은 정말 음악을 재미있게 했을 것이다. 같이 음악을 했더라도 그렇지 않은 경우는 무의식에 연결되지 못한 것이지 재능이 없는 것은 아니다. 누구든 무의식에 연결되면 의지와 직관이 나온다. 누구라도 음악을 한다면 이러한 음악가가 되길 원할 것이다. 그렇다면 아이의 무의식발달 시기에 무의식에 연결되도록 도와야 한다.
요는 인간은 생각, 의식에서 삶이 이루어지지만, 무의식의 의지와 직관을 표출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마음은 알 수 없고 다만 느낌으로만 이해가 가능하다. '흥미가 있다', '재미있다'는 마음에서 나온다. 그런데 약간 과장하면 요즈음 아이들은 이러한 느낌조차 느끼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이를 사랑해주면 저절로 무의식에 연결된다. 즉 마음에 연결되는 것이다. -7-14세- 이 시기에 지식교육을 해서 아이들이 무의식에 연결되는 일생 한번뿐인 발달단계를 망치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생각과 마음 그 차이는 머리에서 가슴 차이라고 할수있다. 사랑이 생각에서 무의식으로 연결시켜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한 그 차이는 인류를 구하는 창조를 가져오기도 한다.
추신: 유리알 유희에 나오는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점' 대한 글을 소개한다.
"혼신을 다해 빠져들고, 적절하게 전체에 자신을 맞추고, 공경심을 가지며, 경배에 봉사할 자질이 있는가 하는 점이다(유리알 유희, 헤르만 헤세작, 이영임옮김, 2013, 71)."
음악명인이 뽑을 려고 하는 사람을 표현 한 글이다. 음악명인은 기술, 즉 테크닉을 보지 않고 이러한 점이 있는가를 본다는 것이다. 이중에서 초등학교시절에서만 키워지는 것은 '혼신을 다해 빠져드는 성품'이다. 이 시기를 지나면 다른 것은 기를 수 있지만 이 부분은 기르지 못한다. 나아가 세계적인 거장들은 이 부분에서 그 깊이가 다른 것이다.
생각만 하게 하는 교육은 이러한 것을 기르지 못한다. 그러나 문제는 겉으로 보기에는 생각과 마음을 구별할 수 없다는 것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