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여인의 사랑으로 오인된 시몬과 페로 이야기
요 앞에 김붕래 교수님께서 올려주신 <운남연가3 막내절>을 흥미롭게 읽다가 노인에게 젖을 먹이는 여인의 모습을 담은 서양 유화작품을 말씀하시기에 중세화가 루벤스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간략하게나마 선생님께서 언급하신 그림을 중심으로 소개를 드립니다.
위 그림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페테르 파울 루벤스(Peter Paul Rubens 1577~1640)가 그린 노인과 여인, 혹은 시몬과 페로라는 유화 작품으로, 독일 태생인 그는 17세기 바로크를 대표하는 벨기에 화가입니다.
이 작품을 처음 보는 관람객들은 어떻게 이런 (저질)그림을 국립미술관의 주요 벽면에 부착할 수 있는가 하고 의아해 했지만 이 그림에 얽힌 사연을 알고 난 후에는 그 효심에 감동했다고 합니다. 이 그림 속의 이야기는 고대 로마시대의 작가 발레리우스 막시무스(Valerius Maximus)가 민담과 소문을 종합적으로 엮어 만든 “로마의 기억할 만한 언행들”이라는 책에 나오는 내용을 그린 그림이라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자신을 낮춤으로서 덕목의 본보기가 된다는 사례로 실었다고 하는데요, 딸이 아버지에게 젖을 물리는 것은 상식 밖의 행동이지만, 때를 놓치면 아버지는 감옥에서 굶어 죽고 맙니다. 공적 규범과 혈연의 의무 사이, 공과 사의 상반된 가치를 저울에 올렸을 때, 저울의 눈은 어디로 기울어야 할까요? 화가 루벤스는 이런 문제를 친구들과 더불어 토론하기를 즐겼다고 하네요.
오래전 로마에 시몬이라는 노인이 있었는데 그는 역모죄에 연루되어 사형선고를 받습니다. 사형 방식은 아사형(餓死刑), 즉 음식을 전혀 주지 않고 감옥에서 굶겨 죽이는 잔인한 형벌이죠. 이 노인에게는 ‘페로’라는 이름을 가진 딸이 있는데 감옥에서 죽음을 앞둔 아버지 면회를 가게 됩니다. 이를테면 교도소 측에서 당신 아버지가 얼마 안 남은 것 같으니 죽기 전에 가족 얼굴이나 보여주라는 통보를 받은 게 아닌가 합니다.
아버지를 찾아간 딸은 쇠약할대로 쇠약해진 아버지의 입에 뭐라도 넣어주고 싶었지만 아버지 시몬은 굶어 죽어야 하는 벌을 받고 있었으므로 그에게 음식제공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빈손으로 면회를 가 뼈만 앙상하게 남은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는 아픈 마음에 한없이 눈물을 흘립니다.
때마침 그녀는 아이를 출산한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젖이 충분히 불어있었고, 간수들의 눈을 피해 오직 아버지를 살려야겠다는 생각으로 죽음을 앞둔 아버지에게 자신의 젖을 물린 후 힘없이 젖을 빠는 앙상한 노인을 내려다보며 흐르는 눈물이 그의 얼굴을 적시는 안타까운 사연을 화폭에 옮긴 그림입니다.
그녀는 면회할 때마다 간수들의 눈치를 보며 아버지에게 젖을 먹였고, 딸 페로는 아버지가 굶어 죽는 일을 그렇게 해서 조금씩 연장해 갑니다. 시몬이 죽을 때가 지났음에도 생명을 부지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자 재판부는 간수들에게 부녀의 동태를 은밀히 감시하라고 이릅니다. 어둡고 습한 감옥에서 딸이 아버지에게 젖을 물리는 모습을 본 간수들은 이 충격적인 모습을 재판부에 보고합니다.
이 사실을 확인한 재판부는 앞서 말한 '공적 규범과 혈연의 의무 사이, 공과 사의 상반된 가치'를 두고 고민한 결과 마침내 시몬을 풀어주라는 판결을 내리게 되고, 아버지 시몬은 형 집행정지로 석방되어 다시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하지만 작가 막시무스가 쓴 책에는 로마 어느 황제의 시대라는 사실이 명확히 표기되지 않았기에 그 시대를 알 수 없지만 이 내용은 분명한 사실에 근거한 기록이기에 더욱 감동을 자아내는 것 같습니다.
같은 주제의 그림은 그 인기와 소문이 널리 퍼져 여러 유명화가들이 많이 그렸습니다. 그 이유는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동서양 모두가 가장 존중하고 소중히 여기는 관행이 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이 바로크시대의 거장 루벤스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더욱 저명한 그림이 된 것 같습니다.
인터넷 일부에서는 이 내용이 왜곡되어 저 노인이 남미 푸에르토리코의 독립운동가였으며, 딸이 젖을 먹이는 저 그림이 푸에르토리코의 국보급 그림작품에 버금갈 정도의 사랑을 받는다는 소문도 있는데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루벤스가 이 그림을 그린 시기와 푸에르토리코의 역사를 비교해 보아도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유럽인들 대부분이 그랬던 것처럼 가톨릭 신자였던 루벤스는 살아생전 세밀한 신체 묘사 때문에 종종 가톨릭교회의 비판에 직면해야 했지만 종교와 예술은 별개라며 작품에 풍만한 누드를 즐겨 삽입하던 자신의 작품주제와 취향을 60대 초반에 통풍으로 사망할 때까지 바꾸지 않았습니다.
아래는 그의 대표작들입니다.
드로잉 작품 '한복입은 남자' A Man in Korean Costume, 1617
The Massacre of the Innocents, 1611년. 온타리오 미술 박물관,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서 빌림.
Helene Fourment의 초상화 (Het Pelsken), 1630년. Kunsthistorisches Museum, 비엔나.
The Fall of Man (티티안 원작), 1628-29. 마드리드의 프라도.
The Exchange of Princesses, "마리 드 매디시스의 생애" 시리즈 작품 중 하나. 파리 루브르 박물관.
페테르 파울 루벤스와 프란스 스나이더, Prometheus Bound, 1611-12년. 필라델피아 미술 박물관.
The Elevation of the Cross, 1610-11년. 중앙 패널. 안트베르펜
이사벨 클라라 에우헤니아 황녀(1566-1633), 1615년. Kunsthistorisches Museum, 비엔나.
아들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
사투르누스는 로마 신화에 나오는 농경신으로, 그리스 신화의 크로노스와 동일시 됩니다. 크로노스는 자식들에게 권력을 빼앗긴다는 신탁을 받고, 자신의 자식들을 태어나는 순서대로 잡아 먹어버립니다. 같은 주제의 고야 작품도 있습니다.
첫댓글 이 그림의 내용을 저도 알고는 있었으나
우연님의 설명을 상세히 들으니 더욱 좋습니다~♡
네, 모르는 분들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만 또 자세히 아시는 분들도 많지 않을 듯 합니다.
눼? @@;; 자세히 모르는 건 너 하나인가 하노라...라굽셔?ㅎ
김 작곡가님과 함께 읽고 나누니 더욱 좋지 아니한가 .... 입니다요.ㅎ
루벤스는 화가로서는 드물게 인문학적으로 훌륭하고 외교관 역할까지 한 지성인이었지요 위의 그림에 얽힌
비화를 소개해주시고 명화방을 빛내주신 우연운영자님 감사합니다
네. 맞습니다. 그렇다죠? 저는 미술학도도 아녔고 또 미술에 정통하지도 못한 사람인데
고교때 걸작 서양화 전집이 집에 있었죠. 그 책에서 서양신화에 나오는 누드화 보는 재미에
그림책을 보다 서양미술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망할 인간이 아주 커밍아웃을 하는구만..)ㅋㅋㅋㅋ
감사는 김붕래 선생님께 돌리겠습니다. 말씀 감사합니다.^^
최 대표님 고맙습니다. 정확하지 못한 제 기억을 딸과 아버지로 바로잡아주셔서.
조금이라도 찜찜하면 확인하고 넘어가야 하는데 글을 쓰다보면 종종 매너리즘에 빠지게 됩니다.
저는 후일담까지는 몰랐는데 결국 해피앤딩이군요. 문득 고다이바 부인 이야기도 생각납니다.
선생님 천만의 말씀입니다. 저도 남들이 보는 제 글에 대한 신뢰성을 부여하기 위해
별짓(?)을 다 하고 있습니다만 가끔씩 검증을 놓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상업적으로 발간하는 서적에서는 허용되기 어려운 일이지만 비상업적인 면에서는
자료의 무료이용이라는 측면에서 애교로 수용하는 보편성이 주어지니까요.ㅎ
선생님 덕분에 관련 게시물도 쓰게 되고, 또 쓰면서 배우고 복습하게 되니 즐거운 일입니다.
저도 인터넷에서 떠도는 내용을 대충 긁어모아 글을 쓰는 스타일이 아닌지라
쓰고 검증하는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군요. 앞으로도 선생님께 많이 배우겠습니다.^^
아내에게 이 그림에 대해 설명을 해 주었죠...
아내 " 죽으면 죽었지 어떻게 딸의 젖을...."
그래서 명화라는 거야`~~~ 멍청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