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직접 하세요
우리 한민족의 10%는 디아스포라다. 그 중 10%는 시베리아땅을 거쳐서 세계로 흩어졌다. 그들 대부분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해야 했다. 지금도 그 땅에서는 수많은 Korean Diaspora들이 고려인이란 이름으로 눈물겨운 생존 투쟁을 이어간다. 일부는 대한민국 국적을 회복하기도 했다. 일부는 한국에 일터를 찾아 갔다. 그들의 고국에서의 적응은 쉽지 않지만, 그래도 다행스런 소수다. 하지만, 대부분의 고려인들은 그들의 조상들이 조국 광복을 위해 언제 싸웠느냐는 듯이 조국의 관심밖에 머물고 있다. 다수의 연로하신 고려인들은 춥고 배고픈 나날을 연명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터에서 이주해 왔다는 분들도 있고, 중앙아시아에서 고향을 찾아 역이민 왔다는 이도 있다. NK에서 왔다는 노무자 벌목공들도 있다. 대부분은 빠듯한 나날이 고달프다. 그들에게 아버지의 사랑을 나눌 길이 있을까? 하지만, 쉬운 일은 없다. 보이지 않은 여러 장벽들이 38선처럼 굳게 막고 있다.
할 수 있는 일이 보이지 않아 답답하던 어느 날, 나는 한 고려인 가정으로부터 초대를 받았다. 기대하지 않았던 고려인 가정이었다. 그는 몇 년 전까지 아르쫌 부시장으로 재직했다. 연해주 지역에서는 유지요, 이미 뿌리를 견고하게 내린 성공적인 고려인이다. 그는 먼 캐나다에서 왔다는 나그네 된 나를 초청하여 극진히 대접한다. 연해주 고려인 가정에 초대받고 후한 대접을 받았다. 한두 번이 아니었다. 기회만 있으면, 그는 나를 불러 친형제처럼 교제했다. 그의 집에 설치된 러시아사우나에 들어가 뜨뜻한 시간을 나누기도 하고, 맛있는 고려인 국시를 나누며 길고 긴 러시아의 밤을 몇 차례나 함께 했다.
하지만, 이런 후한 교제상이 내게 늘 편한 건 아니었다. 초대를 받는 한 편에 의구심도 있었다. 아버지께서 나를 이 시베리아땅에 심부름 보내신 목적과 상치된다는 생각이었다. 춥고 주리고 소외된, 그리하여 우리는 나름 받은 심부름이 있다. 필요 속에 있는 Korean Diaspora 고려인들에게 아버지의 사랑을 전해야 하는 것이다.
전부시장으로부터 초대받는 횟수가 많아지고, 서로의 교제가 무르익어 갈 때, 나는 주님으로부터 받은 사명을 대화 주제로 올려놓았다. 시베리아 강추위 속에서 고통당하는 형제들에게 따뜻한 옷을 사주고 싶다고 했다. 그는 즉시 전화기를 들었다.
“ㅌㅂ아! 너는 몇 사람과 함께 일하냐?”
“다섯 명이오.”
“춥지 않아?”
“너무 추워요.”
“몸 싸이즈를 말해라”
“56 한 명, 58 세 명, 60 한 명이오.”
“따뜻한 옷 사놓을 테니, 다음 화요일에 우리 집에 와서 옷 가져가라.”
“감사합니다. 부시장님 댁 창고에 있는 히터 사용하세요? 일터가 너무 추워요.”
“안 쓴다. 그 때 와서 가져다 사용해라.”
그들의 수고로 부시장은 집을 지었단다. 서로 필요를 공급하면서 형제처럼 살고 있었다. 북간도나 연해주를 오가면서 경험하는 것은 러시아는 NK와 거리가 멀지 않다는 것이다. 준비한 옷을 부시장을 통해 그들에게 전달하고 나서야 비로소 소중한 한 가지를 나는 깨달았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법을! 그리고 회개했다. 나는 심부름꾼일 뿐이구나! 하나님의 심부름만 하면 되는 것이구나! 나를 전부시장과 만나게 하신 분, 전부시장을 통해 아버지의 사랑을 전하신 분! 하나님이 하시는구나! 심부름꾼은 순종하기면 되는구나!
사람을 키우시는 분도 하나님
전부시장은 왜 나를 그렇게 선대했을까? 초청이 반복되고 대화가 깊어갈 때에야 나는 알게 되었다. 부시장의 손자가 토론토에 유학을 와 있었던 것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러시아와 캐나다는 큰 장벽으로 막혔다. 비행기만 오가지 못하는 게 아니다. 돈을 보낼 수도 없다. 선물 하나를 손자에게 보내는 일이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데 토론토에서 내가 시베리아를 찾아온 것이다. 얼마나 반가운 존재인가! 일곱 번이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초대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러시아를 떠나 캐나다로 들어오면서 내 짐보다 더 무겁고 큰 할아버지 선물과 돈을 꾸역꾸역 매고 와야 했다.
토론토에서 전부시장의 손자 블리디를 만났다. 그 할아버지의 큰 선물을 전달했다. 내가 그의 할아버지댁에서 후한 대접을 일곱 차례나 받았기 때문에, 이번엔 나도 빚을 갚을 차례였다. 그를 전담할 일꾼을 붙여주셨다. J선교사였다. 그를 통해, 때를 따라 아버지 사랑을 블라디에게 전했다. 내가 출석하는 Y교회에 그 손자 블라디를 초대하였다. EM친구들을 소개해 주었다. 블라디는 그들과 함께 성경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고려인 유학생이 토론토에 유학 와서 신앙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Y교회 목사님은 그가 신학공부를 하면, 장학금을 후원하겠단다. 하나님께서는 시베리아에 심을 Project를 진행하시는 걸까? 하나님은 고려인 영적 거목을 토론토에서 키우실 수 있는 분이시다. 그리고 시베리아 고려인 구원을 위해 하나님은 그를 파송할 수도 있는 분이시다.
아르쫌 임마누엘 교회의 십자가
아르쫌 임마누엘 교회는 정득수 선교사 연해주 30년 선교사역의 열매다. 주일학교 교육에 특화된 정 선교사는 그곳에서 어린이 전도에 씨를 뿌리고 섬겼는데, 그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교회를 이루었다. 다수의 고려인들이 러시아 현지인들과 함께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정득수 선교사는 그들과 교회건축을 하고 아름답게 사역했다. 교회가 본궤도에 오르자, 현지 고려인 3세에게 교회를 물려주고 본인은 더 깊은 시베리아 노보네쥐노에 교회를 개척했다.
정선교사의 멋진 사역이 자랑스러웠다. 나는 아르쫌 임마누엘 교회 사진을 찍어 토론토에 와서 자랑을 했다. E선교회 어느 목사님 내외분이 그 교회 건물에 필요한 십자가 헌금 C$500을 맡기셨다. 나는 그 헌금을 토론토에서 공부하고 있는, 전부시장의 손자 블라디에게 전했다. 블라디는 그 할아버지에게 그 소식을 전했다. 전부시장은 C$500보다 훨씬 큰 US$500을 아르쫌 임마누엘 교회에 헌금해 주셨다. 십자가 헌금은 25%가 순식간에 불어났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법에 대하여 좀더 깊이 생각해 보는 계기다. 일을 행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하신다. 심부름꾼이 하나님의 일하시는 자리에 머믈 수 있다는 것! 나아가 심부름에 쓰임을 받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축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