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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쓰기의 세 가지 방식
여세주
1.수필의 스펙트럼
수필의 스펙트럼은 매우 다양하고 넓다. 수필은 고정된 틀에 얽매이지 않고 개성적인 글쓰기를 끊임없이 추구한다. 내용이나 형식, 그리고 창작 방법 등에서 매우 자유롭고 다양한 글쓰기가 가능하다는 것이 수필의 특성이다.
수필은 어떤 내용에 비중을 두느냐에 따라 여러 가지 글쓰기가 가능하다. 경험을 기술하고 그 의미를 해석하는 ‘경험 중심 수필’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이에 못지않게 경험의 의미론적 형상화에 구애되지 않고 그것에 대한 인상이나 감정을 보여주는 ‘서정 중심 수필’도 인기를 끄는 양식이다. 경험보다는 지식이나 사유를 통해 삶의 철학적 의미를 얻어내는 ‘관념 중심의 수필’이 한때 인기를 얻기도 했다.
수필은 형식에서도 매우 유연한 변용을 허용한다. 수필은 본래 경험한 사실을 전달하면서 그것에 대한 의견이나 주장을 펼치는 교술 양식에서 출발한 장르이다. 그러나 교술의 장르 규칙을 근간으로 삼으면서 서정적・서사적・극적 속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시적인 비유, 소설적인 구성이나 서술, 희곡적 대사를 끌어들임으로써 수필은 형식적 실험을 거듭해 왔다.
수필의 내용과 형식은 무관하지 않다. ‘경험 중심 수필’ 가운데서 경험의 재현을 통해 인간을 탐구하는 작품은 대체로 서사적이거나 극적 형식이고, 경험 세계와 소통하면서 정서적 감응을 표현하는 작품은 주로 서정적 형식이며, 경험한 사실을 전달하면서 그것에 대한 의견이나 주장을 펼치는 작품은 교술적 형식이다.
창작 방법에서도 크게 세 가지 양상을 보여준다. ‘경험이라는 대상을 통해서 삶의 진실을 표상할 것인가, 정서나 성정을 표현할 것인가, 철학적이거나 사회문화적인 견해를 표출할 것인가’의 변별성이 그것이다. 표상, 표현, 표출을 상대적인 용어로 사용하는 것이 아직은 낯설고, 이 용어의 외연이 지시하는 상대적인 개념을 선명하게 떠올릴 수 없지만, 이 세 가지 단어는 수필 쓰기의 방법론적 차이를 설명하기 위한 용어이다.(표상과 표현이라는 용어는 박이문의 《예술철학》에서 원용하였다. 그러나 같은 개념은 아니다.)
2.표상, 표현, 표출하는 글쓰기
1)표상적 수필
표상表象한다는 것은 상징 또는 은유한다는 의미이다. 수필 쓰기에서 재현된 경험이 삶의 어떤 진실을 상징하거나 은유토록 하는 경우를 가리킨다. 경험을 재현하여 삶의 진실을 표상한다는 의도를 지니고 창작된 수필을 표상적 수필이라 이름한다.
표상적 수필 쓰기에서는 경험을 박진성 있게 재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경험 세계를 객관적으로 재현해야 한다. 환영illusion을 불러일으킬 수 있도록 실재의 경험 세계를 유사하게 복제copie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물론, 그리스시대나 르네상스시대에는 대상을 정밀하게 모사해냈을 때 훌륭한 예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고대 그리스 화가 제욱시스의 <소년과 포도>가 말해 주듯이, 실물과 너무나 흡사하여 새들이 날아와 포도를 쪼아 먹을 만큼 환영을 불러일으켜야 뛰어난 예술이었다. 신라시대 화가 솔거의 예술적 위대성도 실재하는 소나무와 너무나 흡사하게 벽화를 그렸다는 평가에 근거한 것이었다. 르네상스 화가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는 《회화론》에서 그림을 바라보든, 그림이 나타내고 있는 대상을 유리창을 통해 바라보든, 시각적으로 유사하여 차이가 없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표상적 수필은 근원적으로 이러한 예술관에 기반을 두고 있다. 하지만, 객관적인 경험 세계를 치밀하게 복사해서는 안 된다. 경험 세계를 통찰하여 그것의 본질을 인식하고 이를 부각시켜 미적 가치를 지닐 수 있도록 모상simulacre해야 한다. 재현에 있어서 사실성寫實性의 정도는 아무 의미가 없다. 더 사실적인 재현이라고 해서 무조건 환대받을 일은 아니다. 수필에서 경험의 재현은 필요에 따라서 덜 사실적이거나 더 사실적일 수 있다. 경험 세계의 본질을 드러낼 수 있는 재현이라면 어느 경우든 상관없다.
달리 말하자면, 작품에 재현한 경험이 무엇인가를 표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표상하지 않는 재현은 무의미하다. 수필 쓰기에서 경험의 재현은 본질적인 그 무엇을 지시하는 코드체계여야 한다. 수필작품에서 재현된 경험은 본질적인 무엇인가를, 무엇에 대한 진리를 상징하거나 은유해야 문학적 가치를 지닌다. 의미론적 의도와 지향이 있어야 비로소 수필이다. 그렇지 못할 때는 신변잡기에 머문다.
경험의 본질적인 측면은 감각적으로 지각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사유에 의해 인식할 수 있다. 그래서 수필은 경험의 재현을 통해 경험의 본질에 대한 사유와 인식을 이끌어내는 글쓰기이다. 경험의 본질이란 그것의 의미를 말한다. 어떤 경험이 지닌 의미는 보편적이어야 하는데, 궁극적으로 삶의 진실이어야 한다. 재현된 경험이 그 의미를 함축하면 상징이고, 언술화하면 은유가 된다. 재현된 경험과 그 의미를 상징 관계에 놓을 것인가, 은유 관계에 놓을 것인가 하는 것은 작가의 선택 사항이다.
계용묵의 <구두>은 경험적이며 서사적이다. 구두에 박은 징 소리에 앞서가던 여자를 불안감에 떨게 했고, 앞질러 가서 그 여자를 안심시켜 주려고 발걸음을 재촉하였으나 그 여자를 더욱 공포 속으로 몰아넣고 말았다는 이야기다. 이 경험을 통해 여성들이 남성들을 불신하는 세태를 비판한다. 경험과 의미가 은유 관계를 이룬다. 경험이 보조관념이라면 의미는 원관념이다. 허세욱의 <움직이는 고향>은 남편을 여의고 자식들 집을 떠도는 어머니의 모습을 그려주고 있다. 어머니는 정신적 고향의 메타포이고 한곳에 머물지 못하는 어머니의 떠돌이 생활은 심리적 고향을 상실한 노년의 삶을 상징한다.
표상적 수필은 인간의 본질이나 삶의 진실을 인식하려는 의도와 지향성을 지닌다. 독자에게 인간의 본질이나 삶의 진실에 관하여 생각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경험의 본질은 경험 속에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그 무엇이 아니라, 작가에 의해 구성되고 창작된 것이다. 경험의 본질적 의미를 통찰하고 이를 부각시켜 표상하는 것은 작가로서의 능력이다.
표상적 수필은 경험을 객관적으로 재현하여 독자로 하여금 인간과 삶의 본질을 생각하고 인식하는 데 이르도록 한다. 따라서 표상론적 수필 쓰기에서는 경험을 재현하는 방식과 표상되는 진리의 참신성이나 공감도가 작품의 문학적 완성도를 높이는 데 중요한 구실을 한다.
2)표현적 수필
경험에서 느끼는 정서의 성질이나 인간의 성향을 드러내는 수필은 표현적表現的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표현의 의미는 상당히 좁은 뜻이다. 어떤 정서 상태나 정서적 태도를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을 말한다. 감정을 전달하는 차원이 아니라, 감정이 배어나게 하는 차원의 진술이 여기서 말하는 표현이다.
표현적인 수필은 경험을 객관적으로 그려내기보다는 주관적인 경험 세계를 탐구하는 데에 주력하는 작품들을 일컫는다. 경험 대상의 외적 특징보다는 내적 속성에 관한 감정적 반응을 전달한다. 이때의 감정적 반응은 정서의 성질(그리움, 외로움, 연민, 슬픔, 희열 등)일 수도 있고 인간의 성향(비열함, 용감함, 숭고함, 위선 등)일 수도 있다. 표현적 수필 쓰기는 대상을 감성적으로 바라보고 그것에 대한 느낌을 표현하는 데에 목적을 둔다. 감정 표현에 목적이 있기 때문에, 이들 작품에서 경험은 정서적 감응을 표출하는 데에 기여할 뿐이다. 그러므로 표현적 수필에서의 경험은 주관적 경험세계이다.
표현적 수필을 쓰기 위해서는 경험 대상으로부터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한다. 그러므로 작가의 정서적 시각이 중요하다. 작가는 그 감정 상태를 신중하게 탐색하고 감정의 질감과 윤곽을 찾아내야 한다. 표현하고자 하는 감정 상태가 작품을 창작할 때의 심리적 상태와 굳이 연관되어 있을 필요는 없다.
표현하고자 하는 정서에 보다 더 적절히 다가가기 위해 그 특이한 점을 관찰하고 통찰해야 한다.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앞에 서 있는 초조와 지난 시간에 대한 원망이 뒤섞여 있는 서러움의 정서를 그려낸다면, 경험의 대상을 자신의 내부로 끌어들여 동화시키거나 자아를 대상에 투사해야 한다. 경험의 대상을 자아의 감정에 적합한 것으로 주관화하여 자아와의 동일성을 추구한다는 말이다.
이양하의 <나무>는 작가의 감성과 소통하는 나무의 성정을 드러낸다. 나무의 외형적 특징에 드러나 있는 의인화된 속성을 표현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삶의 자세를 나무에 투사시켜 나무에서 진정한 자아 내지 이상적 자아를 찾고자 한다. 민태원의 <청춘예찬>도 창작 방식은 크게 다르지 않다. 젊은이들에게서 느끼는 감정적 반응, 즉 젊음의 성정을 표현한 작품이다. 젊음의 피 끓는 열정, 원대한 이상, 건강한 육체를 들춰내어 청춘의 가치를 찬미하기 때문이다.
표현적 수필 쓰기에서 의도적으로 복잡한 감정 상태를 표현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하나로 수렴된 감정 표현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어떤 것에 관해 무엇을 느끼는가’를 자문하면서 표현할 감정을 찾아내고 그 감정의 질감이 선명하게 돋보이도록 경험의 조각을 선택하고 결합해야 한다.
구체적인 정서를 얻어가는 방법, 그 정서가 무엇인가를 구체화하는 방법을 노엘 캐럴은 ‘정서의 명료화’라고 하였다. 정서의 명료화란 어떤 감정을 직설적으로 드러낸다는 의미가 아니다. 작가가 독자에게 전달하려고 의도하는 감정을 암시하더라도, 그것이 분명하게 암시될 수 있도록 형상화한다는 의미이다. 정서를 명료화하는 것은 감정의 분출이 아니라 감정의 통제를 통해 가능하다. 그러므로 수필작품에서 감정을 표현할 때 순간순간의 감정을 마구 배설해 놓아서는 안 된다. 체험의 과정에 일어나는 개별적 감정들을 자유분방하게 분출하는 것이 표현적 수필의 속성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3)표출적 수필
경험이나 지식을 동원하여 어떤 주관적인 견해를 펴는 수필은 표출적表出的 수필이라 할 수 있다. 철학적 이념이나 사회문화에 대한 견해를 직설적으로 피력하는 작품을 이르는 말이다. 이런 양식의 작품은 소견을 직설적으로 설명하므로 표출적이다.
베이컨의 에세이는 물론이거니와 몽테뉴의 에세이도 표출적 성격이 다분하다. 우리의 중수필은 이런 방식의 글쓰기이다. 김태길의 <글을 쓴다는 것>은 경험을 바탕으로 하되, 글쓰기란 무엇이며 글쓰기의 올바른 자세에 대한 견해를 피력한 수필이다. 양주동의 <면학의 서>는 경험과 지식을 동원하여 독서와 학습의 즐거움을 역설한다. 진리 발견의 즐거움이 독서의 우선적인 목적이며 그 즐거움은 각고의 노력을 통해 얻어지는 것인데, 다독과 정독을 겸하는 박이정博而精의 자세가 올바른 독서법이라는 견해를 펼친다. 박이문의 <길>은 길이 지닌 다양한 의미를 해석하면서 인간의 다양한 삶을 조명하는 철학적 사색이다. 안병욱이나 김형석의 수필도 대부분 표출적 수필이다.
표출적 수필은 교술적敎述的 성격이 가장 농후하다. 교술을 하나의 장르 영역으로 설정한 조동일에 따르면, 교술의 ‘敎’는 알려주며 주장한다는 뜻이고 ‘述’은 어떤 사실이나 경험을 서술한다는 뜻이다. 수필의 태생적 속성은 교술이다.
그런데 한국 수필은 교술적 특성을 탈피하려는 쪽으로 나아가는 경향을 보인다. 그 대신에 서정적, 서사적, 극적 형식을 수필 쓰기에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이러한 경향은 3분법에 따른 문학 범주에 편입되고자 하는 문학주의가 팽배해 있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표출적 수필 쓰기에서는 풍부한 지식이나 깊은 사유가 동원되어야 하고 감정의 흐름보다는 논리의 흐름에 따라야 한다. 그래야만 작가의 견해가 명료하게 전달될 수 있다. 지적 사유와 명료한 논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3.내용과 형식과 창작 방법의 관계
경험의 재현을 통해서 삶의 진리 인식에 이르는 작품들, 대상에 대한 감응이나 대상의 성정을 드러내는 작품들, 철학적 이념이나 사회문화적 현실에 대한 견해를 피력하는 작품들의 창작 방법을 표상, 표현, 표출로 구분하여 살폈다.
서사적 수필이나 희곡적 수필은 대체로 표상 수필이다. 서정적 수필은 표현 수필이다. 교술적 수필은 표출 수필이다. 그리고 경험 중심 수필은 대부분 표상 수필이다. 정서 중심 수필은 표현 수필이다. 관념 중심 수필은 표출 수필이다.
서사적이거나 희곡적 수필인데, 표현 수필인 경우도 있다. 경험 중심 수필인데, 표현 수필인 경우도 있다. 관념 중심 수필인데, 표현 수필인 경우도 있다. 민태원의 <청춘예찬>은 내용상 관념 중심 수필이며 형식상 교술 수필인데, 창작 방법상 표현 수필이다. 피천득의 <인연>은 내용상 경험 중심 수필이며 형식상 서사 수필인데 창작 방법으로 보면 표현 수필이다. 창작 방법의 차이에 따라 표상, 표현, 표출이라는 낯선 용어를 끌어들인 이유가 이런 작품에서 드러난다.
(《어름문학》 7호, 2020.12)
여세주 essaytown@daum.net
문학평론가, 수필가. 《수필미학》 발행인. 저서 《새롭게 쓴 수필창작론》, 《수필의 전형과 실험》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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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박이문, 《예술철학》, 문학과 지성사, 1983.
조동일, 《한국문학의 갈래 이론》, 집문당, 1992.
노엘 캐럴, 《예술철학》(이윤일 옮김), 도서출판b, 2019.
아서 단토, 《무엇이 예술인가》(김한영 옮김), 은행나무, 2015.
첫댓글 굳이 표상, 표현, 표출이라 해야 하나 했는데 끝에서 설득당함. 이론은 글쓰기를 단단하게 해줘요. 애독자올림
감사합니다.
수필을 구분해서 이해하고 설명하기 위한, 아직 임의적인 용어에 불과합니다. 학술적 용어로 그리고 일반적 용어로 굳어지려면 수필가들은 물론이고 학자들의 암묵적 동의가 있어야 되겠지요.
선생님, 잘 읽었습니다.
*시안으로 표상, 표현, 표출의 세 갈래로 구분하시는데요, 이왕에 (서사, 서정, 극, 수상)수필 등으로 구분하는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데요, 그 세 단어를 설명하기 위하여 서사, 서정 등의 어휘를 쓰면서까지 구지 철학에서 사용하는 용어를 도입할 당위성이 무엇일까요.
* "수필은 형식이 자유로우니까 형태적 구분은 불가능하다"라고 하지만, 디지털 시대라도 아직은 문자로 나타나고 있으니, 길이를 기준하여 기본수필, 장수필, 단수필, 등으로 구분할 수 있을 것 같구요, 내용에 따라 서사, 서정, 서념(관념을 쓴- 제 생각임) 으로 대별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 당면 사안으로 수필을 문예수필, 생활수필, 신변잡기 등으로 구분합니다만, 문학을 전문가의 전유물로만 말고, 만인의 문학이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 조동일 선생님의 '세계의 자아화' 혹은 '자아의 세계화' 라는 설명은 좀 모호한 부분이 있다고 느낍니다. 선생님께서 그런 용어를 사용하지 않아서 안도합니다.
*. 새로운 분류 방법을 볼 수 있어 신선하구요, 노력에 박수를 보냅니다. 수필 쓰는 방법에 관한 자세한 설명, 많은 도움이 됩니다
선생님의 깊이있고 세심한 지적에 감사드립니다.
-형식상(징르일반)의 구분인 서정, 서사, 극, 교술과 결과적으로는 상당히 겹치는 것들이 많지만, 창작방법(창작과정?)의 차이에 주목해 보자는 의도로 시도해 본 글입니다.
-서정, 서사, 서념은 내용상의 구분인 것 같은데 3대장르(서정, 서사, 극) 또는 4대장르(서정, 서사, 극, 교술)와 용어상 겹쳐서--. 윤오영의 서사, 설리, 서정, 사경의 개념을 참고하셔도 이에 대한 생각을 펼쳐나가는 데 도움이 될 듯합니다.
-저도 수필을 문학의 트롯이라 여깁니다. 대중적이라는 것이죠. 그런데 신변잡기라는 말이 부정적으로 인식되고 있고, 생활수필이란 용어는 실용문의 느낌을 주거나 수필이 모두 일상생활을 소재로 한다는 것 때문에 그렇고---. 저는 수필의 스팩트럼(등급?)을 치유적, 자전적, 문학적으로 나누어 설명하기도 합니다.
-조동일의 두 개념은 세부적으로 적용하려 들면 상당한 문제를 안고 있긴 한데 이를 무너뜨릴 대안이 아직은 마련되지 못한 상황이지요.
관심 가져주셔서 늘 감사합니다. 함께 토론할 동지가 있어서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