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체널 김나연 기자의 “김구라, '12살 연하' 아내 깜짝 출연..子그리 "누나라고 불러"제하의 보도 기사가 정말 가관이다.
나이 먹고 늙은 사람이 과거를 이야기하면 꼰대라고 비하하는 세상이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사회는 인간으로서 그리고 사람이면 반드시 지켜야 할 도리가 있고 윤리, 도덕이 있다.
천박하고 무식하고 아무리 막대먹은 집안에서 자라나서 본것도 배운 것도 없이 애비나 자식이나 다 같은 막가파식의 사람은 서양에서는 고귀한 귀족 집안에서는 언감생심 말도 꺼내지 못하겠지만 노예나 천박한 하층민들은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짐승같은 짓이 行해지는 경우는 영화나 소설로 봤지만 漢字 문화권 즉 동양에서는 고유의 전통과 문화, 禮儀凡節이 있어 감히 입에 담으면 용납할 수 없는 언어가 횡행하고 있어 정말 말 그대로 김구라의 가정은 사람이 사는 가정이 아니라 양아치들이 사는 소굴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이시대에 동양문화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漢字와 儒敎思想을 입에 담으면 내 자식이라도 꼰대라고 비하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 사람은 전세계에서 가장 자유롭고 평화스럽게 宗敎의 자유를 누리면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교 신자던 천주교 신자던 불교 신자던 이슬람교 신자던 도교나 무속신앙을 믿는 사람들도 생활의 뿌리와 피속에 모태 본성이 漢字文化가 흐르고 있음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설과 추석 명절이 그렇고 우리나라 4계절과 관련한 각종 행사를 같이 치르고 있음을 볼 때 우리나라는 종교의 자유를 누리고 있으면서 우리 민족의 삶의 정서는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1999년 4월 19일부터 3박 4일 일정으로 한국을 국빈 방문했던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안동을 전세계정신문화의 수도라고 했을까? 그래도 세계 그 누구도 이에 반기를 드는 사람이 없었다. 우리나라 대한민국 유교의 본산 안동이 세계정신문화의 본거지라고 인정한 것이다.
그리고 미국의 아버지 부시와 아들 부시 대통령도 안동을 수차례 방문하여 우리나라 예절문화와 전통문화를 몸으로 체험하였다.
그리고 펄벅 여사는 생전에 한국은 두번다녀갔다.
소설 [대지]로 1938년 노벨문학상을 탄 펄벅여사가 1960년 처음 한국을 방문했다. 여행지 경주를 방문하던 그녀의 눈에 아주 진기한 풍경이 목격되었다. 황혼 무렵, 소달구지에 볏단을 싣고 가던 농부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한국에서는 당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지만 그녀에게는 신선했던 모양이다.
귀국 후 그녀는 [살아있는 갈대]란 소설을 쓰면서 세상에서 본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라고 회고하였다.
1960년 방한한 미국 소설가 펄벅. 그녀는 늦가을에 군용 지프를 개조한 차를 타고 경주를 향해 달렸다. 노랗게 물든 들판에선 농부들이 추수하느라 바쁜 일손을 놀리고 있었다.
차가 경주 안강 부근을 지날 무렵, 볏가리를 가득 실은 소달구지가 보였다. 그 옆에는 지게에 볏짐을 짊어진 농부가 소와 함께 걸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차에서 내려 신기한 장면을 카메라에 담았다.
펄벅이 길을 안내하는 통역에게 물었다.
“아니, 저 농부는 왜 힘들게 볏단을 지고 갑니까? 달구지에 싣고 가면 되잖아요?”
“소가 너무 힘들까 봐 농부가 짐을 나누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지요.”
펄벅은 그때의 감동을 글로 옮겼다.
"이제 한국의 나머지 다른 것은 더 보지 않아도 알겠다. 볏가리 짐을 지고 가는 저 농부의 마음이 바로 한국인의 마음이자, 오늘 인류가 되찾아야 할 인간의 원초적인 마음이다.
내 조국, 내 고향, 미국의 농부라면 저렇게 힘들게 짐을 나누어지지 않고 온 가족이 달구지 위에 올라타고 채찍 질하면서 노래 부르며 갔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농부는 짐승과도 짐을 나누어지고 한 식구처럼 살아가지 않는가.... 라고 탄복했다.고 한다.
이것이 우리의 전통이고 사회규범이고 정신문화이다.
아무리 세월이 더러워 이름까지 본명을 쓰지 않고 구라(거짓말의 비속어)라고 쓸까마는 그래도 가정은 사람 사는 세상의 뒤처짐 없이 반듯하게 잘살겠지 하고 생각했었는데 가히 김씨 가문을 욕보이는 것이고 김구라 개인은 양아치 집안임을 스스로 표출시키면서도 뭐가 그리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도 모르고 하하 호호 하고 있으니 김구라의 인감 됨을 이미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이정도 일줄은 몰랐다.
아무리 친모는 아닐지라도 아버지와 함께 사는 사람이면 보편적으로 새엄마다. 그러나 예법에는 분명히 계층이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계모[繼母]는 어버지와 혼인한 후처를 말하고 서모[庶母]는 아버지의 첩을 말한다.
김구라는 재혼을 하면서 결혼식을 했으니 분명 계모다. 繼母이면 당연한 엄마의 반열이다. 그렇다면 김구라 아들 “그리”는 분명히 엄마 또는 어머니라고 호칭해야 한다.
김구라가 살아오는 삶을 보고 자란 그리가 뭘 알아서 새엄마에게 누나라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동정심이 간다면 아버지의 아내를 편안하게 그리고 좋아 한다는 의사 표시로 누나라고 불렀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할 수있다.
아무리 세상이 한번도 경험 해보지 못할 세상을 만들겠다는 문재인 정권을 거치면서 종북좌빨 586세대들이 사회의 주류가 되면서 애비나 자식이나 선생님이나 학생이나 다같이 평등해야 하고 엄격한 규율이 생명인 軍에서도 부대장인 장군이나 사병이나 평등해야 하는 것을 처음으로 경험해 보았으니 학생이 여선생님 치마 속을 보기 위해 교단에 드러눕는 일도 생기고 사병이 장교를 폭행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는 세상이 원망스럽듯이 김구라 가정도 결코 자랑할만한 가정이 아닌데 인터넷방송에서 자유롭게 방송을 하는 것을 생각하니 세상이 막대가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 입맛이 씁쓰레하다.
그러나 그리는 새엄마에 누나라고 하고 새엄마가 낳은 딸은 김구라 아들 “그리”에게 오빠라고 하는 전세계에 없는 이 집안에 족보 관계를 어떻게 설명할까? 기가 찰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