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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6월16
어제 11시에 집을 나갔다가 술을 마시고 2시경 서울역 실로암 찜질방으로 들어갔다. 잠깐 있다가 날이 새기 전 집으로 간다는 것이 그만 잠이 들었고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아침 9시가 지났다. 어쩔 수 없이 찜질방에서 몇 시간을 보내다 남영동 미성회관 중국관에 점심을 먹으러 이동했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6월의 중순이지만 이래저래 울적하여 점심을 먹으면서 또 술잔을 기울였다. 오늘의 일정이나 생활이 당연 엉망이 되었는데 냉철하게 살아간다는 나도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주변 환경이 조금만 나았더라면 지금보다 훨씬 안정된 나였겠지만 이제는 누구를 탓하거나 원망할 수가 없었다. 오후에 독립문 부동산에서 학원하기에 적당한 장소가 나왔다고 연락이 와서 들렀더니 보증금 1천만 월세 50만원이다. 독립문공원이 보이는 대로변 건물 10평 정도의 크기였고 결국 망설이다가 다음으로 결정을 미루었다. 집으로 들어가니 아내가 있고 어제 밤에 나갔다가 이제 들어온 나로서는 미안함이 많아 방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집안이 편해야 모든 일이 잘 되는 법인데 요즘은 신경이 예민하여 하루를 사는 것이 과거와 같지가 않다. 더욱이 아내와 충돌까지 잦아져 악순환이 계속되는 생활로 이렇게 삶이 힘들고 혼란스러울 줄은 미쳐 생각하지 못했다.
17일
아침에 잠을 자고 일어나니 눈과 얼굴이 부었다. 식사를 거르고 등교하는 아들에게 밥을 먹으라고 했더니 들은 체도 하지 않고 현관을 나갔다. 그런 아들을 바라보는 나로서는 밥이 먹히지 않았고 말없이 앉아 있던 아내도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식사를 중단한 채 바로 일어나 안방으로 들어갔지만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내가 살아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오전에 가방을 들고 거실을 나서면서까지 불쾌함이 가시지 않았고 삶에 대한 의욕이나 희망까지 위축되는 느낌이었다. 평소보다 1시간 빠른 9시경 체육관에 도착하여 운동을 하고 학원으로 가면서는 대학로에서 바지를 샀다. 여름용 70% 세일임에도 3만2천 원이라니 실제 원가는 10만원이 넘는다는 것으로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다. 학원에 도착해서 점심을 먹으려고 나갔다가 입맛이 없어 다시 돌아왔고 오후에는 교재를 연구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4시경 논술교실로 가다가 어제 들렀던 독립문 학원공간을 다시 방문하여 권리금과 임대료 조정을 논의했다. 5시경 논술교실 들어가 기말고사 대비로 수업을 하고 아내가 강의실을 사용하는 시간에 집으로 내려왔다. 거실에 들어서니 이번 기말고사 성적이 좋지 않다는 딸이 침통하게 앉아 있는데 당연히 나까지 마음이 무거웠다. 하지만 상위권을 기준으로 점수를 산정한 것이기에 위안을 삼았고 2학기에 더 열심히 하라고 딸을 격려했다.
18일
새벽에 몇 번을 깼다가 잠이 들어서인지 아침에 몸도 무겁고 머리까지 아프다. 거실로 나오니 기말고사 평균이 90점이라는 딸이 중간고사 점수가 좋아서 괜찮다며 어제와는 다른 모습이다. 다행이라 생각을 했지만 살다보면 뜻대로 안 되는 일이 많고 성공과 좌절도 동시에 존재하기 마련이다. 요즘 술을 많이 마셔 탈이 난 것인지 속이 거북스러워 오늘은 체육관을 포기하고 바로 학원으로 나갔다. 오전에 내일 수업할 프린트를 준비하다가 2시경 집으로 돌아와 국수를 만들어 점심으로 먹었다. 오후에 뒹굴뒹굴 의욕이 없는 시간을 보냈고 저녁에 교실로 올라가서는 연속으로 수업을 진행한 주말이다. 밤에는 기말고사와 관련하여 국어를 배운다는 조카가 퇴계원에서 찾아왔는데 식사를 마친 후부터 아내가 늦게까지 지도를 했다.
19일
늦게 잠이 들었다가 눈을 뜨니 아침 8시가 한참 지났다. 하지가 3일 남아 밤이 짧은데다가 안방 커튼이 창문을 가려 날이 새는 줄도 모르고 잔 것이다. 시간이 늦어 교회에 가는 것을 포기하고 식탁에 앉았더니 오늘은 웬일인지 아들도 일찍 자리를 했다. 어제도 늦게 들어왔고 평소 말이 없는 아들이라 의아했는데 이제부터 국어수업을 다시 듣겠다는 것이다. 식사를 마치고 교실에 올라가 이대부고 기말고사 범위를 시작하는 중에 낯선 모습의 아들이 약속한 대로 출석을 했다. 제대로 하는가 싶었는데 중간에 영어학원을 간다며 먼저 나가 결국 열심히 하는 수강생들 분위기만 흐려 놓았다. 1시에 집으로 내려가 점심을 먹고 TV를 시청하다가 3시에 다시 교실로 올라 초저녁까지 일요일 수업에 전념했다. 수업을 마치는 시간에 식당을 하는 친구한테 연락이 와 사당역에 나가 함께 저녁을 했더니 시간이 훌쩍 지났다. 친구는 만날 때마다 삶을 하소연하는데 오늘도 외면할 수가 없었고 결국 내가 더 정신없는 상태로 집에 돌아왔다.
20일
아침에 일어나 생각하니 어제 친구의 사정으로 함께 보냈다고 해도 낭비한 시간이나 건강 등은 보상 받을 길이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평소에는 친구가 먼저 취해서 내가 고생을 했는데 어제는 반대의 상황으로 내가 먼저 취하여 입장이 바뀌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아들과 딸이 학교에 갔고 아내도 외출을 하여 개교기념일을 맞은 수강생들 수업으로 교실에 올랐다. 하지만 10시가 지나서까지 아무도 오지 않아 다음으로 미룬다는 문자만 통보하고 곧장 학원으로 나갔다. 30도를 넘는 기온에 점심도 거르고 무의미하게 오후를 보내다가 일찍 집으로 왔더니 거실에 햇살만 가득하다. 아내는 대학까지 함께 다닌 친구가 학원을 개원한다고 부천에 가 있어 어쩔 수 없이 비빔밥으로 점심을 혼자 먹었다. 잠시 후 학교에서 딸이 돌아왔고 초저녁에는 약속이나 한 것처럼 아내와 학교를 마친 아들이 동시에 들어왔다. 늦은 밤에 거실에서 TV를 보던 아들이 간식으로 만두를 사 왔는지 안방으로 들어와 잠든 나를 깨웠다. 김 선생님을 연거푸 부르는 소리에 웃음이 나서 일어나기는 했지만 아들은 나의 직장 동료가 아니다.
21일
자고 일어나 거실에 나가서 등교를 준비하는 딸과 된장국으로 식사를 하고 다시 방으로 들어가 누웠다. 잠시 후 아들의 식사하는 소리가 들리고 안방까지 들어온 딸은 머리에 신경을 쓰느냐 여념이 없다. 외모에 너무 집착하면 공부하는데 지장이 생길 수 있으니 학생다운 순수함을 유지하라고 일러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9시경 체육관으로 나가 달리기와 기구운동 등 2시간을 보내고 밖으로 나왔더니 몸이 한결 가벼워졌다. 속이 거북하여 4일 만에 찾은 곳인데 앞으로는 술을 멀리하고 규칙적으로 식사하는 습관을 반드시 만들어 나갈 것이다. 오후에 학원으로 이동하여 라면으로 점심을 사 먹었고 친구들한테 이번 주 토요일 산행하는 일정을 통보했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서울의 기온이 30도를 넘어 더웠지만 에어컨 아래에 있어서인지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해가 중천에 뜬 4시경 저녁에 논술교실 수업이 있어 미리 집으로 갔더니 학교에서 돌아온 딸이 훌쩍거리고 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도 대답이 없어 걱정이 되었고 아무튼 험한 세상 딸도 야무지고 강하게 살아가야 할 것이다. 찜찜한 기분으로 논술교실 올라가 수업을 하고 늦은 시간에 집에 내려왔지만 무거운 기운은 가시지 않았다.
22일
새벽에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예보로는 오늘부터 장마라니 이런 모습이 당분간 계속 이어질 것이다. 어제 울었던 딸이 염려되어 거실에 나갔더니 아침을 먹는 중이고 교복을 입은 아들도 옆에 앉아 있다. 잠시 후 아들과 딸을 배웅하고 오전에 신설동으로 나가는데 출근하는 차량으로 종로와 동대문 일대가 정체가 심했다. 임대 건으로 약속을 하고 가는 것이지만 목적지에 다다를 무렵 다음 기회에 온다기에 방향을 학원으로 틀었다. 도착하여 엊그제 연락이 온 학원건물 주인과 통화를 하고 영식이에게 보낼 투자금 변제 독촉장을 만들었다. 낮이 가장 길다는 오늘 아침부터 스트레스가 생겼고 거기에 높은 기온과 장맛비까지 지루한 6월의 하루다. 오후에 여름방학 수업을 위한 안내서를 만들다가 4시경 체육관으로 이동했고 운동을 마친 후에는 곧장 교실로 향했다. 무엇이든 머리가 맑아야 집중력이 생기는 법인데 약속이 틀어지고 금전문제까지 신경을 쓴 하지(夏至)다운 긴 하루였다. 10시경 기운이 빠진 상태로 집으로 갔더니 거실에 있는 딸이 나를 바라보고 외출을 했는지 아들은 흔적도 없다.
23일
자다가 눈을 뜨니 비는 계속 내리고 아내는 거실 나는 안방에서 따로따로 아침을 맞았다. 특별히 할 일이 없는 오늘이라 누워서 보내다가 8시에 거실로 나왔더니 아들과 딸이 등교를 서두른다. 식사를 마친 오전에 광화문으로 특강을 들으러 간다는 아내를 태워 주려다가 마음이 따라가지 않아 포기를 했다. 무슨 일이든 마음이 가는 곳에 행동이 있을 것인데 가족이라고 해도 먼저 상대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오전에 체육관으로 나가 운동을 열심히 했더니 들어갈 때 추레했던 내가 환골탈태 완전 딴 사람으로 변했다. 학원으로 가는 중에는 장대비가 앞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내려 힘들었는데 작년 이맘 때가 연상되었다. 1년 전 차량의 바퀴가 잠길 만큼 광화문에 물이 찼었고 서울역 부근에서는 차를 움직이는 것도 쉽지 않았었다. 학원에 도착하여 백반으로 점심을 사 먹었고 오후에는 학부모에게 전달할 안내서와 프린트를 준비하면서 보냈다. 오늘처럼 비가 내리는 날은 조용한 창가에 앉아 커피라도 한 잔 마시면 좋을텐데 언감생심 시험일정이 빼곡하다. 현실을 직시하며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6월의 날들을 보내야 하고 수강생들의 기말고사에도 부족함이 없어야 한다. 요즘은 나도 과거처럼 조직이 있는 생활이 아니라서 편협한 사고에 빠질 수가 있는데 가급적 멀리 보는 안목이 필요하다. 집으로 가면서 독립문에서 오리훈제를 구입했더니 아내와 딸 그리고 과외를 마친 아들까지 밤에는 식탁이 만찬장으로 변하였다.
24일
눈을 뜬 이른 새벽 안방에 내가 누워 있고 음습한 공기는 저승사자처럼 나의 몸을 휘감았다. 비가 오락가락 하는 아침에 거실로 나왔더니 아들은 이미 학교에 갔고 밥을 먹던 딸은 동공마저 멈춘 채 나를 응시한다. 식사를 하라든지 아니면 잘 잤냐고 인사를 하는 상냥함이 있어야 하는데 후한 점수를 받기에는 부족하다. 살다보면 성격도 변한다지만 딸을 비롯하여 가족 모두가 비슷한 성향이니 이것도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11시경 체육관으로 나가 운동을 하며 땀을 흘렸고 마친 후에는 곧바로 학원으로 이동하여 점심을 먹었다. 오후에 프린트와 교재를 준비하며 보냈고 하지만 오늘은 모든 것이 정지되어 있는 것처럼 공허함이 더 많았다. 6시에 집으로 왔다가 식사를 하고 이대부고 기말시험 준비로 교실에 올랐더니 아들이 교재도 없이 들어왔다. 무엇을 하든지 기본적인 자세가 중요할 것인데 다른 수강생들과 차이가 나는 모습이 오히려 측은하기도 했다. 물론 아들은 부모의 다른 모습이기에 모두 내 탓으로 여겨야 하지만 자식의 삶이 더 나아야 하는 것은 말할 나위 없다.
25일
오늘은 60년 전 남,북한 전쟁이 있었던 날로 어린시절 아버지(김준기金俊基)의 무용담을 많이 들으며 자랐다. 6.25 참전 용사로 전방에서 격전을 벌였고 압록강까지 진격했다가 1.4 후퇴를 경험한 자랑스러운 육군상사 아버님이시다. 당시 전쟁이야기는 동화보다 더 흥미진진했고 적을 무찌른 내용에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만세를 부르기도 했었다. 어제 늦게 잠이 들었다가 논술교실 일정으로 새벽에 일어나 밖으로 나섰더니 아직도 비가 내리고 있다. 7시부터 수업이라 서둘러 간 것인데 잠도 제대로 못 잤다는 수강생들이 먼저 나와 고맙기도 미안하기도 했다. 아침에 아내의 수업이 있어 9시경 바로 내려왔더니 주말마다 광화문 도서관에 가던 딸이 오늘은 집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잠깐 쉬다가 12시 전에 또 교실로 올랐고 하지만 이번에는 새벽팀과 반대로 1시간이나 늦게 수강생들이 들어왔다. 다음 일정이 있어 짧은 수업을 했지만 언제나 다르지 않게 초저녁까지 진행된 최선을 다한 주말이었다. 날이 어두워지면서 체육관으로 나가 오전에 못한 운동을 했고 가족이 식사를 하는 밤에는 너무 조용한 거실이 삭막하기까지 했다.
26일
중앙고 기말시험이 임박하여 새벽에 일어나 서둘러 논술교실로 올랐다. 이른 아침 상쾌한 마음으로 수업을 하고 집으로 내려와 식사를 한 후에 일찍 도서관에 나간 아들을 태우러 출발했다. 오전 국어수업에 참석한다기에 데리러 간 것인데 시간이 되어도 나오지 않았고 전화마저 불통이어서 10여분 기다리다 돌아왔다. 수업 직전에 아들이 들어왔는데 오늘은 질문도 하고 고등부 수강료까지 묻는 활기차고 의욕적인 모습이었다. 수업을 마친 11시경 교회에 있는 친구한테 전화가 왔고 그런데 주일 날 결석한 것보다 현실에 충실한 나를 오히려 격려했다. 상대의 입장을 헤아리는 마음이 고마웠지만 그것보다 친구는 언제나 사랑과 배려를 실천하는 하나님의 아들다운 사람이다. 점심에 집으로 가서 식사를 하고 다시 3시에 교실로 올라가 수업을 마친 뒤 저녁에는 남영동 건너편 삼각지에 나갔다. 원조 대구탕 집들이 몰려 있는 곳인데 친구와 저녁을 먹고 바람이 거세게 부는 밤에 집으로 돌아왔다.
27일
어제 저녁을 먹으며 마신 술로 밤새 불편했는데 적지 않은 나이에 몸이 위험한 신호를 보냈을 것이다. 이렇게 절제나 대책이 없이 살아간다면 60대 70대가 될 무렵에는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 미리부터 걱정이 앞섰다. 아침에 식사를 마친 후 집을 나서 학원부터 들렀다가 임대 건으로 신설동으로 가는데 오늘도 여전히 비가 많이 내린다. 사전에 약속을 하고 간 것인데도 상대가 나오지 않아 지난번처럼 허탕을 쳤고 결론은 이런 것이 임대의 힘든 점이다. 어차피 도착한 것 일단 건물 2층에 올라 기간이 만료되는 시점에 시설의 원상복구를 지시하고 다음 목적지 체육관으로 향했다. 12시경 홍제동에 도착하여 운동을 하고 점심을 먹은 오후에 내일 시험을 보는 수강생들을 위해 교실로 올라갔다. 오후 전체를 할애하여 열심히 수업을 하고 저녁에 집으로 내려오니 식당을 하는 친구한테 다급한 연락이 왔다. 죽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나를 보겠다는 것인데 상황이 심상치 않아 지하철을 이용하여 1시간 거리 범계역으로 달려갔다. 식당에 들어서니 창백한 그의 부인이 유서를 전해주었고 가까스로 통화가 되어 그를 만났을 때는 완전 혼수상태였다. 고등학교 때부터 공부를 잘한 친구는 사법시험에도 도전했었는데 뜻대로 되지 않았고 이후 순탄치 않은 생활은 지금에 이르렀다. 밤이 늦은 시간까지 하소연을 들으며 그를 위로했고 마지막에 식당까지 함께 갔다가 막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28일
어제 12시가 지나 집으로 왔지만 친구가 그렇게 의지가 없는 것인지 하기는 나도 부족한 면이 많아 큰 도움이 되지는 못 했다. 좋은 대학을 나오고 특전사까지 다녀온 거기에 서울대에 들어간 아들도 있는 놈이 죽는다니 사람의 행복은 무엇으로 만드는가. 늦은 아침에 눈을 뜨니 긴 장마철에 모처럼 해가 비쳐 반가웠고 식사를 마친 10시경 부지런히 체육관으로 나갔다. 열심히 운동을 하고 학원으로 이동해서는 이틀 후 이대부고 시험에 대비하여 프린트를 준비하다가 점심을 백반으로 사 먹었다. 오후에 학원 공과금 등을 납부하고 5시경 집으로 돌아오면서 독립문 부동산에 갔더니 지난 주 답사했던 공간이 임대가 되었다. 아깝기도 했지만 더 좋은 곳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동네에 있는 링컨 영어학원에 들러 커피를 마시고 집으로 왔다. 밤에 개인수업이 있어 준비를 하는 중 결석한다는 수강생 연락이 왔고 그 바람에 오늘은 일찍부터 집에서 시간을 보냈다. 7시경 아내가 들어와 삼겹살로 가족이 함께 저녁을 먹었고 8시가 지난 밤에는 딸이 11시부터는 아들이 수학과외를 시작했다.
29일
자다가 눈을 뜨니 장대비가 내리고 아침이 될 때까지 그치지 않았다. 이른 시간에 거실로 나와서 앉아 있노라니 등교를 준비하던 아들이 다가와 손을 내밀며 반갑게 아는 체를 한다. 요즘 느끼는 바가 있는지 수업도 나오고 오늘은 대화까지 아무튼 고마운 마음으로 아침에 차에 태워 학교로 출발했다. 집으로 돌아와 이번에는 딸을 태워 동명여중에 다녀오는데 비가 많이 내려 제대로 앞을 볼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식사를 마친 오전에 시내에 나가 일을 보다가 미성회관 근처에서 김치찌개로 점심을 하고 3시에 체육관으로 이동했다. 주로 오전에만 나오다가 오후에 왔더니 여전히 운동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이후 집으로 들어가 저녁을 일찍 먹었다. 잠시 후 수업을 하러 논술교실로 다시 올랐고 밤에는 옛날 제월리 맛이라며 고추장 멸치볶음으로 아들이 식사를 맛있게 한다.
30일
목요일 새벽 5시에 깼다가 다시 잠들어 7시에 일어났더니 아직도 비가 내리고 있다. 금년은 특별히 비가 많이 내리는데 오늘도 식사를 마치고 아들을 태워 이대부고에 다녀왔다. 오면서 딸에게도 전화를 했더니 어제보다 20분이나 일찍 집을 나섰고 시내버스는 이미 학교 근처에 도착했다. 자존심이 강하고 자신의 나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하는 딸이라 역시 의지하는 부분도 다른 사람보다 적은 편이다. 오전에 체육관에 갔더니 주차 타워가 고장이 나서 소동이고 운동을 마친 후에는 임대 건으로 또 신설동으로 나갔다. 세입예정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곧장 학원으로 들어가 집에서 가져온 도시락으로 점심을 한 후 기말고사를 준비하며 오후를 보냈다. 5시에 논술교실 도착하여 아들을 포함한 이대부고 수업을 했고 곧바로 영식이를 만나러 남영동 미성회관으로 나갔다. 형제같은 친구인데 금전문제가 겹치다 보니 4개월 만에 보는 것이고 그래도 변함없는 우정으로 반가움이 많았다. 식사를 하고 돌아온 밤에 달려온 6월의 서른 날을 헤아려보니 방황 그리고 비와 술을 동반한 한 편의 초여름 연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