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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7월1일
벌써 7월이고 금년도 내리막으로 접어들었다. 늦게 잠이 들었다가 8시에 일어났지만 수업을 하다가 밤 9시 이후에 시내에 나가 친구들을 만나면 12시가 금방 지난다. 밝아온 아침 거실에서 바라본 하늘과 산은 온통 푸른 신록으로 그러나 내일쯤 장마가 다시 북상한다는 예보가 있다. 오늘부터 아들이 기말고사를 시작하는데 국어는 어제 정리를 했으니 중간보다는 분명히 성적이 오를 것이다. 식사를 마친 오전에 바로 학원으로 나가 대신고 경복고 등 내일 수업을 위하여 프린트를 준비하고 점심으로 백반을 사 먹었다. 어제 영식이를 만나 반가움과 편안함이 많았는데 앞으로 사업이 잘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격려를 많이 보냈었다. 2시경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리고 곧바로 체육관으로 갔는데 비가 오기 직전이라 그런지 습도와 불쾌지수가 높은 것 같았다. 운동을 마친 후 논술교실로 올라가 수업을 하고 6시경 집으로 갔더니 딸이 다음 주 시험이라며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다. 저녁에 아내가 부탁한 멸치를 일일이 정리했는데 가정적인 나의 바탕을 알지 못하는 아들과 딸이 의외의 모습이라며 놀란다. 밤에 아들이 도서관에 간다면서 외출을 했고 수업을 마친 아내는 10시경 집에 돌아와 식사를 마치고 TV 앞에 앉았다.
2일
잠을 잘 자고 일어났더니 몸도 가볍고 기분까지 좋아졌다. 또한 어제 저녁에 내가 손질한 멸치가 조림으로 아침 식탁에 올라와 어느 때보다 맛있는 식사를 했다. 기말고사 생물과 지학을 보는 둘째 날 아들을 태우고 이대부고에 갔다가 바로 논술교실로 향하여 내일 시험을 보는 수강생들을 지도했다. 수업을 마친 10시경 관악산 산행을 하려고 서울역까지 시내버스로 갔다가 지하철을 갈아타고 서울대 입구까지 이동했다. 오전까지는 비가 내리지 않는다는 뉴스를 듣고 집에서 나온 것인데 어두운 하늘에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았다. 11시경 서울대 등산로를 따라 정상으로 올랐고 삼성산 삼막사에 도착하니 웅장한 규모의 사찰이 탁 트인 전망과 함께 서 있다. 거북바위 근처에서 점심을 하고 내려오는 길은 시시각각 변하는 운무로 인하여 낮과 밤처럼 밝음과 어둠이 반복되었다. 또한 얼마 전까지 비가 많이 내린 탓으로 가는 곳마다 물이 넘쳐 흘렀고 계곡에서 발을 담갔을 때는 산행의 피곤함이 한 번에 사라졌다. 신림역 근처에 도착하여 설렁탕으로 저녁을 먹고 시내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하여 집으로 돌아오니 아내와 딸이 거실에 있다.
3일
어제도 저녁을 하면서 술을 마셨더니 아침까지 속이 편하지 않았고 모두가 절제를 못한 나의 나약함이 만든 결과다. 식사를 마친 9시에 아들을 태워 일단 도서관에 내려주고 논술교실에 들어가 기말고사를 대비하여 수업을 시작했다. 점심쯤 집으로 내려가 딸과 함께 라면으로 식사를 하는 중에는 벼락과 천둥을 동반한 소나기가 내려 요란한 오후로 변하였다. 내일 아들이 기말고사 수학을 응시하여 오후부터 수업을 약속한 과외선생이 몸이 아프다는 이유로 결석을 통보해 왔다. 중간고사도 엉터리였는데 총정리가 필요한 이 중요한 시점에 휴강이라니 몸이 아픈 것보다 무책임함이 더 원망스러웠다. 미장원에 간다는 아내를 홍제역 근처까지 태워다 주고 논술교실로 올라가 일요일 수업을 이어가는 중에는 오전부터 내리던 비가 멈추었다. 수업을 마친 시간에 도서관에 가서 공부한 아들을 태우고 집으로 왔고 미용실을 다녀온 아내는 평소보다 단정된 머리로 얼굴과도 조화가 잘 되었다. 보기가 좋다고 칭찬을 하여 모처럼 거실의 분위기가 밝았는데 저녁을 먹는 아들이 김치가 쓰다고 투정을 하는 바람에 상황이 반대로 바뀌었다.
4일
일찍 일어났더니 비는 그쳤고 안개가 자욱한 새벽에 방송에서는 당분간 장마가 계속이라는 뉴스를 전한다. 아침에 기말고사를 보는 아들과 시험감독을 간다는 아내를 동시에 태우고 학교에 갔다가 돌아와 9시경 식사를 했다. 오전에 체육관으로 나가 운동을 하고 점심쯤 집으로 들어가니 시험을 마친 아내와 아들이 벌써 도착하여 점심을 먹고 있다. 오늘 수학을 괜찮게 보았다는 아들의 밝은 표정을 뒤로하고 논술교실로 올라가 내일 시험인 중앙고 수업을 시작했다. 다른 학교에 비하여 범위가 많아 절반만 했고 나머지 정리는 내일 시험을 시작하기 전 이른 시간으로 약속을 해 두었다. 4시경 학원으로 출발하여 일과를 정리하고 집으로 오는 시간에는 일전에 유서까지 남긴 친구한테 전화가 왔다. 해병대에 지원한 아들을 포항까지 배웅하고 지금 서울역에 내렸다면서 풀이 죽은 목소리로 자신의 신세를 또 이야기 한다. 결국 무악재까지 택시로 온 그를 호프집에서 달래어 보냈고 집으로 들어온 밤에는 딸에게 처음으로 국어과제를 지도해 주었다.
5일
어제 현대소설과 현대시 님의침묵을 딸에게 지도했는데 상징성과 불교색이 짙은 한용운의 시는 이해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것보다 중학교 2학년 학생에게 고등과정의 현대시를 과제로 낸 의도는 무엇인지 눈높이를 무시한 선생님의 과욕이 아닐 수 없다. 아침 7시에 일어나 오늘 할 일을 정리하고 식사를 마친 후에는 아들을 태우고 어제처럼 학교에 갔다가 돌아왔다. 곧바로 어제 약속한 수강생들을 지도하기 위하여 논술교실에 올라가 9시30분까지 수업을 하고 모두 학교까지 태워다 주었다. 삼청동과 감사원을 경유하여 들어선 학교는 고려대학을 닮은 교정에 잔디가 깔린 운동장 또한 특이하게 시험도 10시에 시작한다. 학교를 나와 체육관에 가서 운동을 시작했고 2시간 후에는 논술교실로 다시 올라가 내일 국어를 보는 수강생들을 지도했다. 아침부터 수업과 운전을 하고 다녀서인지 강의중에 졸음이 쏟아져 힘이 들었고 결국에는 학생들에게 미안할 만큼 집중력이 떨어졌다. 오후에 집으로 내려가 늦은 점심을 먹는 중에 초등학교 동창 모친상 연락이 와서 장례식장에 조화를 우선 주문하여 보냈다. 재작년 어머니 장례식에 전라도 광주에서 서울까지 와 준 친구로 나도 밤에는 상가가 차려진 고향으로 내려갈 것이다. 3시 수업으로 다시 교실에 올랐는데 수강생이 결석을 했고 결국 아내의 수업이 있는 5시까지 보내다가 내려왔다. 이후 터미널로 나가서 고속버스를 탔고 3시간을 달려 김제에 도착한 뒤 택시로 장례식장에 들어서니 밤 10시가 되었다.
6일
어제 장례식장에 조문을 하고 서울에서 내려온 친구들을 만났다. 늦은 시간이라 12시가 지나서는 모두 자리를 떴고 차편이 없는 나만 제월리 친구와 해장국을 먹으려고 식당에 들어갔다. 이후 3시경 찜질방으로 들어가 하루를 묵은 것인데 평소에 고향이 그립다가도 막상 내려오면 나그네와 같은 신세를 면할 수가 없다.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니 비가 올 것처럼 날이 흐렸고 혼자 남은 내가 걱정이 되었는지 어제의 친구들한테 전화가 와 있다. 쉬면서 오전을 보내다가 점심쯤 시내로 나와 맛있게 식사를 했는데 그럼에도 서울로 오는 오후의 시간은 힘들고 지루했다. 8시경 터미널에 도착하여 집으로 왔더니 오늘 기말고사가 끝난 아들은 외출을 했고 딸은 내일을 위해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다. 밤 늦게 남아공에서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를 발표한다기에 초미의 관심으로 보았는데 기대한 대로 대한민국 평창으로 결정이 된다. 지난 1988년 올림픽처럼 국가적으로 큰 영광이 아닐 수 없고 당연히 이런 기회에 우리를 세계에 알려야 할 것이다. 1박2일 동안 먼 거리를 다녀와서 밤까지 피곤함이 많았는데 집을 떠나면 고생이라더니 편안하고 행복한 곳은 역시 평소의 자리다.
7일
어제처럼 하루라도 서울을 벗어나면 다음 날은 몸과 마음이 바쁘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아침에 거실로 나왔더니 아들과 기말고사가 거의 마지막이라는 딸이 등교를 한다. 식사를 마치고는 신사임당 모임에서 충청도 진천에 간다는 아내가 나가고 바로 이어 나도 체육관으로 향했다. 열심히 운동을 하고 12시경에는 학원으로 이동하여 집에서 가져온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었는데 오늘은 특별히 맛이 좋았다. 오후에 어제 김제에서 만난 친구들과 일일이 통화를 했고 저녁이 가까워 온 시간에 집으로 오면서는 교보문고에 들렀다. 방학 때 사용할 고2 교재를 보러 간 것인데 아직까지 내가 강의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스스로 놀랐고 대단했다. 그런가하면 갈수록 어려워지는 학문에 비하여 부족한 부분이 많은 나로서 무기력함이나 자괴감이 드는 시간이기도 했다. 또한 나는 언제까지 국어를 가르칠 수 있을지 10년 후에도 지금의 생활을 이어갈 것인지 여러 상상을 해 보았다. 8시경 집에 돌아오니 시험을 마친 아들이 안방에 있어 이 기회에 가족이 모두 볼 수 있도록 TV를 거실로 옮기는 일을 시작했다. 내일 미술과 체육시험을 본다는 딸은 평균이 중요하다며 시험공부에 열중이고 밤에는 수업을 마친 아내가 피곤한 기색으로 들어왔다.
8일
새벽에 일어나니 내리던 비가 개었다. 모처럼 마라톤 연습을 하려고 6시에 홍제천으로 나가 40분을 달려서 모래네를 돌아왔다. 숨이 차고 땀도 흘렀지만 10월에 열리는 조선일보 춘천마라톤이 100여일 남았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긴장감이 솟았다. 집으로 돌아와 식사를 하고 아들을 태워 학교에 갔다가 차에서 내릴 때는 용돈을 주었더니 거절하며 이유를 묻기만 했다. 아버지로서 당연히 줄 수 있는 것이고 상대적으로 내가 아니면 이 아들에게 긍정적인 자비를 베풀 사람은 세상에 없을 것이다. 다시 집으로 갔다가 오전 중 신설동에 나가서 중국집을 하겠다는 임차인과 보증금 2천만 원 월세 140만 원으로 1층 계약을 했다. 젊은 부부가 야심차게 운영을 하겠다며 도시가스를 들이고 인테리어까지 큰 공사를 말하여 나도 저렴하게 임대를 한 것이다. 계약금을 받은 뒤 학원으로 들어가 누룽지탕으로 점심을 먹었고 오후에는 일요일에 할 프린트 등 수업을 준비했다. 독립문 부동산에서 학원용 사무실이라며 또 전화가 와서 집으로 가는 길에 방문을 했더니 이번에는 규모가 작았다. 바로 집으로 들어가 시험을 마친 딸에게 공부는 평소에 하는 것이 상위권을 차지하는 지름길이라고 비법처럼 설명을 해 주었다. 저녁에 체육관으로 나가 운동을 하고 9시경에는 남영동에서 친구를 만났는데 식사를 마치자 금방 12시가 지났다. 늦게 자리를 하다보니 어쩔 수가 없었고 또한 한여름 밤이라 자정이 넘어서까지 거리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9일
새벽에 들어와 정신없이 자고 있는데 아내가 깨운다. 딸이 연북중학교에 과학탐구 일정으로 가는 날로 비가 많이 내리니 태워다 주라는 것이다. 몇 시간 자지 않은 상태라 눈도 떠지지 않았지만 사랑하는 딸이라 지체없이 일어나 거실로 나왔다. 아들은 일전에 몇 번 다녔던 유자원에 봉사활동을 간다고 나서는데 2년 전 그 자리에 계셨던 어머니가 그려졌다. 아들이 나간 후 서대문구청 근처에 있는 중학교에 딸을 내려주고 곧장 신설동으로 달려가 오늘 이사하는 1층과 미납임대료 등을 정산했다. 동시에 새로 들어오는 중국집 세입자와 건물 사용과 기타 인테리어 부분까지 상의를 했더니 오전이 금방 지나버렸다. 12시경 학원으로 이동하여 된장찌개로 점심을 사 먹었고 오후에는 집에 일찍 왔을 딸에게 전화를 했더니 낮잠을 자다가 받는다. 시험이 끝나 여유가 있을 것인데 함께 보내는 시간을 만들어 주지 못하는 아빠의 미안함으로 연락을 한 것이다. 6시경 집에 들어가니 딸은 논술교실 수업을 나갔고 아들까지 외출을 하여 혼자 집을 지키다가 8시경 저녁을 먹었다. 밤에 수업을 마친 아내와 딸이 생각지도 않게 동대문으로 야간 쇼핑을 간다는데 야심한 시간이라 염려가 되었다. 12시가 지나 아들이 시무룩하게 들어와 이유를 물었더니 친구와 PC방에 있다가 그의 아버지한테 발각되어 야단과 훈계를 들었다고 한다. 아들을 위로하기보다 늦게까지 들어오지 않은 자식을 찾는다고 PC방까지 돌아다닌, 내가 할 일을 대신한 아버지로서의 심정이 먼저 이해가 되었다.
10일
일요일 아침인데도 머리가 복잡하여 교회도 가지 않고 누워만 있다가 9시에 나와 식사를 했다. 함께 앉은 아들이 오늘도 수업에 참석한다고 했지만 시험도 끝났으니 새로운 교재를 시작하는 다음 주부터 나오라 일렀다. 오전에 논술교실로 올랐더니 시험이 끝나고 방학까지 목전에 둔 시점인지라 수강생 몇 명이 탈락을 했고 일부는 지각을 했다. 나중에 출석한 학생들도 의욕이 없어 공부할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기말고사에 출제된 문제를 정리하고 일찍 마쳤다. 오후 1시에 집으로 내려가 점심을 하고 중국집 시설을 한다는 1층을 보려고 어제에 이어 신설동에 또 나갔다. 기존 1층 구조는 앞쪽에 유리문이 있지만 주방으로 쪽문을 또 하나 만든다고 오늘은 벽을 헐고 공사를 크게 벌인 상태다. 4시경 집으로 돌아와 잠깐 쉬다가 논술교실에 올랐고 하지만 오늘 온다는 교재가 도착하지 않아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공교롭게도 오늘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무질서하고 혼란한 수업으로 중등부 수업으로 아내가 올라온 7시경까지 힘들게 보냈다. 이후 손을 털듯이 교실을 넘겨주고 집으로 내려와 정신을 놓고 있는 사이 TV를 보던 아들이 말도 없이 외출을 했다. 수업을 마친 아내가 내려와 식사를 하는 중에는 엄마와 거실에서 자겠다는 딸이 땀을 흘리며 방에 있는 이불을 모조리 나르고 있다.
11일
수업이 없는 월요일임에도 몸이 무겁고 밖에는 긴 장마철 비가 계속 내린다. 오전에 식사를 하고 체육관으로 갔다가 운동을 마친 후에는 시내에서 친구와 김치찌개로 점심을 먹었다. 오후에 신설동에서 지난 주 이사 간 공간을 정리했고 대치동 학원에서는 7월분 수익금을 마원장이 보내왔다. 요즘 학원의 분위기가 좋다며 한껏 흥분된 목소리였는데 크거나 작거나 사업이라는 것은 내일을 모르는 일이다. 이번 달부터 아들과 딸의 대학 입학금 통장을 만들어 아들은 50만원 딸은 20만원씩 매월 넣는 적금을 만들 계획이다. 각각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날 통장과 중,고등학교 6년간의 기록을 넘겨준다면 그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순간의 감동이 행복을 만들어 줄 수도 있으니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아들과 딸에게 그렇게 응원을 해 보는 것이다. 집으로 가면서 은행에 들러 생각대로 통장을 만들었고 이어 1차 등록금을 적립했더니 아들이 벌써 대학생이 된 느낌이었다. 저녁에 집에서는 각자의 사진으로 닮은 꼴 연예인을 찾았다며 아들과 딸이 즐거워하고 나도 최수종과 전진을 닮았다 하여 웃음이 났다. 먼저 태어난 내가 어찌 그들을 닮았다는 것인지 아마 그들이 나를 닮았을 것이고 어쩌면 내가 더 나을 수도 있다. 얼짱 포즈를 잘 취하는 나의 모습을 흉내내는 딸 때문에 더 웃겼고 그러는 사이 동네 호프집에서 신사임당 모임을 한 아내가 들어왔다.
12일
7시가 넘어 학교에 갈 시간인데도 아들이 잠을 자는지 소리가 없다. 문을 두드려 가까스로 깨웠고 등교시간이 늦었다는 아들은 교복을 손에 든 채 식사까지 거르고 허둥지둥 현관을 나선다. 함께 내려가 학교까지 동행을 했고 돌아와서는 비가 많이 내리는 이유로 딸을 태우고 동명여중에 또 다녀왔다. 새벽부터 신경을 쓰며 정신없이 다녔더니 오늘은 뒷목까지 뻐근하여 체육관으로 갔다가 운동을 멈추고 지하에 있는 찜질방부터 들어갔다. 오전내내 누워서 시간을 보냈고 점심쯤 신설동에 가서 가스와 전기전압을 등을 점검하고 학원으로 이동하여 늦은 식사를 했다. 오후에 교재를 보다가 6시경 집으로 돌아오니 아내는 학부모 모임으로 홍대 근처로 나갔고 아들까지 외출을 한 상태다. 저녁을 먹은 뒤 논술교실로 올라 수업을 했고 집으로 돌아온 밤에는 내일 제주도 여행을 간다는 아들이 준비물을 챙기고 있다.
13일
5시에 일어났더니 아직도 비가 내리고 있다. 오늘 이대부고 2학년 제주도 2박3일 수학여행이라 새벽에 아들과 공항에 가려고 미리 내려가 차에서 기다렸다. 5시30분경 같은 아파트에 사는 아들의 친구까지 태우고 내부순환 도로를 달려 김포공항에 도착하니 날이 밝은 6시가 되었다. 차에서 내리는 아들에게 여행지에서 조심히 다니고 친구들에게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라 했더니 대답도 없이 멀어졌다. 7시경 집으로 돌아와 식사를 한 후 딸을 태워 어제와 같이 동명여중에 다녀왔더니 새벽부터 바쁜 하루의 시작이었다. 오전에 체육관으로 나가서 운동을 하고 12시경에는 신설동을 거쳐 학원에 들어가 가져온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었다. 오후에는 교재를 보다가 학원 건물주가 보내온 내용증명 서류에 답하는 글과 신설동 세입자 계약서를 정리했다. 잠을 많이 못 잔 탓으로 컨디션이 좋지 않아 5시경 집으로 들어갔다가 저녁에 수업이 있어 논술교실을 올랐다. 아내는 친구 모친상이 있다며 강의를 마친 후 청주에 간다는데 모레가 장모님 생신이니 어차피 뵙고 오라고 당부했다.
14일
아내는 청주에 아들은 제주도로 여행을 가서 나와 딸만 안방과 거실에서 각각 잠을 자고 일어났다. 새벽에 딸에게 학교갈 준비를 시키고 부대찌개를 끓여 함께 아침을 먹은 후 집을 나서 학교까지 태우고 갔다. 다시 집으로 왔다가 오전에 운동을 하고 12시경 신설동으로 갔더니 어제까지 지저분했던 1층이 완전히 철거가 되어 골조만 남았다. 앞으로 1주일 후면 깨끗한 모습으로 아담한 중국집이 생길 것인데 우선 일류호텔 주방에 있었다는 세입자의 자부심이 대단하다. 1시경 학원으로 들어가 집에서 가져온 도시락을 먹는 중에 오늘이 초복이라고 전주에 사는 친구와 대치동 원장한테 각각 전화가 왔다. 오후에 아들한테서도 전화가 왔는데 성산 일출봉에 올랐다가 내려오는 중이라며 날이 덥다는 소식을 전한다. 조심히 다니고 주변 친구들에게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라고 어제 공항에서 한 이야기를 다시 강조했는데 별 의미가 없다. 오후에 학원으로 들어가 컴퓨터에서 일찍 타계한 배호의 노래를 몇 곡 들었더니 역시 구성진 천상의 목소리의 주인공이다. 저녁에 발산역 근처에서 고향 후배와 저녁을 먹었고 양복 할인가게에 들어가서는 여름용 콤비를 9만원에 구입했다. 오면서 생각하니 날이 더워 잘 입지도 않는 여름 콤비를 일시적 충동으로 구매하다니 내 판단이 어리석고 부족해 보였다.
15일
어제 발산동에서 곱창을 먹어서 그런지 아니면 필요하지 않은 옷을 구매한 이유인지 아침에 속이 편하지 않았다. 그것보다 치아가 고르지 못하고 소화의 속도가 느린 나로서 곱창과 같은 질긴 음식을 국물도 없이 먹는다는 것은 언제나 부담이다. 딸을 태우고 동명여중에 다녀와서 아침에 식사를 하는데 식탁 위에 차려진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그대로 일어섰다. 가끔 간이 덜 된 경우가 있어 당황스러울 때가 많은데 오늘도 시내에 있는 식당을 찾아가 꽁치김치찌개를 사 먹었다. 10시경 식당을 나와 곧바로 신설동에 가서 금전처리를 했고 학원으로 가서는 건물주에게 보낼 내용증명을 새롭게 작성했다. 늦은 오후에 점심을 사 먹고 고려대 근처에 있는 인테리어 정사장을 찾아가 엊그제 1층 철거한 비용을 직접 전달해 주었다. 집으로 오면서 공사중인 신설동을 다시 찾았더니 바닥 틀을 잡고 모래와 벽돌로 주방과 내실의 기초를 잡아 식당의 모양을 만들었다. 제주도에 수학여행을 갔던 아들이 돌아오는 날이라 공항에서 601번을 타든지 차가 필요하면 전화를 하라고 오후에 문자를 보냈다. 하지만 아들은 벌써 도착하여 친구들과 신촌에서 놀고 있는 중이라며 저녁까지 먹고 오겠다는 문자를 보내왔다.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고 나니 어느덧 하루가 금방 지났고 땅거미가 밀려올 무렵에는 낮에 내리쬐던 태양의 기세도 자취를 감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