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신의 심리적 CPR-공감
‘당신이 옳다’ – 정혜신의 적정심리학
김제복 교장(절친)이 슬쩍 내민 심리 도서. 밤새 읽고 있다.
정신과 의사 정혜신 작가는 현장 심리상담사로 이름이 높다. 그가 전하는 공감의 출발점은 한
존재가 또 다른 한 존재를 만나는 일이다.
작가가 지난 수십 년간 정신과 의사이자 심리상담사로서 만나 본 1만 2천여 명의 사람들을 보면서 지금 우리 사회엔 전문가에 의지하지 않고도 마음의 상처를 스스로 치료할 수 있는
치유법이 시급하며 이를 위해 누구라도 심리적 CPR(심폐소생술)의
행동지침을 배우는 데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소망으로 ‘당신이 옳다(정혜신의 적정심리)’를 출간했다고 한다.
그의 심리상담의 요체는 공감이다.
“마음이 어떠세요?”
라며 던지는 따뜻한 물음이 존재에 다가가는 첫 번째 과정이며 모두에게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다는 점을 헤아려야 한다고 말한다.
어느 중2 학생의 CPR
학교 상담 교사로부터 중2 아들의 우울증이 심각하다는 통보를 받은 엄마.
엄마는 청소년 정신과 의사를 찾았다. 첫 진료에서 심리 검사를 받았고 그 결과는 우울증이었고
부모의 오랜 갈등이 아이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진단이었다. 약물치료가 필요하다고 해서 약을 처방받고 상담 날짜도 예약했다.
집에 돌아오는데 아이가 더 이상 병원에 가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약도 먹기 싫다고 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한 것은 그사이 아들의 반응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는 거다. 예전에 없던
기분 좋은 행동이 보였다. 엄마 옆에 바짝 붙어 앉기도 하고 밥을 차려주면 군소리 없이 먹었다. 표정도 부드러워졌다.
치료를 거부해서 걱정했는데 오히려 아이가 이전과 눈에 띄게 달라진 것 같아 병원엔 가지 않기로 했다.
시간이 조금 지난 후 아이의 느낌을 들었다.
엄마의 손을 잡고 병원에 오간 시간, 병원 근처에서 먹었던 돈가스가 너무 맛있었다고.
의사의 이야기를 들으며 엄마의 눈에 고인 눈물을 그 아이가 봤던 모양이다.
‘아, 우리 엄마가 나 때문에 힘들어 하시는구나.’
자기 존재가 엄마에게 아무 것도 아닌 존재가 아니었다는 확인이 뿌리 같은 안정감을 준 것이다. 아이는
자기 존재감을 확인하고 편안해졌다.
엄마는 속으로 물었다. 이 아이는 심리 검사, 약물치료, 정신과 의사가 없어도 치유가 될 수 있다는 것인가.
그렇다.
아이의 고통을 안 순간 전문가를 찾는 것보다 엄마는 아이에게 묻는 것이다. 아이의 존재에
눈을 맞추고 주목하면 된다.
“엄마 아빠가 싸울 때 네 마음은 어땠던 거니? 도대체 얼마나 힘들었니?”
이렇게 물어야 한다. 아이의 우을증(자살 충동)은 고도의 의학적 질환이 아니다. 희귀병도 아니다. 일상의 울타리에서 언제든 생기는 일이다.
아이는 자기 존재의 상태를 주목해 주고 알아주는 사람을 찾지 못한 채 기진맥진한 상태로 발견된 것이다.
비전문적이고 별것도 아닌 엄마의 반응이 아이의 마음을 결정적으로 움직인 사례이다. 흔들리던
엄마의 눈동자, 돈가스집에서 엄마와 마주하고 밥을 먹던 시간은, 가는
숨을 몰아쉬던 아이에게 호흡을 편안하게 해준 CTR 사례이다.
공감의 현장 사례
하루는 아이 담임 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우리 아이가 다른 나이를 때렸다고 했습니다. 전에 없던 일이라 상황이 궁금하기도 하고 좀 엄하게 이야기를 해야 할 상황이라 아이와 마주 앉았습니다.
“내가 때리기는 했다. 그렇지만 그 친구가 먼저 말로 나에게 시비를 걸었던
거다. 선생님이 야단쳐서 내가 잘못한 것을 안다.”며 “죄송해요. 엄마” 라고 했습니다.
저는 아이가 학교에서 어느 정도 정리가 끝나고 왔다고 생각해서, “그래 어찌 됐든 먼저
폭력을 쓴 건 잘못이야. 그걸 알았으니 됐어. 다음에는 그러지
말자.”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아이가 서럽게 울면서 말했습니다.
“엄마는 그러면 안 되지. 내가 왜 그랬는지 물어봐야지. 선생님도 혼내기만 해서 얼마나 속상했는데. 엄마는 나를 위로해 줘야지. 그 애가 먼저 나한테 시비를 걸어서
내가 얼마나 참다가 때렸는데 엄마도 나보고 잘못했다고 하면 안 되지.”
말이 끝나곤 엉엉 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느꼈습니다. 아이 마음이 어쨌는지. 얼마나
속상했는지. 왜 때릴 수밖에 없었는지. 하나도 묻지 않았더군요. 행동이 일어나기 전에 어떤 마음이었는지 살피지도 않았고, 이미 한번
야단을 맞고 온 아이에게 괜찮냐고 묻기 전에 왜 그랬냐고 따져 물었던 실수를 했다는 것을요.
겉으로 보기에 정리된 문제가 속마음까지 정리된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하는 사람도 깊은 공감을 받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예민한 사람들은 특히 더 그렇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엄마는 그러면 안 되지. 내가 왜 그랬는지 물어봐야지. 선생님도 혼내기만 해서 얼마나 속상했는데. 엄마는 나를 위로해 줘야지. 그 애가 먼저 나한테 시비를 걸어서 내가 얼마나 참다가 때렸는데 엄마도 나보고 잘못했다고 하면 안 되지.”
아이의 이 한마디는 공감이 가닿아야 할 지점이 어디인지를 정확하게 알려주는 현장이다. 아이의
말을 받아들이고 성찰하는 엄마는 공감의 의미를 깨달았을 것이다.
사회가 발전하고 복잡해지면서 그 속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사고들이 일어난다. 그 과정에서
현대인들이 겪는 상처와 치유를, 심리적이고 의학적인 접근이 아닌 '공감'이라는 마음으로 소통하고 상처를 치유하는 사례가 많았다.
그는 최근 15년을 1970~80년대의 고문 생존자와
자살이 이어지던 해고 노동자 집단, 세월호 유가족 등 여러 형태의 국가 폭력 피해자들과 함께 있었다. 현장에서 그들의 신음소리를 생생하게 들었고, 회복이 불가능할 것
같은 그들의 신음소리를 생생하게 들었고 회복이 불가능할 것 같은 그들의 내상을 목격했다. 트라우마 현장에선
심리 치유 관련 전문가 자격증이 무용지물이라는 걸 숱하게 목격했다.
실제로 재난 현장에는 심리전문가뿐만 아니라 시민운동가와 자원 활동가 등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그러나
초기 몇 개월이 지나면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은 현장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다. 현장에서 상황이 정리되거나
피해자들의 상태가 정신적으로 좋아져서 그런 것도 아니다. 그 반대로 혼돈의 사태가 더 악화 되고 심리적인
상처가 더 드러나는데도 매번 반복되는 일이었다.
대신에
"집에만
앉아 있을 수 없어서 무작정 현장에 왔다“는 자원봉사자들은 시간이 갈수록 늘어났다. 이들은 전문적인 지식이 없어서
무작정 현장에 왔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며 울면서 무슨 일이든
했다. 피자해자들을 위해 음식을 만들고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하고, 한없이
무기력하게 느껴지는 자신의 슬픔과 분노, 무력감을 호소하면서도 유가족들 손을 잡고 함께 울었다.
그런데 실질적으로 전문가들보다는 이러한 자원봉사자들의 활동이 피해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이것은 전문가들의 매너리즘에 빠진 치료의 목적보다도 자원봉사자들의 조그만 행동이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라는 결정적인 위로가 된 것이다. 전문가들의 지식과 이론보다는 현장 경험이 있는 활동가들의 진정한 활동과 위로가, 피해자들에게는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은 수령에서 조그만 힘이 되어 주었던 것이다.
어렵고 힘든 자격증을 갖고 있는 사람이 치유자가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 치유자이며, 우리 모두는 타인의 상처 입은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음을 자각해야 한다.
남편인 심리기획자 이명수 작가는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의 진실된 마음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교감(공감)의 힘이 각박한 우리 현실에서 서로를 지탱해줄 수 있는 받침대가 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사람들은 누구나 각자의
기준과 틀로 타인에게 충․조․평․판(충고, 조언, 평가, 판단)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지만 이런 일로 인해 오히려 타인에게 도움과 위로는커녕 더 많은 상처와 좌절을 안겨준다면서 충조평판을 하지 않는 것이 공감의 첩경이라고
말했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전체적인 생활 수준이 향상된 만큼 항상 밝은 곳이 있으면 어두운 곳이 있기 마련이다.
우리 사회는 지난 시간, 작게는 가족 안에서, 직장에서
그리고 대한민국 안에서의 크고 작은 사건 사고는 전 국민에게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것은 내가 직접
겪지 않은 일일지라도 언제든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었다.
정혜신 작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제 나는
삶의 고통을 질병으로 간주하는 의학적 관점은 잘못됐다고 말할 수 있다. 고통스러운 사람의 속마음을 보듬고
건강한 성찰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은 질병 전문가인 정신과 의사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는 것이 진정한 전문가적 시선과 태도다. 그런 토대 위에서 우리 모두가 자기 스스로를 돕고 가족이나
이웃도 직접 도울 수 있는 공감능력-적정한 심리학이 가능하다고 나는 믿는다.-
(2021.1.15.)
첫댓글 한 권의 책을 이렇게 간단하고 명쾌하게 읽혀주는 친구가 어디 흔하겠는가!
이런 책을 한 번씩, 아니면 이 공감을 읽어보셨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