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퉁불퉁, 삐죽삐죽, 그저 바위들이 멋대로 뒤엉키어 불쑥 솟아 오른 곳,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은 높다란 절벽 한가운데입니다. 서 있다고는 하지만 얼마나 위태한 모습인지요. 뒤틀리고 구부러진, 그 높다란 벼랑에 자라는 거라곤 키 작고 볼품없는 소나무, 나 혼자뿐이었습니다. 어깨동무하듯 알맞은 키로 옹기종기 모여 살아가는 앞뒷산 하많은 나무를 두고 난 그렇게 외톨이로 서 있었습니다. 푹푹한 땅에 뿌리를 내리고 쑥쑥 키 자랑 하듯 크는 숲속 나무들을 내려다 볼 때면 마음이 아팠습니다. 자꾸만 아래로 쳐지는 몸뚱일 일으켜 세우며, 바위 그 조그만 틈새로 뿌리를 뻗어야 하는 내 처지가 슬펐던 것입니다. 물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적은 물을 마시고도 오래 견디는 법을 배워야 했습니다. 나이에 비해 내 키가 작은 것은 그 때문일 겁니다. 비바람 또한 어려웠습니다. 조그만 날 얕잡아 보았는지, 벼랑에 불쑥 혼자 뿌리박고 있는 내가 어울리지 않았다 싶었던지, 비바람은 거세게 휘몰아쳐 나를 때려대곤 했습니다. 나 혼자라면 벌써 뿌리가 뽑혔을 겁니다. 다행히도 그럴 때면 바위가 나를 꼭 붙잡아 주었습니다. 벼랑 위, 난 그렇게 버려진 듯 덩그마니 혼자 서서 내 쓸모없는 삶을 두고 누구를 원망해야 할지 몰라 나 자신을 원망하며 지냈습니다. 하지만, 물론 그건 지난 얘기일 뿐입니다.
2년 전 가을, 그러니까 사방 산이 단풍으로 곱게 물들었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한 젊은이가 벼랑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인적도 드물었고, 이따금 사람이 지난다 해도 고갤 아프게 들어 "햐, 높다!" 감탄하곤 했던 것이 고작이었는데, 그 젊은이는 무슨 맘을 먹었는지 아, 절벽을 타고 오르는 것이 아닙니까. 바위 조그만 틈새를 따라 젊은이는 얼마큼씩 고리를 박고 끈으로 연결하며 조금씩 조금씩 기어올랐습니다. 저러다 떨어지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에 난 숨을 죽이고 내려다보았습니다. 한참 시간이 지난 후, 마침내 젊은이는 내가 선 곳 바로 옆에까지 올라왔습니다. 그리곤 힐끔 땀을 훔치곤 나를 쳐다보았습니다. 갑자기 난 가슴이 뛰었습니다. 나중에 생각해낸 것이지만 그 때 내 가슴이 뛰었던 건 사람을 그렇게 가까이서 본 것이 처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내 가까이에도 사람이 찾아왔던 것입니다. 땀으로 뒤범벅이 된 그 젊은이의 모습을 난 잠깐이긴 했지만, 뚜렷이 보았습니다. 젊은이는 이내 위로 올랐습니다. 그렇게 얼마쯤 더 올라갔을 때, 그 때 갑자기 "앗!" 하는 외마디 비명 소리와 함께 젊은이가 미끄러져 내렸습니다. 발을 헛디딘 것입니다. 잠깐 사이였습니다. 난 순간적으로 눈을 감고 말았습니다. 우지끈!!! 허리가 부러지는 아픔에 눈을 떴을 때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놀랍게도 그 젊은이는 내게 매달려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한 손으로 나를 붙잡고 허공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난 있는 힘을 다했습니다. 까짓 볼품없는 내가 뽑히는 거야 별 거 아니라 해도, 내게 매달려 있는 젊은이를 위해선 그럴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부러지지 않으려고, 뽑히지 않으려고 난 정말 있는 힘을 다했습니다. 마침내 젊은이는 정신을 차렸고 조금 전 올라갈 때 늘어뜨려 놓은 끈을 붙잡을 수 있었습니다.
벼랑에 홀로 서서 나 자신을 원망했던 것이 지난 얘기일 뿐이라는 것은 바로 그 일 때문입니다. 난 그 날 젊은이가 날 보고 한 말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고맙다 나무야, 정말 고마워. 네가 없었다면 난 죽었을 거야. 네가 이곳에 없었다면." 외롭고 볼품없는 나도 아주 쓸모없지 만은 않다는 걸 난 그 때 배웠습니다.
그 날 이후 난 전에 몰랐던 기다림 하나를 마음속에 두었습니다. 언젠가 누군가 또 나를 필요로 할지도 모르니까요. 그러나 어쩜 그 때 그 일은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누군가를 위해 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일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다시는 그런 일이 내게 주어지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족합니다. 그 때 그 일 하나만으로도 내 삶은 헛되지 않을 테니까요. 험한 벼랑 위, 내가 여기 이렇게 홀로 있다 해도 이젠 외롭지도 슬프지도 않답니다.
단강에서 살 때 <얘기마을>이란 주보를 펴냈습니다. 지렁이 같은 글씨로 제가 원고를 쓰면 아내가 일일이 옮겨적어 복사를 한 주보였지요. 주변의 소소한 일상이 담기는 초라한 주보였습니다. 그래도 700여 '얘기마을' 가족들이 그 얘기들을 사랑하여 '얘기마을'이란 이름이 아주 부끄럽지 않기는 했었지요. '내가 선 이곳은'이라는 동화는 '얘기마을' 100호를 맞아서 썼던 동화였습니다. 오랜만에 읽으니 새롭네요. 몇 몇 분들이 들려준 고마운 메아리 때문인가 봅니다. 저도 내가 선 이곳을 다시 둘러보아야겠습니다.
첫댓글 나와 그대가 지금 선자리, 성소가 다름아닌 내가 선 곳 이곳, 그 부름의 장소임을 확인 시켜준 이 동화를 넘 사랑합니다
^^ 성지는 어디에도 없다 성지는 어디나 있다.....^^* 아숨채이오~~~!
고맙게 잘 읽었어요, 지구촌 독서, 작문 시간 첫 시간에 이용할 생각입니다. 늘 좋은 자료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아...... 그렇게 내가 서 있는 자리가 소중함을 가슴 깊이 뼈저리게 느끼고 갑니다. 기쁨지기님 마음을 느끼고 주님을 마음을 가진채로 돌아갑니다. 감사드립니다.
와 정말 감동이에요.. 전데 집사님 보내주신 글이었긴 하지만 그래도 감동스럽게 읽었던 기억이 나요.. 그래요! 저도 이글 보면서 느꼈어요.. 내가 서 있어야 할 자리는 바로 하나님 앞이라구요..^^;; 좋은 동화 감사해요 집사님!^*^
가을비 추적 추적 내리는 주일 아침, 전에는 감히 가져볼 엄두도 못 내던 마음의 여유로 오래전 읽었던 글을 또 다시 잔잔한 감동으로 읽고 갑니다. 언제 들어도 귀한 교훈으로 남는 동화, 그래서 늘 곁에 두고 삽니다.
단강에서 살 때 <얘기마을>이란 주보를 펴냈습니다. 지렁이 같은 글씨로 제가 원고를 쓰면 아내가 일일이 옮겨적어 복사를 한 주보였지요. 주변의 소소한 일상이 담기는 초라한 주보였습니다. 그래도 700여 '얘기마을' 가족들이 그 얘기들을 사랑하여 '얘기마을'이란 이름이 아주 부끄럽지 않기는 했었지요. '내가 선 이곳은'이라는 동화는 '얘기마을' 100호를 맞아서 썼던 동화였습니다. 오랜만에 읽으니 새롭네요. 몇 몇 분들이 들려준 고마운 메아리 때문인가 봅니다. 저도 내가 선 이곳을 다시 둘러보아야겠습니다.
하나님은 인생을 가지고 장난치시는 분이 아니니..실수가 없으신 분.
'내가 선 이 곳이 성소'라는 말의 울림이 모든 이들의 마음에 가 닿았으면...
내가선 이곳 성소에서 주님을 예배하는 삶...
내가 선 이곳....다시 둘러보며 더 사랑하며 더 아름답게 가꾸어가겠습니다. ♧
집사님말씀처럼 내가선 이곳 아름답게 가꾸어 주님께 드려보자구요. 서로 격려해 가면서요
아무 의미가 느껴지지 않는 모든 일들이 의미있는 일들이 되기를 기도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