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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신
정설헌 시집
사설辭說
서시序詩
소곡小曲
당신
어떤 여자의 고백
위험한 거리
정오
달밤
뽀에지
주말
생활
1982년 6월
착각
실망
해와 달의 사이에서
실락원失樂園
조사弔辭 / 수인이 김선기 고중영 박광호 최병두 주정연
사설辭設
조금만 더 오르면 바다가 보인다고 했다. 그래 고개도 넘고
산도 넘었다. 가다가 기진하면 낯선 동네 어귀에 앉아 하늘도
쳐다보았다.
조금만 더 가면 짙푸른 바다가 보인다고 했다. 그래 고개도
넘고 산도 넘었다. 가다가는 소나기도 만나고 번개와 천둥도
만났다.
조금만 더 오르면 바다가 보인다고 했다. 가다가는 노루도
늑대도 만나고 휘파람 부는 곰에게 내 사정얘기도 했다.
조금만 더 오르면 바다가 보인다기에 떡갈나무 숲에 앉아
쉬어도보고, 초저녁 별을 세는 고슴도치도 만났다.
조금만 더 오르면 바다가 보인다기에 고개도 넘고 산도
넘었다. 바위틈을 지나다가 두더지도 만나고 한밤중엔 꼬리를
흔드는 도마뱀도 만났다.
조금만 더 가면 바다가 보인다기에 고개도 넘고 산도 넘었다.
가다가는 넉살좋게 웃고 있는 여우와 눈도 맞췄다. 넉살좋게
웃고 있는 여우와.
조금만 더 올라가면 바다는 보인다는데.
1982
서시序詩
새벽 꽃가지를 기어 오르는 안개를 헤치고, 해가 뜨면 눈을
뜨는 나의 기다림은, 노을이 비껴 타는 바람의 층계에
꽃잎파리가 쌓아가는 머언 자주빛 연륜입니다.
1966
소곡小曲
1
분이가 손을 흔들다
돌아선 모랫길로
사각사각
쏟아져 내리는 별빛은
해돋이를 굽어보는
내 조그만
환상의 바다 위에
푸른 기억의 그물을 던지다.
2
내 그림자와 마조 앉아 있다가
느닷없이 울고 싶어지기에
새벽안개속 어지럽게 흩어진
꿈 부스러길 애써 긁어 모으다.
1966
당 신
물빛 화병에 갈꽃을 꽂아놓고 당신은 갑니다. 부산히 갈꽃에
비린내가 묻어나는 새벽 안개 자욱한 기억의 그늘밑에서 오련히
돋아나는 내가 놓쳐버린 손의 이야기를 지레 당신이 하였습니다.
시작노트 - 그 어지러운 방황을 걷우고 흔들리며 타오르는 환상을 사리어
떨리는 가슴을 묻고 이 셀레이는 고독을 포개어 투명한 기다림의 둑을
쌓아야겠습니다.
1967
어떤 여자의 고백
1
- 내가 너무 착해진 것 같애요, 아무래도 나는 알 수가 없어요,
- 나를 이해하기 전에 당신은 먼저 화를 내지요,
당신이 화를 내지 않게 하기 위하여 나는 무엇이든 다
되어야만 하는가요?
- 작은 나에게 아직은 남자를 보여주지 말아요, 나는 당신을
이겨낼 도리가 없는걸요,
2
- 나를 살려줘요, 나를 좀 살려주세요,
- 약한 심장을 떼어버리고 싶답니다,
- 내게 아무말을 말아요, <지금>우리에겐 아무말도 필요없어요,
- 당신을 위해 나를 모두 불사를 수 있도록 만들고 싶어요,
그렇게 당신은 나를 만들어줘요,
- 순간이라도 <저쪽>에 눈을 주면 싫어요, 나를 꼭 붙잡아 줘요,
- 숫제 당신은 나를 밧줄로 묶어주세요,
- 내 꿈을 버리지 않게 해줘요, 꿈도 없으면 차라리 난 죽어버려요,
- 내가 당신을 <죽음>에까지 따를 수 있다 말해도 당신은 나에게
절대로 <사랑한다>는 말만은 하지 말아줘요,
- 헤어지지 말자는 약속은 싫어요.
3
- 확실히 우린 지난 밤 정상은 아니었지요,
순간 순간 나는 얼마나 무서웠는지 몰라요,
- 많이 아파요, 작은 손의 상처가,
- 나는 당신의 연인이고 싶잖답니다,
- 나는 당신때문에 이유없는 방황을 해왔지요,
- 나처럼 불쌍한 아이가 또 있을라구요.
1967
위험한 거리
그의 곁으로 가까이 가지 마십시오
아무 말도 말고
그렇게 당신은 지나가 주십시오
위험한 거리에 불순한 몸짓으로
이미 그는 버려졌는데
당신은 뜨거운 눈짓을 보내지 마십시오
그렇게 소중히 쳐다보시면
바람속의
지난 겨울 새벽처럼
그는 또한 무슨 참혹한 욕망으로
무한히 당신을 지치게할까 두렵습니다
그의 곁으로
그리도 가까이 가지 마십시오
아무 말도
아무 말도 말고
더는 손을 흔들어 보이지도 말고
그대로 조용히
당신은 지나가 주십시오.
1969
정 오
1
흔들리는 선실의
싫증난 정사로
아직은
화장대 앞에 납시지 않는
마나님의
딸과
나란히 누워
그의 시체는
찬란한 햇살을 받고 있었다.
2
한사코 그녀의 태 안으로
벌거벗고
정오는 흘러들어
자즈러지며
연신 정액을 빨아들였다.
1969
달 밤
달밤이
기진하여
꽃잎에 눕는다
벌거숭이 꿈 속의
몸살나는
입맞춤
푸른
꽃잎에
눈물이 진다
설레는
달밤이
눈물에 탄다
기진하여
달밤이
꽃잎에 눕는다.
1978
뽀에지
나는
찻집 히아신스에서
울고 있는
소녀를
만났다
모나리자의
초상 밑에서
울고 있는
소녀를
만났다
나는
밤마다
울고 있는
소녀와
만났다
밤마다
울고 있는
소녀와
잤다
나는
밤마다
꿈 속에서
헤어졌다
울고 있는
소녀와
꿈 속에서
헤어졌다.
1978
주 말
1
어젯밤 꿈 속에서 본 그 유채밭이다.
고산식물처럼 순결한 아침
활짝 웃으며 내 앞에 다가선 이 여인은 누구인가.
짙푸른 수면 위에 가라앉는 지난 여름.
다시 그 유채밭이다.
고산식물처럼 순결한 아침
손을 흔들며 떠나는 이 여인은 누구인가
지난 여름이 잠시 머물고 갔다.
2
오늘처럼 바람 부는 날엔
헨리6세처럼 바다를 건너
천당이건 지옥이건 떠나고 싶네
1982
생 활
이 맑은 대낮에 후줄근히 가랑비를 맞으며 구만리 장천에
띄워 보낸 고독의 풍선이 터지는 소리를 들으며, 한 번 꼭,
한 번 허허 웃어보며 허기진 가슴을 쥐어 뜯으며, 어처구니
없게스리 담배에 불을 붙이는, 아까운 것도, 정말 아까운
것도 하나 없는 이 모진 세상에 산기産氣가 도는 아랫배를
슬슬 어루만지며 눈물 한 번 찔끔 짜 보이며 웃어 보이던
<분이>야.
1982
1982년 6월
아직도 해는 중천에 걸렸는데, 삼팔따라지같은 목숨 질질
끌며 수챗구멍이거나 공중변소같은 데를 기웃거리며 헛구
역질을 하며, 하루에도 수천번씩 되먹지 못한 생각에 하루
에도 수천번씩 죽어도 보는, 바람 센 들녘에 버려진 염소처
럼 절룩거리며 가다가 오직 한 번만이라도 꼬옥 잡아보고
싶은 손이 있어, 섣달 그믐날 고추밭 모퉁이에서 연 날리던
추억을 보듬고 몸살을 한다.
1982
착 각
나의
몸살로
시든
새벽
처용의
웃음같이
흐드러지게
피어난
국화
다시
술잔 위에
꽃핀
나의
절망
1982
실 망
오늘밤엔 전화를 않기로 했다.
네가 울고 있는 까닭을
나는 모르기 때문에.
1982
해와 달의 사이에서
당신은
언제나
바다 밑에
살고 있는
나무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언제나
우리의 정원을
덮는
음악의 하늘입니다.
당신은
언제나
모래에 덮인
언덕에
살고 있는
나무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언제나
우리의 아침을
건너가는
푸른 하늘입니다.
1987
실락원失樂園
1
나의 자서전에는 아직도 쉼표 하나 없이 텅비어 있다.
어디에 마침표를 찍든 그것도 몹시 황송한 일이다.
2
막이 내리고 불이 꺼진 객석에
나는 혼자 우두커니 앉아있다.
3
자정이 지나 강의가 끝난 뒤 나보다 행복한 친구를 만나
소주 두 서너 잔 기울이고 자네가 관세음보살이라고 위로하며
악수를 하고 헤어진 뒤 육차선 한복판에 우두커니 서서
질주하는 휘황한 불빛 속으로 눈 꼬옥 감고 뛰어들어 이대로
가면 나도 조금은 행복해 질 수 있을까 하고 어리석은 생각을
해 본다.
4
성이 난 한생원1)이 술집으로 들어간다.
성이 난 초봉이2)도 술집으로 들어간다.
성이 난 초봉이 애비 정주사도 술집으로 들어간다.
성이 난 미럭쇠3)도 술집으로 들어간다.
성이 난 칠복이4)도 술집으로 들어간다.
성이 난 칠복이 애미도 술집으로 들어간다.
성이 난 태석이5)도 술집으로 들어간다.
성이 난 태석이 애비 문영환씨도 술집으로 들어간다.
성이 난 봉필이6)도 술집으로 들어간다.
성이 난 덕만이7)도 술집으로 들어간다.
성이 난 뭉태8) 도 술집으로 들어간다.
성이 난 덕순이9)도 술집으로 들어간다
성이 난 응칠이10)도 술집으로 들어간다.
성이 난 응칠이 아우 응오도 술집으로 들어간다.
성이 난 춘호11)도 술집으로 들어간다.
성이 난 춘호 여편네도 술집으로 들어간다.
성이 난 이주사12)도 술집으로 들어간다.
성이 난 영식이13)도 술집으로 들어간다.
성이 난 수재14)도 술집으로 들어간다.
5
기가 막혀 한생원이 히히 웃는다.
기가 막혀 초봉이도 히히 웃는다.
기가 막혀 초봉이 애비 정주사도 히히 웃는다.
기가 막혀 미럭쇠도 히히 웃는다.
기가 막혀 칠복이도 히히 웃는다.
기가 막혀 칠복이 애미도 히히 웃는다.
기가 막혀 태석이도 히히 웃는다.
기가 막혀 태석이 애비 문영환씨도 히히 웃는다.
기가 막혀 봉칠이도 히히 웃는다.
기가 막혀 덕만이도 히히 웃는다.
기가 막혀 뭉태도 히히 웃는다.
기가 막혀 덕순이도 히히 웃는다.
기가 막혀 응칠이도 히히 웃는다.
기가 막혀 응칠이 아우 응오도 히히 웃는다.
기가 막혀 춘호도 히히 웃는다.
기가 막혀 춘호 여편네도 히히 웃는다.
기가 막혀 이주사도 히히 웃는다.
기가 막혀 영식이도 히히 웃는다.
기가 막혀 수재도 히히 웃는다.
(주) 1) 채만식의 '논 이야기'의 작중 인물
2) 채만식의 '탁류'의 작중 인물
3) 채만식의 '쑥국새'의 작중 인물
4) 채만식의 '불효 자식'의 작중 인물
5) 채만식의 '도야지'의 작중 인물
6) 김유정의 '봄 봄'의 작중 인물
7) 김유정의 '총각과 맹꽁이'의 작중 인물
8) 김유정의 '총각과 맹꽁이'의 작중 인물
9) 김유정의 '땡볕'의 작중 인물
10) 김유정의 '만무방'의 작중 인물
11) 김유정의 '소나기'의 작중 인물
12) 김유정의 '소나기'의 작중 인물
13) 김유정의 '금 따는 콩밭'의 작중 인물
14) 김유정의 '금 따는 콩밭'의 작중 인물
6
보리菩提 라는 나무도 본디 없고 명경明鏡 이란 대도 본디 없다.
본래 무일물無一物 인데 어느 곳에 먼지가 쌓이겠는가. - 혜능
보신탕을 끓이자. 우리 모두 보신탕을 끓이자. 대 - 한민국
보다 큰 가마솥을 걸어 놓고 지글지글 보신탕을 끓이자.
조회장네 스피츠를 끌고 오자.
지박사네 테리어도 끌고 오자.
로총장네 요크셔도 끌고 오자.
구의원네 말티즈도 끌고 오자.
나장관네 파니엘도 끌고 오자.
허군수네 치와와도 끌고 오자.
대-한민국보다 큰 가마솥의 개새끼들이 누깔이 튀어나오도록
셋바닥을 질게 뽑고 울대가 찢어져라 악을 씁니다. 헐떡 거리며
뻐드러집니다요.
조회장네 여편네가 소복단장하고 땅을 치며 통곡한다.
지박사네 여편네도 소복단장하고 땅을 치며 통곡한다.
로총장네 여편네도 소복단장하고 땅을 치며 통곡한다.
구의원네 여편네도 소복단장하고 땅을 치며 통곡한다.
나장관네 여편네도 소복단장하고 땅을 치며 통곡한다.
허군수네 여편네도 소복단장하고 땅을 치며 통곡한다.
조회장네 스피츠의 무덤 가에 할미꽃이 피었습니다.
지박사네 테리어의 무덤 가에도 할미꽃이 피었습니다.
로총장네 요크셔의 무덤 가에도 할미꽃이 피었습니다.
구의원네 말티즈의 무덤 가에도 할미꽃이 피었습니다.
나장관네 파니엘의 무덤 가에도 할미꽃이 피었습니다.
허군수네 치와와의 무덤 가에도 할미꽃이 피었습니다.
2002
* 실락원은 새로운 시의 낙원을 바라며 시도하는 역설적 제목이라고 시인은
이야기 했고 모든 사람이 알고있는 정형과 내용의 편견에 대한 도전이요
논문 처럼 쓰여진 시, 산문처럼 또는 설명문 같은 시 등의 모든 시도가 가능한
시의 낙원을 바란다는 표현을 했다.
위의 시들은 그가 다시 광초에 손을 대면서 다시 시를 쓰려는 준비를 하던,
그리고 두줄시가 수면위에 떠오르면서 함께 문학을 했던 분들이 너무 두줄시로만
흘러가는 것을 아쉬워 하던 2002년 9월 경에 쓰여진 것이다 <맹기복>
정설헌 시인의 자취
본명 정장선鄭庄善 (1944 - 2005) 전남 신안군 하의면 웅곡리에서
출생하여 목포중, 고시절부터 문예반 활동을 하면서 여러 백일장에서
수상하는 등 조숙한 재능을 발휘했으며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수학.
서정주, 신석정 선생의 애제자로 1966년 동향의 문우들과 흑조시인회를
창립하여 1967년 부터1980년 까지 주간으로 동인활동에 헌신하였다.
한때는 국전 서예 입선작가인 선친 초암 정유신 鄭裕新 선생과
서예학원을 경영하였으며 목포문인협회 회원 목포난석회 총무 등을 거쳐,
목포영흥중학교와 문태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다가 광주로 이주하여
사설학원 국어강사로 살면서도 서예에 정진하여 지필묵을 놓지 않았다.
조사弔詞
수인이의 편지
선생님, 수인이 왔다 갑니다.
날씨가 맵차요.
일주일 내내 선생님이 좋아하시는 비가, 비만 오다가
그래도 오늘은 선생님 한테 올 수 있어서 좋아요.
갑자기 흐려지고 눈발도 날려서 생각만큼 오래 있지는 못하지만.....
고작 일주일 지났을 뿐인데 그 사이 몇년은 지나간 것만 같아요.
살아 있는 사람은 그렇답니다.
아득하게 달아날 수도 있고
언 손 주머니에 넣어 녹일 줄도 안답니다.
저도 하늘이 무너진 것만 같아 어찌할 줄도 모르고..... 그랬지만
벌써 꽤 씩씩해졌답니다.
잊혀져가는 게 가장 두렵다고, 아프기만 해도 좋으니 선생님만 기억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사람이란 게 이렇게 간사한 것 같아요.
선생님 마지막 가시던 날, 마음에 가슴 속에 선생님 묻으면서
제가 부탁드린 거 있었죠.
'다음 번에 올 땐 꼭 대답해주셔야 해요' 했던 거
선생님께 오니까 역시 선생님이 오냐 - 답해주셨어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쓸쓸해 보이시던 모습이, 왜 그랬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아요.
그나 저나 큰 일이네요.
선생님께만 오면 선생님 앞에서만은 이렇게 편해져서.....
저는 선생님께 아무 것도 아니어서 맘껏 울지도 못해서.....
옆의 아이가'할아버지 저 왔어요' 하는데 목소리가 맑습니다.
다시 만나게요. 선생님 수인이 왔어요.
- 눈이 너무 예쁘게 와요.
2005년 2월 20일 일요일
선생님 태우시던 담배가 초록색인지 파란색인지도 기억 못하는 수인 올림
* 정설헌의 무덤에 놓여있던 편지, 설헌의 부인이 태워줄까 한다길래 달라고 했다.
얼굴도 모르는 수인이의 편지는 계속 이어질 수도 있으리라.
시인 정설헌을 아시나요 / 김선기
미당 서정주 시인(1915~2000)이 타계하던 날 밤, 그 날이 크리스마스 이브여서 기억이 더 생생하다. 데드라인 무렵 낯익은 목소리의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대뜸 ‘‘말땅’이 저 하늘의 별이 되었다네, 별이….”기분도 그렇잖은데 술 한잔 하자는거였다.
과거의 행적이야 어떻든 현대시단에 한 획을 그었던 미당이 떠난 것은 문학의 끈을 놓지못하고 있는 나로선 충격이었다. 사실, 연합통신 리얼타임뉴스를 통해 미당의 죽음을 알고 있던 터라, 그의 제의를 선뜻 받아들였다. 우리는 궁동 예술의 거리 선술집에서 만나 술병 깨나 쓰러뜨렸다. 그날 밤 내내 미당을 떠나보낸 슬픔에 못이겨 주먹울음을 펑펑 울어대던 이가 바로 시인 정설헌이다.
을유년 정월 초사흗날, 그의 죽마고우인 주정연 시인에게서 비보를 받았다. 정설헌 시인이 이 세상에 없다는…. 시인 정설헌(본명 정장선·1944~2005)은 예순 두 해를 외롭게 살다갔다. 아니, 지상에서의 마지막 남은 시간까지 그 외로움을 만끽했는지도 모른다. 그는 신안 하의도에서 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목포중·고를 거쳐 서라벌예대 문창과를 졸업한 문재文才였다. 당시 지도교수였던 미당은 그를 애제자로 삼고 ‘청아淸雅'라는 호號를 내렸다. ‘속 되지 말고 티 없이 맑은 마음으로 시를 쓰며 살아라’란 스승의 깊은 맘이 담겼으리라.
정설헌은 스승인 ‘미당未堂’을 ‘말땅末堂’이라고 불렀다. 그의 ‘말땅론未堂論’은 스승에 대한 존경심과 애증이 한껏 묻어나 사제지간의 애틋함을 엿볼 수 있었다.
정설헌은 문단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그가 문단에 얼굴을 내밀지 않은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작가는 작품으로 말해야 된다는 것이고, 둘째는 사단화 된 문단 풍토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었다. 그는 간혹 문학행사에 나가 ‘패거리 문학’의 폐단에 목청을 높였다. 독설을 쏟아내는 그를 문단에서 좋아할리 없다. 그래서 정설헌은 늘 혼자였고, 그 고독감을 술로써 풀었다. 하지만 그에게도 맘이 맞는 문우들이 없었던 게 아니다. 60~70년대 잘 나가던 주정연·박광호·정영일·김창완 시인이 그들이다. 정설헌은 그들과 1966년에 ‘흑조黑潮’동인회를 창립했다. 1920년대 시단을 이끌었던 이상화·박종화·홍사용 중심의‘백조白潮’시대는 가고, ‘흑조’가 이어받아 한국시단을 지고가야 한다는 게 정설헌의 욕심이었다. 흑조는 그해 12월 청마 유치환의 발문을 얹어 첫 동인지를 창간해 지난 2000년까지 34년간 28권의 동인집 발간, 한국 문학동인사文學同人史를 다시 쓰게 했다.
그후 정설헌은 ‘흑조’마저 환멸을 느끼고, 1982년 7월 목포에서 열린 ‘흑조의 밤’에서 ‘사설’ 발표를 끝으로 절필했다. 그러나 그는 붓은 놓았으되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4반세기를 온 몸이 붓이 되어 살았다. 이제, 유작이 되어버린 ‘사설’만이 ‘정설헌의 40년 시혼詩魂을 느낄 수 있어 애틋하다. 그의 절필시가 된 ‘사설’의 일부다.
‘…<중략> 조금만 더 가면 짙푸른 바다가 보인다고 했다. 그래 고개도
넘고 산도 넘었다. 가다가는 소나기도 만나고 번개와 천둥도 만났다. … <중략> … 조금만 더 가면 바다가 보인다기에 고개도 넘고 산도 넘었다. 가다가는 넉살좋게 웃고 있는 여우와 눈도 맞췄다. 넉살좋게 웃고 있는 여우와. 조금만 더 올라가면 바다는 보인다는데.’
문단의 병폐와 사이비 문인들을 향해 살기어린 독설을 뿜어댔던 시인 정설헌. 그가 그토록 보고싶어했던 자신의 바다는 무엇이었을까.
아무데도 못 가네 / 고중영
정월 초사흘 어느 때였을지.
나를 두고 가려는 문우 곁에서
하늘 기울어 쏟아진 시간을 다둑거리는데
취하면 날 끌어안고 볼을 부비던
정감 넘치든 그 문우
빙그레 웃으며 행장을 다 수습했다.
한국 시詩를 말아 먹은 놈은
바람보다 먼저 누워
헤헤헤
경박스레 웃은 그놈이라며
시사랑에 겨워 성내기 서슴찮으면서도
흉허물 다 끌어모아 속내 깊이 감추기,
그도 이제 지쳐 그만 가시려나?
여보시게.
잠깐 내 말 좀 들어봐.
풍진風塵도 뜻스럽다는 저승 가거든
눈, 마루 남쪽 끄트머리 딛고 서서
목 길게 빼고
바른 손 펴 눈썹 위에 얹은 채
이승 쪽 바랏다가 바랏다가
내 훌훌 털고 찾아갈 기미 보이거든
상제님 마시는 옥황주 한 동이
시 한 편과 바꿔 두시게나.
알태기 닳아빠진 국화문 청자 술잔
시울 닦는둥 마는둥 화급한 저 행주치마
가래바지 외로 짼 어을우동도 청하고
심야삼경 자규울음 허리 끊어
서리서리 간수했더라는 황진이도 청해다가
일배 일배 부일배에 곤죽 되어
쇠똥밭에 꼬구라지듯 꼬구라지듯
시 한 수 목터지게 읊음시러
까짓거,
저승 한 번 우렁차게 말아 먹어 보세나.
그 약조하기 전엔
자네 아무데도 못가네. 암.
정설헌 시인의 작품세계를 말한다 / 고중영
남도의 재사 정설헌이 고인이 된지 1년이 가까워지는 이무렵 그동안 (목포 나그네) 라는 이름으로 발행하던 출향시인 문집을 (나그네) 라는 이름으로 바꾸게 됐다. 그 (나그네)를 끌고 갈 마부가 주정연 시인이다. 우리 회원들은 나그네라는 제호로 새로 단장한 마차를 끌고 가는 주시인의 손바닥에 혹 물집이 잡히면 재빨리 붕대를 감아 드려야한다. 이번 문우 정설헌을 회고하는 일도 역시 주정연 시인의 심간에 고인 애석함을 쓰다듬는 일이며 또한 모든 회원들이 함께 아쉬워해야할 일인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그의 유작을 게재하며 간단한 해解를 붙이면서 하루 속히 정설헌 유고시집이 출간되기를 고대한다.
사설辭說 / 문우 정설헌은 공존성 동시성 동일성에 대하여 분명한 기준을 갖고 있었다. 그는 어찌보면 존재와 존재에 방불하는 사유의 간격을 단축하기 위해 자신을 끊임없이 괴롭혀온 시인이다. 절대미학의 진수가 어디에 있는가? 라는 화두를 붙들고 평생을 낭인처럼 떠돌던 그의 시혼詩魂이 이제는 어느 피안彼岸에 앉아 바지를 장딴지까지 걷어 부치고 쉬고 있을 것이다. 그런 그를 잠시 괴롭혀보기로 한다.
위의 시 (사설)은 상징적 표현수법이다 은유를 환유로 끌어가자는 화자의 의도가 어느 고비길에서 주춤거리는 것은 그가 시詩를 너무 아끼는 탓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다. 너무나 맛이 있어 아끼는 것은 쉽게 입으로 들어가지 못하듯 그는 '조금만 더 오르기' 에서 '정상에 서기' 를 단념하고 있다. 정상에 서면 시의 황홀함이 반감될까 두려운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문우 정설헌이 너무 아까워 쉽게 입에 넣지 못한 시의 미향을 자못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시에는 '무법칙의 합법성' 이라는 것이 있다. 이 말을 달리하면 '우연성인' 이라는 말로 설명되는데 이는 사람이면 누구나 느끼고 있는 사유의 공감을 말한다. 시는 이 공존성에서 출발해야한다. 그래야만 나와 너의 관계가 성립되고 그 성립이라는 조건 속에 시정신의 정도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시는 차단된 의식의 적절한 방출이라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야만 '함축'이라는 훈련된 시어가 나타난다. 그러나 그것이 무작정이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뚜렷한 공존성 위에 동시성同視性이라는 설계로 극명한 동일성同一性을 그려내는 언어 테크닉이라야 하는 것이고 그 테크닉은 무의식에서 출발하여 의식의 단계에 이르러 형태를 이루고 시의 카테고리 안에 숙성시킨 자기승리의 전리품이라야 한다는 말인 것이다.
나는 문우 정설헌과 처음 만났던 날을 역역이 기억한다. 아마 아현동 어느 생맥주 집이었는데 만나기 전부터 여러 경로를 통해 교감하고 있어서인지 만나는 순간 이미 서로를 관통하고 있었다는 느낌이다.
- 성님, 우리나라 시를 망쳐먹은 놈은 바람보다 풀잎이 먼저 누었다는 아무개 놈인디. 워떡허지요.
이것이 문우 정설헌의 순수순간이다. 정설헌은 '내 애인을 춘향에게 비교하지 말아야한다'는 나름대로의 철칙을 가졌다. 그의 그런 잠재의도가 침해당했을 때의 분노가 늘 내면에서 화산처럼 부글거리는 어리석도록 담백한 천재인데 그의 시 <사설>에도 그런 점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첫 행에서 '조금만 더 오르면 바다가 보인다고 했다. 그래 고개도 넘고 산도 넘었다'는 세상을 긍정하고 싶은 그의 심간에 짙게 깔려있는 부정의 냄새다. 또 자기 부정을 통해 긍정하고 싶은, 그런 속내를 누군가에게라도 간파당하고 싶은 표방인 것이고 그래서 고개도 넘고 산도 넘은/ 것은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한 반사적 자의에 끊임없이 시달리는 것이다.
그것은 자기인식의 공존성을 통한 탐핵探核의 과정인데 과연 내 생각이 올바르냐? 하는 자기성찰을 통해 의식의 궁극을 찾는 작업이라는 말이 된다. 그는 그렇게 자기사유의 본질을 파악하고 나서야 시의 행보를 옮긴다. 그의 그러한 시도는 또 다른 각도에서 독자들의 동시성同視性을 요구한다.
'가다가 소나기도 만나고 번개 천둥도 만나고/ 노루도 보고 늑대도 보고/ 쉬어도 보고 별을 헤는 고슴도치도 만나고/ 두더지도 만나고 꼬리를 흔드는 도마뱀도 만나고/ 넉살좋게 웃고 있는 여우와 눈 맞춤도' 했는데 너희들도 그런 나를 본적이 있느냐는 거다. 그런 나를 보았지? 암 보았어야해 라는 동시;성을 고집스럽게 요구했던 것이다. 그렇게 스스로의 갈구에 목말라 하던 그는 마지막에
'조금만 더 올라가면 바다가 보인다는데' 라는 미확인을 우수로 던져두고 사라지며 형체가 분명치 못한 사유분포를 이유 있는 언어배열로, 라는 과제를 여운처럼 남겼다. 그가 던져놓고 간 여운을 수용하고 안하고는 각자의 의사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어느 누가 그것을 취하든 취하지 않던 간에 시의 동일성에 견주어 이해되어야 한다'는 주장인 것이다.
문우 정설헌의 시세계를 이런 단문으로 다 설명할 수 없다. 시학이라는 오묘한 감정 갈래와 교차를 모두 설명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시 한편을 책 한권분량으로 설명해도 오히려 모자란다 할 것이다. 그리고 만일 이 글을 읽은 정설헌은 관 뚜껑을 박차고 나와 성, 그게 아니란 말이여. 염병을 앓고 있네. 니미럴'하고 관 속으로 다시 들어가 누울지라도 그 문우가 그러면 나는 그걸로 좋은 것이다.
새벽 꽃가지를 기어오르는 안개를 헤치고, 해가 뜨면 눈을 뜨는
나의 기다림은, 노을이 비껴 타는 바람의 층계에 꽃잎파리가 쌓
아가는 머언 자주 빛 연륜입니다. 서시序詩 전문
해解: 가파르기만 했을 한 시대의 생生이라는 면적에 세상에서는 다 이룰 수 없는 자주빛 꿈을
손 시리게 심고 있다. 눈물겹다.
소곡小曲 / 사람의 순간적인 감성도 그 사람의 일부분일 것이다. 그리고 스쳐 지나가면 잃어버릴까 아쉬워 붙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는 신기루 같은 것이 누구에게나 있다. 그도 그런 것들을 연민한다.
당 신 / 사유를 문자로 환치換置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인식을 잃지 않는 견고함이 있다.
그것을 우리는 천재라 말하기도 한다.
어떤 여자의 고백 / 변형구조의 과정을 보편적인 부피로 압축시켜 독자들에게 주고 싶어 한다.
구성이 느슨한 문학적 구성이 시의 매력임을 발견해야 한다.
위험한 거리 / 지대한 관심사를 시학적 부정으로 학대하여 독자의 연민을 이끌어내는 기법이다.
이 작품은 상당한 내용을 내포하고 있으나 모든 내용을 사람의 애소哀訴감성으로 교묘히 포장하고 있다.
정 오 / 3인칭의 정오가 2인칭의 '네'가 되다가 결국은 1인칭의 '나'로 변신하고 있다. 이것은 화자의 권리이며 시인이 독자에게 강요할 수 있는 아름다운 독재獨裁다.
달 밤 / 대상에 접근하는 시인의 시선이 특별한 언어로 발효하고 있다. 이런 기법을 환유歡游라고 한다. 국물이 고소한 설렁탕 한 그릇을 먹는 맛이다.
생 활 / 감정의 불연속선을 적당한 매듭으로 이어가는 상황시다. 부등식에서 등식을 추출하는 시인의 표현력이 황홀하다.
1982년 6월 / 불가시적 가시不可視的 加視. 무형인 의식을 핀세트로 집어서 실상의 사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러면서도 그 작업에 주정적인 칼라 부여를 잊지 않고 있다.
실망 / 버나드쇼의 연서를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궁극적 자아를 대상에게 던져 사유를 파괴하는 동안 그 대상이 스스로를 수습할 기회를 주고 있다. 이런 글을 반탄시라고 한다.
해와 달의 사이에서 / 의식 속의 모든 것들이 화자에게 오브제화할 때만 비로소 직관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무한 자유주의다. 이렇게 되면 어떤 것도 어떤 짓도 가능해진다는 점을 표방하고 있다.
뽀에지 / 시의 합리주의가 어떤 경로를 거쳐야 다다이즘에 이르는가를 보여주기 위한 시다.
언어의 전통성을 무시하고 무의미한 언어를 반복 나열하여 詩 속에 굳게 장치하던 퇴화된 언어들을 부정함으로서 '무의식이야말로 인간의 심제心齊'라는 비합리적 영역을 구축한다.
주말 /'고산식물' 이라는 이미지가 신선한 수사修辭를 통해 자칫 산만해질 수 있는 감정의 갈래를 통제하고 있다는 점이 돋보이는 시다. 또 '갈아 앉은 지난 여름' 이 다시 돌아와 '지난 여름이 잠시 머물고 갔다'로 이어지는 어법이 심상치 않음을 읽어야 겠다.
바다를 건너는 헨리 6세는 정설헌 시인의 시안으로 보면 실패한 자의 도피를 뜻한다. 문우 정설헌은 이와 같이 다가오는 운명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유형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문단생활보다는 실생활에 충실한 쪽으로 생의 가닥을 잡았으리라.
변辨: 지금까지 내가 정설헌 문우의 글에 쪽 글을 달았지만 정설헌의 맘에 흡족하지 못할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그 사람은 '성, 그게 아니란 말이여' 하고 관에서 뛰어나올지도 모른다. 나머지 글에는 다른 분들이 말을 남겼으니 그것으로 됐다는 생각이다.
지지리 못난 사람아 / 박광호
이 무슨 날벼락인가
지지리 못난 사람아
우리에게 슬픔 주려고
눈물의 비 내리려고
훌쩍 떠난단 말인가
먼저 떠난단 말인가
답답하고 괴로운 심회
켜켜이 쌓이어도
대폿잔 기울며
시름 훨훨 날리더니
가난한 마음으로
희망의 불씨 지피더니
정겨운 얼굴들 두고
차마 눈이 감기던가
하고잡은 일들 두고
차마 숨이 끊기던가
친구야
나의 친구야
나이 들어서도 서그러운 눈
언제 다시 볼 거나
남의 이야기
끝까지 들어주고
남의 아픔을
웃음으로 어루만지던
친구야
나의 친구야
어차피 가야 할 곳
먼저 갈 양이면
저승 문 두드리는
우리 기다리소
늘 밝음 있는 곳에서
환한 미소 머금고
설헌-주비-한빛
예전의 단짝 만나
이승에서 이루지 못한
시선詩仙 되어
그 시절 대복집*에서처럼
진탕 취해 보세나
오늘의 슬픔이 눈물이
그때는 마냥 즐거움이리니.
*대복집:1970년대 목포 연동에 있던 설헌이 단골술집.
정선헌 시인의 영전에 / 최병두
만남
백조白潮인지 백조白鳥인지를 모르는 유달산 바윗그늘 비껴선 백조 다방에서 만나
백조白潮 아닌 흑조黑潮가 되어 까맣게 잃어버린 삼학도를 날개짓하는 우리는 흑조였다.
여적餘滴
어린 시절 눈물이 많았고, 나이가 들어서도 곧 잘 울곤했다는 서른여섯의 당신
그 까닭 모를 슬픔의 정체를 밝히려던 당신의 시, 그 남은 눈물 어찌하란 말입니까.
당신의 분이는 지금
사각사각 별빛 쏟아져내리는 모랫길에 손을 흔들다 돌아선 분이, 정말 아까울 것
하나 없는 이 모진 세상에 산기가 도는 아랫배를 슬슬 어루만지며 눈물 한 번 찔끔
짜 보이며 웃어 보이던 당신의 분이는 지금 어디에서
지금 어디에서 당신을 맞아 이승에 흘러넘치던 당신의 눈물을 찾아 목이 마를까.
흔들리는 세상
목포 역전 이쪽에서 저쪽으로 놓인 육교 위에서 ‘육교를 건널 때 나는 흔들리는 공간’
이라며 아슬아슬 자정을 걷던 당신
광주 상무병원 이승에서 저승으로 놓인 다리 위에서야 당신은 흔들리지 않으며,
성큼성큼 대낮을 홀로 건너가시렵니까 진정코
진정 난 몰랐네
그토록 믿어왔던 그 사람 돌아설 줄이야 예전에는 몰랐었네 ‘진정 난 몰랐네’ 구성진
당신의 노래, 당신은 가고 당신이 즐겨 부르던 노래만 남아 가물가물 허공을 맴도는
이 허무한 마음은 뉘를 기다리는 마음입니까.
짧은 노래
‘생명을 사랑하기 때문에 단가를 짓는다’는 이시카와 다쿠보쿠石川啄木를 좋아했던
당신의 두줄시는 어디 두고 가셨습니까. 한국두줄시인협회가 뭐냐며,
세계두줄시인협회도 부족하다던 당신의 '두줄시사랑' 표제는 오늘도 다정키만 한데
눈마루 설헌이 / 주정연
뉜들
눈마루 설헌이를 함부로 말하리
내사 물경 40년지기 오랜 벗으로서
내 둘쨋누이를 꿰어찬 후에
떡두꺼비 같은 아들 셋을 낳아낸
장한 매제가 되는지라 감히
그를 두고 남도의 재사라 부를 수 있는 게지
새초롬한 목청에 구변이 좋은 사람
살아생전 집이 덜 된 미당선생 애제자로
한 20년 광주에서 학원강사를 하였는데
잘하는 국어 중에서도 시를 전문으로 하였으니
시 나부랭이는
삼장법사 손아귀엣 손오공인 것이니
가타부타 공자 앞에 문자 쓸 일은 없는 것이고
거
뒷동산 아지랑이 할미꽃 피던 시절
옴팍집서 불러쌓던 옛노래실력이
세세년년 일취월장하여 오늘에 이르렀으므로
김추자의 '임은 먼 곳에' 라든지
배호의 '돌아가는 삼각지' 라든지
퍽 듣는 이 귀 앓게는 부르는지라
그를 한번 나그네 술청에 모셔보세나
그를 다시 나그네 글청에 들여오세나
떼매어오세나, 아우님아
어영부영 이러다간 상호간에 초상나서 만나보리
2001. 4
* 이 글은 최병두 아우와 주고받던 화답시로 쓴 것인데 생전의 설헌이가
입맛에 맞았던지 복사하여 갖고 다닌다는 말을 건넨 적이 있다.
남도장인 정설헌의 기승전결 / 주정연
그는 내 오랜 글벗이자 내 둘째누이를 배필로 삼아 처남 매제간이 되기도 하였으니 내게는 참으로 소중했던 인연의 사람이다. 일찌기 조숙했던 문학인생은 나를 비롯한 주위의 문학도들에게 기꺼이 스승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환갑고개를 넘어선 나이에 홀연히 세상을 등지면서 스스로 못다한 숙제를 마감하라 하는구나, 어깨쭉지가 뻐근한 버거움을 느끼면서 혀짧은 소견이나마 그에 대한 예의와 후학을 위한 한 사표로 남기려한다.
윤동주를 비롯한 뭇시인들의 서시가 그렇듯이 정설헌의 서시序詩에는 생래적으로 타고난 천성과 인생이정표가 깃들어 있고 한 인생, 시위를 떠나는 화살의 탄성이 드러난다. 더도 덜도 아닌 이 단문장을 살펴보건대, 해가 뜨면 눈을 뜨는 기다림은 꽃잎파리가 쌓아가는 머언 자주빛 연륜이라 했다. 날이면 날마다 그의 기다림은 머언 과거를 향해 열려 있는 퇴행적 서정성을 지녔으니 저 자신이 미처 몰랐던 원초적인 비극성이 이미 장엄한 자주빛 황혼을 지향했음을 보여준다.
그 그리움은 어릴 적에 여읜 어머니에 대한 모정에의 그리움이라 할 수 있다. 필연적으로 쓰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한으로 자리하는 모정에 대한 직접적인 언사가 그후 어느 글에도 나타나는 바가 없는 것은, 잊어버리고 싶고 덮어버리고 싶은 아픈 상흔이었기 때문이리라. 그의 내면에 어머니의 봉분 처럼 자리한 것이 그리움이며 상시 그림자 처럼 따라붙는 그리움을 그린 것이 그의 글이었다. 불문의 성역이자 머언 자주빛 연륜이 되어버린 실락원의 상실감에서 탄력을 받은 탐미적인 '서시'가 씌어질 무렵에 고만고만한 동향문사들이 어우른 흑조시인회는 창립되었고 우리의 시청춘도 돛폭에 한껏 해풍을 안고 대망의 항해에 오른다.
많지 않은 유작 중에서 내가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작품으로 가히 설헌의 대표작이라 할만큼 청승맞은 가창력이 빼어나다. 분이라는 객체를 자화상 처럼 그려낸 장인의 솜씨가 신파조로 또 탁월하다. 소주안주로 돼지족발을 즐기던 식성처럼 말을 깨무는 입담이 찰지고 구수하다. 귀가 솔깃하여 들어주는 이를 만나면 더욱 신명이 나서 말을 곱씹던 그, 나는 더러 주중진담이 그의 시 보다 낫다는 찬탄을 하기도 하였다. '생활'은 말이 시가 된 그런 류의 감칠맛 나는 시다. 노랫가락으로도 하 구성진 분이 이야기, 간드러진 맥락이 분이의 슬픔을 남도의 장인스레 그려내지 않았는가.
나는 그가 이런 류의 '생활' 연작시를 쓸 것을 주문하기도 했으나 그건 내 희망에 머물렀을 뿐 그의 소임은 아니었던가보다. 평소에는 소녀 처럼 수줍어 말이 목구멍으로 기어들다가도 술잔이 쌓이면 청산유수로 터져나오던 말의 성찬이 유독 원고지 앞에만 앉으면 주눅이 들어 하그리 그리움만을 맴돌았던지.....거개의 작품들은 그나름으로 상투적이다.
돌이켜보건대 고등학교 시절에 이미 여러 백일장에서 남다른 문재를 드러내어 입상경력이 많았던 조숙한 시정신이 정작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를 수료하여 하많은 명시들을 접하고 부터 새삼 시쓰기가 두려워지지 않았나 싶다. 그는 릴케에 심취했고 보들레르며 괴테와 헤르만 헤세, 엘리엇의 황무지를 탐독했다. 그것들로 그의 빈 독이 가득찬듯한 포만감에 도취된 시절이 그를 또다른 황무지로 내몰았다고 여겨진다. 그의 내면은 더 쓸게 없다는 자괴감에 몸부림쳤으리라.
문창과 재학 중 어느 여름방학 때 그가 전해준 계용묵 선생의 일화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으니..... 초기에 빼어난 단편소설들을 발표하여 주위의 기대속에 장래가 촉망되던 선생이 청운의 꿈을 품었던가보다. 당시 일본어판 세계문학전집 한 질을 사 짊어지고 산중 절간에 들어갔다고 했다. 명작소설 한 편 한 편의 구성을 파고들어 면밀히 분석 검토를 다 해내고서, 희대의 걸작을 쓰리라 다짐하며 하산했건만 그후로는 아쉽게도 초기작을 넘는 작품을 남기지 못했다는 아이러니한 전설을 따라 그도 그 길을 간 게 아니었나 싶은 것이다.
'위험한 거리', '달밤', '해와 달의 사이에서' 등의 작품들은 뛰어난 언어의 조탁에도 불구하고 제자리 걸음을 맴돈다. 오죽이나 굴곡이 많은 격랑의 시절이었던가. 파란만장한 시대상황과 억하심정 많은 생활고의 와중에서 시의 화두를 가져오지 못했던 그 두려움을 어떻다 말할 수 있으랴. 내면에 흘러드는 내출혈을 밖으로 토출하지 못한 채 허허로운 관념어만을 벗삼은 시쓰기는 그에게 퍽이나 고역이었으리라. 내 이를 달리 미화할 재간은 없다.
가난에 찌든 생활에 권태를 느끼던 무렵 그는 광주로 이주하는 전환기를 맞는다. 광주에 옮아가 사설학원 국어강사로 나서기 직전 목포를 떠나며 남긴 절필시 '사설'에는 일탈의 몸부림이 있다. 그는 이 시를 삽시에 써내려갔다고 했다. 왜 진작 이런 사설조의 시가 씌어지지 않았는지 의아스러울 정도로 통렬하고도 후련한 달변이다. 말이 시가 된 시다.
그후론 시 쓰기에서 시 가르치기로 궤도를 바꾸어 광주 학원가에서 오랜동안 인기를 누리는 명강사가 되기에 이른다. 못이 나오나 밥이 나오나 하던 시가 밥을 먹여주는 또다른 세상에 뛰어들어 슬하에 세 아들을 키워냈으니 이 또한 한 문사의 길이 아니었으랴,
내가 청마 유치환 선생의 의지의 시편들을 이야기할 적이면 그도 덩달아 한국의 시성이라고 입을 모으다가도 서정주 선생의 남도가락을 구성지게 낭송하며, 말당 선생의 시는 어느 한 편도 버릴 것이 없다는 극찬을 하기도 하였다. 그의 애정은 매우 뜨겁거나 몹시 차가웠지, 뜨뜻미지근함이 없었다. 김수영의 시편들에 대한 냉소적인 폄하는 후자의 대표적인 예,
그는 방 한 칸을 서실로 차려놓고 선친이신 국전 입선작가 초암 정유신 선생의 업을 이어 서예를 즐겼다. 오랜동안 안진경체, 구양순체를 임서하는 그에게 임서를 너무 오래하지는 말게나, 새장에 갇히면 나오기가 힘들거든.....충고를 한 일도 있었는데 말년에는 '광서'라 하여 미치광이 갈필서예를 시작해보기도 하였다.
그가 살던 아파트 단지를 돌면서 헌 신문지를 주워다 쌓아놓으니 배부르더라고 한 적이 있다. 화선지값이 솔찬한지라 신문지를 썼던 것이다. 헌 신문지에 함부로 휘갈겨 쓴 글씨를 나에게 보여주기도 했는데 필력이 썩 볼만했다. 그는 어려서 부터 궁서체를 즐겨썼고 내 보기엔 경지가 자못 높았다. '물 보면 흐르고 별 보면 또렷한' 이라고 옛날에 영랑 선생의 싯구를 써준 걸 표구해 걸어두고 나는 지금껏 즐기고 있기도 하다.
나와 동갑내기인 설헌이를 남도의 장인이라 여기는 또다른 이유는, 일찌기 목포시절에 수석취미를 즐기며 남농 선생을 모시고 난석회 총무를 맡아했고 나무를 깎아 좌대를 만들어내는 솜씨가 일품이었다는 데 있다. 문태고 제자 김남표가 좋은 돌 하나를 가져와 좌대를 깎아 올려놓고는 날마다 그 돌안주로 술을 마시는데, 어느 날 그 돌이 좌대와 함께 사라지고 없더라는 후일담을 설헌의 장례식장에서 그 제자를 통해 들은 바 있다. 설헌이가 배시시 웃으며 원하는 이가 있어 하는 수 없이 팔았노라 하더라는 것이다. 오죽이나 가난턴 시절인가. 연동 골목집 누이가 하던 조붓한 양장점 쪽방에서 나도 종종 콩나물죽을 맛나게 얻어먹던 그 때 그 시절에 말이다.
장자 이야기에 나오는 백정의 칼은 17년을 쓰고도 날이 이즈러지지 않았다 했던가.그 설헌이의 칼 다루는 솜씨는 내 누이가 폐백공부를 하여 사임당 이라는 상호를 달고 마른 오징어와 수박을 오려 꽃을 만들어 피우는데 큰 기여를 했다. 누이 말에 의하면 우선 칼이 잘 들어야한다고 칼 하나를 날이 다 닳도록 갈아냈다는 것이니, 남도의 장인 정설헌이가 아니었다면 가당키나 한 일이겠는가. 평생 시집 한 권 내보기가 소원이었던 그, 유족에게 남긴 후일담에 의하면 정가 99만원짜리 밀봉한 시집을 내리라는 말을 했다한다. 웬 시집이 그리 비싼지 궁금하면 한 사람은 사보겠지, 하더라는 것이다. 그런 설헌이다. 말년에 아들들이 사는 서울 출입을 자주하며 목포출향문인들과 만나면서 다시 시에 기우는듯, 몇 편의 습작을 쓰기도했다.
허나 남도의 장인 정설헌의 기승전결은 더 이상 반복되지 않았으니 그리고 그 뿐, 서시의 의지는 머언 자주빛 연륜 속으로 화살 처럼 그렇게 사라져갔다. 일몰을 예고하는 해거름길의 낙수는 논외로 쳐도 무방하리라.
당 신 / 정설헌 시집
유고 모음 - 주정연 . 시집 꾸밈 - 정한샘
2017. . 발행
디자인 자료,
흑조 창간호 1966 원곡 김기승 제자題字
흑조8집 1982 원곡 선생의 두번째 제자
영랑 詩, 정설헌 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