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경(破鏡)
파경(破鏡)이라는 말이 부부 관계가 깨어지는 뜻으로 통용되고 있으나 원뜻은 그것과 다르다.
그 어원은 파경중원(破鏡重圓)이다.
한자 낱자는 破(파) : 깨뜨릴 파, 鏡(경) : 거울 경, 重(중) : 다시 중, 圓(원) : 둥글 원
즉, 깨진 둥근 거울을 다시 붙인다는 뜻인데 이면의 뜻은 ‘깨졌던 거울이 다시 합쳐지다. 헤어졌던 부부가 다시 만나게 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이런 일화에서 유래됐다.
이 이야기는 맹계(孟棨)의 ‘본사시(本事詩) 정감(情感)’ 에 기록되어 있다.
출전
중국 남북조시대 북주(北周)의 승상 양견(楊堅)은 나이 어린 황제 정제(靜帝)를 죽이고 스스로 제위에 올라 수(隋)나라를 세운 다음 남조의 마지막 왕조 진(陳)을 공격했다. 당시에 진의 황제인 후주(後主) 진숙보(陳叔寶)는 나라가 망해 가는데도 주색에만 빠져 있었다.
「당시에 진나라 태자의 사인(舍人)이었던 서덕언(徐德言)의 부인은 진숙보의 여동생으로 낙창(樂昌)공주에 봉해졌으며, 재주와 미모가 뛰어난 여인이었다. 진나라의 정세가 혼란스러워지자 서덕언은 아내를 지켜 줄 수 없음을 알고 아내에게 말했다.
“그대의 재능과 용모로는 나라가 망한 후 틀림없이 권세 있는 집안으로 넘어갈 것이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영원히 헤어지게 될 것이오. 인연이 끝나지 않았다면 다시 만날 수 있게 될 터이니 그렇게 되리라고 믿읍시다.”
그러고는 거울을 깨어 반쪽씩 나누어 갖고 약속을 했다.
“반드시 정월 보름에 도성의 시장에다 팔도록 하시오. 내가 거기에 있다가 그날로 그대를 찾아갈 것이오.”
진나라가 망하자 낙창공주는 과연 월공(越公) 양소(楊素)의 집으로 넘어갔는데, 지극한 총애를 받았다. 서덕언은 유리방황 갖은 고생을 다하며 겨우 수도로 가, 마침내 정월 보름에 시장에 갔다. 어떤 하인이 거울을 팔고 있었는데 너무 높은 값을 부르자 모든 사람이 다 비웃었다. 서덕언은 그를 숙소로 데려가 밥을 대접하고 그간의 사정을 일일이 말해 주었다. 서덕언은 나머지 반쪽 거울을 꺼내 맞추어 보고는 시를 지었다.
거울과 사람이 함께 떠나
거울은 돌아왔는데 사람은 돌아오지 않네.
다시는 항아의 모습 담지 못하리니
헛되이 밝은 달만 휘영청 남았네.
낙창공주는 이 시를 보고 울기만 하고 식음을 전폐했다. 양소가 이를 알고 비통해하며 즉시 서덕언을 불러 아내를 데려가도록 했으며, 많은 재물을 주었다. 이 말을 듣고 감탄하지 않은 자가 없었다.
낙창공주는 드디어 서덕언과 함께 강남(江南)으로 돌아가 평생을 함께했다.
원문은 이러하다.
陳太子舍人徐德言之妻(진태자사인서덕언지처), 後主叔寶之妹(후주숙보지매), 封樂昌公主(봉악창공주), 才色冠絶(재색관절). 時陳政方亂(시진정방란), 德言知不相保(덕언지불상보), 謂其妻曰(위기처왈), 以君之才容(이군지재용), 國亡必入權豪之家(국망필입권호지가), 斯永絶矣(사영절의). 償情緣未斷(상정연미단), 猶冀相見(유기상견), 宜有以信之(의유이신지). 乃破一鏡(내파일경), 各執其半(각집기반), 約曰(약왈), 他日必以正月望(타일필이정월망), 賣於都市(매어도시), 我當在(아당재), 卽以是日訪之(즉이시일방지). 及陳亡(급진망), 其妻果入越公楊素之家(기처과입월공양소지가), 寵嬖殊厚(총폐수후) 德言流离辛苦(덕언류리신고) 僅能至京(근능지경), 遂以正月望訪於都市(수이정월망방어도시). 有蒼頭賣半鏡者(유창두매반경자), 大高其價(대고기가), 人皆笑之(인개소지). 德言直引至其居(덕언직인지기거), 設食(설식), 具言其故(구언기고). 德言出半鏡以合之(덕언출반경이합지),
乃題詩曰(내제시왈),
鏡與人俱去(경여인구거), 鏡歸人不鏡(귀인불귀귀), 無復姮娥影(무부항아영), 空留明月輝(공류명월휘)
陳氏得詩(진씨득시), 涕泣不食(체읍불식) 素知之(소지지), 愴然改容(창연개용), 卽召德言(즉소덕언), 還其妻(환기처), 仍厚遺之(잉후유지). 聞者無不感嘆(문자무불감탄).
遂與德言歸江南(수여덕언귀강남), 竟以終老(경이종로)
파경(破鏡)이라는 말에는 부부애가 담긴 애틋한 사연이 결국 해피엔딩으로 끝남을 알 수 있다.
최근 뉴스에 의하면 한국의 이혼율이 미국, 영국, 스위스 다음으로 높다고 하니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쯤되면 백년해로(百年偕老)니 천생연분(天生緣分)이라는 말은 주례사에나 나오는 수사정도에 불과하다.
글쓴이도 주례를 맡았을 때에는 원만한 결혼 생활 유지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했었다.
나의 교단 경험에 의하면 파경(破鏡) 가정의 자녀들은 정상 가정의 자녀들에 비해 눈동자가 슬퍼 보였다.
남의 눈치를 잘 살피고, 시선 집중의 시간이 짧고, 어딘지 모르게 우수에 젖어 있는 듯해 보였다.
행동양식은 복잡한 것을 싫어하고 단순한 것을 선호하며, 적은 자극에도 신경질 적으로 반응하며, 여러 사람을 포용하는 너그러움이 부족한 경향을 보였다. 안타까운 것은 그것을 교정하기 위해 사랑으로 접근하려 해도 쉽게 마음의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나는 교단에서 건강한 가정의 중요성을 체감했던 것이다.
이혼은 삶이 어려워서 하는 경우 보다 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가 많은가 보다. 요즈음 코로나 사태로 삶이 어려워지니 우리나라 이혼율이 급격하게 줄어들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외국의 이혼율 증가와는 다른 경우라니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파경중원(破鏡重圓)의 주인공 서덕언(徐德言)의 이야기가 아름답게 투영되는 세태다.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도 지금 배우자를 만나고 싶다'는 천생연분의 이야기가 당연시 되는 사회가 앞으로 올 수 있을 런지?
첫댓글 가정이 부부이혼으로 破鏡이되면 그가정의 자녀들에게 1차적으로 치명적인 타격이 오고, 그런가정을 결손 가정이라 하지요
,파경의의미가 破鏡重圓에서 유래되었군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