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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좋아서 쓰는 글은 본래 상품이나 매명을 위한 수단도 아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이 읽기 위한 것이요, 간혹 자기와 절친한 가까운 벗을 독자로 예상할 경우도 없지 않으나, 본래 저속한 이해와는 관계가 없는 풍류가들의 예술이다. 따라서 그것은 고상한 취미의 하나로 헤아려진다.
모든 진실에는 아름다움이 있다. 스스로의 내면을 속임 없이 솔직하게 그린 글에는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감동이 있다. 이런 글을 혼자 고요히 간직하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복된 일일까. 그러나 우리는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한다. 누구에겐가 읽히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가까은 벗에게 보인다. 벗도 칭찬을 한다.
“이만하면 어디다 발표해도 손색이 없겠다.” 하고 격려하기도 한다. 세상에 욕심이 없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칭찬과 격려를 듣고 자기의 글을 ‘발표’하고 싶은 생각이 일지 않을 만큼 욕심이 없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래서 노트 한구석에 적었던 글을 원고용지에 옮기고, 그것을 어느 잡지사에 보내기로 용기를 낸다. 그것이 바로 그릇된 길로의 첫걸음이라는 것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하면서. 활자의 매력에 휘감기고 마는 것이다.
잡지나 신문은 항상 필자를 구하기에 바쁘다. 한두 번 글을 발표한 사람들의 이름은 곧 기자들의 수첩에 등록된다. 조만간 청탁서가 날아오고, 기자의 방문을 받는다. 자진 투고자로부터 청탁을 받는 신분으로의 변화는 결코 불쾌한 체험이 아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청탁을 수락하고, 정성을 다하여 원고를 만들어 보낸다. 청탁을 받는 일이 점차로 잦아진다.
이젠 글을 씀으로서 자아가 안으로 정돈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밖으로 흐트러짐을 깨닫는다. 안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생각을 정열에 못 이겨 종이 위에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괴지 않은 생각을 밖으로부터의 압력에 눌려 짜낸다. 자연히 글의 질이 떨어진다.
(중 략)
글이란, 체험과 사색의 기록이어야 한다. 그리고 체험과 사색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만약 글은 읽을 만한 것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면, 체험하고 사색할 시간의 여유를 가지도록 하라. 암탉의 배를 가르고, 생기다 만 알을 꺼내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따라서 한동안은 붓두껍을 덮어두는 것이 때로는 극히 필요하다. 하고 싶은 말이 안으로부터 넘쳐 흐를 때, 비로소 붓을 들어야 한다.
일단 붓을 들면 심혈을 기울여 써야 할 것이다. 거짓 없이 성실하게, 그리고 사실에 어긋남이 없도록 써야 한다. 잔재주를 부려서는 안 될 것이고, 조금 아는 것을 많이 아는 것처럼 속여서도 안 될 것이며. 일부분의 사실을 전체의 사실처럼 과장해서도 안 될 것이다.
글이 가장 저속한 구렁으로 떨어지는 예는, 인기 노리고 붓대를 놀리는 경우에서 흔히 발견된다. 자극을 갈망하는 독자나 신기한 것을 환영하는 독자의 심리에 영합하는 것은 하나의 타락임을 지나서 이미 죄악이다.
글 쓰는 이가 저지르기 쉬운 또 하나의 잘못은, 현학의 허세로써 자신을 과시하는 일이다. 현학적 표현은 사상의 유치함을 입증할 뿐 아니라, 사람됨의 허영스러움을 증명하는 것이다. 글은 반드시 여러 사람의 칭찬을 받을 필요는 없다. 그러나 되도록 여러 사람이 읽고 알 수 있는 것이 바람직하다.
글을 쓴다는 것, 그것은 즐거운 작업이어야 하며, 진실의 표명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하여 우선 필요한 것은 나의 자아를 안으로 깊고 크게 성장시키는 일이다.
<계간수필> 여름호 , 김태길 선생 서거 10주기 추모특집에서 발췌
첫댓글 선생님, 잘 지내시지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잘 새겨두고 자주 꺼내보아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100 % 지당한 말의 글이네요.
발취하여 올리느라 수고 많았어요.
개감사.
구구절절 옳으신 말씀, 동감 또 동감입니다.
작가동인지 원고 마감일이 오늘인데 핑계거리가 생겨 쾌재를 부릅니다.ㅎㅎㅎ
복희샘, 감사 또 감사합니다.^^
수유리 아카데미하우스에서 가을에 수필문학세미나 할 때의 추억이 어립니다.
또한 수필문학을 통해 내면적인 시야를 넓힐 수 있었음도 고백합니다.
관계자 여러분께 늘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