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진기행}으로 유명한 김승옥의 {뜬 세상에 살기에}라는 수필집을 읽었다. 다 읽었지만 '뜬 세상'이 무슨 의미인지는 잘 모르겠다. 신춘문예에 대하여, 김승옥의 대학생활과 신혼생활, 문학지 탄생의 이런전런 면을 알 수 있었다. 무진기행에서 음악선생이 유행가르 부르는 이야기는 실제 그 선생이 그리한 것을 보고 쓴 것이라고 하였다. 자기가 처음 쓴 {생명연습}에 관한 이야기도 있고, 독문과 출신인 이청준이 동향이라 관심을 가졌다는 이야기. 김현에 대한 평가도 처음에는 사범학과에나 갔어야할 샌님이라고 평가한 대목도 있었다. 그리고 내가 익히 알고 그들의 책을 사 보았던 사람들, 이청준, 김현, 김치수, 염무웅, 유종호 등의 이름들이 거론되어서 약간의 흥미를 느꼈다. 적어도 관심이 있거나 이미 지상에 이름이 나 있는 타인의 이면사를 읽는다는 것은 나로서는 부담이 없어서다. 종체(從體)로 이루어진 이 벽돌책을 사실 신형철의 어떤 책에서 소개하길래 인근 시립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은 것이다. 나름 소소한 이야기들이었다. 순천 출신인 자신을 하와이(전라도) 라고 소개하고 있다. 어려서 전라도 사람을 '하와이치'라고 엄마가 말하는 것을 자주는 아니지만 어떤 평가를 내릴 때마다 들었던 것 같다. 내 말은 전라도 남이 전라도 사람을 평가할 때 이 말을 쓰는 경우는 보았지만, 스스로가 자신을 하와이라고 평한 것은 거의 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왜 하와이라고 하는지 자신을 높인다는 건지 아니면 낮춘다는 겸사인지 그 소이를 모르겠다.
다음 글은 조정래씨의 소설 「한강」제10권 거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얘기인데 확실하지는 않지만 나도 옛날에는 전라도 사람을 멋도 모르고 '하와이'라고 웃으면서 불러 본 적도 있었는데... 물론 뜻도 모르고,,,
김명숙은 박보금네 술집 특실에서 두 남자와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근데 말이죠, 왜 전라도사람들을 보고 하와이라고 하는 거죠? 서울생활을 하면서 그 말을 수없이 들었고,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기분 나쁘고 속상했는데, 요새 또 '전라도 것들'이라는 말과 하와이라는 말이 부쩍 심해지고 있잖아요. 근데 우리 전라도사람들한테 왜 그렇게 부르느냐고 물어봐도 속시원하게 아는 사람이 없어요."
김명숙은 최감독과 정 부장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글쎄요, 나는 그런데 무식해요. 난 서울 출신이라서 그런지 어쩐지 경상도 전라도 해가면서 지방색 드러내고 편가르는 것 딱 질색이고, 절대 반댑니다. 그런 잡학에는 정 부장이 전문이잖소? 어디, 나도 이 기회에 좀 알아둡시다."
최 감독이 옆사람에게 잔을 건네며 웃었다.
"나도 그놈의 지방색은 이제 넌덜머리가 나요. 박 통이 갔으니까 그놈의 차별이 싹 없어져야 하는데, 손바닥만한 놈의 나라에서 망할 징조지요. 근데 그 하와이라는 것 말이지요, 내가 알기로는 이래요.
해방이 되고 나서 남쪽의 제일 큰 정적 두 사람은 이승만과 김구였어요. 이승만은 미군정의 도움을 받으며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추진하고 있었고, 김구는 민족을 분단시켜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반대하며 서로 팽팽하게 맞섰어요. 그런데 김구는 미군정의 지지를 못 받는 입장이니까 그 대신 대중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 전국 순회강연을 나섰어요.
김구는 가는 지방마다 환영을 받았는데 특히 전라도 지방에서는 그 환영이 아주 열렬했어요. 그게 어느 정도였으냐 하면, 강연은 큰 도시에서만 하게 되어 있었는데, 작은군에서 사람들이 몰려나와 겹겹이 기찻길을 가로막는 바람에 김구는 예정에 없던 강연을 하고서야 기차가 움직일 지경이었어요. 그런 동태가 이승만에게 빠짐없이 보고된 것은 말할 것도 없지요. 그런 보고를 다 받은 이승만이 기분 나빠져 한마디 내뱉은 것이 '하와이놈들 같으니라구!"였어요.
그게 무슨 말인고 하니, 일제시대에 이승만은 독립운동을 한다고 미국 본토에 있다가 나중에 우리 동포들이 많은 하와이로 옮겼어요. 그런데 거기에는 이미 박용만이라는 사람이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는 우리 동포들을 모아 독립투쟁을 할 군인들을 양성하고 있었어요.
이승만은 독립군보다는 외교 능력으로 독립을 얻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하와이에 가자마자 박용만과 대립하기 시작했어요. 두사람을 따라 동포들이 갈라지기 시작했는데, 결국에는 이승만 쪽에 몇 사람이 남지 않게 되어 이승만은 궁지에 몰리고 말았어요.
이승만은 박용만 쪽으로 쏠린 동포들에게 감정이 많았는데, 김구를 대대적으로 환영하는 전라도 사람들이 옛날 하와이의 동포들처럼 보인 겁니다. 그 다음부터 전라도사람들을 하와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정 부장이라는 사람은 입담 좋게 이야기하고는 맥주잔을 단숨에 비웠다.
"그것 참 재미있는 얘길세. 김구는 비운에 가고, 이승만이 승자가 되었으니 그 12년 동안에 전라도사람들에 대한 나쁜 인식을 전국적으로 퍼뜨리고 차별하고 할 수 있었겠군. 그거 아주 일리 있는 얘기요."
최 감독이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느 특정지역의 사람을 비하해서 뭐라고 부르는 것도 너무 편협적인 것같고 또 지역감정으로 말이 많은데 오해를 사는 것은 아닌가?하고 생각도 들지만 이 글을 쓴 조정래씨는 원래 순천부근 선암사에서 출생하고 광주에서 중학교를 나온 전라도 사람이라니 오해는 하지 않아도 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