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글쓰기 18-9 그래서, 그렇지만,(2024.2.9)
나의 인생과 가족의 인생에서 명절을 없애버린 내게 설은 마음 편하게 실컷 뒹굴거릴 수 있는 시간이고 미뤄둔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며 책 읽기 좋은 시간이다. 그동안 눈도장만 찍어뒀던 책을 읽기 시작한다. 그 중 한 권은 몇 년 전 돌아가신 김이구 선생의 글을 모은 <편집자의 시간/나의시간>이다.
나는 김이구 선생과 교집합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그를 잘 알지는 못했고 그저 이런저런 공간에서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럴 때는 그저 멀찌감치에서 호기심을 갖고 지켜보았을 뿐이다. 2017년 뉴욕에 머물던 그 가을 마지막 날 이 분의 부고를 받고 황망했던 마음을 지금도 기억한다. 귀국하자마자 짐 던져놓고 놀라움과 슬픔 가득한 마음으로 장례식장으로 달려갔던 것을 보면, 그날 그 장례식장 풍경이 지금도 기억나는 것을 보면, 밤새 그곳에 머물며 영정사진 앞에 혼자 앉아 한참을 바라보았던 것을 보면, 나 또한 이분을 사랑한 것 같다.
읽기를 미루었던 <편집자의 시간>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이 분이 이렇게 말을 잘 하는 분이었구나!'하는 생각이었고 다음으로 든 생각은 '이분의 목소리로 글을 재생할 수 없네!'하는 생각이었다. 워낙 목소리를 들을 일이 없어서일까 빙그레 웃는 그 모습은 기억하는데 아무래도 목소리를 떠올릴 수가 없다. 서문에 쓴 최원식의 글을 읽으며 나도 마지막 문장에 깊이 공감했다. "오호 통재痛哉라."
원래 계획은 오늘 이 책을 다 읽을 생각이었는데 첫 번째 글 '편집자라는 모순된 자리에서'를 읽고 책을 덮기로 했다. 한꺼번에 읽기가 아깝다. 다시 만날 수 없는 귀한 글이니 하나 하나를 한 권처럼 읽고 싶었고 마지막 문단이 준 여운을 좀 더 새기며 간직하고 싶었다.
"......'그래서' 엉터리 책이 나오고, '그렇지만' 좋은 책이 나온다. 이러한 모순된 존재로서 편집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첫째 '최초의 독자로서 생생하게 읽는' 자신의 체험을 갖고 이를 반영하는 것, 둘째 자신을 믿지 말고 언제나 겸손함을 유지하는 것이다."(<편집자의 시간> 29쪽)
'그래서'와 '그렇지만'과 함께 올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그래서와 그렇지만은, 편집자에게만 해당되는 아닐 것이다. 그것들은 독자에게 그리고 살아가는 존재들의 삶에 간여하는 단어가 아닌가 하는 생각했다. 살면서 그래서와 그렇지만을 선택할 때가 올 때 한 번쯤 더 생각하게 될 것 같다. 내가 먼 발치에서라도 김이구 선생을 만날 수 있어서, 그의 글을 반가이 읽을 수 있어서 행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