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완전하라 창세기 17:1~8
누군가 우리에게 완전을 요구한다면 그냥 웃어 주고 지나가면 됩니다. 늘 주님께 자비를 구하는 인생인 우리에게 완전을 요구하다니 뭘 몰라도 한참 모르는 터무니없는 요구이니까요. 그런데 그 터무니없는 그런 요구를 받을 때입니다.
분명 부당한 요구인데 그것을 그냥 무시해 버릴 수 없으니 고민입니다. 그럴 때는 묵묵히 들을 수밖에 없습니다.할 말이 없는 것은 이니지만 그냥 유구무언 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아브람이 그렇습니다.
하나님 앞에 엎드려 17장 내내 이어지는 말씀을 듣고 있지만 일언반구 말이 없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 제일 완전하라."인데 그 다음 말씀이 귀에 들어올까요?
자신과 후손에게 미칠 엄청난 복이 쉴 새 없이 세워지지만 아브람의 귀에는 '완전하라'는 말씀이 콱 박혀 있을 뿐입니다.어쩌면 부당한 요구를 하시는 하나님께 드릴 하소연을 마음속으로 그리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이 일이 있은 뒤에 아브라함의 기록에서 여전히 아내를 누이라 속이는 장면이 나오는것을 보면 (20장) '완전하라'는 하나님의 요구는 성취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예수님도 하자 많은 제자들에게 '하나님처럼 온전하라'고 요구하셨지만(마5:48) 제자들 역시 아브라함처럼 온전과는 거리가 먼 길을 걸었습니다.
결국 완전하라는 요구는 '존재의 완전'을 요구하신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사실 예수님은 우리가 이미 완벽한 존재라고 가르쳐 주신 분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그 가지들이다" 전체가 완벽한 존재인데 부분이 어떻게 완벽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우리가 느끼는 존재의 불안을 무한 긍정으로 해결해 주신 예수님이 새삼스럽게 완전한 존재가 되라고 요구하실 리는 없습니다.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완전은 언제나 우리의 행함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아브람에게도 "내 앞에서 행하여"라고 말씀하셨고, 예수님도 하나님이 행하시는 것처럼 행하라는 맥락에서 온전을 요구하셨습니다.이 요구는 터무니없다고 웃어넘기거나 침묵으로 응할 수 없습니다. 너는 완전하라'는 말씀 앞에 자신을 세워 실천적으로 응답해 가는 신앙인 되기를 빕니다.
기도
늘 나와 이웃의 모자람으로 고민하는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있는 그대로의 우리를 긍정해 주신 주님 더 이상 존재의 불안으로 고민하지 않게 하옵소서. 이제는 우리에게 요구하신 행함의 완전을 향해 나아가게 해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부린 목사 아차도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