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 징후 (외 1편)
한길수
떠난 것들의 방향은 난독이다
햇살은 곧잘 산에 막히고
서있는 것의 그림자는 자주 흐려서
추위가 모여 있는 곳은 계절의 측면처럼 어둡다
급하게 흐르던 물살은 살이 빠지고
유순한 표정의 여울도 대체로 낮아서
그 어떤 경계를 지날 때마다 밑줄을 긋는다
밑바닥은 삶이 끝나야 해빙된다는 역설
견고해지는 건 불신의 두께
흘려보낸 상념의 물결에 참회를 떠 올려도
얼어버린 나이로는 후회를 담을 수 없어
겨우 숨구멍 하나 열어 놓으리
좋았던 기억은 물결의 뒷모습에
주소지를 분양해 주고싶은 것인데
물안개에 매번 흐려지고
결빙의 그리움도 무채색으로 읽혀서
차가운 기억이 물의 뼈처럼 냉철하다
낮은 곳으로 떠난 계절의 관절에서
얼핏 골절음이 들린다
꽃이 색을 버리는 시간
양털구름 무리지어 노니는 곳
잦은 비로 화단마다 생기가 돌고
달맞이꽃이 달빛을 흉내 냅니다
샤스타데이지가 은하수 강가를 서성입니다
케모마일이 계란꽃보다 우월하다고 향기를 흘려놓습니다
마차 바퀴를 닮은 수레국이 양떼구름을 좇습니다
화단에 달빛이 내리고
별빛이 내리고
유성처럼 수레바퀴가 달리고
붓꽃으로 계절을 필사 합니다
달빛 은은한 허공을 백지로 펼칩니다
흔들리는 바람의 궤적을 옮겨 적습니다
바람에도 습기가 있어 붓 끝이 무거울 땐
명치끝에서 머뭇거리고
은은한 달빛이 묻어 와 붓 끝이 가벼워지면
이루지 못한 그대 사랑
가슴 한켠이 울렁거리기도 합니다
가끔은 우기를 만나기도 하는데
애써 적었던 바람의 궤적이 보내지 못한 편지처럼
물방울에 구겨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오늘밤은 무엇을 더 필사를 하기보다는
차마 붓을 꺾어
그늘의 이면처럼 흑백으로 영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