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전에서
강상기
뼈 시린 노동이
겨울바다 위에 내리는 눈이라고
생각하다가
문득
땡볕과 바람에 단련된 눈물이
흰빛 반짝이는 소금꽃으로
결정된 것이라고
생각하다가
아득한 하늘 끝
일렁이는 수평선 너머
핏빛 노을을 한없이 바라보았다
화전민
강상기
나는 이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잔솔밭에 타오르는 연기
억새며
가시덤불이며
저 모조리 타버리고 남은 잿바닥을 갈아
나는 새 씨앗을 뿌리러 왔다.
파도
강상기
돼지떼여,
돼지떼여,
저 무수한 돼지떼여
검정 돼지떼여
서로 몸을 비벼대면서
비벼대면서
꿈틀꿈틀 기어가는
돼지떼여
ㅡ시선집 『오월 아지랑이를 보다』(미디어창비,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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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기 : 1946년 전북 임실 출생. 1966년 월간 종합지 《세대》 신인문학상과 197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2년 오송회 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렀고 17년간 교직을 떠남. 시집 『철새들도 집을 짓는다』 『민박촌』 『와와 쏴쏴』 『콩의 변증법』 『조국 연가』 『고래사냥』 등, 산문집 『빗속에는 햇빛이 숨어 있다』 『역사의 심판은 끝나지 않았다』(공저) 『자신을 흔들어라』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