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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4월 24일 부활 제2주일 - 하느님의 자비 주일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대희년인 2000년 부활 제2주일에,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신심이 대단하였던 폴란드 출신의 파우스티나 수녀를 시성하였다. 그 자리에서 교황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특별히 하느님의 자비를 기릴 것을 당부하였다.
이에 따라 교회는 2001년부터 해마다 부활 제2주일을 ‘하느님의 자비 주일’로 지내고 있다. 외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죽음과 부활로 우리를 구원해 주신 하느님의 크나큰 자비에 감사드리고자 하는 것이다.
▦ 오늘은 부활 제2주일이며 하느님의 자비 주일입니다. 우리는 처음이며 마지막이신 분, 죽음을 물리치고 살아 계신 분을 만나 뵙고 기뻐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의 힘을 주시어, 악행의 끈을 끊고 사랑과 순종으로 주님을 섬기며,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누리며 다스리게 하십니다.
<여드레 뒤에 예수님께서 오셨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0,19-31
19 그날 곧 주간 첫날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20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다.
21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22 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24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서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는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에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다.
25 그래서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토마스는 그들에게,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하고 말하였다.
26 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모여 있었는데 토마스도 그들과 함께 있었다.
문이 다 잠겨 있었는데도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말씀하셨다.
27 그러고 나서 토마스에게 이르셨다.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28 토마스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29 그러자 예수님께서 토마스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30 예수님께서는 이 책에 기록되지 않은 다른 많은 표징도 제자들 앞에서 일으키셨다.
31 이것들을 기록한 목적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여러분이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그분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단단한 껍질
정월 대 보름에는 부럼을 깬다고 견과(堅果)를 깹니다. 부럼이란 음력 정월 보름날 밤에 까먹는 잣 ·날밤 ·호두 ·은행 ·땅콩 따위의 단단한 과일을 말합니다. 대개 자기 나이 수대로 깨문다고 합니다. 여러 번 깨물지 말고 한 번에 깨무는 것이 좋다고 하여 한번 깨문 것은 껍질을 벗겨 먹거나 첫 번째 것은 마당에 버리기도 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과실을 깨물면서 1년 동안 무사태평하고 만사가 뜻대로 되며 부스럼이 나지 말라고 기원합니다. 이렇게 부럼을 깨물면서 기원하면, 1년 동안 부스럼이 나지 않으며, 이가 단단해진다고 하는 속설이 있어서 부럼을 준비합니다. 이로 잘못 깨트리다가는 큰 사고가 생깁니다. 더구나 잣이나 호두, 은행 등은 정말 단단해서 이가 부러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망치를 들고 깨서 먹기도 하지만 망치로 손을 때리는 경우가 많아서 아주 조심하지 않으면 깨지도 못합니다.
그런데 부럼을 깰 때 나이 수대로 깨물어야 하기 때문에 나이가 들면 들수록 점점 단단해지는 고집은 도저히 막을 수 없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젊어서 화가 나거나 속상한 일이 있어도 잘 풀어지는데 나이가 들면 그게 잘 안 풀어지는 것은 부럼과 같은 이치인가 봅니다. 여러 번 애써서 손등이나 손가락을 깨트리면서 깨쳐야 겨우 속내를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들면 호두를 많이 먹어야 치매가 걸리지 않는다고 호두를 깨면서 호두 알갱이가 꼭 뇌와 같이 생겨서 그런 것인가 생각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요즘은 건망증이 아주 심해서 잘 잊어버립니다. 그래서 내 집 주소도 잘 잊고, 전화번호도 잘 잊습니다. 그런데 전에 공부한 것이 생각날 리 만무합니다. 그래서 언제나 옥편도 보고, 사전도 찾아보고, 이리저리 알아도 보고, 책을 다시 찾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금방 또 잊기 때문입니다. 동물의 세계나 자연의 오묘한 모습을 보면서 나도 그 순리에 따르는 삶이 아닌가 생각하기도 합니다. 금년에는 부럼을 깨지도 않았으니 아마도 1년 내내 호두 껍데기 같이 단단하고 벗겨지지 않고, 깰 수 없는 고집으로 살면 어쩔 것인가 걱정도 된답니다.
논어의 술이 편에 ‘자불어괴력난신’(子不語怪力亂神)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공자께서는 괴이한 일, 힘으로 하는 일, 어지러운 일, 귀신에 관한 얕은 말씀은 하시지 않으셨다.>라는 말입니다. 괴이한 일을 주장하거나 말도 안 되는 요행이나 기적을 바라는 것이 나의 생활은 아닌지 반성한답니다. 복권을 사려고 하거나 복권이 당첨되면 어떻게 할 것인지 계획을 세우는 일부터 하기 시작합니다. 노력하여 공부하지도 않고 요행으로 좋은 대학에 합격하려고 하는 학생들이나, 열심히 선교하지 않고, 교회가 가득차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주변에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안 되는 일을 억지로 밀어붙이거나 무조건 힘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정치가들이나 우격다짐으로 틀에 맞추려는 사람들이 또한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권력이나 돈의 힘을 빌려 모든 일을 해결하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순리는 완전히 무시당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일하려는 사람은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사람들을 당혹하게 하고, 힘들에 하는 것은 순서도 없고, 질서도 없고, 정리정돈도 되지 않은 고집으로 혼란스럽게 하는 것입니다. 요즘의 내가 바로 그런 모습입니다. 도대체 정리된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매일 머리 속은 청 비어있는 것 같고, 정리되지 아니한 상태로 그날그날의 일에 매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대피정을 가든지 진공소제기로 내 마음이나 머리 속을 완전히 청소하고 비워내야 이 완고한 모든 사슬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야 내가 순수해져서 하느님의 말씀도 선포하고, 정리정돈 된 상태에서 바르게 세상을 보고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의 완고함을 꾸짖으십니다. 그리고 아직도 버리지 못하는 유령이나 귀신타령을 하고, 괴이하게 생각하고 믿음을 갖지 못하는 것을 나무라십니다. 자신들의 일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언제나 중요한 고비에서 방향을 잘못 잡고 있으며 잘못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혼란에 가득차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자들의 말도 믿지 못하고, 부활하시어 식탁에 앉으신 예수님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지금 사람들은 혼란스러울 뿐입니다. 그냥 아무 것도 하기 싫은 것이고, 세상이 두려울 뿐입니다. 먹고 살 일이 걱정되기도 하고, 세상에 복음을 선포할 일에 대하여는 엄두도 내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복음 선포의 사명을 주십니다. 바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나에게도 말입니다.
<나는 죽었었지만, 보라, 영원무궁토록 살아 있다.>
▥ 요한 묵시록의 말씀입니다. 1,9-11ㄴ.12-13.17-19
9 여러분의 형제로서, 예수님 안에서 여러분과 더불어 환난을 겪고 그분의 나라에 같이 참여하며 함께 인내하는 나 요한은,
하느님의 말씀과 예수님에 대한 증언 때문에 파트모스라는 섬에서 지내고 있었습니다.
10 어느 주일에 나는 성령께 사로잡혀 내 뒤에서 나팔 소리처럼 울리는 큰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11 그 목소리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네가 보는 것을 책에 기록하여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보내라.”
12 나는 나에게 말하는 것이 누구의 목소리인지 보려고 돌아섰습니다. 돌아서서 보니 황금 등잔대가 일곱 개 있고,
13 그 등잔대 한가운데에 사람의 아들 같은 분이 계셨습니다. 그분께서는 발까지 내려오는 긴 옷을 입고
가슴에는 금 띠를 두르고 계셨습니다.
17 나는 그분을 뵙고, 죽은 사람처럼 그분 발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러자 그분께서 나에게 오른손을 얹고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나는 처음이며 마지막이고 18 살아 있는 자다.
나는 죽었었지만, 보라, 영원무궁토록 살아 있다. 나는 죽음과 저승의 열쇠를 쥐고 있다.
19 그러므로 네가 본 것과 지금 일어나는 일들과 그다음에 일어날 일들을 기록하여라.”
축일4월 24일 성녀 마리아 (Mary)
신분 : 신약인물, 부인
활동 연도 : +1세기경
같은 이름 : 메리, 미르얌, 미리암
요한 복음은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와 이모,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레나가 서 있었다.”(19,25)라고 전해주었다. 마르코 복음은 같은 장면에서 “여자들도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들 가운데에는 마리아 막달레나,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살로메가 있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갈릴래아에 계실 때에 그분을 따르며 시중들던 여자들이었다.”(15,40-41)라고 했다. 이어서 “안식일이 지나자, 마리아 막달레나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는 무덤에 가서 예수님께 발라 드리려고 향료를 샀다. 그리고 주간 첫날 매우 이른 아침, 해가 떠오를 무렵에 무덤으로 갔다.”(16,1-2)라고 했다. 그들이 무덤이 도착했을 때 이미 입구를 막았던 돌은 굴려져 있었고, 무덤 안에는 하얗고 긴 겉옷을 입은 젊은이가 앉아 있었다. 그리고 주님께서 이미 부활하셨다면서 전에 말씀하신 대로 갈릴래아로 가실 것이라 알려주었다. 그들은 겁에 질려 무덤에서 나와 달아났다고 마르코 복음은 전해주었다(16,3-8).
성 히에로니무스(Hieronymus, 9월 30일)는 요한 복음이 언급한 클로파스(Clopas)의 아내 마리아(Maria)를 성모 마리아와 자매 사이로 해석했고, 작은 야고보와 요세는 예수님과 사촌 사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예수님의 12사도 중 한 명인 알패오(Alphaeus)의 아들 야고보(마태 10,3; 마르 3,18; 루카 6,15)와 ‘주님의 형제’ 야고보(마태 13,55; 마르 6,3; 갈라 1,19)를 같은 인물로 제시하면서 클로파스를 알패오(Alphaeus)와 동일시했다. 결국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는 알패오의 아내 마리아이자 예수님과 사촌지간인 사도 성 소 야고보(Jacobus, 5월 3일)의 어머니라고 설명하였다. 중세 전통은 성녀 마리아를 안식일 다음 날 빈 무덤에서 주님의 부활을 처음 목격한 ‘세 명의 거룩한 마리아’ 중 한 명으로 간주하였다. 옛 “로마 순교록”은 4월 9일 목록에서 클로파스의 아내 성녀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복되신 마리아의 자매로 소개하였다. 2001년 발행되어 2004년 일부 개정된 최신 “로마 순교록”은 4월 24일 목록에서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살로메와 마리아 막달레나(Maria Magdalena, 7월 22일)를 부활절 아침에 주님의 시신에 발라 드릴 향료를 갖고 무덤에 갔다가 처음으로 주님의 부활 소식을 들은 거룩한 여인들로 예루살렘에서 함께 기념하고 있다고 기록하였다.♧
축일4월 24일 성녀 살로메 (Salome)
신분 : 신약인물, 부인
활동 연도 : +1세기경
같은 이름 : 마리아, 메리, 미르얌, 미리암, 쌀로메
살로메는 평화를 뜻하는 히브리어 샬롬(shalom)에서 파생되어 유다인에게 흔한 이름으로 사용되었다. 신약성경 안에서 살로메라는 이름은 마르코 복음 안에서 두 번 등장한다. “여자들도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들 가운데에는 마리아 막달레나,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살로메가 있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갈릴래아에 계실 때에 그분을 따르며 시중들던 여자들이었다.”(15,40-41)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무덤에 묻히실 때 마지막까지 그 곁에서 지켜보았던 여인 중 한 명으로 안식일 다음 날 이른 아침에 예수님께 발라 드릴 향료를 사서 무덤으로 갔다. “안식일이 지나자, 마리아 막달레나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는 무덤에 가서 예수님께 발라 드리려고 향료를 샀다. 그리고 주간 첫날 매우 이른 아침, 해가 떠오를 무렵에 무덤으로 갔다.”(16,1-2) 그들이 무덤이 도착했을 때 이미 입구를 막았던 돌은 굴려져 있었고, 무덤 안에는 하얗고 긴 겉옷을 입은 젊은이가 앉아 있었다. 그리고 주님께서 이미 부활하셨다면서 전에 말씀하신 대로 갈릴래아로 가실 것이라 알려주었다. 그들은 겁에 질려 무덤에서 나와 달아났다고 마르코 복음은 전해주었다(16,3-8).
마태오 복음은 십자가 아래에서 끝까지 주님을 지켜보았던 많은 여자들이 있었고, 그들은 갈릴래아에서부터 예수님을 따르며 시중들던 이들이라 소개하며 “그들 가운데에는 마리아 막달레나,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 제베대오 아들들의 어머니도 있었다.”라고 기록하였다(27,56). 두 복음서가 같은 내용을 전하고 있다면, 살로메는 예수님께서 처음 제자로 부르신 네 명의 어부에 속한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마태 4,21)의 어머니가 된다. 그렇게 보면 주님의 나라에서 자신의 두 아들을 예수님의 오른쪽과 왼쪽에 앉혀 달라고 청했던 부인도 살로메이다(마태 20,20-21). 반면 요한 복음은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와 이모,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레나가 서 있었다.”(19,25)라고 전해주었다. 그래서 살로메가 예수님의 이모라고 추론할 수도 있지만 “그 밖에도 예수님과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온 다른 여자들도 많이 있었다.”(마르 15,41)라는 말씀으로 미루어보아 확실하지는 않다. 루카 복음은 십자가의 죽음을 지켜본 여자들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고(23,49), 주간 첫날 무덤을 찾은 이들에 대해서는 “그들은 마리아 막달레나, 요안나, 그리고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였다. 그들과 함께 있던 다른 여자들도 사도들에게 이 일을 이야기하였다.”(24,10)라고 전해주었다.
신약성경 안에서 살로메의 신원을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전통적으로 마르코와 마태오 복음의 증언을 중심으로 살로메는 제베대오의 아내이며, 사도 성 대 야고보(Jacobus, 7월 25일)와 성 요한(Joannes, 12월 27일) 복음사가의 어머니로 보고 있다. 그리고 갈릴래아에서부터 예수님을 믿고 따르며 시중들던 충실한 여성 제자임이 분명하다. 중세의 전통에 따르면 성녀 살로메는 안식일 다음 날 빈 무덤에서 주님의 부활을 처음 목격한 ‘세 명의 거룩한 마리아’ 중 한 명으로 간주되었다. 그래서 옛 “로마 순교록”은 10월 22일 목록에서 그녀의 이름을 ‘마리아 살로메’(Maria Salome)로 소개하며 주님의 장례를 지켜보았던 신심 깊은 여인으로 기록하였다. 2001년 발행되어 2004년 일부 개정된 최신 “로마 순교록”은 4월 24일 목록에서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살로메와 마리아 막달레나(Maria Magdalena, 7월 22일)를 부활절 아침에 주님의 시신에 발라 드릴 향료를 갖고 무덤에 갔다가 처음으로 주님의 부활 소식을 들은 거룩한 여인들로 예루살렘에서 함께 기념하고 있다고 기록하였다.♧
축일4월 24일 성 피델리스 (Fidelis)
신분 : 신부, 선교사, 순교자
활동 지역 : 지그마링엔(Sigmaringen)
활동 연도 : 1578-1622년
같은 이름 : 삐델리스
1578년 10월 독일 슈바벤(Schwaben) 지역의 지그마링엔에서 태어난 성 피델리스는 프라이부르크(Freiburg) 대학교를 마치고 법학박사 과정을 밝으면서 그 대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쳤다. 이때 그는 스스로 회개생활을 시작했는데, 고행자의 옷을 입고 술은 입에 대지도 않았다. 1604년 그는 잠시 귀족 자제들을 가르치는 교사로 봉직하다가 법학박사 학위를 받은 후 프랑스 북동부 알자스(Alsace) 지방의 아인지스하임(Ensisheim)에서 변호사로 개업하면서부터 그의 인격과 학문이 괄목할 정도로 발전하였고 또 인정을 받았다. 그리고 그는 가난한 사람들의 변호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 후 그는 1612년에 사제품을 받고 그해 10월 4일 프라이부르크에 있는 카푸친 작은 형제회에 입회하여 피델리스라는 수도명을 얻었다. 그는 사제 서품을 앞두고 자신의 유산을 반으로 나누어서 한 몫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다른 한 몫은 신학교를 지원하려는 목적으로 주교에게 증정하였다. 사제로 서품된 후 그는 주로 설교와 고해성사를 주는 임무에 헌신하였다. 그러나 그의 인품과 재능을 익히 알고 있던 주교는 스위스 그리존(Grison) 지방의 츠빙글리파(Zwinglian)에게 파견하여 정통 교리를 수호하도록 명하자, 그는 8명의 다른 카푸친 작은 형제회 회원들과 함께 성공적으로 임무를 수행하였다.
그러나 그 지방 사람들은 오스트리아로부터 독립하는데 그가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하고 반기를 들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그는 며칠 밤을 기도하면서 지냈다. 1622년 2월 24일 그루쉬(Grusch)에서 열정적으로 설교한 뒤 한 동안 탈혼 상태에 빠지기도 했다. 그 후 그는 '카푸친 작은 형제회 수사들을 죽여라!'라는 외침을 무시하고 세비스(Sewis)로 돌아와 미사를 봉헌하다가 성난 군중들 앞에 당당히 나아가 “주님도 하나요, 믿음도 하나이며, 세례도 하나이다.”는 설교를 하고 군중들의 공격을 받아 1622년 4월 24일 순교하였다. 이 사건으로 수많은 츠빙글리파 성직자들이 개종하였다. 그는 1729년 3월 12일 시복되었고, 1746년 6월 26일 교황 베네딕투스 14세(Benedictus XIV)에 의해 시성되었다.
오늘 축일을 맞은 마리아 (Mary), 살로메 (Salome)자매들과 피델리스 (Fidelis)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