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담
안녕하세요?
먼저, 제 아들과 며늘아기의 혼인을 축하해주시기 위해 바쁘신 일들 뒤로 하시고 이렇게 귀한 발걸음을 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요 며칠 참 행복했습니다. 제가 장가를 가는 것도 아닌데 왜 이리 설레는지요. 하나뿐인 외동아들이 장가를 가는 날이니 설레고 행복한 건 당연하겠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오늘은 아들이 장가를 가는 날이면서 한 사람을 가족으로 맞이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아내의 표현으로는 내 편이 하나 더 생기는 날이지요. 그래서 요 며칠 제가 느낀 행복이 좀 두꺼웠던 같습니다.
제 앞에 있는 오월의 신부, 이제는 제 며늘아기이니 이름을 불러도 되겠네요. 서현이를 처음 만났을 때 아들을 행복하게 해주어서 고맙다고 말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 행복을 가져다준 서현이가 고맙고 사랑스러웠습니다. 얼마 전에는 아들에게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조금 늦게 장가를 가다 보니 엄마 아빠는 늙을 일만 남았지만 그래도 서현이 앞이라면 즐겁고 행복하게 늙어갈 수 있을 것 같다고요.
총명하고 사려 깊고 아리따운 따님으로 잘 양육해주시고 아들과 혼인할 수 있도록 해주신 두 분 부모님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이제 덕담을 짧게나마 해야 하는데 솔직히 할 말이 별로 없습니다. 예전에는 어린 나이에 시집 장가를 가서 부모로서 걱정도 되고 이런저런 할 말이 많았을 텐데 요즘은 다들 장성한 나이에 혼인들을 하니까요. 그래도 짧게나마 제가 아들을 키우면서 있었던 일화 한 토막을 함께 나누는 것으로 덕담을 대신할까 합니다.
아들은 저를 닮아서 초저녁잠이 많았습니다. 저녁밥을 먹기가 무섭게 꾸벅꾸벅 졸다가 잠이 들곤 했는데 그러다 보니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공부를 해야만 했습니다. 아들을 깨우는 역을 제가 맡았는데 아들 방으로 건너가 “사을아, 오 분 뜸 들이는 시간이네.”하고 첫마디를 건네곤 했습니다. 그러면 아들은 제 품에서 5분 동안 뜸을 들인 뒤, 제 스스로 일어나 세수하고 공부를 시작했지요.
이 오 분 뜸들이기가 제가 아들을 키우면서 가장 잘한 일 같습니다. 매일 아침 아들이 들었던 첫소리는 공부하라는 말이 아니라 오히려 따뜻한 아빠의 품으로 오라는 사랑의 언어였기 때문이지요. 그런 어릴 적 경험이 아들의 인격 형성에도 도움을 주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그 덕을 지금 옆에 서 있는 신부가 가장 많이 누릴 것 같습니다만. 오 분 뜸 들이기의 미덕은 여유와 부드러움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존중과 배려이기도 하겠고요. 느림의 철학이 스며 있기도 합니다.
신랑 신부 모두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입니다. 아이들을 어떻게 만나는 것이 가장 잘 만나는 것일까? 그런 고민을 늘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쯤은 아이들을 느리게 만나는 것이 아이들을 가장 잘 만나는 거라고 믿고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부부 사이도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결혼 청첩장을 보니, 결혼, 아직 떠나지 않은 여행이라는 멋진 문구가 적혀 있더군요. 이제 그 여행을 오늘 떠나가 될 것입니다. 그 여정에서 순풍만을 만나기를 바라는 마음이야 간절하지만 살다보면 때로는 역풍을 만나기도 할 것입니다. 그때를 대비해서 덕담을 해주는 것이겠고요.
예기치 않은 태풍이나 돌풍을 만날 때마다 여유와 부드러움으로 서로를 응원하고 기다려주기 바랍니다. 가까운 부부 사이일수록 서로를 더 존중하고 배려해주기 바랍니다. 그리고 마음이 급하고 바쁠수록 뜸을 들이기 바랍니다. 서로의 눈 속을 오래오래 들여다보며 소유보다는 존재의 기쁨을 느긋하게 누리기 바랍니다. 어떤 목적지에 서둘러서 빨리 가려고 하기보다는 그 과정의 순간들을 사랑하고 감사하고 즐거워하기 바랍니다.
그렇게 5분 뜸 들이기의 지혜를 십분 활용하면서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지금처럼 서로 신뢰하고 사랑하며 백년해로하기 바랍니다. 오늘 준비한 덕담은 여기까지입니다. 고맙습니다.
첫댓글 에고 죄송합니다 선생님ㅠㅠ
늦게 알았네요ㅠㅠ
축하드립니다.
죄송하긴요. 고맙습니다.
결혼하는 아들 내외에게
아주 훌륭한 덕담을 해주셨네요
혹시 여기에 답글을 다시다면
5분쯤 뜸 들이다가 쓰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