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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약 보름간의 일정으로 이탈리아 돌로미테(Dolomite) 산군의 3대벽을 등반하고자 독일 뮌헨에 도착했다.
돌로미테 산군은 알프스 산맥 중 동부알프스에 속하는 이탈리아 북부산악지대를 말하는데 볼차노(Bolzano)를 중심으로 한 서부돌로미테와 코르티나(Cortina)를 중심으로 한 동부돌로미테로 구분할 수 있다. 1918년 오스트리아에서 이탈리아령으로 귀속되어 독일어와 이탈리아어가 공존하는 지역이다.
2009년 6월 UNESCO에서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는 천혜의 자연미를 간직한 돌로미테. 그 돌로미테를 대표하는 3대벽이 있는데 토파나(TOFANA)와 트레 치메 디 라바레도(Tre Cime Di Lavaredo), 그리고 최고봉 마르몰라다(Marmolada)가 그 곳이다.
뮌헨에서 차로 약 5시간 정도 거리에 위치한 도비아코(Dobbiaco) 지역은 남티롤 북부에 위치한 높이 약 1,230m로 돌로미티의 관문이라고 할 수 있다.
지역민의 거의 대부분이 독일계 민족이고 언어도 대부분 독일어를 많이 쓰며 사람들이 밝고 명랑하다.
이번 원정은 원정대장인 성기형을 위시하여 각자 담당역할이 있는데 차량렌탈 및 숙소예약 등의 행정은 미숙언니, 등반정보와 항공티켓, 현지도로교통정보 등은 김한진, 차량운전과 식량은 희규형, 기록과 회계는 내가 맡기로 배분되었다.
여기에서 첫 등반지인 TOFANA를 준비하였다.
압도적 Amphitheatre가 인상적인 TOFANA di Rozes
TOFANA산군을 구성하는 가장 높은 세 봉우리는 Tofana di Mezzo(3,244m), Tofana di Dentro(3,238m), Tofana di Rozes(3,225m)인데 그 중 우리가 등반하기로 한 곳은 Tofana di Rozes로 1864년 8월 29일 산토 시오르빠에스(Santo Siorpaes)와 안젤로 디마이(Angelo Dimai, 1819~1880)에 의해 초등되었다.
등반루트는 남면(South Face)의 ‘DIMAI’라는 고전루트로 1901년 코르티나(Cortina)지역의 유명한 산악가이드인 ‘안토니오 디마이(Antonio Dimai, 1866~1948)’에 의해 개척되었다.
DIMAI루트의 UIAA 난이도는 IV급 정도로 요세미티십진법체계로 비교하면 5.5~5.6급 정도이며 총 20피치 정도이고 벽 앞 시작지점 고도는 2,400m 정도이다.
29일 5명 모두 TOFANA 등반에 나섰다.
벽이 거대하므로 코스 시작지점은 전날 미리 가서 확인하였고 우리는 당일로 등반을 마칠 수 있도록 좋은 컨디션으로 리드미컬하게 등반하는 데 최선을 다하면 되었다.
등반인원 5명, 60M single-rope 두 동, 퀵드로우와 슬링다수, 블랙다이아몬드 C3 한 조, 캐머롯 몇 개 그리고 행동식으로 파워웰과 포카리스웨트가루, 건과일, 초코렛 등을 준비했다.
새벽부터 짙은 구름이 끼어 있고 부슬비가 내리며 간간히 천둥이 쳐서 등반을 할 수 있을까 다소 염려스러웠지만, 이곳의 날씨가 워낙 변덕스러워 일단 차를 타고 출발하였다.
Dobbiaco를 출발해서 1956년 동계올림픽 개최지이자 국제적인 스키관광도시로 유명한 코르티나 담패초(Cortina d‘Ampezzo)까지 차로 대략 40분 정도 소요되는데 급격한 커브의 오르막도로를 따라 대략 10분~15분 정도 오르면 TOFANA di Rozes 아래 위치한 DIVONA 산장(2,083m)에 도착한다.
1900~1930년대 동부알프스의 발군의 뛰어난 가이드였던 코르티나출신 안젤로 디보나(Angelo Dibona, 1879~1956)와 이름이 같은 이 산장은 개인이 운영하는 곳으로 여름에만 운영한다. 산장 주변의 기가막힌 풍광을 한참동안 넋놓고 바라보았다.
산장을 출발해서 부스러져 쌓여진 모래돌들로 이루어진 비교적 잘 드러나있는 트레일을 따라 약 한 시간 정도 오르면 루트 앞에 도착하게 된다.
날씨는 그닥 맑진 않고 계속 발 아래로 안개가 모여 시야는 허옇기만 하다.
장비를 착용한 한진이 먼저 선등하여 몇 개의 확보물을 설치하면 그 장비를 이용해 성기형이 또 다른 한 팀으로써 선등을 하고 나머지 후등자들은 대부분의 피치를 연등으로 올랐다.
등반은 기술적으로 전혀 어려움이 없어 모두들 릿지화를 신고 올랐지만, 봉우리의 스케일이 거대한데다 난이도는 낮아 등반흔적을 나타내는 하켄이나 길을 찾는 데에 애를 먹었다.
앞에서 리드하는 한진과 성기형은 그 피치의 그레이드에 맞는 라인, 루트의 전반적인 특징을 따라 길을 찾아나갔고 뒤에서 우리들은 진행이 막힐 때마다 한동안 기다리다가 제 길을 찾으면 부리나케 쫓아갔다.
오전 8시부터 등반을 시작한지 4시간 정도 지났을 무렵 8피치 인근에서 우박을 동반한 소나기를 맞았다. 돌로미테지역은 하늘이 맑다가도 오후 한 두 차례는 비를 맞을 수 있기 때문에 대비는 하고 있었지만, 천둥과 우박을 동반한 비는 두 시간을 뿌리고 나서야 밝은 햇살을 비춰주었다.
Dolomite라는 이름은 백색, 담황색, 적색, 갈색을 띈 퇴적암의 일종인 백운석(白雲石)에서 유래가 되었다. 이곳의 바위는 단단한 듯 하나, 쉽게 쪼개지고 부스러지기도 해서 조심해야한다. 빙하에 의한 침식과 풍화작용으로 독특한 장관을 볼 수 있지만, 어디로 떨어지는지 보이지도 않는 조그마한 돌 부스러기가 저 정상부에서부터 자유낙하하며 공기를 가르는 소리는 등줄기가 쭈뼛할 정도이다.
거대한 반구 형태의 협곡인 ‘amphitheatre' 구간으로 들어섰다. 사전을 통해선 이 구간에 대한 감이 오지 않았는데 현장에 도착해 사방을 둘러보고서야 정확한 표현이 와 닿는다.
압도되는 느낌의 웅장하고 거대한 원형극장 한 가운데 서 있는 듯한 느낌. 나는 밖에서 보았던 벽의 크기를 이 안에 들어와서야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등반 중 커다란 낙석으로 한차례 소동을 치른 침니구간의 중단, 작은 테라스에서 성기형이 비박을 결정하셨다. 어둠속에서 랜턴에 의지한 채 불확실한 정보만으로 함부로 움직이는 것은 위험하기에 우리는 각자 안전장치를 보완하면서 좁은 테라스에 불편한 자세로 비박에 들어갔다.
써머블랑켓은 비박의 1등 공신으로 그 밤에 우리의 온기를 가두어 무사히 밤을 지샐 수 있도록 해주었다. 자리가 좁아 희규형과 미숙언니는 앉지도 못하고 서서 버티다가 자리를 재정렬하여 겨우 엉덩이를 붙이기는 했지만, 밤새 그 누구보다 더 간절히 동트기만 바라고 바랬을 터이다.
산악전쟁의 격전지 트레 치메 디 라바레도(Tre Cime Di Lavaredo)
두 번째 대상지인 CIMA GRANDE(2,999m)는 거대한 봉우리라는 뜻의 이탈리아어로 독일어로는 Grosse Zinne라고도 하는데 섹스턴 돌로미테 자연공원(Parco naturale Dolomiti di Sesto)에 있는 트레 치메 디 라바레도(Tre Cime Di Lavaredo) 중 중앙에 위치한 가장 높은 봉우리를 말한다.
트레 치메 디 라바레도는 돌로미테를 대표하는 봉우리 중 하나로 치마 피콜라(Cima Piccola, 2856m), 치마 그란데(Cima Grande, 3003m), 치마 오베스트(Cima Ovest, 2972m) 등 3개 봉우리로 연결되어 있다.
중앙봉인 치마 그란데는 1869년 가이드인 프란츠 이너코플러(Franz Innerkofler)와 피터 샐츠(Peter Salcher)에 의해 남면으로 초등되었고 북벽은 1933년 에밀리오 코미치(Emilio Comici, 1902~1940)와 디마이 형제(Giuseppe Dimai, Angelo Dimai)에 의해 2박 3일간의 등반으로 초등되었으며 알프스 6대 북벽 중의 하나로 자리매김하였다.
우리는 치마그란데 북벽의 여러 루트 중에서도 알프스 북벽 등반의 전환점이 되었던 코미치-디마이(comici-dimai)루트를 등반할 예정이다.
[북벽 초등을 마친 후 코미치(가운데)와 디마이 형제]
이용대 선생님의 저서 ‘알피니즘 도전의 역사’를 살펴보면 에밀리오 코미치는 이탈리아 태생으로 ‘이탈리아의 국민적 산악인’으로 추앙받던 인물이다. 돌로미테의 수직 거벽들의 세계에서 활동하며 600개의 암벽을 등반했고, 200여 개의 초등루트를 개척해 6급 등반시대의 막을 여는 데 공헌했는데 특히 이 곳 치마 그란데 북벽은 550여 미터 높이 중 180미터가 오버행을 이룬 거벽으로 80개의 피톤을 사용하여 등반에 성공한 에밀리오 코미치의 초등기록은 등반역사에 길이 남을 성과로 빛난다.
코미치는 더욱 어려움을 추구하기 위하여 3년 후 자신이 초등한 루트를 단독으로 3시간 30분만에 재등함으로써 등반역사에서 직등주의(direttissima climbing)의 표본이 되고 있다.
치마 그란데(CIMA GRANDE) 등반을 위해 벽으로의 접근이 용이하며 역사적으로 전통있는 아우론조 산장(Rifugio. AURONZO)으로 이동하였다.
산장(Rifugio이/hütte독)이 위치한 곳은 해발 2,333m로 이탈리아 산악회(Club Alpino Italino)에서 후원 및 운영을 하고 있으며 사전 예약을 꼭 해야만 원하는 날짜의 이용이 가능한 관광명소이다.
트레 치메 디 라바레도(Tre Cime Di Lavaredo) 지역은 1차 세계대전 당시 군사·지리적 중요한 요충지로써의 흔적이 곳곳에 잘 보존되어 있어 관광객들이 많이 찾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돌로미테의 빼어난 자연경관을 중심으로 동으로 서로 남으로 북으로 지루할 틈 없이 이어진 트레일은 그 자체만으로도 이 곳을 찾을 충분한 이유임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한다.
아우론조 산장에서 트레일을 따라 라바레도 산장에 도착하면 피안 디 센지아 산장(Rifugio. Pian di Cengia/2,528M)과 로카텔리 산장(Rifugio. Locatelli/2,405M)으로 이어지는 여러 갈래의 트레일로 나뉘어진다. 각 트레일들은 트래커들이 쉽게 길을 따라갈 수 있도록 101번, 104번, 105번 이런 식으로 구분되어있다.
101번 트레일은 Locatelli산장으로 이어지는데 산장 오른쪽 뒤편에 우뚝 선 CIMA DODICI-ZWOLFERKOFEL(3,094M)에는 전쟁때 사용된 여러 개의 동굴을 쉽게 구경할 수 있다. 이 동굴에 들어가면 TRE CIME가 한 눈에 들어온다.
트레킹을 하다 지치면 트래일에서 잠깐 벗어나 곳곳에 드러난 푸른 초원의 바위에 걸터앉아 2,500~3,000M 의 연봉을 배경으로 준비한 도시락과 음료수를 마시며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아우론조 산장을 나서 왼쪽으로 나란히 서 있는 TRE CIME를 한바퀴 휘돌으면 약 한 시간 정도 걸려서 cima grande 벽 앞에 서게 된다.
Comici-dimai루트는 벽길이 450M, 등반길이 550M, 총 16피치로 최고난이도는 VII-(YDS 5.10b/c)이다. 준비한 장비는 토파나때와 비슷하나 60m 싱글로프 한 동이 더 추가되었다.
초반 8피치까지가 가파르고 오버행 구간으로 어려워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다.
주로 크랙이 계속되었는데 바위모양이 역층이라 발 홀드를 선택하는 데 여간 신중하지가 않다. 1초, 1초의 시간의 흐름이 길게만 느껴진다.
80년전(前) 시대의 등반기술과 능력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에밀리오 코미치의 등반성과가 그 당시 사람들을 얼마나 놀라게 했을지 알 듯 하다.
멀리 트레일을 따라 걷고있는 트레커들을 보다가 시선을 무심히 아래로 내리니 아찔한 고도감에 쭈뼛해진다. 북벽의 수직선상에 매달려 있음이 실감난다.
계속 시간을 체크하면서 오르는데 한 피치당 평균 40분 정도가 총 소요되는 것 같다.
등반 막바지의 침니를 찾는 데 시간을 허비하였고, 마침내 침니를 마치고 낙석이 유발되는 위험한 너덜구간을 아주 조심스럽게 기어올라 상단 테라스 직전에서 다섯 사람이 모두 모였을 때 비박을 결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서 비박하자’
비박이 우리 원정의 moto도 아니고 유행은 더더욱 아니건만 상황은 비박을 하지 않을 수 없게끔 벌어졌다.
또 한 번의 화끈한 비박을 하고 다음날, 안개가 사방을 휘감는 가운데 노말루트로의 하강을 무사히 마쳤다. 내리는 보슬비를 맞으며 지친 몸을 이끌고 아우론조산장으로 향한다.
등반과 트래킹을 같이 즐겼던 마르몰라다(Marmolada)
마르몰라다는 돌로미테 산군 최고봉으로 산세가 어마어마하게 웅장하고 당당한 위용을 내뿜는 곳으로 돌로미테 대표급답다.
등반을 위해서 아우론조에서 대략 두 시간 거리에 있는 'Malga Ciafela'라는 지역으로 이동했다.
이 곳에는 마르몰라다 정상을 단거리에 갈 수 있도록 Punta. Rocca(3,309m)까지 케이블카가 다닌다. 그곳에서 마르몰라다(3,343m) 정상까지는 걸어서 갈 수 있는데 케이블카를 타는 시점은 더운 여름이지만, 내리면 눈과 얼음, 빙하가 있으므로 준비를 하고 가야 한다.
등반루트는 Marmolada d'Ombretta(3,230M) 의 남면 ‘돈키호테(Don Quixote/6a+, 5.10a)’로
1979년 오스트리아 산악인 하인츠 마리아쳐(Heinz Mariacher, 1955~)와 레인하드 키에스틀(Reinhard Schiestl) 에 의해 초등되었으며 표고차 750M, 총 24피치로 옴브레타의 고전루트 중 하나이다.
Falier산장에서 출발해 1시간의 어프러치로 벽 앞에 도착, 희규형과 성기형, 미숙언니의 응원을 뒤로 한 채 한진과 둘이 등반을 시작하였다.
벽은 테라스를 중심으로 하단과 상단으로 나뉠 수 있는데 하단은 IV, V급의 비교적 쉬운 난이도이지만 상단은 간간히 VI, VI+의 난이도가 있어서 쉬운 난이도의 하단 벽을 빨리 끝내고 상단벽으로 진입하는 것이 관건인데 루트를 찾는 데 쓸데없는 시간이 소모되거나 잘못 진입하게 되면 비박은 정해진 절차가 될 것이다.
출발한지 4시간여만에 하단부 약 13피치를 끝내고 테라스에 도착했다. 오전 9시 예정했는데 45분 늦은 셈이다.
생각보다 굉장히 거대한 테라스다. 테라스라고 표현하는 게 맞을지 모르겠는데 워낙 암벽이 웅장하니 그 스케일에 맞게 하자면 테라스라는 표현도 틀린 건 아닌 것 같다.
역시나 부스러진 바위들로 뒤덮여진 너덜지대인데 이곳에서도 비박을 하는지 주변의 바위들을 모아 둥그렇게 담을 쌓아서 만들어놓은 1인용 텐트크기만한 터가 눈에 띄었다.
잠깐 휴식을 취한 뒤 아침내내 몰려든 안개가 물러난 틈에 상단 출발지점으로 올라갔다.
코스는 전반적으로는 어렵지 않았지만, 상단부 오버행 크랙이 있는 두 곳의 피치는 한진이 선등을 어떻게 했을까 싶을만치 동작연결이 난감했다.
캐머롯과 C3, 슬링을 이용하여 등반을 마쳤고 이번 원정에서 많이 사용하리라 예상했던 너트는 단 한번도 쓰지 않았다.
오후 2시 Ombretta정상을 목표로 했는데 3시 33분에 도착했다.
무사히 등반을 마친 기쁨이 그제서야 쓰나미처럼 몰려와 감격의 함성을 지르고 한진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서로 수고했다는 인사와 함께.
왼쪽으로는 Punta Rocca(3,264M)봉에 설치된 제일 높은 케이블카 탑승장, 오른쪽에는 그보다 아래인 Serauta(2,950M) 케이블카 탑승장이 보인다. 오후 4시 전까지 Serauta(2,950M) 케이블카 탑승장에 도착해야 안정권으로 이용할 수 있다.
우리는 시간이 늦어 케이블카를 탈 수 없으니 페다이아 호수(Lago di Fedaia) 쪽으로 나있는 트레일을 따라 하산하기로 했다. 짧은 크레바스를 넘어 무릎까지 빠지는 긴 설원을 걸어 내려가 드디어 빙하와 만났다. 빙하지대는 완전히 녹아 폭포를 형성한 곳이 있는가 하면 샤베트처럼 질퍽거리기도 하고 살짝 얼어있는 곳도 있었는데 엄청난 폭의 빙하지대를 횡단해야만 걷기 편한 트레일을 만날 수 있었다.
빙하지대를 벗어나 리프트케이블을 따라 나있는 트레일을 따라 약 1시간 정도 걸어 Fedaia고개(Passo Fedaia) 아래에 있는 Fedaia 케이블카장에 도착했다.
이번 돌로미테 등반은 출발전 거의 모든 준비를 미숙언니와 한진이가 도맡아하였고 오히려 다녀와서야 나는 등반대상지의 전체적인 개요나 원정전반에 대한 감을 잡았다.
개인적으론 준비없이 다녀온 등반지였지만, 경관이나 등반에 대한 기억들이 너무나 아름답게 자리잡아서 기회가 된다면 계속 갔다오고 싶은 곳이다. 세계자연유산으로 등록될 만한 가치가 충분한 곳이다.
좋은 기회를 만들어준 성기형과 미숙언니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해드리고 싶고 세 곳의 등반지 모두 선등을 한 한진이에게도 고맙다. 특히 마르몰라다 등반을 같이 해줘서 더 고마운 마음이다. 궂은 일 도맡아 해주신 희규형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잊을 수 없을 만큼 너무나 아름다운 돌로미테 등반이었다.
글 : 박윤정
사진 : 원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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