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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강소성 국제 교류- 江蘇省 南京, 그리고 대구 최 상 대 <대구건축가협회 부회장/ 영남대 겸임교수> |
한. 중 국제문화행사의 일환인 <2007 대구- 강소성 국제교류전>이 지난 9월 11일부터 15일까지 중국 남경시(江蘇省 南京市) 강소성 국화원(江蘇省 國畵院)에서 개최되었다.
대구에서는 한국예총 대구광역시연합회 회장단(단장 최영은회장)과 건축가협회, 미술협회, 사진협회, 문인협회 임원과 취재기자 등 총 16명이 참석하였다.
대구- 강소성 문화교류 행사는 전시분야와 공연분야로 나누어서 격년으로 양 도시를 교차방문 형식으로 진행하고 있는데 올해에는 대구의 전시분야가 중국 강소성을 방문하는 6회째(12년간 진행)의 문화교류행사이다.
대구 예총에서의 건축15작품, 미술35작품, 사진35작품, 문학5작품 등 90작품과 현지 강소성 문연회원 60작품과 함께 전시되었다.
도시로서의- 강소성과 남경
우리나라의 도(道)에 해당하는 행정단위로서 중국에는 23성(省)이 있으며 강소성(江蘇省)의 성도(省都) 남경시(南京市)와 동양의 베니스라 일컫는 소주(蘇州)를 포함하는 지역으로 양쯔강(長江) 하류의 비옥한 지형을 바탕으로 예부터 중국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 이였다.
정원(庭園)이 발달하여 유네스코 문화유산인 소주의 4대 정원 졸정원, 유원, 창랑정, 사자림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詩, 書, 畵, 많은 문인 예술가가 탄생하였고 최고 예술가에게 부여하는 대사(大師)를 가장 많이 배출하였기도 하다.
남경은 춘추전국시대 오나라가 도읍을 정한 이후 역대 10개 왕조가 도읍을 세웠던 고도(古都)이다.
1928년부터 37년까지 남경은 근대도시로서 면모를 이루는 시기였다.
장개석이 이끄는 국민당정부가 중국을 장악하며 남경시대의 수도가 되었고 이후, 49년 모택동의 중국 공산당에 밀려서 대만으로 쫒겨 가기 전까지 장개석은 남경에 애착을 가지고 많은 개발을 하였고 대만으로 채 옮기지 못한 문화적 유물이 많은 도시이다.
펄벅 여사가 이곳 남경대학에 정착하며 소설 대지(大地)를 집필하였다.
1937년 일본에 의해 30만 명이 희생되었다고 하는 남경대학살의 역사적 상흔(傷痕)을 가진 도시이며 올해 12월13일은 남경대학살 70주년이 되는 해 이기도 하다
최근 개봉된 이안감독 양조위 탕웨이 주연의 영화 색.계(色.戒)의 시대적 배경이 이 시기에 해당한다. 물론 도시적 배경은 홍콩과 상해이지만-.
-남경 중심부의 현무호공원, 산과 호수 강이 어우려져 있는 도시이다-
-수평적 고대도시의 분위기에서 수직적인 고층산업도시로 변화하고 있는 남경-
최근에 우리 지역 영남대학교가 강소성과 공동으로 인근의 양주(楊洲)시에 한국문화 교육기간 ‘세종학당‘ 설립을 발표하였다.
양주는 통일신라시대 최치원이 유학을 가서 관직에 등용 활동한 지역으로 신라인의 위상을 떨쳤으며 우리나라와의 역사적 문화적인 맥락이 현대로 까지 이어지고 있다.
남경은 세계 여느 도시와 다른 천혜의 자연적 지리적 구조를 가지고 있는 도시이다. 북서로는 양쯔강(長江)이 도시를 감싸 돌고 동(東)으로는 450M 높이의 자금산(紫金山)이 그리고 도시 중앙에는 현무호(玄武湖)가 자리하고 있어 산, 강, 호수가 어우려져 있어 도시환경적 풍수지리적 지형을 잘 갖춘 도시이다.
일행이 머물렀던 호텔 이름도 봉황대반점(鳳凰臺飯店)이며 곳곳에는 삼족오(三足烏) 문양, 현무(玄武) 봉황(鳳凰)의 지명 이름이 어우러져 있어 고대적 분위기를 지닌 도시이다.
-삼족오 고전문양의 봉황호텔 로고 디자인-
또한 현존하는 도시형 성곽(수원 화성과 같은)중에서 세계에서 가장 긴 32km길이의 남경성(南京城)이 현무호 주변을 감싸며 펼쳐져 있으며 중앙문, 해방문, 태평문, 중산문, 안덕문 등 열 개가 넘는 성곽 대문이 도시 곳곳에 상존(常存)하고 있고 서울의 중심대문인 광화문과 같은 이름의 대문도 턱 버티고 서 있다.
명나라 초대황제의 명호능이 있는 자금산(紫錦山)은 도시공원으로 개발 되였는데 아이러니 하게도 중국의 국부(國父) 손문(孫文)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는 중산능(中山陵)과 기념관도 3년을 걸쳐서 만든 장개석시대의 걸작품이다.
자금산 공원은 유적, 사찰, 기념관과 식물원, 천문대, 아쿠아리움, 등의 시설이 200여 곳이 있어 외부인이 최우선 방문하여서 문화 역사관광을 일괄적으로 할 수 있는 거대한 도시속의 문화공간이다.
-도심 번화가 풍경- -고층빌딩 광고벽-
-오래된 가로수가 잘 조성된 시가지- - 녹지정책이 잘 반영된 고가도로-
대운하와 강소성
국제적 상업도시 상해(上海)는 남경에서 동향으로 고속도로로 3시간 정도의 거리라고는 하나 최근 산업 교통량의 급증으로 5시간 이상이 소요되었다.
상해로 연결되는 고속도로 주변의 의흥(宜興), 무석(无錫), 상주(常州), 진강(鎭江)의 도시들도 지금은 외국의 기업들과 연구소, 공장, 학교, 아파트 등의 급속한 개발이 진행되며 양쯔강 하류지역 첨단산업 경제벨트를 형성하고 있는 지역이 되었다.
-강소성 주변은 최근 산업화로 첨단건축과 대도시로 발전하고 있다.-
-상해 외곽 순환도로-
이번 대선을 치루며 우리나라는 향후 국토 운하건설(運河建設)이 주요 개발정책으로 회자되고 있다.
중국의 최초 통일을 이루었던 진시황 시대의 상징물이 만리장성이라면 중국 재통일을 달성한 수(隋)의 상징물은 대운하 건설(605-610)이라 말할 수 있다.
수양제(隋煬帝)는 대운하를 개통하여 대륙 남북지역의 문물교류를 활발히 함으로서 남북분열을 통합하며 실질적인 중국통일을 완성하였다 한다.
또한 운하의 개통으로 군사 물자 보급로가 원활해지자 고구려 원정침략도 감행할 수도 있었다.
중국의 지형은 서고동저(西高東底)형으로 주요 강들은 서쪽l고산지에서 발원하여 동의 서해로 흐르고 있다.
중국의 운하는 대륙을 횡으로 흐르는 5대 강의 하류를 남북 종단으로 연결하여 북의 북경(北京)에서부터 남의 항주(杭州)까지 장장 2,000km를 이루는 대륙 몸체를 관통하는 대동맥을 형성하였다.
운하를 통하여 문물수송은 물론이며 홍수를 조절하고 황제가 남쪽 통치를 위한 원정 시찰을 원활케 하였고 겨울에는 강남지역으로 휴양지를 오갔다고 하니, 행정 군사 산업 관광 등의 다목적 기능을 운하가 담당하는 것이다.
지금 중국은 경제 활성화에 따라서 내륙 교통 수로를 위한 상해에서 북경 까지 현대식 운하공사를 최근에 시작하였다. 양자강 하류 지대가 낮아 물길이 많고 농산물 문화적 산업적 물자가 풍요로 왔던 강소성 지역이 대운하의 발원지이다.
대구 예총 - 강소성 문연
‘한국예술문화단체 총연합회’(예총)가 한국의 문화예술을 대표하는 단체라고 한다면 중국은 ‘中國文學藝術界聯合會‘(문연)가 문화예술을 대표하는 국가기관이며 산하에 미술가협회 등 14개의 분과가 있어 중국에서 최다 조직을 가지고 있다.
主席, 副主席, 秘書 주임 서기 등으로 일컫는 간부및 직원들은 국가 공무원의 당 소속이며 예술가들도 실력과 경력으로 서열 급수가 정해져있어 화가들도 ‘미술대사’ ‘國家1級 美術師’,, ’國家2級 美術師’ 등으로 칭한다.
내가 받은 남경예술대학 미술학장님 명함의 직책은 만리장성만큼이나 길어 보인다.
<全國政府常委 江蘇省 副主席/ 民革中央黨委 江蘇省委 主席/ 江蘇省 美術協會 副主席/ 南京藝術學院院長/ 敎授 >
아마도 그분들은 소속과 명예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명분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 같다. 행사장 개회식에서 연설은 우리의 의례적이고 관례적인 인사말과 달리 웅변과 같이 열성적이고 축사(祝辭)의 원고도 무척이나 길다.
우리말 통역까지 할라치면 두 배의 시간을 예측해서 화장실 미리 다녀오고 인내력 지구력을 가져야 할 것이다.
특히 만찬장에서는 간빠이 할 때마다 일장 연설을 한 말씀씩은 꼭 해야 하는 그들의 열성은 감탄스럽고 도수가 높은 술 일일이 대작하며 손님을 대하는 정성은 우리보다도 훨씬 외교적 기질(?)을 갖추고 있다고 여겨진다.
9월12일- 9시30. 전시장 개막식 (강소성 국화원)
10시30. 공식 회의 (강소성문연 회의실)
중국대표 10인 한국대표 15인 참석.
2008 교류행사는 공연부분으로 중국측이 10월 문화의 달에 한국을 방문,
남경의 대표적인 민속공연과 현대음악의 종합 공연단 구성,
세부사항과 미래 교류방향을 논의하다.
-대구예총, 강소성문연 대표회의- -시가지의 교류 행사 광고탑-
대구예총은 회장단 임기 4년으로서 회원 선거에 의해 회장이 선출되고 집행부가 교체되어서 사무국 중심이라기보다 집행부 중심의 업무에 비해서 강소성 문연의 조직은 사무직원 내부에서 거의 승급이 이루어지며 집행부 임원들은(주석, 부주석) 십 수 년 동안 문연 업무를 지켜 와서 그들은 우리의 과거 회장단과 인물의 면면을 환히 뚫고 있었다.
4년전 군 대체복무 인원으로 파견해 있던 張君은 지금은 정직원이 되어서 행사기간 내내 우리일행을 능숙하게 안내하였고 사무국장은 부주석이 되어있었다.
아마도 그들은 평생직장으로 남아서 문화정책 전문가가 되어 있을 것이다.
일본 센다이 문화 교류행사 경우에도 비슷한 경우였다. 센다이 미야기현 예술협회 사무국장은 고교를 졸업하고 협회에서만 30여년을 재직하며 실무는 물론, 지역의 문화예술 지킴이, 행정가 역할을 하였고 오야마 이사장은 95년 대구와의 문화교류 첫해부터 지금까지 20여년동안을 협회를 지켜오며 민간 외교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의 중국과의 교류에서 우리가 가진 경제력과 대중문화의 우월성으로 한국을 우러러 평가하고 높게 보아온점, 그래서 과분한 예우를 받아온 점, 분명 있을 것이다.
지금의 추세대로 중국경제의 고속 성장으로 경제우위의 위치를 갖게 되고 한류의 거품이 빠져나갈 때를 가정한다면 앞으로 우리의 위상과 현재와 같은 문화교류의 방식이 지속적으로 유지될 것인가?. 시스템을 재점검해야할 시기라고 생각한다.
-중국전통건축의 국화원 본관 정문-
-언덕위의 전통기와집의 국화원 전시관 -
전통적 문화공간- 국화원 (國畵院)
<2007 대구- 강소성 국제교류전>이 열린 강소성 국화원(江蘇省 國畵院)은 문연과는 독립되어 운영하는 예술조직으로서 미술창작실과 전시관을 운영하고 있다.
원대이후 각 왕조의 80%이상의 대가(중국화,서화)가 강소성 출신이었다. 강소성 국화원은 바로 이러한 옥토위에 주은래 총리의 관심과 지원을 받으며 1957년 세워진 북경, 상해, 강소 3대 화원중 하나이다. 국화원 소속의 일정 작가들은 작업실에 출근하여 창작활동을 하며 월급을 받는다.
국화원은 건물은 기와집 형태의 전통건축물로서 정원과 마당을 가진 커다란 저택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본관건물과는 별개로 언덕 위 느티나무 그늘에 위치한 전시관 건물은 졸정원 이나 유원처럼 중국 전통건축의 배치와 양식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건물로서 형태는 그대로 보존되고 내부 시설은 현대식으로 개조하여서 전시공간으로 변형한 전통적 문화공간이다.
- 전통주거건물을 도심 문화전시 공간으로 훌륭하게 전환하였다-
-전시관내의 접견실 회의실, 전통적 분위기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중정을 중심으로 ‘ㅁ자‘ 형태의 집의 내부공간은 전시장, 사무실, 접견실이 회랑으로 연결되어있고 연결 공간의 사이와 틈에서 보이는 작은 외부 공간들은 여유로움과 경관의 즐거움을 주고 있다.
기와집 실내의 낮은 천정 높이와 작은방들의 공간은 전시장 기능으로서는 협소하게 느껴지는데 상대적으로는 휴먼스케일이 주는 친근함과 안정감을 느끼게 한다고도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전시장 내부공간 분위기-
-전시장 내부공간 분위기
-서까래 천정곡선을 응용한 전시장 내부 디자인-
최근 서울의 북촌마을(원서동 계동 삼청동)을 중심으로 전통한옥(傳統韓屋)이 살아나고 있다. 살림집은 물론 레스토랑, 와인샆, 커피솦, 디자인사무실, 한의원, 치과의원이 목조 서까래 아래에서 분위기있는 퓨전형태의 건축문화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한옥의 장점은 살리고 내부공간과 시설은 현대화한 기와집에서 스파게티와 보르도와인으로 식사를 하고 카푸치노를 즐기며 청마루와 작은 마당에서는 실내 음악회를 감상한다.
그나마 북촌은 서울시에서 어려움을 무릅쓰고 80년도부터 한옥 보존지구로 지정해온 정책의 결과이기도 하다.
지역에서도 대구도시를 재발견하자는 바람이 불고 있다.
‘골목문화’ ‘한옥경관’ ‘도시의 재생’ ‘공공디자인’ 의 키워드 속에 ‘전통 공간 살리기‘ ’문화공간의 재생’ 같은 코드를 결합해 보면 문화도시로서의 품격이 한층 높아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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