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흔히 말하지만 그렇지 않은 단어들도 가끔씩 만나게 된다. ‘남다’와 ‘넘다’는 말 그대로 ‘아’와 ‘어’만 다른데 뜻이나 용법이 묘하게 겹치는 부분이 있다. ‘낡다’와 ‘늙다’는 ‘아’와 ‘으’가 다르지만 ‘낡다’가 본래 ‘’였으니 같은 부류이다. 소위 모음 조화에 의해 ‘아’와 ‘어’가 짝을 이루고 ‘’와 ‘으’가 짝을 이루며 만들어진 단어이다. 이에 비하면 ‘썩다’와 ‘삭다’는 ‘아’와 ‘어’만 다른 것이 아니라 ‘ㅆ’과 ‘ㅅ’도 다르니 다른 부류의 단어처럼 보인다. 그러나 ‘썩다’도 과거에는 ‘석다’였으니 결국 ‘아’와 ‘어’만 다른 셈이다. 물론 ‘썩다’든 ‘삭다’든 결국은 미생물의 작용에 의해 상태가 변하는 것이니 의미 면에서도 상당히 유사하다.
그런데 ‘썩다’와 ‘삭다’가 음식에 적용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썩은 음식은 먹으면 탈이 나니 절대 먹지 말아야 하지만 삭은 음식은 독특한 풍미와 영양 때문에 오히려 사랑을 받는다. 화학적으로 ‘썩다’와 ‘삭다’를 명확하게 구분하기란 쉽지 않다. 효모나 세균 등의 미생물이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 등의 유기 화합물을 분해시키는 과정은 결국은 같다. 미생물의 처지에서는 이러한 분해 과정을 거쳐 에너지를 얻고자 하는 것이니 대상물의 상태가 어떻게 변하든, 어떠한 냄새가 나든 알 바 아니다. 사람들이 그 결과물을 가지고 먹을 것과 못 먹을 것, 이로운 것과 해로운 것, 고약한 것과 구수한 것을 구별할 뿐이다.
한자어로 ‘썩다’는 ‘부패(腐敗)’라 하고 ‘삭다’는 ‘발효(醱酵)’라고 한다. 한자어로는 소리와 뜻이 명확하게 구별되지만 우리말은 소리도 비슷하고 뜻도 겹치는 셈이다. 그러나 화학적으로 본다면 우리말이 더 정확한 것일 수도 있다. 유기물을 썩게 만드는 균은 부패균이라 하고, 삭히는 균은 효모균이라 하는데 고유어로는 ‘뜸팡이’이다. 곡물류를 발효시켜 만든 각종 장(醬), 생선을 발효시켜 만든 갖가지 젓갈, 동물의 젖을 발효시켜 만든 유가공품 등이 모두 뜸팡이의 활동 결과 생긴 부산물이다. 뜸팡이가 ‘먹고 남긴’ 것을 인간이 다시 먹는 것이니 생태계의 순환 면에서 따져 보면 극히 효율이 높은 과정이다. 인간이 먹고 남긴 것을 부패균이 다시 분해하니 미물(微物) 중의 미물이지만 미생물들의 그 역할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청국장을 비롯한 여러 종류의 장이나 동물의 젖을 가공한 유가공품은 ‘삭히다’란 말보다는 ‘발효시키다’란 말을 더 많이 쓴다. 반면에 어류나 갑각류를 재료로 해서 만드는 젓갈류는 아무래도 ‘삭히다’란 말이 더 잘 어울린다. 오래오래 삭혀서 푹 삭은 것은 ‘곰삭다’란 말을 써서 의미를 더하기도 한다. 해산물로 만든 젓갈류는 본래 삭히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썩지 않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해산물에 소금을 듬뿍 뿌리면 부패균의 작용이 억제되고 발효균만이 작용하게 되니 썩지 않고 삭게 되는 것이다. 마치 오랑캐로 오랑캐를 막는다는 이이제이(以夷制夷)처럼 균으로 균을 막는 격이다.
젓갈도 삭힌 음식으로 유명하지만 삭힌 음식의 대표는 누가 뭐래도 홍어다. 홍어를 적당한 온도에 두면 발효가 시작되고 그 과정에서 암모니아가 발생한다. 여름날 재래식 화장실의 소변에서 나는 역한 냄새가 바로 암모니아 냄새다. 이 암모니아가 다른 잡균들의 번식을 막으니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암모니아 냄새가 짙어진다. 그렇게 푹 삭은 홍어 한 점을 입에 넣고 씹으면 암모니아 때문에 코가 뻥 뚫리고 눈이 맵기까지 하며 심지어는 입천장이 벗겨지기도 한다. 물컹한 질감의 오래된 생선살에서 뒷간 냄새가 혀, 입, 코, 눈을 모두 괴롭히니 쉽게 접근하기 힘든 음식임에 틀림없다. 그렇지만 전라도 지역의 잔칫상에서는 빠져서는 안 될 음식이고,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오기 어려운 맛이기도 하다. 막걸리와 함께 먹는 ‘홍탁’도 일품이고, 묵은지에 돼지고기와 삭힌 홍어를 싸 먹는 ‘삼합’은 더더욱 별미다.
전라도 해안에 홍어가 있다면 경상도 해안에는 과메기가 있다. 단지에 넣어 통째로 삭히는 홍어와 달리 과메기는 청어나 꽁치를 덕장에 걸어 말리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삭힌다. 추운 겨울날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면서 청어나 꽁치의 기름기가 좔좔 흐르며 발효된다. 홍어만큼의 고약한 냄새는 아니지만 생선 특유의 비릿한 냄새에 발효 과정에서의 냄새까지 더해져 역시 묘한 냄새가 난다. 그러나 이 역시 썩은 냄새가 아닌 삭은 냄새임에 틀림없다. 영산포 인근의 지역 음식인 삭힌 홍어가 전국으로 퍼져 나갔듯이, 구룡포 인근의 지역 음식인 과메기 또한 전국적인 인기를 누리는 음식이 되었다.
그런데 어느새 심보 고약한 이들이 홍어와 과메기를 엉뚱한 곳에 써 먹기 시작한다. 전라도를 ‘홍어’라 칭하고, 경상도를 ‘과메기’라 부른다. 홍어는 전라도 사람, 그것도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사람, 그래서 없애 버려야 하는 사람의 뜻이 된다. 과메기는 경상도 사람, 비릿한 기름기가 흐르는 사람, 그래서 쓸어버려야 하는 사람의 뜻이 된다. 전라도와 관계된 얘기만 나오면 홍어 냄새가 나니 공격하자는 말이 나온다. 경상도와 관계된 얘기만 나오면 과메기 냄새가 나니 소탕하자는 말이 나온다. 쓰잘 데 없는 지역감정이 애꿎은 음식을 걸고넘어지는 것이다.
홍어든 과메기든 음식은 죄가 없다. 홍어는 서해안에서 많이 잡히고 과메기의 재료인 청어와 꽁치는 동해안 쪽에서 많이 잡힌다. 잡히는 곳이 다르니 그것으로 만든 음식의 분포도 다르다. 전라도에서는 홍어를 삭혀 먹고, 경상도에서는 청어와 꽁치로 과메기를 만들어 먹는다. 음식은 재료의 산지에서 만들어 먹는 것이 최선이니 전라도의 홍어든 경상도의 과메기든 잘못이 없다. 홍어의 냄새는 가미한 것이 아니라 발효되면서 홍어 자체에 있던 암모니아가 나와 톡 쏘는 냄새와 맛이 느껴지는 것일 뿐이다. 과메기의 냄새는 물고기 본래의 냄새일 뿐이고 기름기 또한 청어나 꽁치가 건조되는 과정에서 몸속의 기름이 몸에 좋은 성분으로 바뀐 것일 뿐이다.
홍어와 과메기가 이런 뜻으로 쓰이게 된 데에는 정치인들의 잘못이 크다. 국산 홍어가 한참 귀할 때, 대통령의 가신들이 흑산도산 참홍어를 싹쓸이한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가신들이 온갖 비리에 연루되어 있다는 소문이 홍어 냄새보다 더 강하게 퍼져 나간다. 애꿎은 홍어가 그 죄를 뒤집어쓰게 된다. 대통령의 고향이 하필 과메기의 고향인데 그 지역구의 국회 의원인 대통령의 형님께서 꽤나 큼직한 비리를 몇 건 저지르더니 결국에는 감옥에 가게 되었다. 한창 인기를 구가하며 전국적으로 퍼져 나가던 차에 과메기 또한 비린내의 대명사가 된다.
정치인들이 이러한 잘못을 저질렀다면 그들의 죄를 묻고 벌을 주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애꿎은 음식과 그것을 먹는 사람들을 싸잡아 비난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썩은 이들 때문에 삭은 음식이 매도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근본도 없는 지역감정 때문에 영혼이 삭아 썩은 말들을 뱉어 내는 것도 할 짓이 못된다. 지금의 해묵은 지역감정도 결국은 곰삭아 악취가 아닌 향기로 바뀔 날을 기대해 본다.
글_한성우(인하대학교 한국어문학과 교수)
이 글은 필자가 2016년에 펴낸 ≪우리 음식의 언어≫(어크로스)에서 일부를 추려 내어 다시 쓴 것이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