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제'라고 생각하고 용기를 내어 못난 글 올려봅니다. 많은 지도 부탁드립니다.
벙어리장갑
권보옥
찬 공기가 쨍하고 하늘을 가른다. 헐벗은 나무는 울부짖고 언 땅은 시퍼렇게 멍들었다. 여리고 작은 몸은 제 몸보다 더 큰 먹이를 지고 가는 개똥벌레처럼 뒤뚱거리며 학교로 가고 있다. 이불속에서 데운 따뜻한 온기를 아직은 간직하고 있지만 곧 찬 바람과 언 땅으로 손끝, 발끝이 시려올 것이다.
우리가 어릴 때는 살을 에는 추위였다. 추위가 오기 전에 엄마는 동장군과 싸울 장비를 마련하셨다. 털모자, 토끼털 귀마개, 그리고 장갑과 털신까지. 오일장에서 마련하거나 큰 시장(서문시장)에 가서 필요한 것을 준비하기도 하셨다.
어느 해 어머님은 오일장에 가서 앙고라실로 짠 털이 보송보송한 빨간 벙어리장갑을 사 오셨다. 색깔만 봐도 너무 예쁘고 따뜻해 보였다. 장갑 속에 손을 넣으니 토끼를 안을 때의 포근함과 따뜻함이 느껴졌다. 이번 겨울에는 이 장갑만 있으면 아무리 매운 추위도 거뜬히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엄마는 털실로 길게 끈을 만들어 장갑 끝에 매어주셨다. 장갑은 어린이들에게는 쉽게 잊어버리기 십상이다. 한 짝을 잃어버리면 나머지 한 짝은 쓸모가 없게 된다. 끈으로 연결하여 목에다 걸고 다니면 잘 잃어버리지도 않고 또 땅에 떨어진다고 해도 곧 눈에 띄기 때문에 쉽게 찾을 수 있어서 좋았다.
벙어리장갑은 두 개의 자루로 되어있다. 하나의 작은 자루에 엄지손가락을 맞추어 넣으면 나머지 네 손가락은 그대로 쑥 잘 들어간다. 눈을 감고도, 어린애들도 쉽게 낄 수 있어 편리하다. 엄지손가락은 독립된 방으로 자유를 주어 물건을 잡을 때 아주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벙어리장갑의 네 손가락은 추운 겨울날 우리 네 자매가 한 방에 모여 서로의 체온을 나누며 자는 모습 같았다. 그래서 손가락장갑보다 훨씬 정겹고 따뜻했다.
어릴 때 한 번은 머리가 몹시 아프다고 꾀병치레를 해서 엄마에게 업혀본 적이 있었다. 동생들에게 쏟는 엄마의 사랑 곁가지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볼을 대고 엎드린 얼굴에 은은히 전해지는 엄마의 체온이 너무나 아늑하고 포근하게 느껴졌다. 그 온기를 오래 동안 간직하고 싶었다. 어느 겨울의 보송보송한 그 빨간 벙어리장갑처럼. 그런데 난 엄마의 벙어리장갑 노릇을 한 번도 하지 못했다. 엄마의 사랑을 받기만 하고 보답을 할 줄은 몰랐다.
아들에게 장갑을 챙겨주니 필요 없다며 시큰둥하다. 나 역시 장갑이 있어도 요즘은 번거롭고 귀찮아 잘 끼지 않는다. 어딜 가나 난방이 잘되어있고 옷 또한 방한이 잘되어있으니까. 아들은 엄마의 벙어리장갑을 오리털 잠바 주머니가 대신하는 것 같다.
왜 하필 벙어리장갑이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나름대로 생각해 봤다. 벙어리는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러면 자신의 의사 표시를 분명하게 잘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벙어리장갑을 끼고 물건을 잡으면 어둔하여 잘 잡히지 않는다. 손놀림이 정확하지 못하고 어설프다. 이러한 연유에서 비롯된 것일까. 그래도 벙어리장갑 이라는 이름은 정겹고 순수하다는 생각이 든다. 살갑게 다가오는 사람보다 어눌하지만 진실한 사람처럼 따뜻하고 아늑한 편안함이 느껴진다.
지금 나의 벙어리장갑은 누구 일까? 가슴이 서늘하고 추위를 느낄 때 따뜻하고 포근하게 감싸줄 벙어리장갑이 생각난다. 성인이 된 지금도 벙어리장갑을 찾는 것은 어린 시절의 애틋함에 대한 갈망과, 애절하고 나약한 원초적인 인간의 모습이 아닐까. 하나님도 외로움을 탄다는데 하물며 인간이야 오죽하랴. 하지만 벙어리장갑을 찾기보다는 이제는 내가 벙어리장갑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아들에게, 그리고 옆 짝에게 언제나 다정하고 포근한 벙어리장갑으로 살고 싶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카페에 첫 번째 등장함을 엄지척!입니다. 넘 좋아요. 보옥 님의 벙어리장갑이 이렇게 깊은 뜻을 가진 줄 몰랐네요.
상량님!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