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임영근이 안내하는 책읽기모임..에서 사피엔스를 읽었습니다. 그날 얘기도 헀던, 책모임을 하면서 생각났던 바를 몇자 적습니다. 또 산행반에서 가끔 글도 써보자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도..~^^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에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사람의 윤리나 도덕이
과하냐 아니냐를 볼 수 있는 기준은, 동물에게 있다고. 예를
들어 자식이 부모를 섬겨야 하는 효에 대해서, 법륜스님은 꼭 그럴 필요는 없다고 합니다. 모든 동물에서 자식이 부모를 먹여살리는 일은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부모를 보살피는 것은 동물의 원초적 본능을 넘어서는 좋은 면이고, 그래서
본인이 할 수 있으면 그렇게 하면 좋지만, 못한다고 해서 괴로워 할 필요는 없다, 그런 의무감에서 자유로워도 된다.고 합니다. 반대로, 어린아이를 보살피지 않는 부모는 동물보다 못한다는 겁니다. 모든 동물이 새끼를 양육하는 것이 당연한 현상이라, 어린 자식을
유기하거나 버리거나 보살피지 않는 것은 짐승만도 못하다는 겁니다. 단 자식이 20세가 넘는 성년이 되면, 정을 떼라, 그래야 그 자녀도 성년답게 삶을 살 수 있는데,,, 그것 역시 동물의
삶이 그러기 때문이다.
저는 이 얘기를 들으면서 수긍이 갔습니다. 뭐랄까요… 복잡한 인간사의 허물을 젖히고, 좀 더 보편적 기준을 본 느낌이랄까요…
사피엔스.. 이 책이 그런 느낌을 줍니다. 농경시대부터 지금까지 쌓아온 인간의 문명을 젖히고, 그 문명이 쌓아온
수많은 과학과 철학과 논리와 인문적 담론을 젖히고, 인간을 원숭이의 일종에서 돌연변이 되어온 동물의
한 종으로부터 얘기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영어제목이 ‘from animal to God’ 인 것 처럼, 그런 동물적 본성들이
어떻게 변모하여 이제는 DNA 공학을 통해 생명을 조작하는 신의 경지에 까지 도전하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 점이 지금까지의 역사책과는 다릅니다. 말하자면, 인간을 (이미 문명화된) 인간이
아닌, 생태계에서 중간자리정도를 차지하다가, 수많은 거대동물들을
살육하며 지구 역사상 최대 최고 포식자로 군림하고 있는 하나의 동물(사피엔스) 로 관찰을 시작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 책의 특징을 한 단어로
한다면, 생물학적 역사학 정도의 느낌입니다
이렇게 보는 것은 제게 법륜스님의 기준을 볼 때의 후련함과 명쾌함이 있습니다.
그리고 현실을 보는데도 많은 도움이 됩니다. 제가 요새 관심있는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비만, 당뇨 고혈압 고지혈증, 잇몸질환과
같은 현대의 만성질환이나 아토피 천식 같이 급증하고 있는 면역질환, 수많은 악성 암들의 원인이 어디
있을까요? 진료실에서 보면, 점점 더 많은 환자들이 점점
더 많은 약을 먹고 잇습니다. 통계로 보면 영국여성의 허리 둘레가
1950년대에 27인치에서 2000년 들어 32인치로 바뀝니다. 아토피의 경우 우리나라 중학생들에게서
1995년 7. 2% 에서 2010년 19.9% 로 증가합니다.(박용민 2011) 잇몸치료를 위해 우리나라의 경우 한 해에 천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치과를 방문합니다. 우리 몸이, 하나의
질병이 이렇게 까지 빠르게 바뀐 예는 많지 않을 겁니다. 예전에도 이런 질환들은 있었겠지만, 이렇게 까지 빠르게 전 인류적 문제가 된 적은 없었다는 겁니다.
이런 현상을 놓고 많은 해석과 치료법이 나옵니다. 그리고 현대의학과
과학은 점점 더 마이크로한 방향으로 해답을 찾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해답은 간단한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질환들의 가장 큰 원인은
20만년 동안 진화해온 호모사피엔스의 DNA 가 현대의 도시와 영양에 놀란 결과입니다. 수렵이든 농경이든, 사피엔스는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움직이고, 훨씬 덜 먹었습니다. 먹더라도 그 먹거리를 빠리바게트나 맥도날드가
아닌, 들판과 숲과 냇가에서 찾았습니다. 훨씬 덜 가공된
음식을 먹었다는 겁니다. 하지만, 20세기 현대화된 도시와
식품산업은 사피엔스의 생활패턴과 먹거리를 바꿨습니다
너무 익숙해진, 탄수화물이란 말이 있습니다. 탄수화물..이 말을 음미해 보면,
실은 수화(水化)된 탄소(炭素)라는 것입니다. 영어로 탄수화물을
의미하는 carbohydrate 란 말도 탄소(carbo) 가
수화(hydrate) 되었다는 말입니다. 한마디로 물과 결합한, 물먹은 탄소라는 뜻.
탄수화물을 이렇게 보면 새로운 의미가 느껴집니다. . 이 지구의 물질순환에서
가장 중요한 원소인 탄소가 순환되는 과정에서 잠시 만든 물질이 탄수화물이라는 겁니다. 대기중에 있었던 탄소(이산화탄소
형태로) 를 식물이 자기안에 있던 물과 결합해서 만든 것이 탄수화물입니다. 이때 햇빛을
이용하기 때문에 광합성이라고 생물시간에 가장 많이 나오는 얘기입니다..말하자면, 탄수화물은 음식의 특정 성분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식물은 세포벽도 탄수화물이고, 줄기와
잎도 탄수화물이고, 꽃도 탄수화물이며, 열매도 탄수화물입니다. 그것들로 사피엔스는 밥을 해먹었고 나물을 뭍여먹고, 과일로도 먹어왔습니다.
그런데 현대의 식품산업은 이 과정을 바꿉니다. 사탕수수에서 설탕을
뽑습니다. 통밀에서 거친 탄수화물은
없애고 먹기 좋은 탄수화물만을 골라 정제합니다. 현미에서 거친 껍질 탄수화물을 없애고 먹기 좋은 하얀쌀
탄수화물만을 남깁니다.
이런 정제된 탄수화물, 그것도 소화효소에 의해 금방 분해해서 흡수가
가능한 설탕은 사피엔스의 각 세포에 빨리 에너지원으로 쓰일 수는 있지만, 그만큼 빨리 분해되어 혈관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늘 과하게 될 여지가 있습니다. 게다가 사피엔스와 함께 진화해 오며 대장에
자신의 우주를 건설한 장내 미생물들에게는 먹을 것이 돌아가지 않습니다. 대장까지 오기전 에 정제 탄수화물들이
사피엔스들에게 모두 흡수되어 버렸기 대문입니다. 그래서 빵과 국수, 흰밥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장내에는 유익한 박테리아의 수가 훨씬 적고, 다양성도 떨어집니다. 요컨데, 현대화된 정제 탄수화물은 사피엔스에게는 과잉 에너지를, 사피엔스안에 함께 삶은 이어가고 있는 미생물들에게는 과소에너지를 주는 불균등한 상태가 된다는 겁니다.
이런 사람들은 일단 변비에 시달리고, 피부가 가려우며, 당뇨의 위험에 노출되고, 그 이후로 당연히 고혈압, 잇몸병, 암등에 더 많이 노출됩니다. 한마디로 20만년간 자기 역사상 처음 맞이하는 에너지 불균등에 사피엔스의 DNA 가 놀라게 되고, 이것이 많은 현대병의
원인이라는 겁니다.
실은 이런 설명도, 현대의 ‘과학’ 적, 마이크로한 설명방식일 수 잇습니다. 인상적인 연구가 있습니다.
1984년, 호주의 유명한
영향학자, 오데어(Kerin O’Dea)는 고혈압 당뇨에 시달리는 호주의 원주민들을 7주 동안 오지의 고향으로 돌려보내고, 사냥, 채집등 원래 하고 살았던 라이프스타일대로 살게 했습니다. 호주의 많은 원주민들, 아메리카의 많은 인디언들은 대개 비만과 당뇨와
고혈압에 시달립니다. 극히 최근까지도 초원을 달리고 사냥하고 물고기 잡아먹던 생활이 급격히 자동차를
타고 햄버거를 먹는 것으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길지 않은 관찰기간인데도 결과는 확실했습니다. 혈압도 대폭 낮아졌고, 당뇨도 좋아진 것입니다. 이유가 다른데, 마이크로 한데 있지 않았습니다. 먹는 것과 사는 방식. 오데어 역시 저지방 식단에, 많이 움직이는 생활습관과 체중감소가 확실한 요인이라고 밝힙니다. (O'dea 1984)
이것은 호모 사피엔스의 20만년된
DNA 와 300년도 안된 현대 자본주의와 50년도
안된 오늘날 식습관의 불일치를 드러내는 아주 사소한 예일 뿐입니다. 이유가 그렇다면, 해결책도 이래야 합니다. 다이어트를 위해 시리얼을 먹고 마사지를
받을 것이 아니라, 빵과 라면후에 아이스크림으로 디저르를 먹고 헬스클럽 가서 PT 를 하고 골프연습장을 갈 것이 아니라, 나물과 과일과 된장국과
김치를 먹고 북한산을 놀이터 삼아야 합니다. 잇몸약 당뇨약 혈압약에 의지하는 것은 급할 때 최소로 하고, 많이 걷고 적게 먹어야 하고, 먹을 때도 사피엔스가 원래 먹던 덜
가공된 음식을 먹어야 합니다.
멋있는 세프와 빠리바게트의 빵과 편의점의 아이스크림은 현대 문명의 산물입니다.
그러더라도 사피엔스의 먹을 거리는 그 뒤에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인터넷의 수많은 정보와
TV 의 스토리가 우리의 눈과 머리를 붙잡지만, 실상 우리
삶의 진짜 모습과 세상의 이치는 그 뒤에 있는 사피엔스의 욕망과 역사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 면을
제치고, 법륜스님의 안내처럼 마음의 평화에 도달하기 위해서 이 책, 사피엔스가
도움될 수도 있습니다.
첫댓글 사피엔스와 우리의 건강 그리고 장내 미생물까지 연결된 이야기 참으로 인상적입니다.~~~~^^
요즘 서양에서는 구석기인의 식단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하던데, 이런 깊은 뜻이 있었군요. 전문 지식이 넓은 시야와 만나 통찰력 빛나는 글이 되었네요. 구석기인의 식단을 넘어 구석기인의 생활방식으로! 이런 삶이 어떻게 가능한지 고민하게 하네요.
즐거운 글쓰기 1등하셨네요. 짝짝짝!
흥미로운 글 잘 읽었습니다.
사피엔스를 읽고 나면 저는 마음의 평화보다는
심각한 고민에 빠질 것 같은데요.
아직 다 못 읽어서 뭐라 말하긴 이르지만요.
어쨌든 읽으며 참신한 발상의 전환에 정신이 번쩍 듭니다. ^^;;;
역시... 원시반본이란 말이 단순한 종교적 수사인줄로만 알았더니... 실제 긴 안목으로 바라 본 시간과 진화의 부조화의 문제를 이토록 간결하게 정리해 주시네요...^^ '원시성의 회복'... 얼마나 중요한지, 또 얼마나 광범위한 문제인지 새삼 느껴봅니다!!^^
20만년동안 진화해온 호모사피엔스의 DNA가 지금의 산업환경과 식생활 패턴에 '놀랐'다는 이야기가 흥미로운데요. 놀랐다는 말은 감당하지 못하고 균열이 일어났다는 말인데, 그 결과가 갈종 질병이군요. 20년동안 진화해온 우리 몸 DNA의 역사를 관통하는 보편성을 거스르는 행동을 오늘도 참 많이 하고 있습니다. 역시 얻는 게 있으면 잃어버리는 것이 있군요. 사피엔스라는 책에 저의 흥미가 많이 쏠려집니다.
간만에 병우님 글 카페서 보니 댓글이어도 반갑습니다.(고양신문에선 늘 보지만) 얼굴도 자주 뵈면 좋겠습니다~~^^
네 조만간 뵙겠죠^^
'나물과 과일과 된장국과 김치를 먹고 북한산을 놀이터 삼아야 합니다.' : 김혜성님의 일상입니다. 저는 저의 집 거실에 있는 러닝머신이 저의 놀이터입니다. 아직 치아에 별 문제가 없어 사과나무치과에 별 보탬이 안되고 있습니다.
모두들 감사~^^ 글을 써 놓으니 자꾸 보게 되요.. '사피엔스'에 의하면, 이런 글도 하나의 보이지 않은 이야기나 뒷담화 일텐데, 이런 얘기에 얼마나 공감하는지가 궁금해지는 것도 사피엔스의 속성 같다는...~^^
공생원칙을 스스로 위반해 고통을 자초하는 욕망의 덫 - 즉, 정제된 탄수화물 - 얘기 너무 감동적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와~~~김혜성님의 깊은 통찰력에 전문지식이 더해진 글을 읽으며 저역시 책한권을 함께 읽어 내려간 느낌입니다^^ 결론은 덜 가공된 음식을 적게 먹고 많이 움직이는것!!! 몸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이네요^^ㅎㅎ 좋은글 공유할수 있게 올려주셔서 넘 감사합니다~~~♡ 짧은 시간안에 너무 많이 변해버린 생활습관과 식습관이 현대인들의 수많은 질병의 원인 이란걸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해주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