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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으로 떠나는 우리말 여행’이라는 부제를 통해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책은 우리말과 글(한글)에 관한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기획되었다고 파악된다. 인근 국가들과 분명히 다른 언어를 사용하면서, 훈민정음이 창제(1443)되기 이전에는 우리말을 적을 수 있는 문자를 갖지 못하고 있었다. 중국으로부터 한자가 전래되면서, 우리말을 한문으로 번여하여 기록할 수 있었을 뿐이다. 그러한 관행은 이후에도 지속되어, 한글이 국가의 공식적인 표기 수단으로 정착된 19세기 말엽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이후에도 우리의 일상에서 한문은 쓰이지 않았지만, 그 글자인 한자(漢字)는 20세기 후반까지 신문과 각종 책에서 한글과 더불어 그대로 통용되었던 것이다.
이제 한글표기를 위주로 하는 문화가 자리를 잡고 시행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여전히 한자를 알아야 어휘 능력이 향상될 수 있다는 주장으로 한문 교육의 당위성을 주장하기도 한다. 오랫동안 한문이 공식적인 언어로 사용되면서, 우리의 언어에는 한자어가 적지 않게 포함되어 있다. 최근 ‘문자 해독 능력’ 즉 문해력에 관한 내용이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기도 했으며, 문해력 저항의 실례로 꼽힌 것은 실상 한자어에 대한 이해와 관련이 적지 않았던 갓을 기억한다. 그 안은으로 한문교육의 필요성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이들이 있지만, 실상 문해력의 본질은 일반인들과 유리된 ‘그들’만의 어휘 능력을 잣대로 규정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분명 쉽게 대체할 수 있는 표현이 있는데도, 그저 관행적으로 혹은 자신의 유식함을 드러내기 위하여 어려운 한자어를 사용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이 책에서는 훈민정음이 창제되기 이전 말과 글이 일치하지 않았을 때, 그것을 일치시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엿던가를 확인할 수 있다. 고교 시절 배웠던 신라시대의 ‘향가(鄕歌)’는 우리말을 그대로 기록하기 위해 한자의 음과 훈을 빌어 표기하는 ‘향찰(鄕札)’이라는 방식을 취하였다. 핵심적인 단어는 한자를 사용하고, 한자 혹은 그것을 축약한 기호를 조사와 어미에 사용하도록 한 ‘이두(吏讀)’ 역시 말과 글을 일치시키기 위한 수단의 하나였다. 고려시대 실시된 과거제도는 일상의 언어문화를 뒤흔든 사건이었으며, 관직에 진출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한문을 능숙하게 익히는 과정을 거쳐야만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시까지 남아있던 고유어들은 하나씩 한자어로 대체되었고, 이후 우리말을 한문으로 번역하는 것이 일상화되면서 우리말에서 한자어가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증가하게 되었던 것이다.
마침내 세종과 집현전 학자들에 의해 창제된 ‘훈민정음’으로 인해 우리말을 글로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을 소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조선의 공식적인 표기수단은 여전히 한문이었고, 한글은 일부 문학작품의 표기에 사용되었다 당시에 한글은 한문에 익숙하지 않던 여성과 서민들의 편지 등에 사용되었을 뿐이다. 19세기 말의 갑오개혁에 의해 한글이 공식적인 언어로 채택되었지만, 여전히 한자를 버리지 못하고 국한문 혼용이라는 형식의 표기법을 20세기 후반까지 지속하게 되었던 것이다. 아마 도서관에 가서 1990년 이전에 출간된 책 가운데 아무거나 하나를 뽑아서 펼쳐든다면, 한글과 한자가 뒤섞인 표기법을 손쉽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20세기 들어 국권을 빼앗기고 일제 강점기에 접어들면서, 오히려 학자들의 한글에 대한 연구는 더욱 활발해졌음을 이 책의 내용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아울러 현재 통용되는 맞춤법이 정착되기까지의 과정과 ‘훈민정음’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다양한 학자들에 의해 세계적으로 한글의 우수성이 알려지는 등의 내용이 상세히 소개되어 있다. 모두 16개의 항목으로 구성된 목차를 통해서 우리 역사에서 문자의 출현과 우리말을 표기하기 위한 수단들, 그리고 한글 창제와 그것이 정착되기까지의 문제에 관해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겠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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