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 노래자랑
이명섭(창녕 대지초 5년)
재훈이랑 게임을 하다가
심심해서 노래를 불렀다.
목이 아파서 쉬다가
갑자기 풀을 잡고
3단 고음을 하려는 순간
동생이 시끄럽다고
소리를 질렀다.
동생에게 3단 고음을 뺏겼다.
(2021. 4. 26)
요즘은 초등학교 고학년들을 보면 ‘어린이’보다는 ‘청소년’이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만큼 성숙하지만 가끔은 선생님도 다가가기 어색한 어른의 분위기를 풍기는 아이들이 있지요. 초등학교 5학년인 명섭이는 주말에 친구와 함께 음악 시간에 배운 노래를 불렀다고 합니다. 노래 부르는 흉내를 제대로 내려고 마이크 대신 풀까지 잡았습니다.
시를 읽으며 아직도 수업 시간에 배운 노래를 친구와 함께 목청껏 부르는 명섭이의 모습이 참 귀엽고도 반가웠습니다.
제법 신이 났는지 꽤 시끄러운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나봅니다. 노래의 절정인 고음 부분을 부르려는 순간, 동생이 달려와 시끄럽다고 고함을 칩니다. 그 절묘하고도 웃긴 타이밍을 명섭이가 잘 찾았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을 명섭이는 ‘동생에게 3단 고음을 뺐겼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동생의 고함을 마치 자신이 노리고 있던 고음 부분을 가로챈 노래처럼 표현한 것이 재미있고, 재치 있는 표현 덕분에 감정을 담은 말 없이도 그 순간 명섭이가 느꼈을 아쉬움과 허무함도 함께 느껴집니다.
할머니를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이윤재(창녕 대지초 5년)
아빠라 처음으로 할머니가 있는
큰 대구 병원으로 갔다.
병실에 들어가니까
링거를 맞으며 있었다.
할머니가 내 이름을 거이
못 물을 정도로 아팠다.
나는 너무 슬펐다.
하지만 할머니가 날 알아봤다.
나는 기쁘면서 슬펐다.
(2021. 4. 16)
나의 가장 소중한 추억 다섯 가지를 생각해 본 다음, 그 중 하나의 추억을 골라서 적은 시입니다. 윤재는 할머니를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가 소중한 추억 중 하나라고 합니다. 그 슬픈 순간을 소중히 여기는 윤재의 마음이 참 예쁩니다.
윤재의 시는 특별히 꾸미는 말 없이 감정을 나타냅니다. 자신의 이름을 거의 부르지 못하는 할머니를 보고 너무 슬펐다고 말하고, 그런 할머니가 자신을 알아본 것에 대해 기쁘면서도 슬펐다고 말합니다. 이 군더더기 없는 표현이 신기하게 어떤 표현보다도 더 진하게 느껴지는 것은 글도 순수한 윤재를 닮아서일까요.
어리면 단순하다는 생각을 나도 모르게 하고 있었나봅니다. 지극히 슬픈 순간에 아이들은 슬픔만 느끼지 않는다는 것을, 작은 것 하나 하나에 대한 감정을 섬세하게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이 시가 저에게 알려주었습니다.
물
차준우(창녕 대지초 5년)
나는 물 같다.
왜나하면
나는 물 같이
말 잘 안한다.
나는 진짜로 화가 날 때
파도처럼 욕을 한다.
(2021. 3. 19)
이 시를 쓴 준우는 새 학기 첫 날, 자신의 이름보다도 먼저 나에게 ‘선생님, 저는 틱이 있어요. 글씨를 잘 못 쓰고 많이 울어요.’라고 자신을 소개한 아이입니다.
글씨를 바르게 쓰고 싶은데, 그 외에도 많은 것들을 잘 하고 싶은데 또래 친구들과 달리 마음처럼 되지 않는 준우, 그럴 때면 준우는 끓어오르는 분노로 자신도 어찌하지 못하고 그 분노에 몸과 마음을 내어줍니다.
글씨를 쓰기 전, 준우는 항상 자세를 고쳐 앉고 팔을 걷어붙이는 동작을 합니다. 그만큼 잘 해보고 싶은 마음이 지켜보는 교사에게까지 간절히 느껴집니다.
그런 준우가 자기 자신으로 시를 적는 시간에 쓴 시입니다. 이미지 카드를 주고 자신과 닮은 이미지를 골라보자고 하니 준우가 한참을 살펴보다가 파도가 치는 장면의 사진을 고르더니 이 시를 적었습니다. 이 시가 나에게 콩깍지 시인 이유에 어떤 말이 더 필요할까요.
평소에는 자신이 말이 별로 없다고 생각하는 준우는 스스로 보아도 화를 낼 때는 꽤나 거세게 행동한다고 느끼나봅니다. 그런 자신의 상반된 모습을 물이 가진 상반된 모습으로 표현한 것이 너무 놀라웠습니다.
즐거운 표정으로 파도타기를 즐기는 남자가 있는 사진에서 준우는 ‘파도’를 보았고, 이렇게 시로 자기를 소개했습니다. 이 시는 나에게 아픔과 동시에 내가 힘을 내야함을 다짐하게 되는 콩까지 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