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계
비구가 되기 위해서는 구족계를 받아야 한다. 구족계는 나이 제한이 있어 스무 살이 넘어야 한다.
그 미만은 사미라고 한다. 이후 모든 자격을 갖추면 구족계를 받아 비구가 된다.
구족계의 원어 ‘우파산파다’는 원래 ‘도달하는 것’이라는 뜻으로, 그 말 자체에는 ‘계戒’에 해당되는 뜻이 없다. 수계受戒는 초기 불교 교단에는 없던 제도다. 최초의 5비구 중 한 명인 콘단냐에게 부처님이 한 말은 “오라, 비구여”였다. 이 말이 곧 구족계였다.
최초의 제자 5비구가 들어오면서 성립된 교단은 이어 1,000명의 배화교 교도의 집단 개종, 사리불과 목건련 등 250명의 개종 등으로 교단은 급속도로 커진다.
이때까지만 해도 “오라, 비구여” 이 한 마디면 충분했다.
제자들이 많이 늘어난 뒤에도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부처님과 법과 승단의 삼보에 귀의합니다”라는 말이면 족했다. 하지만 불교 교세가 확장되면서 제자들이 많아짐에 따라 현지에서 직접 교단에 입문할 수밖에 없는 일도 일어났다. 이리하여 수계제도가 생겨났다.
<사분율>에 의하면 현지에서 출가하려는 사람은 삼사칠증三師七證 앞에서 삼귀의를 다짐하면 승가의 일원으로 승인받았다.
삼사三師는 화상, 교수사, 갈마사를 말한다.
화상은 의발衣鉢을 갖추어 주고 교육하는 스승을 말하며, 교수사는 갈마가 행해지는 직전부터 끝날 때까지 계를 받을 때 옷 입는 법과 심문에 답하는 법 등을 가르쳐 주고 신체상의 결점 및 질병 유무를 검사하는, 말하자면 학교의 교사나 군대의 교관인 셈이다.
갈마사는 수계를 총괄하는 총 책임자 격이다. 신자들에게도 생소한 갈마Kalma란 불교교단의 종교회를 의미한다. 불교교단은 어떤 문제든 갈마를 거쳐 승가 구성원들의 만장일치로 결정한다.
형식에 따라 백갈마, 백이갈마, 백사갈마 등으로 나뉜다.
백白은 의안議案을 말한다. 이 중에서 백사갈마는 회의 안건을 1회 알리고 찬반 여부를 3회 확인하는 가장 복잡한 의결 방식이다. 가령 계를 줄 때 ‘모 비구를 화상으로 하고 아무개에게 계를 준다’며 1회 외치고 세 번 물어 찬성하면 침묵하고 이의가 있으면 발언하는 방식이다. 전원 찬성해야 계를 얻고 비구가 된다. 이렇게 계를 받으면 5년 내지 10년간 화상과 함께 하면서 교육을 받아야 했다.
부처님 대신 계를 주기 위해서는 최소 10명의 비구가 있어야 한다.
비구가 적은 지방은 5명도 용인했다.
오늘날 한국 불교 교단에서 세 명의 스승과 일곱 명의 증명법사, 즉 삼사칠증三師七證 제도를 둔 것은 부처님 당시의 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실 칠증은 율장에는 없는 말이다. 삼사 이외의 다른 비구는 증명사證明師이다. 부처님 당시 수계를 내릴 때는 참석한 모든 비구들이 증명 법사였다.
부처님 당시 출가자는 몇 가지 자격 요건을 갖춰야 했다. 《사분율》에 의하면 13난難 10차遮라고 하여 수계 대상자는 10가지를 심문받고, 저촉 사항 13가지 중 하나라도 해당되면 출가할 수 없었다. 10차는 당사자와 화상의 이름, 만 20세 이상 여부, 의발의 구비 여부 등을 점검하고, 부모가 출가를 허락했는지, 노비이면 주인의 허락을 받았는지, 현직 관리나 군인이 아닌지, 완전한 남자인지, 질병이 있는지 등을 확인한다.
비구였다가 다시 출가하는 사람인 경우 이전에 바라이죄를 범한 자, 비구니를 범한 전력이 있는 자, 계를 받지 않고 비구 가운데 숨어서 생활했던 자, 비구가 되어서 외도를 버리지 않은 전력이 있는 자, 남자로서 결함이 있는 자, 부모나 아라한을 죽인 자, 비구였을때 승가를 분열 시킨 자, 남여 생식기를 갖춘 자, 인간이 아닌 귀신, 축생이 인체로 환생하는 자 등은 출가 부적격자였는데, 이것이 13난이다. 그리고 부처님 생존 당시에만 해당했는데 부처님에게 상처를 입혀서 피를 흘리게 한 전력이 있는 자도 출가가 불가능했다.
이리하여 재가자는 5계, 사미(니)는 10계, 비구는 250계, 비구니는 348계를 받았다.
하지만 계율의 조항은 처음부터 몇 개라고 열거하지 않았다. 초기 제자들은 일일이 구제하지 않아도 출가수행자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을 구분했다. 그런데 출가자가 늘어감에 따라 지켜야 할 것을 지키지 못하는 자들이 나타났다. 남녀 간의 성교, 도둑질, 살생, 거짓말 등 모든 계율이 실제 범행이 있고 난 뒤 승단 안팎에서 문제 제기가 있는 연후에 금지 조치가 내려졌다.
그래서 수계는 일정한 자격을 갖춘 자가 발심해서 스승을 삼아 계율을 지킬 것을 맹약하고 승단에 입단하는 절차인 것이다.
이를 어기면 범행 정도에 따라서 벌을 받고 아주 심할 겨우 출단 조치가 내려졌다.
이상의 수계 방식은 소승의 수계 전통이다.
대승에서는 이보다 완화됐다. 삼사 중 한 명에게 계를 받을 수도 있었고, 스승 없이 스스로 서약하는 자서수계自誓受戒도 있었다.
중국의 경우 처음에는 구족계 수계의 최소 인원인 5인을 확보하지 못해 사미 10계만을 주었다가 3세기 중엽 위나라 때 비로소 계단이 설립되었다.
중국 불교에서는 출가는 국가의 관장 하에 실시된 점이 인도와 다르다. 당나라 때부터 출가를 희망하는 자는 그 은사가 사찰을 통해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했다. 이른바 도첩度牒 제도가 이때부터 실시된 것이다. 도첩을 받고 득도 허가를 받은 사미는 스승 밑에서 공부하며 수계할 날을 기다리다가 성인이 되면 삼사칠증 밑에서 구족계를 받고 정식스님이 된다. 이 수계 증서를 계첩戒牒이라고 한다. 이 서류로 승적에 수계의 연시年時를 기록하면 그 신분이 보장되었다. 당대의 스님들에게는 납세 등 국민의 의무가 면제되고 근로 대신 불도 수행에 전념하는 일이 허용되었다.
현재 한국 불교의 수계 과정도 부처님 당시의 골격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대승불교권이면서도 수계는 철저히 소승 전통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현재 조계종 승려가 되기 위해서는 최소 4년 6개월 동안 몇 단계의 과정을 거치도록 제도화되어 있다. 산문에 들어서면 우선 최소 6개월간의 행자 수련을 거친다. 이후 행자교육원에 입소해 이를 마치면 사미(니)계를 받는다. 이후 4년간 강원이나 선원에서 소정의 과정을 마친 뒤 수계 산림을 거쳐 비구(니)계를 받는다. 입산부터 구족계 수계까지는 최단 기간이 4년 6개월이다.
고려 왕건이 개국사를 설립, 계단을 설립하는 등 국가차원에서 수계를 직접 관장했지만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 도첩제도가 폐지된다. 이렇게 해서 승니에 대한 관리가 허술해지면서 계율도 덩달아 쇠퇴한다.
이후 공식적으로 구족계가 나오는 것은 19세기 초엽 전남 영암 도갑사의 대은 낭오화상부터다.
『동사열전』에 의하면 대은스님은 은사인 금담장로와 함께 지리산 칠불사에서 하안거를 마친 후 수계를 이루고 대계와 구족계를 금담화상에게 전수, 다시 그 계법을 해남 대흥사 초의 의순스님에게 전했다고 한다. 계맥은 다시 백용성스님, 하동산스님 등 에게로 이어졌다는 것이 현재 조계종 전계의 정통맥이다.
1981년 한국 불교의 수계에서 획기적인 전환점이 일어나는데, 바로 각 본사에서 자체적으로 수계해 오던 것을 종단차원으로 통일한 단일 계단이다. 2월 17일 봉행된 제1회 수계의식에는 사미 84명, 사미니77명 등 총 161명이 참여했다. 단일계단은 이후 10년 뒤 상설행자교육원 설립으로 이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수계방식은 삼사칠증과 인례사만이 참석하는 비공개 방식이다. 사진촬영도 일체 금지된다.
먼저 구족계 첫날 입방 심사를 하여 신체 결함 등 부적격자를 가려낸다. 이후 1주일간 교육을 받은 뒤 4급 승가고시를 치른다. 여기까지 통과한 사미(니)는 구족계를 받는다. 참회식과 계목을 하나하나 읊는 과정이 진행된다. 사바라이죄는 상세하게 설하고 나머지 246계목은 읽는 형식이다.
하지만 구체적인 방식은 비밀에 부쳐져 있어 알 길이 없다. 비구계를 받으면 종단에서 마련한 가사와 계첩을 받고 이후 종단의 여러 공직을 맡을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는다.
지금은 수계와 교육 과정이 엄격해졌지만 불과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관리가 부실해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81년 자운스님, 일타스님 등에 의해 수계산림이 개설되기 전에는 여러 본사에서 전계사를 모시고 자체적으로 진행, 지금도 진위논쟁이 벌어질 정도이다. 또 막상 구족계의 전통을 되살린 노스님들은 정작 구족계를 이어줄 전계화상이 없어 끝내 ‘사미’로 열반에 든 스님들도 적지 않다.
수계의식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금강계단에서 설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불사리는 부처님의 현신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부처님 재세 시 부처님 앞에서 제자들이 출가했듯이 진신사리 앞에서 출가자 맹약을 하는 것이다.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돌아오면서 가져온 사리와 정골을 안치한 통도사 금강계단이 가장 유명하다. 오늘날 구족계 수계 산림이 가장 빈번하게 열리는 범어사 금강계단은 동산스님이 설립, 1960년 첫 번째 비구계 수계식이 열렸다. 해인사 송광사 쌍계사 등에도 금강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