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조명실
이실비
그 사람 죽은 거 알아?
또보겠지 떡볶이 집에서
묻는 네 얼굴이 너무 아름다운 거야
이상하지 충분히 안타까워하면서 떡볶이를 계속 먹고 있는 게 너를 계속 사랑하고 있다는 게
괜찮니?
그런 물음들에 어떻게 답장해야할지 모르겠고
겨울이 끝나면 같이 힘껏 코를 풀자
그런 다짐을 주고받았던 사람들이
아직도 코를 흘리고 있다
손톱이 자라는 속도가 손톱을 벗겨내는 속도를 이기길 바랐다
다정 걱정 동정
무작정
틀지 않고
어두운 조명실에 오래 앉아 있었다
초록색 비상구 등만
선명히 극장 내부를 비추고 있었다
이것이 지옥이라면
관객들의 나란한 뒤통수
그들에겐 내가 안 보이겠지
그래도 나는 보고 있다
잊지 않고 세어 본다
서울늑대
이설비
사랑을 믿는 개의 눈을 볼 때
내가 느끼는 건 공포야
이렇게 커다란 나를 어떻게 사랑할래?
침대를 집어 삼키는 몸으로 묻던 하얀 늑대
천사를 이겨 먹는 하얀 늑대
흰 늑대 백 늑대 북극늑대
시베리아 알래스카 캐나다 그린란드
매일 찾아가도 없잖아
서울에서 만나 서울에서 헤어진 하얀 늑대 이제 없잖아
우린 개가 아니니까 웃지 말자
대신에 달리자 아주 빠르게
두 덩이의 하얀 빛
우리는 우리만 아는 도로를 잔뜩 만들었다 한강 대교에서 대교까지 발 딛고 내려다보기도 했다 미워하기도 했다 도시를 강을 투명하지 않은 물속을
밤마다 내리는 눈
까만 담요에 쏟은 우유
천사를 부려먹던 하얀 늑대의 등
네 등이 보고 싶어 자고 있을 것 같아 숨 고르며 털 뿜으며
이불 바깥으로 새어나가는 영원
목만 빼꼼 내놓고 숨어 다니는 작은 동물들
나는 그런 걸 가져보려 한 적 없는데 하필 너를 데리고 집에 왔을까 내 몸도 감당 못하면서
우리는 같은 멸종을 소원하던 사이
꿇린 무릎부터 터진 입까지
하얀 늑대가 맛있게 먹어치우던
죄를 짓고 죄를 모르는 사람
혼자 먹어야 하는 일 앞에서
천사는 입을 벌려 개처럼 웃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