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체가 공중에서 몇 번 몸을 뒤채더니 하강을 시작한다. 약간의 흔들림과 긴장이 싫지 않다. 성급한 마음에 비행기의 쪽문을 연다. 눈이 부시다. 이윽고 남국의 쪽빛 바다가 눈에 들어온다. 드문드문 작은 집들이 정겹다. ‘쿵’ 발통이 땅을 찍는다. 바퀴는 롤러스케이트처럼 미끄러져 나간다. 피지에 도착한 것이다. 피지는 호주와 뉴질랜드의 삼각지점에 위치한다. 적도를 중심으로 북위 17도에는 하와이가 있고 남위 17도인 그 지점에 내가 온 것이다.
불라(Bula)! 불라(안녕)!
전통복 차림에 기타를 든 원주민들의 노래가 내방객을 반긴다. 공항을 빠져 나와 차에 몸을 실었다. 타향이건만 왠지 고향에 온 것 같은 편안함. 사람은 때로 미지의 자유로움 속에서 휴식을 얻을 수 있는 것 같다.
나는 5년째 피지를 드나들고 있다. 난디 중심가에 작은 모텔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새 익숙해진 거리의 풍경들을 바라본다. 스쳐 지나가는 창 밖의 야자수가 아는 체를 하며 고개를 주억거린다. 나도 반가운 무언의 점두(點頭)를 보낸다.
잎사귀의 기분 좋은 흔들림으로 보아 얼마간의 바람이 감지된다. 지금 알맞은 바람이 지나고 있는 중이리라. 바람이 불고 있지 않을 때의 야자수는 멈추어 버린 풍차 같기도 하다. 그것은 정지된 삶을 보는 것 같아, 차라리 흔들릴 때의 모습이 훨씬 보기 좋다.
그러고 보면 사물이거나 사람의 마음을 이렇게 움직이게 하는 것은 바람의 속성인 것도 같다. 그간의 삶이 머물 수 없는 풍차와 같아서였을까? 피지에 당도하던 날,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바람에 찢긴 채, 홀로 서 있는 야자수가 눈길을 끌었다.
그때의 첫 인상은 지금도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사납게 내리꽂히는 작열하는 태양, 그리고 갑자기 높은 파도가 일 때면 더욱 거세지는 해풍, 이 모두를 막아내느라고 그랬을까?
야자수는 제 몸을 찢어 빗살무늬로 그것과 맞서고 있었다. 이 생존법의 비밀은 더 이상 그들만의 것이 아니었다.
칠남매의 막내로 태어나 넷째인 큰오빠 손에서 자랐다. 밝게 이어지지 못한 결혼 생활, 내 아이들을 위해서는 일을 놓을 수도 없는 처지였다. 직장을 옮겨 가면서 격무에 건강이 무너짐을 느껴도 어쩔 수 없었다.
어느 날 계단을 밟는 순간, 중심을 잃고 그만 우주의 미아가 되고 말았다. 퇴원 후 다시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야 했고, 직원들이 퇴근한 후의 사무실이 내 거처가 되었다. 호텔 근무, 국제개발 일들에 전념하다가 이곳 피지와 인연이 닿게 된 것이다.
차창 밖의 야자나무가 한가롭게 일렁이고 있다. 따라서 내 마음도 평안해진다. 남태평양의 이국적 정취를 한껏 더해 주는 야자수. 나는 그 외양보다 실용적인 내면에도 마음이 끌린다. 야자나무는 코코넛 열매가 돋아날 때부터 공작새의 깃털 같은 큰 잎을 펼쳐서 그 어린 것들을 보호한다.
겉껍질은 또 얼마나 단단하던지 새가 쪼아도 끄떡없다. 높은 곳에서 열매를 떨어뜨려도 쉽게 깨어지지 않는다. 슈가캐인(사탕수수) 칼로 속을 열어 보면 웬만한 충격에도 이겨 낼 수 있도록 몇 겹의 거친 짚단이 보드라운 속을 에워싸고 있지 않은가. 실로 눈물겨운 모성이었다. 서울에 두고 온 아이들 생각이 간절해진다.
이곳 사람들의 목표는 야자수 같은 삶이라고 한다. 하나도 버릴 것이 없기 때문이다. 코코넛 속의 달콤한 물은 베트남 전쟁 당시, 군인들의 영양제 링거 주사약으로 쓰기도 했던 무공해 식품이다. 어디서나 손쉽게 구해 갈증을 해결할 수 있는 최상의 음료수이기도 하다.
그리고 잘 익은 야자 열매 속의 하얀 속살은 말려서 짜면, 기적의 기름이라고 일컫는 무채색에 가까운 버진(virgin) 코코넛 오일을 얻을 수 있다. 겉껍질은 땔감으로, 그리고 질퍽한 길의 양옆 덮개용으로도 쓰이며 재는 화초의 거름으로 쓰여진다. 그야말로 부러운 완전연소의 삶이다.
바람에 나부끼고 있는 저 새의 깃털 같은 나뭇잎들, 그러나 이면은 땡볕에 벌을 서듯, 두 팔을 높이 쳐들고 열 손가락으로 버티고 있는 저 빗금무늬가 왠지 갈비뼈에 와 닿는 것이다. 놀랍도록 강인한 정신, 그러나 가녀린 한 여인을 보는 것 같다. 찢겨져 홀로 부대끼는 야자수는 이따금씩 내 존재를 환기시키곤 했다. 그것은 또 다른 나의 표상(表象). 삶을 단단히 껴안으라고 내게 말하는 듯했다. 그 때문에도 이곳을 더욱 찾게 되는 것인지 모른다. 무엇보다 나는 곁가지 없이 올곧게 자라는 저 나무들의 삶을 오래오래 주목하고 싶다. 온갖 역경 속에서도 꼿꼿하게 뻗어 나가는 정신이야말로 내가 본받고 싶은 으뜸가는 덕목이기 때문이다.
창 밖에 줄지어 선 그놈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따라서 대꾸하다 보니 어느새 집 앞이다. 오늘 따라 대문 앞의 간판도 새롭다.
모텔 ‘호데코 썬뷰(Hodeco SunView)’. 태양은 이곳에서도 뜬다.
첫댓글 그것은 또 다른 나의 표상. 삶을 단단히 껴안으라고 내게 말하는 듯 했다. ... 허순애 선생님, 화이팅!
등단을 축하드립니다..
글이 아주 마음에 듭니다. 통영, 노래방에서 마이크를 잡을 때 벌써 알아보았습니다......... '우먼 파우어'라는 것을~
역경 속에서도 꼿꼿하게 뻗어나가는 또다른 나의 표상 야자수
태양은 그 곳에서도 뜹니다. 격려를 보냅니다. 한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