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마라톤역사
B.C490년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대제는 그리스의 도시국가인 아테네와 스파르타에 사신을 보내 페르시아에 무조건
항복할 것을 권고 하였고, 그리스는 이를 단호히 거부하며 오히려 사신을 우물 속에 넣고 매장해 버렸다.
이에 페르시아는 '다티스'장군을 총사령관에 임명하고 원정군을 파병하여 아테네와 스파르타를 정벌토록 했는데
이때 동원된 원정군 병력규모는 전함 6백척, 보병10만, 기갑1만명으로 실로 어마어마한 대규모 병력이었다.
아테네는 스파르타에 즉시 원군을 파병해 주도록 요청키로 하고,
당시 올림피아 경기의 달리기 선수였던 '필리피데스'를 사자로 스파르타에 보냈다.
그러나 막상 '필리피데스'가 가지고 온 회신은 종교적인 규칙에 따라 보름달 이전에는 출병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국가의 존폐가 풍전등화 같은 절대절명의 위기를 맞은 아테네는 지략이 뛰어난 용장 '밀티아데스' 장군 지휘하에
불과 1만명의 기갑병으로 페르시아 원정군을 요격케 했다.
아테네 동북방 42Km지점에서 양군이 대치했는데 그것이 마라톤 평원인 이곳에서 역사적인 마라톤 전쟁이 개시된다.
열배의 우세한 병력을 보유한 페르시아군은 그러나 '밀티아데스' 장군의 교묘한 전술에 말려들어 협곡으로 유인돼
괴멸되고 이 기쁜 승전보를 전하기 위해 스파르타에 원병 요청 사신으로 갔던 '필리피데스'가 다시 사신으로 임명돼
마라톤 평원에서 약 42Km의 거리를 단숨에 달려간다. "우리 아테네군이 승리했다." 그는 이 한마디를 전하고
수만은 아테네 시민에 둘러싸인 가운데 숨을 거두었다.
이 마라톤전쟁의 고사를 스포츠로 승화시켜 장거리 마라톤을 창설한 사람은 프랑스 솔몬느 대학의 '브레알' 교수였다.
그는 친구인 '쿠베르탱' 남작에게 부탁하여 1896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근대 올림픽이 부활될 때
마라톤이라는 육상종목을 처음으로 선보이게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마라톤은 제1회 아테네 올림픽에서 스포츠 경기로 실시된 후 지금까지 약 128년을 거치는 동안
전 세계로 보급 되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마라톤을 금기로 여기고 있는 국가가 바로 이란인데,
이란은 마라톤의 근원인 마라톤 전쟁에서 패배했던 페르시아의 후예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마라톤 풀코스가 42.195Km 된 것은
제4회 런던 올림픽때 부터이며, 런던올림픽 조직위원회는 당초 마라톤 출발 지점으로 메인스타디움으로 하는
42Km의 코스를 선정했으나 윈저궁을 스타트 라인으로 변경함에 부득이 42.195Km라는 거리를 택하게 된 것이다.
이후부터 마라톤의 정규코스는 42.195Km로 공식화 됐다.
□ 종류
마라톤은 42.195Km의 거리를 달리는 최장거리 도로 경주이다.
일반적으로 마라톤이라고 할 때는 풀코스(정규코스)를 말하지만
거리를 단축하여 10Km, 20Km 를 뛰는 것은 단축 마라톤이라고 한다.
□ 코스
마라톤 경기는 예선전 없이 주경기장에서 신호총의 신호에 의해 출발하며,
코스를 이탈해서는 안되고, 반드시 자력으로 완주해야 한다는 두 가지 원칙하에 실시된다.
◽편도코스 : 출발지 점과 결승지점이 각기 다른 코스
◽왕복코스 : 출발지점에서 반환점을 돌아서 출발지점으로 다시 돌아오는 코스
◽순환코스 : 출발지점에서 출발하여 한바퀴를 돌아 다시 출발지점으로 돌아오는 코스
◽방사코스 : 어떤 중심지점을 정하고, 출발하여 어느 지점까지 다녀와서 다른 어느 지점까지 다녀오는 코스로,
출발지점과 결승지점은 동일하다.
□ 경주로
코스의 계측 지점은 경기장 안에 출발점과 결승점을 설치할 경우, 트랙의 내측 경계의 외측 30cm지점을 계측하며,
원주를 벗어나거나 들어올 때도 모두 30cm지점을 분기점으로 하고, 도로가 인도 및 차도로 구별된 경우
경계선부터 차도 안쪽으로 30cm의 지점, 구별이 안된 경우는 도로의 측단부터 30cm내측의 지점에 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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