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우 귀향사
歸鄕詞
李 東 雨
Advanced Engineering Group (AEG)
Seoul, Korea
머릿말
아무래도 미리 얘기해 두어야겠다. 왜 내가 이 조그만 책자를 만들었는가하는 그 연유와 전말을 말해 두어야겠다.
나는 1962년, 그 청명한 9월 어느날 유학길에 올라 한국을 떠난후 근 35년간을 미국에서 살아왔다. 그러다가 1996년 초 서울에서 내 전공분야인 構造工學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그동안 여러번 한국방문을 하였기 때문에 35년간을 공백으로 지나다가 갑자기 귀국한 것은 물론 아니다.
나의 긴 미국생활기간에 언제나 한국생각으로 특별히 부모형제들의 생각은 나의 뇌리의 저변에 언제나 차지하고 있었다. 이런것들을 가리켜, 운명적이라고 할까? 자기가 자란 곳, 자기가 어릴때, 그리고 장성할때의 체험은 마지막 임종할때까지 잊혀지지 않는 것이다. 이 책자를 준비한 중요한 이유는 내가 가슴깊이 사랑했던 나의 부모님, 형제들, 그리고 나의 친척들, 나의 친구들에게 내가 그들에게 돌아왔음을 알리고 내 생각속에 항상 그들의 생각들이 배어 있었음을 알리고 싶은 것이다. 이 책자의 첫째부분인 “歸鄕詞”에 포함시킨 짧은 글들에는 이 생각들이 나타나 있으리라 믿는다.
나의 미국생활은 행복한 시간이었고, 알찬시간이였고 조용히 미소를 머금고 스스로 기뻐할만한 시간들이였다. 젋음과 이상과, 탐구의 줄기찬 Campus생활은 나에겐 참으로 값어치 있는 시간들이였다. 학문의 머언 변두리까지 소요하게 된 것은 행운이라고 하겠다. 지금 생각해도, 밤이나 낮이나 공부뿐인, 깨소금이 쏟아지는 생활이였다. 아직도 나는 이 자랑할만한 체험때문에 어린아이의 생생한 호기심으로 나의 전문분야의 논문들을 뒤적이고 있다.
학위를 마치고 곧 New York市에서 잘 짜여진 수준 높은 회사에서 강력한 구조설계의 Practice를 시작하였다. 이 New York市에서의 設計경험은 이후 Ohio州와 Texas州에서 계속된 약 25년간의 구조설계 Practice의 모범이 되었고, 새출발에 훌륭한 발판을 마련해 주었다. New York생활은 폭넓은 Cosmopolition적인 생각을 갖게 해 주었고 좁은 생각으로 조각과 개파를 이루는 활동에는 흥미를 잃게 해 주었다.
Ohio의 한적한 꽃 피는 마을에서, 나는 오랫동안 잊었던 꽃과 달빛과 시냇물의 아름다움을 한가롭게 되뇌이게 되었다. 그리고 Texas의 별빛 밝고, 야생화 만발하는 가슴트인 광야에서 Cowboy와 같은 활달하고 자유분방한 생각으로 Consulting회사도 차리고, 내 전공분야의 Practice에서 개인적인 역량으로 마음껏 발휘 해 보고 깊은 생각을 해 보려고 노력하였다.
어쩌면 이 다양한 미국생활 체험에서 나는 더욱 자유스러워진 것 같다. 무슨 전통이나 인습같은 인공적인 것에 얽메이지 않고, Walt Whitman이 노래한 Cosmos속의 Self로 살아가는 것이다. 이것은 진정 美國大陸이라는 넓은 나라에 와 살아본 덕분인것 같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이 Cosmos속의 Self는 나의 핏줄 속에 용해되어 있는 한국적인 것과 잘 조화됨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되었다. 물론 이 느낌은 많은 시간이 흐르고, 많은 되새김질의 결과로 되었다고 생각되지만.
이제 내 나이도 60이 되었다. 孔子님의 耳順의 나이인 것이다. 지금까지 머언 뒤안길을 돌아 돌아 열심히 살아왔다. Socrates가 말한 바, “스스로를 깊이 관찰하지 않고 사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에서 살 가치가 있도록 노력해 왔다고 생각된다. 지금 다다른 지점은 나로서는 만족한다. 성급해 하지 않고 큰 후회와 자책속에 연연하지도 않는다. 이 시점, 이 시점에서 충실하고 싶다.
이 책속의 내용을 네(4)부분으로 나누어 보았다.
첫째부분은 짧막한 詩같은 글들인데, 1964년 이후 최근까지 쓴것으로, 읽어보면 아직도 거칠고, 응결되지 않은 어설픈 글들이다. Paul Valery의 詩의 정의에 따르면 결코 詩라고 할 수 없다. 그렇다고 억지로 매끈 매끈하게 다듬고 싶은 생각은 없다. 내가 직업적 詩人이 아니라는 자유스러움에 새삼 즐겁다. 대부분의 이 글들은 Texas에서 쓰여졌고, 맨 마지막의 “歸鄕詞”는 1996년 서울에서 쓴 것이다.
둘째부분은 수필형식으로 된 짤막한 散文들인데 그 모두가 잡지나 신문에 실린 것으로 더러는 美國에서 쓴 것들도 있다. 海愁는 유학가기 전, 1960년 産業銀行 ICA 住宅資金技術室에 근무할 때 쓴 것이고, 기술에 관한 3편의 글들은 1996년 서울에서 한국콘크리트 학회지의 자유투고란에 발표한 것이다.
셋째부분과 넷째부분은 내가 미국에서 자주 읽었던 詩와 散文들인데, 이 글들은 언제나 예외없이 나의 마음은 따뜻하게, 또한 머언 환상의 나라로 데려다 주는 역할을 하였다. 주로 詩들을 많이 읽었는데 그 중요한 이유는 바쁜 생활에 짧고 농축된 詩가 散文보다 휠씬 시간적으로 경제적이고, 응결된 생각을 음미하는데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리라. 한국詩와 글들에는 한국의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나온 글들이 많은데 이것은 퍽 자연스러운 결과로 느껴진다.
오랫동안의 미국생활은 英詩를 새롭게 느끼도록 해 주었고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따스한 체온을 영어의 단어 단어에서 느끼기 시작하게 되었다. 그래서 좋아하는 英詩를 포함시켰는데 이것들은 정든 나의 친구들이다.
이 글들을 이 조그만 책자에 모두 담아서 앞으로도 계속, 친구집을 방문하듯 읽게 될 것이다.
길고 지루한 머릿말을 끝내야겠다. 이 책자를 만드는데, 내 조카 김유경양이 꼼꼼히 타자로 준비해 주어서 고맙게 생각한다.
1996년, 서울에서
이 동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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