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6.15. 원목사의 목양칼럼
<소망은 우리를 자신 있게 합니다.>
우리는 예수 믿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일반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삶의 방식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가진 가치관, 즉 성공과 번영과 물질에 방점(傍點)이 찍힌 가치관이 아닌 의(義)로움과 선(善)함과 이타(利他)에 방점을 찍은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이런 우리의 가치관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희생과 섬김에 근거합니다. 그래서 우리를 그리스도인(人)이라 칭합니다.
그런 우리라도 가끔은 주눅 들고 자신 없이 살기도 합니다. 그런 우리라도 가끔은 힘들어 낙심하고 주저앉곤 합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런 상황을 예견이라도 한 듯 사도(使徒) 바울은 말합니다.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아니한다’(로마서5:5 상반절) 그 이유가 ‘우리 안에 부어진 성령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같은 절 하반절)이랍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이 로마서를 쓸 당시에는 예수 믿는 사람들이 극심한 박해를 받던 시대입니다. 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한 시기는 대략 주후 57년경으로 추정되는데, 이 시기는 초기 기독교 공동체가 로마 제국의 압제 속에서 생존을 모색하던 때였습니다. 당시 로마 교회의 신자들은 네로 황제의 박해가 본격화되기 직전이었지만, 이미 사회적 차별과 배척을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클라우디우스 황제는 주후 49년경 유대인들의 소요를 이유로 그들을 로마에서 추방했는데, 이때 많은 유대계 기독교인들도 함께 추방되었습니다. 바울이 로마서를 쓸 당시에는 이들이 다시 돌아와 로마 교회에 합류한 상황이었지만, 이로 인해 유대계 기독교인과 이방계 기독교인 사이의 갈등도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니까 밖에서는 황제의 권위와 사회의 안정을 위해 기독교인을 박해하는 시기였고 안으로는 교회 내에서는 같은 그리스도인 사이에서 출신에 따른 갈등이 있던 시기였습니다. 내우외환(內憂外患)의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서조차 자기들의 ‘믿음의 정체성’에 대하여 부끄럽게 생각하던 그런 때였습니다.
예수를 믿다 보면 그런 때가 있습니다. 예수를 잘 믿는데도 가난은 여전히 계속됩니다. 예수를 잘 믿는데도 연약한 몸은 회복의 기미가 보이질 않습니다. 예수를 잘 믿는데도 자녀는 여전히 엇나갑니다. 예수를 잘 믿는데도 우리 앞에 놓인 걱정꺼리들과 낙심할만한 꺼리들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점점 더 커지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낙심하고 주저앉고 자괴심이 생기고 소망이 사라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바울시대의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믿음의 정체성’이 흔들릴 때가 있고 믿음으로 사는 지금의 삶이 부끄럽다 느낄 때가 있습니다. 바울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여기 바울의 말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소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아니한다.’ 이 말을 다른 버전으로 하면 이렇습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는 우리를 부끄럽게 아니한다.’ 조금 더 적극적인 표현으로 하면 이렇습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는 우리를 더욱 자신 있게 하고 우리를 더욱 보람되게 하며 우리를 더욱 멋지게 한다.’ 그 이유는 우리 안에 부어진 성령(聖靈)으로 인한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그 사랑이 우리 안에 있는 한 우리는 늘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우리의 인생이 살만한 인생이 됩니다. 그게 복음(福音)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흔들림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살게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 앞에 놓여진 상황에 굴하지 않게 합니다. 세상의 어떤 것이라도 심지어 하늘의 천사라도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습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께 대한 소망이 있는 한 우리는 늘 승리할 겁니다. 소망은 약한 듯 하지만 강하고 희미한 듯 하지만 선명합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소망은 두 날개처럼 우리를 날게 합니다. 할렐루야.
가평푸른숲요양병원 內
푸른숲참기쁨교회 원응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