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시청의 20층에 있는 하늘마당에서 대전시립합창단의 공연에 다녀왔다. 수요브런치 concert라는 이름으로 수요일마다 열리는 향연인데 무료이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갔다. 거기에 가기 전에 대전문화예술의전당에 들러서 내일 저녁에 있는 김승연 피아노 독주회 티켓을 예매했다. 처음 가 본 대전문화예술의전당은 대단히 큰 건물이었다. 바로 곁에 시립미술관이 있어서 다음엔 거기에도 들러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예매를 서둘러서 끝내고 나서 시청으로 향했다. 시청 건물도 거대했고, 그 안에 우체국도 있고, 식당도 있고, 도서관도 있고, 각종 시설이 들어 있는 종합건물이었다. 간신히 늦지않게 도착하여 자리에 앉았더니 11시가 약간 넘자 공연이 시작되었다. 이대우라는 지휘를 맡은 분이 인사도 하고 해설을 겸한 진행을 했는데 먼저 한국합창곡 '강 건너 봄이 오듯'과 '남촌'을 들려주었다. 그리고 나서 노주호 소프라노의 '아, 나는 살고 싶어라'를 독창으로 들려주었고, 다음에 '5개의 히브리 사랑의 노래'를 합창으로 들려주었다. 다시 임우택 바리톤의 '산아'라는 독창이 있었고, 마지막 순서로 '베르디의 '대장간의 합창'과 비제의 '하바네라' 그리고 비제의 '투우사의 합창'을 계속하여 불렀다. 끝났다는 인사를 하자 박수를 계속 치면서 '앵콜'을 소리지르니까 한국 가곡 2곡을 더 불러주었다. 약 1시간이 흘러갔다. 청중은 많지 않았고, 무료이었지만 합창단의 수준은 대단했다. 피아노를 치는 연주자들-박성진과 김수희-도 대단했다. 모처럼 즐겁고 황홀한 시간이었다.
어제는 어머님을 모시고 동학사 벚꽃길을 다녀왔다. 사람들이 '동학사 벚꽃길이 정말 좋더라!'고 하였다더니 실제로 가보니 그런 말이 나올 만하다고 생각되었다. 화요일인데도 차도 많고 사람도 많아서 주차를 못하고 한 바퀴 돌아서 왔는데도 마음이 차고 넘쳤다. 그동안 봄이 와도 벚꽃 구경을 제대로 해 본 적이 없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만개한 벚꽃길을 즐기면서 퇴직자의 삶을 실감했다. 시간이 많이 남아서 옛터민속박물관이라는 곳도 다녀왔다. 식당과 찻집을 겸한 곳인데 개인의 박물관처럼 꾸민 특이한 곳이었다. 순천의 '다심정가'라는 식당이 생각났다. 오가는 길에 벚꽃도 많이 피었지만 사방에 개나리가 많이 보이고, 특히 목련이 많은 것이 새로웠다. 대전에는 정말 목련이 많은 것 같다.
지난 주부터는 가까운 산기슭에 작은 밭을 개간했다. 걸어가면 20분 정도 걸리는 곳인데 무, 상추, 참나물, 취나물, 땅콩, 부추, 시금치, 도라지 등을 심었다. 앞으로 고추와 호박 등도 심을 예정이다. 그리고 감나무와 대추나무 그리고 매실나무도 심었다. 앞으로 상당 기간을 여기서 살 것이니까 멀리 내다보고 과일 묘목을 심었는데 2~3년 후에는 첫 열매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한다. 날마다 거기에 가서 둘러보고 싹이 올라온 것을 즐기노라면 시간 가는 줄을 모르겠다. 이미 일부는 싹이 올라오고 있으니까 5월부터는 수확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날마다 책을 읽으려던 처음 생각은 5월부터나 가능할까? 이사를 했기 때문에 아직은 만나야 할 사람도 있고, 손님으로 초대하거나 초대를 받는 일도 많고, 밭을 개간하는 일과 교회당의 일을 하는 것 등이 시간을 많이 필요로 하고, 집과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구입하러 다니는 것도 상당한 시간을 필요로 해서 생각만큼 하루의 시간 여유가 많지 않은 것을 본다. 생각으로는 하루나 이틀에 한 권의 책을 읽으려고 하지만 사실은 1주일에 두 권을 읽기도 쉽지 않다. 그렇다고 잠을 많이 자거나 빈둥거리고 노는 것도 아니니까 지나치게 비관적으로 생각하지는 말자. 점점 주변 정리가 되어가고 있으니까 5월쯤이면 생활이 안정될 것이고, 책을 읽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어제는 인터넷으로 주문한 세 권의 책이 도착했으니까 오늘부터 열심히 읽어야 하겠다. 필요한 것은 필기도 하면서 공부를 하려고 생각한다.
아침에 밭에 갔다가 오면서 보니까 엄사중학생들이 등교중이다. 몇 시까지 등교해야 하느냐고 물으니 8시 15분까지란다. 순천효천고등학생들은 스쿨버스 때문에 8시 30분이나 40분에 등교하기도 하는데 여기는 중학생들도 이렇게 일찍 등교한다. 순천효천고등학교는 언제나 스쿨버스가 없어지고 모든 학생들이 일찍 등교하여 학습 자세를 갖출까? 사실은 엄사초등학생들도 거의 비슷한 시간에 등교하고 있다. 몇몇 초등학생들과 중학생들이 다음 중에 시험이 있다고 도서관에 와서 열심히 공부하는 것을 보면 너무 대견스럽다. 그런 것을 몇 번 보다가 저들에게 어떻게 접근해볼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내일부터 저녁 시간에 도서관에 가서 휴게실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영어공부 하다가 질문 있나요?” 라고 쓴 종이를 보여주고자 한다. 매일은 어려울지라도 가끔 가서 이렇게 하면 어느덧 나에 대한 소문(?)이 날 것이고,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때에도 계속 그렇게 하면 어떤 학생들은 마음의 문을 열고 다가올 것 같다. 퇴직을 하면서 생각했던 것 중의 하나가 그것인데 지금까지는 시간을 내지 못하고 있지만 앞으로 그 정도는 가능할 것 같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수학을 공부하지만 간혹 영어를 공부하는 학생들도 눈에 보이니까 자연스럽게 접근을 해 보자. 효천고 점심시간의 ‘효천 1아 웃어라!’가 생각나구나.
3월 15일에 논산훈련소에 입소했던 은혁이는 4월 10일에 수료식을 갖고 집으로 돌아왔다. 입소식과 수료식을 공개하는 군대가 되어서 두 번 다 논산에 갔다가 왔다. 4 주만에 상당한 변화를 볼 수 있었다. 수료식을 할 때 보니까 질서와 규율이 있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애국가를 부를 때에도 모두 엄숙하게 잘 불러서 흐뭇했고. 국가에 대한 생각도 약간은 달라진 것을 느꼈다. 이제 국가의 공무원이 되었으니 경제적으로는 완전히 독립을 한 셈이다. 훈련을 받는 동안에 주고받은 몇 번의 편지가 서로의 마음을 더 가깝게 했을까? 수료식 날 ‘충성’이라고 인사한 후에 나와 함께 껴안은 것이 너무 고맙다.
Facebook을 통하여 여러 학생들과 몇 명의 선생님들과 소식을 주고받고 얼굴을 만나보는 것이 최근의 일이었다. 이제 2학년의 삶에 바빠졌기 때문인지 작년의 학생들에게서도 연락이 거의 없다. 간혹 Facebook을 통해서 짤막한 한두 마디를 듣는 것이 전부다. 하긴 나도 바쁘다고 해서 거의 한 달간 이곳을 찾지 않았으니 무슨 말을 하랴?
나의 집과 내 주변을 사진으로 찍어서 올리고자 했는데 이제야 일부를 ‘사진자료실’에 올린다.
날마다 책을 읽으려던 처음 생각은 5월부터나 가능할까? 이사를 했기 때문에 아직은 만나야 할 사람도 있고, 손님으로 초대하거나 초대를 받는 일도 많고, 밭을 개간하는 일과 교회당의 일을 하는 것 등이 시간을 많이 필요로 하고, 집과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구입하러 다니는 것도 상당한 시간을 필요로 해서 생각만큼 하루의 시간 여유가 많지 않은 것을 본다. 생각으로는 하루나 이틀에 한 권의 책을 읽으려고 하지만 사실은 1주일에 두 권을 읽기도 쉽지 않다. 그렇다고 잠을 많이 자거나 빈둥거리고 노는 것도 아니니까 지나치게 비관적으로 생각하지는 말자. 점점 주변 정리가 되어가고 있으니까 5월쯤이면 생활이 안정될 것이고, 책을 읽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어제는 인터넷으로 주문한 세 권의 책이 도착했으니까 오늘부터 열심히 읽어야 하겠다. 필요한 것은 필기도 하면서 공부를 하려고 생각한다.
아침에 밭에 갔다가 오면서 보니까 엄사중학생들이 등교중이다. 몇 시까지 등교해야 하느냐고 물으니 8시 15분까지란다. 순천효천고등학생들은 스쿨버스 때문에 8시 30분이나 40분에 등교하기도 하는데 여기는 중학생들도 이렇게 일찍 등교한다. 순천효천고등학교는 언제나 스쿨버스가 없어지고 모든 학생들이 일찍 등교하여 학습 자세를 갖출까? 사실은 엄사초등학생들도 거의 비슷한 시간에 등교하고 있다. 몇몇 초등학생들과 중학생들이 다음 중에 시험이 있다고 도서관에 와서 열심히 공부하는 것을 보면 너무 대견스럽다. 그런 것을 몇 번 보다가 저들에게 어떻게 접근해볼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내일부터 저녁 시간에 도서관에 가서 휴게실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영어공부 하다가 질문 있나요?” 라고 쓴 종이를 보여주고자 한다. 매일은 어려울지라도 가끔 가서 이렇게 하면 어느덧 나에 대한 소문(?)이 날 것이고,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때에도 계속 그렇게 하면 어떤 학생들은 마음의 문을 열고 다가올 것 같다. 퇴직을 하면서 생각했던 것 중의 하나가 그것인데 지금까지는 시간을 내지 못하고 있지만 앞으로 그 정도는 가능할 것 같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수학을 공부하지만 간혹 영어를 공부하는 학생들도 눈에 보이니까 자연스럽게 접근을 해 보자. 효천고 점심시간의 ‘효천 1아 웃어라!’가 생각나구나.
3월 15일에 논산훈련소에 입소했던 은혁이는 4월 10일에 수료식을 갖고 집으로 돌아왔다. 입소식과 수료식을 공개하는 군대가 되어서 두 번 다 논산에 갔다가 왔다. 4 주만에 상당한 변화를 볼 수 있었다. 수료식을 할 때 보니까 질서와 규율이 있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애국가를 부를 때에도 모두 엄숙하게 잘 불러서 흐뭇했고. 국가에 대한 생각도 약간은 달라진 것을 느꼈다. 이제 국가의 공무원이 되었으니 경제적으로는 완전히 독립을 한 셈이다. 훈련을 받는 동안에 주고받은 몇 번의 편지가 서로의 마음을 더 가깝게 했을까? 수료식 날 ‘충성’이라고 인사한 후에 나와 함께 껴안은 것이 너무 고맙다.
Facebook을 통하여 여러 학생들과 몇 명의 선생님들과 소식을 주고받고 얼굴을 만나보는 것이 최근의 일이었다. 이제 2학년의 삶에 바빠졌기 때문인지 작년의 학생들에게서도 연락이 거의 없다. 간혹 Facebook을 통해서 짤막한 한두 마디를 듣는 것이 전부다. 하긴 나도 바쁘다고 해서 거의 한 달간 이곳을 찾지 않았으니 무슨 말을 하랴?
나의 집과 내 주변을 사진으로 찍어서 올리고자 했는데 이제야 일부를 ‘사진자료실’에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