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날은 열쇠를 어디에 두었는지 한참을 찾아 헤맸다. 젊었을 때는 기억력이 좋다고 남들이 칭찬을 해 주었는데, 나이가 들수록 기억력이 예전 같지 않다. 모처럼 아내와 같이 여행을 가기로 했다. 여러 날 집을 비우기 때문에 내 딴에는 가스도 점검하고 전기 스위치, 문단속도 야무지게 하고 아내와 열차를 타려고 역에 나왔다. 뜬금없이 화장실 전기 스위치를 내렸는지 안 내렸는지 생각이 안 난다. 분명히 화장실을 점검하기 위하여 내가 전기 스위치를 켜고 들어갔는데, 나올 때 어떻게 했는지 생각이 안 난다. 아내에게 물어 보니까 아내도 모르겠단다.
기억을 더듬어 봐도 생각이 나지 않고 안 내렸다는 쪽으로 생각이 굳어졌다. 결국 택시를 타고 집에 가서 확인을 했다. 스위치는 내려져 있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레테의 강을 건넜는지, 이승에 있었던 모든 기억이 말끔히 사라지게 하는 감로주(망각의 술)를 마셨는지 불과 20분 사이에 일어난 일을 제대로 기억을 못하니까 황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건망중이 심하면 치매가 오는 것은 아닌지 하는 불안감이 들었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는 데, 그 말에 은근슬쩍 무게를 두면서 조금 전의 불안감을 기억에서 지워버렸다.
기억이란 사람이나 동물이 경험한 것을 특정 형태로 저장하였다가 나중에 재생 또는 재구성하거나 새로운 경험을 저장하는 작용을 말한다. 기억에 상반되는 말이 망각이다. 망각은 전에 경험하였거나 학습한 것의 파악이 일시적 또는 영속적으로 감퇴 및 상실되는 것을 말한다. 사람은 하루를 생활하면서 눈으로 사물을 보기도 하고 귀로 정보를 듣는다. 그리고 책을 읽고 공부를 한다. 특히 현대를 사는 우리는 많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허우적거린다. 이렇게 많은 정보를 보관하지만 그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잊어버리게 된다. 에빙하우스의 망각곡선에 의하면 기억한 내용이 10분 후부터 망각이 시작되어 1시간 후는 50%, 1일 후는 70%, 한 달 후에는 80%를 잊어버린다고 한다. 이처럼 사람의 뇌는 시간이 지날수록 잊어버리는 양이 많아진다.
망각이 기억을 빠르게 밀어낼 때 일상생활에서 당혹스러운 일을 누구나 겪어 보았다. 암기를 했든 내용이 시험에 나왔는데, 생각이 날 뜻하면서 안 나서 답을 쓰지 못했을 때의 좌절감, 상대방이 아는 체를 했는데 어디서 봤더라 하면서 기억이 안 날 때의 당황스러움, 물건을 어디에 두었는지 생각이 나지 않아서 겪는 낭패감, 그 외에 일상생활에서 잡다한 일들이 기억이 안 나서 곤란을 겪은 일들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이처럼 기억하는 능력보다 망각하는 능력이 빠르니까 누구나 기억력이 약한 것을 탓하고 오래도록 기억하려고 애를 쓴다.
사람들은 기억이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의 깊은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다. 기억을 오래 유지시키려고 연구도 꾸준히 하고 있다. 심지어 기억에 좋다는 약에 현혹되기도 한다. 기억을 오래도록 유지 시키려는 방법이 다양하지만, 가장 좋은 방법은 강렬한 자극이나 반복된 경험을 들 수가 있다. 강렬한 자극이나 반복된 경험에서 나오는 개념이나 이미지는 사람의 기억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고 오래도록 유지 시킨다. 학생이 공부를 잘하는 방법도 마찬가지다. 왜 공부를 하는 가. 하는 동기부여와 꾸준한 예습과 복습을 하라고 한다. 공부를 왜 하는 가. 하는 동기부여는 강렬한 자극이 되고 복습은 반복된 경험이다. 그래서 공부하는 학생의 동기부여를 자극시키고 꾸준히 복습을 하면 잊어버리는 양이 줄어들어 공부를 잘할 수가 있다.
기억을 오래 유지시키기 강렬한 지극이나 방법은 쓴 사람을 들라면 사기에 나오는 와신상담이라는 고사 이야기 할 수가 있다. 오나라 왕 부차는 월나라와 전쟁에서 패한 후 가시가 많은 장작 위에 자리를 펴고 자며, 방 앞에 사람을 세워 두고 출입할 때마다 “부차야, 아비의 원수를 잊었느냐!”하고 외치게 하였다. 이를 와신 이라고 한다. 오나라는 월나라와 싸워 아버지의 원수를 갚았다. 싸움에 패한 월나라 왕 구천은 옆에 항상 쓸개를 매달아 놓고 앉거나 눕거나 늘 이 쓸개를 핥아 쓴맛을 되씹으며 “너는 회계의 치욕을 잊었느냐!”하며 자신을 채찍질하였다. 이를 상담이라고 한다. 월나라는 오나라를 처서 치욕을 갚았다. 이와 같이 와신상담은 부차의 와신과 구천의 상담이 합쳐서 된 말로 회계지치라고도 한다. 이 고사의 이야기처럼 강렬한 자극과 반복된 경험으로 망각되는 기억을 오래 잡아두고 치밀한 계획을 세워 목적을 달성 할 수가 있었다.
일상생활에서 망각 때문에 손해를 보거나 운명이 달라진 일을 주위에서 종종 볼 수가 있다. 안전에 부주의해서 다치거나 죽는다. 혹은 각종 범죄를 저지른다. 이런 것을 볼 때는 주의를 해야겠다. 라고 기억을 한다. 그 때의 기억을 오래 간직했다면 같은 장소에서 같은 사고가 반복해서 일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일을 사전에 예방할 수가 있지만 기억하는 힘보다 잃어버리는 힘이 더 크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반복해서 일어난다. 인간의 속성은 자신이 경험을 해도 쉽게 잊어버리는데 하물며 제삼자의 입장에서는 더욱 쉽게 잊어버린다.
흔히들 망각을 이야기하라면 물고기를 많이 이야기 한다. 물고기는 3초 이상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는데 실제로 그런 모양이다. 얼마 전에 낚시를 했는데, 제법 큰 고기를 낚다가 바늘이 떨어져 고기를 놓쳤다. 얼마 지나서 고기를 낚았다. 잡고 보니 아가미에 낚시 바늘이 걸려 있었다. 아마 이놈이 조금 전에 미끼를 먹다가 낚시 바늘을 물고 도망간 놈 같았다. 아가미에 낚시 바늘이 걸려 있었으면 아프고 불편했을 것인데, 그 상태에서 미끼를 또 먹으려다 걸렸다. 물고기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조금 더 오래 기억을 했다면 잡히지 않았을 것이다. 이 물고기는 방금 전에 일어난 일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미끼에 현혹되어 잡힌 것이다. 인간이나 물고기나 자신에게 해가 되는 일은 잊어버리지 않아야 한다. 쉽게 잊어버려서 같은 일을 되풀이 되는 걸 보면 사람이나 물고기나 별반 다르지 않았다.
대체적으로 사람이 살아가면서 좋은 일보다 슬프고 분노한 일을 오래도록 가슴에 묻어두고 기억을 한다. 내 경우도 가슴이 떨리도록 기쁜 일을 당해보지 못해서 그런지 몰라도, 좋은 일보다는 슬픔이나 분노가 가슴에 남아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회상하는 잦기와 힘은 약해졌지만, 어떨 때는 불쑥 기억이 나서 그 당시 일을 회상하면 기분이 나빠진다. 잊어야만 살 수 있는 인생살이를 가슴에 묻어두어 회상을 하면 정신건강상 나쁘다던데, 잊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은 잊어버리고, 잊어야 할 것은 새록새록 기억이 나니 참으로 한심스럽다. 독일 철학자 니체는 망각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것은 자신의 실수조차도 잊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신이 인간에게 준 최고의 선물이 망각’이라고 했다. 니체는 순수한 사람의 입장에서 우여곡절이 많은 인생살이를 살아가자면 잊어버리는 것은 당연하다고 했다.
그와 반면 인간의 망각이 같은 불행을 연속시킬 수 있음을 중국의 반체제 물리학자 방려지가 경고를 했다. 그는‘통치권을 가진 세력들이 아무리 민중을 핍박해도 그 다음 세대는 전 세대의 핍박을 까맣게 잊고 같은 일을 저지른다.’고 했다. 방려지는 자신에게 해가 되는 일을 쉽게 망각을 하니까 인간이 같은 나쁜 일을 저지른다고 한다. 인간에게 해가 되는 일은 오래 기억을 해야만 인간답게 살수가 있다고 경고를 한다.
이처럼 망각이 빨리 일어나는 일은 사람이 정신건강상 좋지만 너무 빨리 잊어버려도 사람이 살아가는데 불행한 일이 다가온다. 긴 인생을 살아가면서 잊어야만 살 수 있는 일들이 너무 많은 것이 세상살이니까 기억하려고 안달하지도 말고, 잊어버리는 일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세상을 마음 편하게 살아 갈수가 있다. 적당히 잊어버리고, 슬픔이나 분노는 기억에서 완전히 지워버리면 정신건강에 좋다고 한다. 좋은 일은 자주 되새김 하여 생의 활력소로 삼으면서 자신에게 해가 되는 일은 오래 기억을 해서 반면교사를 삼는다면 이 세상을 더 슬기롭게 살아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태어나서 가장 막막했던 슬픔의 기억은 어머니를 여윌 때다. 절망감에 이 세상을 다 잃은 것 같은 슬픔에 잠겼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까 하는 막연함에 장례기간 내내 망년자실 했다. 그 때의 심정으로는 세상을 살아갈 힘이 없었다. 세월이 흐를수록 슬픔이 약해지드니 지금은 생일이나 기제사, 그리고 어머니하고 관련된 일을 보면 잠시 회상이 되다가 이내 사그라진다. 세월이 흐르면서 망각이 기억을 밀어내 어머니를 회상 하거나 여윈 슬픔의 잦기가 약해졌다. 세월의 흐름에 무디어진 내 마음을 볼 때, 어떨 때는 망각의 무심함에 마음이 쓸쓸해지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