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춘해 선생님께
선생님, 오늘 낮에 만나 뵙고 돌아와 이렇게 또 선생님께 편지를 씁니다.
오늘은 큰아드님을 데리고 오셨어요. 아드님과 함께 와서 그런지 선생님 모습이 더 정답게 보였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나들이였겠지요. 선생님을 마주보고 앉았던 오늘 여느 때와 다르게 느껴진 건 아버지로서의 선생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평소 아드님의 모습이나 성격이 어떤지는 잘 알지 못하지만, 오늘 만난 아드님도 정말 선생님과 함께 나들이 나온 아들의 모습이었습니다. 물론 제가 듣기로 연배도 저보다 위이시고 공기업에 다니시다가 얼마 전 정년퇴직 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바로 앞에 앉아 있던 저는 많이 부럽기도 했습니다. 아드님은 선생님과 얼굴 마주 보고 여러 말씀을 소곤소곤 주고받았고 아드님이 기억하시는 선생님 지난 시절의 이야기를 여럿 들려주셨지요.
앞서 제가 짓궂게 선생님이 아드님을 데리고 왔다고는 썼지만 실은 아드님이 선생님을 모시고 온 것이겠지요. 이제는 아버지와 아들의 역할이 좀 바뀌지 않았겠어요. 하지만 선생님 속마음만은 그렇지 않을 것 같습니다. 선생님 눈에는 아직도 아드님이 어린 아들로 보이기도 하겠지요.
저희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벌써 15년이 지났습니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헛헛한 마음으로 살고 있을 때 선생님을 만났고 동시를 만났었어요. 그때 저에게 큰 감동으로 다가왔던 동시가 있는데 임길택 선생님이 쓰신 〈김옥춘 선생님〉이라는 작품이에요.
달려가서 선생님을 부르면
뒤돌아 서 있다가
우리를 꼬옥 안아 줍니다.
땟국물 흐르는 손
따뜻이 쥐어 주시고
눈 맑다 웃으시며
등 두드려 줍니다.
그럴 때면
선생님 고운 옷에
푹 나를 묻고서
선생님 냄새를 맡아 봅니다.
선생님을
선생님을
우리 엄마라고도 생각해 봅니다.
실제로 10여 년 전 경남 고성 동시동화나무의 숲에 선생님 따라갔을 때 원로 선생님들 방이 따로 배정돼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몰래 그 방에 들어가 주무시던 선생님 옆에 누웠다 잠든 적이 있어요. 다음날 아침 다른 선생님 눈에 띄여 눈총 비슷한 걸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저 녀석 뭐야?’ 아마 속으로 그러셨을 것 같습니다. 아마 선생님은 모르고 계셨겠지만요.
이런 일도 있었답니다. 제가 혜암아동문학회 회장을 할 때 선생님이 자전거 타시다 다친 일이 있었어요. 선생님은 그 달 월례회에 못 나오게 됐다면서 전화를 주셨고요. 저는 월례회에서 그 소식을 회원들한테 전하면서 울었었다고 하네요. 한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살뜰한 제자 중 한 분이 말씀해 주셨어요. 그날 정말 그랬어요. 무슨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던 것 같아 지금 떠올려 보니 조금 부끄럽기도 해요. 요즘은 가끔 전기자전거를 타신다고요. 우리 바람이야 선생님이 언제까지고 자전거 타시기를 바라고 바라지요. 부디 조심해서 타세요.
오늘 선생님을 뵌 곳이 우남식당입니다. 저도 여기 출입(?)한 지 10년이 넘었네요. 혜암아동문학회가 만들어지고 거의 이 식당에서 모임을 했으니 20여 년 우리 흔적들이 알게모르게 새겨져 있겠습니다. 저희끼리 온 적도 많은데 올 때마다 말은 안 하지만 늘 선생님이 어느 방엔가 앉아 계신 것 같았어요. 환하게 웃고 있는 선생님이 계신다는 생각만으로도 기분 좋은 곳입니다. 오늘은 식당 사장님이 설이라고 술과 음료수도 내주셨어요. 선생님 팔순 때는 사장님이 직접 오셔서 선생님께 절도 올리고 음식도 따로 내주셨는데 참 정다운 분이에요. 이런 마음으로 장사를 하시니 늘 손님이 끓겠지요. 선생님이 늘 하시는 ‘우리는 情으로 살아야 한다’라는 말씀이 이 집 사장님과 어느새 통하고 있었나 봅니다.
다행히 그동안 대구시에서 원로예술인 구술 기록화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고 문인으로는 선생님이 맨 먼저 선정되셨어요. 저희 염원대로 선생님 영상을 남길 수 있어서 정말 잘된 일이에요. 선생님 댁과 대구문학관, 대구예술발전소, 한국의 집 등에서 여러 차례 나눠 촬영했는데, 고된 일정을 무탈하게 소화해 내셔서 다행이었고 기뻤습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음성 녹음에 문제가 생겨 다시 몇 차례 촬영하셨다 들었습니다. 애쓰셨습니다, 선생님.
지금은 그 영상이 마무리돼 대구에서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 도서관이나 문학관에서도 볼 수 있다니 많은 분들이 선생님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면 좋겠네요. 그리고 지난해 7월 12일 대구문학관에서 〈나도 한 그루 나무〉라는 주제로 문학강연하실 때 제가 옆에서 진행을 도왔던 그날은 정말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횡설수설 말이 길어졌네요.
끝으로 선생님이 1967년에 내신 첫 동시집 《시계가 셈을 세면》 책 끝에 적어두신 글
“내 딴은 어린이들이 가난한 속에서도 비굴하지 말고, 권세에 눈치 살피지 말며, 좀 모자라더라도 내 것을 아끼고 가꾸어 싱싱하게 자라나길 바라는 마음에서 글을 쓰긴 했습니다만 이 54편 가운데 한 편이라도 어린이 여러분 마음의 영양이 될 수 있다면 이걸 선물한 보람이 있겠습니다”
이 말씀 잊지 않고 잘 새기며 살도록 하겠습니다.
선생님, 늘 평안하세요. 사랑합니다.
2023년 봄을 기다리며
김성민 올림
첫댓글 2023년 <동시마중>에 '손으로 쓴 편지'에 발표한 글을 옮겨 놓습니다.
글을 읽으며 혜암 선생님을 떠올려 보게 되었습니다.
..한 편이라도 어린이 여러분 마음의 영양이 될 수 있다면..
어린이 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의 마음"에 영양이 될 거라고 믿어요.
혜암 선생님 웃으시는 모습이 아주 보기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