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고데모의 안경
니고데모가 누구인가? 그는 산헤드린 공회 회원이었고 당시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유대인 최고 의결기관의 회원으로 높은 신분이었다. 랍비요 종교 지도자였던 그는 오늘날로 말하자면 국회의원이요 자타 인정받는 삶을 살고 있었다. 그가 왜 예수 그리스도를 찾아왔을까? 그것도 야밤에 말이다. 아마도 그에게 어떤 것이 궁금해서였을까? 생각해본다.
일반적으로 밤에 사람을 만나지 않는다. 대낮에 사람을 만나는 게 기본이다. 그런데 니고데모는 밤에 예수 그리스도를 찾아갔다. 아마도 다른 사람의 눈에 띄는 것이 불편해서였을 수도 있고 예수 그리스도와 독대하여 더 깊은 대화를 나누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그의 열정과 의도다. 많은 사람이 이 점을 놓치고 있다. 보통 사람들은 생각만 하지 행동에 옮기지는 않는다. 그러나 니고데모는 달랐다.
여기에서 관점(Prospective)이나 세계관(Worldview)의 뜻을 알아보자. 우리가 생각하는 어떠한 시각은 사람마다 다르다. 자신이 자라온 환경이나 성격에 따라 형성이 되고 고착되는 이러한 세계관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이를 고정관념이라 부른다. 자기 생각이 다 옳지는 않다. 우리는 쉽게 우를 범한다. 내 생각이 다 옳고 다른 사람의 생각은 틀렸다는 편협한 생각을 누구나 갖고 있다. 지혜자는 모든 사람에게서 배운다. 업신여기지 않는다.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대하거나 존중한다.
흔히 색안경을 썼다는 표현을 하곤 한다. 색안경을 쓰고 보면 그 안경 색상에 따라 달리 보이게 마련이다. 그래서 내 생각이 늘 맞는 것은 아니다. “육은 육이요 영은 영이니” 육신의 눈으로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깨달을 수 없다. 때로는 색안경을 벗고 즉 내 생각을 내려놓고 세상을 바라볼 때 보이기 시작한다. 그래서 배운 사람이 예수 믿기 어렵고 진리의 꺠달음에 도달하기 더 어렵다.
하나님 나라는 단순히 하늘나라가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거듭나야만(중생, Born again)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다. 니고데모는 확신도 없었고 중생에 대한 개념을 아직도 잘 모르고 있었다. 니고데모는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없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깨닫지 못했다. 어머니 모태에서 한번 태어난 사람이 어찌 두 번째에 들어갈 수 있냐고 반문한 데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여기에서 중요한 신학적 용어 거듭남(중생, Born again)이 나온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고 과거의 나의 모든 죄를 회개하고 주님을 영접하면 구원받는다. 이를 칭의(칭의(Justification) 그리고 거듭남이라 부른다. 여기에 물세례와 성령의 세례가 필요하다. 물세례는 나의 신앙고백으로 비교적 쉽게 가능하지만, 성령세례는 다르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로만 가지 못한다. 성령의 체험을 통해 영안이 열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사람에게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주어진다.
예수 그리스도는 늘 잃어버린 사람에게 관심을 둔다. 우리가 모두 구원을 얻기를 원하신다. 니고데모는 구원받았을까? 나는 구원을 받았는가? 만약 “탕자의 비유”에서 처럼 맏아들의 역할이나 생각하고 있다면 아직도 멀었다.
이진종 <시인/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