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의 史記 11회》
☆齊桓公과 4명의 奸臣☆
제나라 환공은 춘추5패 중의 한사람으로 초기에는 영명한 군주였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못살다가 형편이 좀 나아지면 건방을 떨듯이 환공도 어느정도 자리가 안정되니, 충신의 말 보다는 간신들의 말을 들으며 그들을 끼고 돌았습니다.
환공 옆에는 4명의 간신이 있었는데, 첫번째 간신은 수초(竪貂)인데 이者는 중국 역사에서 최초의 환관(내시)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수초는 환관이 되어 궁중에서 궁녀들과 환공사이에서 중개역할을 하고 미인을 선발하여 환공에게 받치는 채홍사 역할을 하기 위해 스스로 거세를 하고 내시가 되어 환공의 지근거리에서 아부를 떨며 사리사욕을 챙겼습니다.
두번째는 역아(易牙)인데 이者는 노예 출신으로 음식 솜씨가 출중하여 궁중 요리사로 발탁되었습니다.
이者는 환공의 애첩인 장위희가 병이 나서 입맛을 잃고 있을 때 기가 막히게 맛있는 음식을 장만하여 먹게 하였는데 그 음식을 먹고 병이 깨끗하게 나았습니다. 그 뒤로 환공은 역아가 요리한 음식만 먹었는데, 하루는 환공이 "나는 날짐승, 기어다니는 짐승, 헤엄치는 짐승 다 먹어보았는데, 인육(人肉)을 못먹어 보았다는 농담을 했는데 역아는 그 말을 진심으로 알아듣고 세살배기 자기 아들을 잡아서 국을 끓여 받쳤습니다.
환공은 맛이 다른 음식보다 특이해서 "이것이 무슨 음식이냐?"고 물었습니다.
역아는 눈도 깜짝하지않고 "예! 저의 세살배기 아들을 끓인 고깃국입니다."라고 답하였습니다.
환공은 순간적으로 역정을 내고 구토를 하면서 음식을 치우도록 하였습니다.
그런데 환공의 태도가 이상했습니다. 그정도 인간이라면 당장 처벌하여야 할 일이지만, "행실이 독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나를 위한 충심은 높이 평가할 일이라며 그대로 궁중 요리사로 근무를 시켰습니다.
세번째 간신은 개방(開方)입니다. 개방은 이웃인 위(魏)나라 공자(제후의 아들)이며 인질로 와 있었는데 말솜씨가 좋아 환공의 말 동무로 크게 신임을 받고 있었습니다.
이者는 자신의 부친 위공(魏公)의 상(喪)에도 가지않고 달라붙어 있었습니다.
네번째 간신은 당무(唐茂)였습니다. 이者는 환공의 피부병을 고쳐 총애를 받은 의원(醫員)이었습니다.
이 네 간신들의 목적은 한가지였습니다. 환공 가까이에 붙어 있으면서 부귀영화를 누리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환공은 정치는 나몰라라 하고 이 네명의 울타리에 둘러싸여 세상 돌아가는 걸 모르고 내외 정치는 재상(총리)인 관중(管中)이 처리하였습니다.
이 네명의 간신들이 가장 꺼리는 사람은 관중이었습니다.
자기들이 아무리 나쁜짓을 해서 재물을 모으려 해도 관중이 철저히 제지를 하였습니다.
그래서 네명의 간신은 환공에게 관중을 모함하여 쫓아내자고 건의하였습니다.
그러나 환공은 "그것은 안돼!"라고 단호하게 거절하였습니다. 사실상 환공은 관중이 있기 때문에 자기가 건재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얼마후 관중은 연로하여 임종이 가까워지자 환공에게 "전하! 수초 등 간신 네명은 진심으로 전하를 위해서 일하는 자들이 아니고 자신들의 부귀영화를 위해 아부를 떠는 자들입니다. 저者들을 쫓아내고 정사에 정진하시옵소서, 소신은 이제 늙어 정사를 볼 수가 없습니다."라고 눈을 감았습니다.
그러자 환공은 깊이 반성하고 네명의 간신을 궁밖으로 쫓아내고 포숙(鮑叔)을 재상으로 임명하였습니다.
그리고 얼마동안 정사에 열중하던 환공이 따분하여 영 기운이 없다고 짜증 내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이를 눈치챈 애첩 장위희가 "전하! 옛날, 같이 놀던 수초와 역아, 개방, 당무를 불러 노시지요."라고 꼬드겼습니다.
사실 애첩 장위희도 그들이 있어야만 젊은 공자들과 바람을 피울수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니 멍청한 환공이 다시 그들 넷을 다시 불러들여 옛날 직위에 앉혔습니다.
이를 본 포숙이 "전하! 관중의 충언을 잊으셨습니까? 어쩌자고 그들을 다시 불렀습니까?"라고 하자, 환공은 "그들이 없으니, 재미가 없어 살맛이 안난다."고 푸념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포숙은 이사람은 대책이 없는 사람이라고 여기고 사표를 내고 나가버렸습니다.
그러니 이者들은 물고기가 물을 만난듯 궁(宮)을 장악하고 판단력이 흐려진 환공을 움직여 온갖 횡포를 저질렀습니다.
심지어는 관중이 생존시에 환공과 의논하여 차기 제후로 소공자를 지명해 놓았는데 자기들을 다시 궁으로 불러준 장위희의 아들 무휴로 바꿔치기 하려고 하였습니다.
환공은 나이가 많아 노환으로 사경을 헤매게 되었는데 네명의 간신들은 환공이 죽은 뒤에도 영화를 누리기 위해 환공의 친족까지도 일체 환공의 침실에 드나들지 못하게 하고 물 한모금도 들이지 못하게 하니, 환공은 갈증에 시달리다 죽었습니다.
환공이 죽은 후 후계자 문제로 싸우느라 시체를 67일간이나 방치하여 시체에서는 구더기가 들끓었습니다. 한때는 관중과 포숙의 보좌를 받아 춘추시대 최초로 패자(覇者)가 되어 우쭐거렸으나, 종말은 비참하였습니다.
네명의 간신들은 환공 아들들의 패권 싸움에 휘말려 죽거나 이웃나라로 도망쳤습니다.
총언(忠言)을 고깝게 생각하여 듣지않고 간신들의 달콤한 거지말을 들은 군주들은 시대를 불문하고 모두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당하였습니다.